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사과 편지 - 성폭력 생존자이자 《버자이너 모놀로그》 작가 이브 엔슬러의 마지막 고발
이브 엔슬러 지음, 김은령 옮김 / 심심 / 2020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

이브는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성폭력을 당했다. 이 책은 이브에게 그런 짓을 한 아버지가 쓴 가상의 사과편지다. 아버지는 무덤에서 쓰는 건지, 과거 혹은 이래에서 쓰는 건지 (p.17) 잘 모르는 상태에서 편지를 쓴다. 저자 이브는 이 편지들을 아버지의 관점에서 써내려간다. 그래서 그런지, 편지는 너무 생생했고 그 어느 편지보다 진정성이 느껴졌다.

 

이브의 아버지는 막내로 태어나 특별한 선물로 태어났다고 한다. 그런 자신의 태생이 오히려 자신을 옭아맨다. 부모님은 오히려 그렇기에 더 가혹하게 대했고, 그의 가족들은 그를 특별히 대한다. 그 점은 오히려 아버지를 가짜로 여기게 했고, 아버지는 점점 더 고립되어갔다. 매력은 아버지의 장점이었지만, 그 매력을 통해서 그는 철저하게 가면을 만들어갔고, 그 와중에 엄마를 만났다. 그리고 태어난 이브. 아버지의 가면은 이브에게로 향한다.

 

무릎 위에 앉은 너를 끌어앉자 모든 경계가 녹아 사라졌더구나. 금기를 넘어, 법을 넘어, 더없는 행복의 은하수가 위아래로 출렁거렸어. 천국이 모두 소리를 내는 것 같았다. 계속해. 계속하면 안돼. 계속해. 이래선 안 돼. 이건 네 권리야. 이건 죄악이야. 이건 너무 지나쳐……. , 에비. 그때 그만두어야 했는데. - p.72

 

아버지는 이브가 다섯 살 때 이브에게 성추행을 하였고, 아버지가 엄마와 단둘이 여행을 하고 돌아오자, 이브는 아버지에게 차갑게 대하고 아버지는 분노가 치밀어오르게 된다. 이브가 남자애들에게 수모를 당했을 때 오히려 아버지는 이브를 위로하기보다는 혼냈으며, 결국은 이브를 소유물로 여기며, 정신적 학대 육체적학대를 자행하게 된다. 온전치 못한 상태로 성인이 된 이브는 결국, 누구에게나 자신의 몸을 내어주는 기행을 범하게 된다.

 

네가 다섯 살 때 죄의 경계를 넘어 내게 찾아왔던 그림자 인ㄱ란이 이번엔 나를 지옥으로 이끌고 있었어. 물론 내가 그렇게 자란 탓에 폭력적인 처벌에 거리낌이 없었던 건 사실이지만, 이건 훨씬 더 끔찍한 일이었찌. 고백하기조차 힘든 일이야. - p.113

 

아버지는 이 모든 과정을 편지로 풀어내며, 결국엔 아버지는 이브에게 마지막 사과를 한다.

 

이브.

이 말을 하게 해줘.

미안하다, 정말 미안해. 여기 앉아 미지막 시간을 보내도록 해주렴. 이번에는 제대로 할 숭 ᅟᅵᆻ도록 해주렴. 너의 온화함에 기대어 빝틀거리게 해주렴. 나약함을 무릅쓰게 해주렴. - p.185

 

2.

누군가에에게 받지 못한 사과가 있다면, 마음은 처절히 무너질 것이다. 사과를 받고 싶어도 받을 수가 없는 처지라면, 더더욱 힘들 것이다. 더욱 비참한 것은 상대방이 사과할 마음조차 갖고 있지 않다면, 그것보다 더 큰 슬픔은 없다는 것이다. 이브의 아버지는 과연 이브에게 사과를 못하고 떠난 것일까.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이브는 아버지의 사과편지를 온전히 받고 싶었을 것이리라. 그 마음이 이 작품으로 탄생한 것이 아닐까. 절절하게 울리는 사과편지를 보면서, 누군가에게 사과받는 기분이란 이런 것이구나, 라는 느낌. 그 느낌을 가질 수 있었다는 것은 어쩌면 행운인지도 모르겠다.

 

저자가 처했을 상황, 아주 끔찍했던 상황을 극복하고 결국엔 이렇게 아버지의 사과편지를 쓸 수 있는 용기를 낼 수 있었던 저자의 도전에 경의를 표한다.

 

 

한 편의 시를 읽듯이, 이 아침, 머리가 맑아지는 사과편지를 읽었다. 비록, 그 안에 담긴 중심 내용은 비참했지만, 참 아름다운 사과의 풍경이었다.

 

도서출판 푸른숲에서 증정받아 작성하였습니다. 이 책을 읽게 해주신 푸른숲에 감사드립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