, 어쩌면, 이미 로그아웃되었는지도 모른다

 

 

1.

 

시버, 시버, 시버

 

나의 아들인 그 녀석은 연신 싫다는 표현을 하고 있었다. 뭐가 싫으냐고 물어봐도, 제대로 된 대답을 기대하기는 그른 저녁이었다. 이 녀석이 자꾸 왜 이러지? 내가 방송에 나온 게 싫다는 건가, 내가 싫다는 건가, 아니면 밥을 먹기 싫다는 건가? 나는 녀석에게 다시 물었다.

 

아들! 싫은 걸 말을 해야지? 엄마가 잘 모르겠어서 그래.”

시버, 시버, 시버

 

아들은 꺼져 있는 TV를 바라보면서, 차려놓은 밥은 쳐다보지도 않고 연신 싫다고만 했다. 도대체 이 녀석이 왜 이러는 걸까.

 

아들? 밥 먹을 거야, 안 먹을 거야?”

시버, 시버, 시버

 

도대체, 이 녀석이 오늘 왜 이러지? 아무리 생각해 봐도 녀석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었다.

 

밥은 안 먹을 거야?”

머거 머거시버 시버

 

그러면서, 녀석은 밥을 흘겨넣은 채, TV를 계속 바라보았다.

 

“TV 켜줄까?”

시버, 시버, 시버

 

아들 녀석은 계속해서 싫다고만 할 뿐, 그 이상은 말하려 하지 않았다. 아들은 계속해서 밥을 먹으면서 꺼진 TV만 바라볼 뿐, 더 이상의 어떤 표현도 하지 않았다.

 

 

2.

 

오늘은 발달장애 아들을 돌보면서 10년을 살아온 공공이의 엄마 설상희씨를 모시고, 얘기를 들어보겠습니다. 설상희씨, 발달장애 아들을 벌써 10년째 돌보고 계시는데요, 힘든 점은 없으신가요?”

제 아들인데, 힘들기는요. 아들이니까, 사랑스럽기만 하죠.”

그래도, 발달장애 아들과 함께 사는 게 쉬운 일은 아닐 거라는 생각은 드는데요?”

, 그러신가요? 오히려, 저는 아들을 사랑하기에 같이 있는 게 더 행복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사회자님은 왜 그렇게 생각하시는지요?”

, 정말로 아들을 사랑하시는군요. 제가 잘못 생각한 거 같습니다.”

 

생방송에서 발달장애 아들을 두고 있는 설상희씨의 방송은 그렇게 어색하게 종료되었다. PD는 빨리 다른 화면으로 돌리라고 재촉하였고, 설상희씨와의 인터뷰는 부랴부랴 마무리되었다.

 

 

3.

 

공공이 엄마, TV에 나왔네?”

, 봤어?”

근데, 인터뷰를 뭐 이렇게 빨리 끝냈어?”

글쎄, 원래 질문하기로 되어 있는 게 있었는데, 시간관계상 여기서 생략한다고 하면서 빨리 끝내 버리네?”

, 그런 거지? 어쩐지. 너무 싱겁게 끝나 버려서.”

싱거웠어? 인터뷰가?”

아니, 방송이.”

방송이, ?”

많은 발달장애 어머니, 아버지들, 그리고 발달장애인 센터 원장님들께서 잔뜩 기대하고 계셨는데, 몇 마디 하고 끝났잖아? 너무 싱겁게 끝나버려서 아쉬웠대.”

, 그래? 인터뷰를 좀더 길게 하자고 말을 할 걸 그랬나?”

, 다음에 혹시 또 나갈 기회가 있으면 좀 길게 하자고 해.”

, 그래야겠네.”

 

 

4.

 

남편이 들어왔다.

밥은?”

먹었어.”

먹었는데, 일찍 들어왔네?”

배고파서.”

저녁은 안 해도 돼?”

아들 녀석은 먹었어?”

, 대충 먹었어. 계속 싫다고만 하네.”

뭐가?”

나도 모르겠어. 아까 엄마가 TV에 나온 걸 보더니, 그 다음부터 계속 싫다고만 해.”

“TV는 껐어?”

, 껐어. 자꾸 싫다고 해서 껐더니, 그래도 계속 싫다고만 하네. 뭐가 싫다는 건지 모르겠어.”

그래? 왜 그러지.”

그런 다음, 남편은 말없이 옷을 갈아입더니, 자기 서재로 들어가려 했다.

책 보려고?”

아니.”

그럼?”

그냥 쉬고 싶어서

응 그래

, 쉴게.”

.”

 

 

5.

 

공공이 엄마, 오늘은 TV에 안 나와?”

글쎄, 인터뷰는 하루로 끝나는 거 아냐?”

출연료는 얼마나 받았어?”

“30만원.”

에게? 고작 그거?”

작은 건가?”

어떤 사람은 인터뷰 한번 하면 3천만원도 받는다던데?”

, 그래? 작은 거구나.”

그래, 다음에 또 나가게 되면, 출연료 좀 많이 달라고 해봐.”

그래야겠네.”

 

 

6.

 

아들, 오늘 또 왜 그래?”

공공이는 두 눈을 부릅뜨고 엄마를 쳐다보았다.

시버, 시버, 시버

도대체 왜 그래? 왜 자꾸 싫다고만 해?”

나의 신경질에 아들 녀석은 금세 눈물을 글썽거리시 시작했다.

시버, 시버, 시버

아들 녀석의 눈물에 잠시 마음이 동하기도 했으니, 이내 마음을 다잡았다.

아들, 다음부터 싫단 말 하면, 엄마도 더 이상 아들하고 대화할 마음 안 생겨.”

그러자, 아들 녀석, 글썽이던 눈물을 터뜨려 버렸다. 그렇게 서럽게 울던 모습을 본 건, 내가 공공이를 본 이래 처음이었다.

 

 

7.

 

그렇게 서럽게 울었다고?”

밤새 울었는데, 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구. 말을 안 하니, 알 수가 있어야지.”

그래서, 어떻게 했는데?”

아침에 그냥 맛있는 반찬 해줬어.”

그게 다야?”

, 다른 때보다 반찬에 더 신경을 썼어.”

그랬더니?”

한참 울던 애가, 반찬을 먹더니, 뚝 그치더라구.”

그리고?”

더 이상 시버, 시버, 시버이 소리를 안 해

왜지?”

모르겠어. 도대체 얘 왜 이런 거야?”

우리도 모르겠어.”

난 지금까지 공공이를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생각하면 정말 모르겠어.”

그러게, 왜 그랬을까? 궁금하다.”

공부를 좀 더 많이 해야 할 거 같아.”

공부?”

심리학 공부?”

아니, 발달장애인에 대한 공부.”

?”

모르니까.”

심리나 상담에 대해 공부해야 하는 거 아냐?”

그런가?”

아닐 거야. 발달장애인에 대한 책도 나올 거야.”

그걸 본다고?”

그래야 할 거 같아.”

뭐가 맞지?”

모르겠어.”

일단, 공부를 해 보고 난 다음에 결정하자구. 뭘 공부할지는.”

근데, 이거 같이 하자구?”

싫어?”

싫어.”

넌 또 왜? 왜 공공이처럼 말하고 그래?”

싫다는 게 공공이 같은 거야?”

, 아닌 거 같은데.”

그러게.”

그래서, 공부 안 할 거야?”

난 안 해.”

?”

왜 싫냐고?”

.”

 

 

8.

 

남편이 출근하려고 서재에서 나오고 있다.

밤새 거기 있었어? 거기서 잔 거야?”

.”

?”

그걸 말해야 돼?”

말하기 싫어?”

?”

그냥.”

 

 

9.

 

다들 나한테 왜 이러는 거지?”

그런 일이 있었어?”

, 다혜는 안 와?”

여기 있으면, 공부 같이 해야 할 거 같다고 자기는 오기 싫대. 공부 끝나거든 부르래.”

그래?”

.”

그리고

이 말 해서 미안한데.”

우리도 공부 안 해.”

???”

하기 싫어서

 

 

10.

 

아들이 두 눈을 부릅뜨고 나를 노려보다가, 이내 웃음을 보였다. 그러다가 또 다시 시버, 시버 시버를 하더니, 다시 괘안아져쪄라며, 괜찮다는 말을 하였다. 그러면서, 내가 하고 있는 요리를 빤히 쳐다보았다.

 

오늘은 뭐 해 주까?”

마싰는 거, 마싰는 거, 마싰는 거.”

알았어, 맛있는 거 해줄게. 그럼, 맛있는 거 같이 찾아볼까?”

 

녀석이 연신 깔깔대며 냉장고를 뒤적거리고 있었다. 냉장고 속에는 앞으로 익혀가야 할 많은 요리들이 대기 중이었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생각지 않기로 했다. 냉장고 안에서 들리는 소박한 소음들이 하나 둘 나의 마음에 들리고 있었다. 그렇지! 녀석, 그것 때문이었구나. 이제야 이해한 녀석의 마음이 내게도 들려왔다. 나는 또 하나의 결심을 하였다. 그 결심은 내게 공공이를 더욱 더 이해하게 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냉장고를 바라보는 나의 마음 한편에는 남편까지 들어 있었다. 공공이의 해맑은 웃음소리는 길게길게 이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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