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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기고 앉아 씁니다
아사이 료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8년 11월
평점 :
절판
1.
물론 지금까지 읽은 책 중에는 생명의 소중함이나 인간의 부정적인 부분 등을 심오하게 그린 문학 작품도 마음에 남아 있다. 하지만 책을 추천해달라고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인생에서 중요한 것 따위는 전혀 호소하지 않지만, 본가의 화장실이든 목욕탕이든 어디에서든 몰두해서 읽었던 그 시시껄렁한 에세이집들이다.
- pp.199~200
시시껄렁한 이야기 싫다는 분도 있다. 나름대로 저마다의 이유가 있겠지만, 시시껄렁한 에세이는 인생에 별다른 의미를 주지 않는다는 게 가장 큰 이유일 거다. 나는 그분들을 이해한다. 그리고, 시시껄렁한 일상이야기가 너무 좋아서 자주 읽는다는 분들도 있다. 시시껄렁한 소소한 에피소드를 읽는 데에서 소소한 인생의 재미를 느끼는 분들일 거다. 그분들의 마음도 나는 이해한다. 그러면 누군가 나에게 이렇게 얘기하곘지. 저, 건방지고 줏대없는 놈. 하나만 해, 하나만!
미안하다. 나는 그럴 수 없다. 나는 시시껄렁한 에세이도 좋지만, 인생의 거창한 의미를 찾으려는 묵직한 소설도 좋기 때문이다. 둘 중에 누가 옳다고 할 수는 없다. 또, 줏대가 없고 건방적인 나 같은 사람도 틀렸다고 할 수는 없다고 나는 주장한다. 그럼 결론적으로 이렇게 얘기할 수 있을까. 『웃기고 앉아 씁니다』
2.
그런데 메일이라는 것이 참 신기하다. 발송하기 전에 몇 번을 되풀이해서 읽었다고 해도 발송한 후 뭔가 이상한 부분은 없었는지 궁금해진다. 특히 퇴직을 알리는 메일 같은 것이 그러한데, 그토록 확인했는데도 나는 다시 한 번 내용을 확인하고 싶었다.
발송함에 들어간다. 조금 전에 보낸 메일의 본문을 연다.
수고하십니다. XX부의 OOO입니다. 이번에 - 흠, 퇴고를 거듭한 만큼 역시 괜찮은 것 같다. 그대로 읽어나간다. 다양한 일을 할 수 있어 정말 충실한 나날이었습니다. 저는 미숙하여 오른쪽도 왼쪽도 아는 가운데 여러분의 도움으로 그럭저럭-엥?
오른쪽도……
왼쪽도……
아는 가운데 ―――――――――――――――――― !!!!!!!!
끼아아아아아아아아아 (이하 아자가 너무 많으므로 편의상 생략)
-pp.210~211
치루에 대한 수술 에피소드를 제외한 에피소드 중에서는 가장 재미있는 부분이다. 구두의 끈이 폭발하여 구두의 끈이 없는 가운데, 며칠을 버텨본다. 누가 구두끈이 없는 것을 알아보는 사람이 있는지 궁금해서다. 며칠 후에야 처음으로 지적받았다. 아무도 신경 안 쓰는 줄 알았지만, 그 상대는 말한다.
"다들 알아챘지만 말하지 않았을 뿐일걸요."
- p.218
우리는 모른다고 생각하는 게 너무도 많다. 상대가 얘기하지 않기에 모르는 줄 안다. 그러나 모르는 척 할 뿐인 경우가 너무나 많다. 알아도 내가 어찌할 수 없을 때, 그 사람한테 말하는 게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을 때, 오히려 그 사람한테 말하는 게 껄끄러울 때. 아무도 신경쓰지 않을 거라는 저 폭발한 구두끈이 주인에게 버림받은 것처럼, 무관심 속에서 우리는 적당히 살아간다. 그런 인생이 좋다, 나쁘다 말할 수는 없다. 그저, 느낌이 좋으면 좋은 대로, 안 좋으면 안 좋은 대로 삶은 흘러간다.
3.
"아사이는 안색이 안 좋으니까 남색이 굉장히 잘 어울렸어!"
위험하다. 착각할 뻔했다. 멋진 것은 내가 아니라 옷, 옷, 옷, 나는 어디까지나 추하고 죄 많은 동물, 물, 물…… 다시 자신에게 주문을 걸며 탈의실 안에서 원래 갖고 있던 천으로 치부를 가린다. 당연하지만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간 내가 탈의실에서 나오니 아무런 칭찬도 없다. 투명인간이 된 건가 싶을 만큼 무반응이 기다리고 있었다. K씨가 골라준 옷을 입어본다 → 일거수일투족 엄청난 칭찬을 받는다 → 원래의 복장으로 돌아간다 → 뭘 하든 누구의 눈에도 비치지 않는다. 이렇게 엄청난 높낮이차가 나는 행동만 되풀이하고 있었다. 운동선수는 고지 트레이닝을 하면 지구력이 늘어난다고 하지만, 내가 이 사이클을 되풀이하는 것은 자신의 센스 없음이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다시 눈앞에 들이 밀어지는 트레이닝이었다.
- p.169
『웃기고 앉아 씁니다』는 아사이 료의 두번째 에세이집이다. 첫 번째 에세이 이집은 『시간을 달리는 여유』라고 하는데 보지 않아서 잘은 모르겠다. 제목처럼 여유가 된다면 보고 싶다는 마음은 든다. 제목처럼 웃기는 장면이 몇 군데 있기는 하지만, 대체적으로는 차분한 분위기다. 웃기고 앉아 쓴 사진을 보여주는데, 그게 바로 제목이 되었다. 미안하다. 사진을 보여주지 못해서. 나, 지금 웃기고 앉아 쓰는 리뷰라, 미처 사진을 준비 못했다. 근데, 정말 웃기는 사진을 기대했다면, 실망할지도. 멋진 옷 따위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멋진 사람이 존재하기에 멋진 옷도 존재하는 거겠지. 나는 그렇게 믿고 싶다.
4.
"수술한 뒤에는 화장실에 가서 돌아오는 것도 정말 괴로웠거든. 전날부터 아무것도 먹을 수 없으니까 수술 후에 나온 비스킷과 오렌지주스가 이 세상 것이 아니라고 여겨질 만큼 맛있게 느껴졌지. 마취가 풀리면 진통제를 먹어도 환부가 욱신욱신 아프고…… 힘들겠지만 잘해봐."
힘, 힘들다고?
나는 이때서야 굉장히 중요한 걸 간과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나는 수술을 하는 것이다. 난생처음 몸에 칼을 대는 것이다.
변의 출구가 늘어나는, 인생에서 가장 우스운 증상에 현혹된 나는 치루를 그저 재미있는 사건으로 파악한 모양이었다. 나는 며칠 후 정확히 장기간의 입원을 필요로 하는 수술을 하게 된다. 그 자각이 심하게 결여되어 있었다.
- p.323
『웃기고 앉아 씁니다』에서 가장 재미있는 치루수술을 하게 되면서 겪는 에피소드이다. 엉덩이의 불편함을 몇 년간 견뎌야 했던 사연, 진단을 받게 된 경위, 수술을 하게 되는 과정, 수술을 하게 된 후의 과정이 정말 "가볍게" 묘사되어 있다. 애초에 이 과정을 에세이로 쓰겠다는 다짐을 했기에, 이루어질 수 있었던 좌충우돌 이야기다.
5.
『웃기고 앉아 씁니다』는 글씨가 작아서, 읽기에는 조금은 불편한 감이 없지 않다. 10대나 20대의 젊은이가 아닌 한은 읽기에, 글씨가 좀 많이 작다. 그래서 양이 얼마나 되는지도 가늠이 되지 않았다. 400페이지가 되지 않는 페이지인데, 실질적으로 600페이지 이상 읽은 느낌이다. 그래서 읽는 데 시간도 꽤 오래 걸렸다. 글씨가 작을 수밖에 없는 이유, 너무 길어서가 아닐까. 그저, 소소한 에피소드니만큼 일상의 이야기에 소소한 재미를 느꼈다면, 그것으로 된 것 같다. 진지한 에피소드도 있지만, 대체적으로는 가벼운 이야기들이다. 그 가벼운 이야기들이 때론 살아가는 데 소소한 도움을 주기도 한다. 그래서, 오늘도 에세이에 대한 매력에 푹 빠져본다. 누군가는 웃기고 앉아서 쓰고, 누군가는 웃기고 앉아서 읽고 있다. 그래, 오늘 몇 번을 웃었으니, 1주일이 또 활기차겠군, 하면서 나에게 최면을 걸어본다. 삶이란 게 에피소드로 이루어져 있고, 그 에피소드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으니, 『웃기고 앉아 씁니다』는 행복을 찾아주는 에세이라고 할 수 있을 거다. 하하. 그래서 난 고백한다. 난 웃기고 앉아 읽었다. 리뷰를 바로 쓰고 싶어서 미치겠는 마음 꾹꾹 누르고 끝까지 무려 다섯시간 넘게 읽었다. 그래서, 나 이렇게 웃기오 앉아 쓴다. 웃기고 앉아서 쓰니 행복의 마음이 또 허공 위로 부웅 떠오르고 있다.
- 이 리뷰는 현암사에세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