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아
제바스티안 피체크 지음, 한효정 옮김 / 단숨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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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노아는 요지부동의 자세로 눈만 움직였다. 그는 주변을 스캔하듯 천장을, 바닥을, 오스카와 토토를 그리고 전화기를 바라봤다.

오스카가 말해준 후에야, 노아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언어로 기자와 이야기했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떠올렸다. 그리고 단순히 이야기만 했던 것이 아니었다.

'난 그 언어로 생각까지 했어!'

- P.74

 

노아에겐 특별한 능력이 있다. 그는 위기상황을 본능적으로 벗어날 수 있는 놀라운 능력이 있다. 그러나 그에게 초능력 따위는 없다. 마치 그 옛날의 노아의 방주에서 노아가 그저, 방주를 만드는 능력 외에는 없었던 것처럼. 그 엣날의 노아가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처럼, 노아에서의 노아도 위기에서 벗어나는 그 어떤 초능력보다 뛰어나다고 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

 

엘리베이터 버튼에 희미하게 불이 들어왔다. 그리고 몇 층 아래에서 삐걱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떻게 안 거야?"

오스크가 문 위의 알림판에서 엘리베티어가 한 층씩 올라오는 것을 확인하고는 그에게 물었다.

"몰라요."

노아가 말했다. 그는 한 발 뒤로 물러나 스위트룸 문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이 이어져 있는 복도를 주시했다. 그는 그 킬러가 누구일지 짐작할 수 없었다. 누가 그 일을 시켰는지도.

- PP.160~161

 

2.

호흡이 길고 등장인물도 많은 소설을 읽을 때는 한번 흐름을 놓치면 내용이 잘 머리에 들어오지 않는다. 노아도 잘 나가던 흐름이 어느 순간 끊어져버렸다. 그래서, 다시 읽고 리뷰를 써야 마땅하나, 다시 읽기엔 시간적으로 여유가 없어, 이럴 때 다른 분들의 리뷰에서 도움을 얻곤 한다. 그래서, 알았다! 이놈의 소설은 사회파 소설이고, 인류환경문제를 직설적을 다루고 있다는 것을. 그러니까, 노아는 제약회사가 만들어놓은 덫에 대해서 조금씩 알아가고 있는 인물이라는 것을.

 

 

문득, 그녀는 만약 자신이 폐렴이라도 걸리게 된다면, 그 또한 마찬가지 결과를 가져올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훈 분노가 끓어올랐다. 그녀를 자기 멋대로 휘둘렀던 케빈 루드에 대해, 그녀를 납치해 희망이라고는 없는 이곳에 쳐박아둔 엠버에 대해, 감염의 위험을 무릅쓰고 미치광이 노인을 향해 간 노아에 대해, 그리고 이 분노는 그녀를 자긴연민으로 몰아갔다. 그러다가 한 단어가 그녀의 머릿속으로 들어왔다. 그 단어를 반복할수록 그녀는 힘이 나는 듯했다.

'안 돼'

소리없이, 그리고 속삭이듯. 마침내 크고 또렷하게.

"안 돼."

이건 내가 생각했던 계획이 아니야.'

"안 돼."

'난 여기서 죽지 않을 거야. 네덜란드의 더러운 화장실에서. 내 고향, 내 친구들, 내 부모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이곳에서.'

- P.376

 

장사를 하기 위해 일부러 바이러스를 퍼뜨리고, 그에 대한 백신을 파는 사람들 이야기는 이미 나와 있다. 마닐라 독감을 일부러 퍼뜨리고 그에 대한 백신을 파는 사람들?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문제점이 된 이 장사습성이 되고 있는 이 상황. 그 상황 속에서 노아 같은 인물은 어쩌면, 빛의 존재가 된 것은 아닐까. 어떤 사람 대신 자신이 노숙자 신세가 되는 걸 마다하지 않는 따뜻함이랄까. 무모함이랄까. 그런 노아의 태도가 바로 사회의 기행을 파헤치고 바로잡기 위한 바로미터가 된 것은 아니었을까.

 

3.

"네가 구한 그 모든 영혼들에게 이제 무슨 일이 일어날 거라고 믿는 거냐?"

'구한'이라는 말이 그에게는 마치 욕처럼 들렸다.

"난 구금 중이야. 내 왕국은 파괴되어버렸지. 내 딸, 세제트는 도중 중이고. 난 병들어 죽어가고 있어. 이제 뭔가 할 수 있는 힘을 완전히 잃어버렸어. 그런데 이렇게 되어서 얻은 게 뭐지? 아무것도 없어. 사람들은 여전히 죽어가고 있어. 오히려 더 괴로움에 몸부림치면서 말이지. 죽음과의 사투는 훨씬 더 오래 걸릴 거야. 그들은 목말라 죽고, 굶어 죽고, 전쟁에서 서로를 학살하거나 병에 걸려 죽겠지. 원유는 40년 안으로 바닥날 거야. 그러는 와중에도 인도와 중국 등 다른 개발도상국들은 원자재를 다 소모하면서 90억 명이 넘는 머릿수를 채우기 위해 박차를 가할 테고. 10억의 인구는 지금도 식수를 못 구하고 있지. 거의 초단위로 아기들은 영양실조로 죽어나가고, 4분마다 한 명이 비타민 A를 구할 수가 없어서 실명하고 있어. 그들 중 연간 1300만 명이 아이들……"

"그래서 차라리 지금 당장 죽여버리는 게 낫다는 거예요?"

- PP.596~597

 

불행한 세상에서 사느니, 차라리 지금 죽어버리는 게 낫다는 저 태도에서 인간의 자기확신이 얼마나 무모한지를 깨닫게 되는 지금 이 순간이다. 내가 지금 옳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윤리적으로 잘못되어 있을까. 또는, 얼마나 다른 사람에게 많은 상처를 주고 있는가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결코 이와 같은 오류를 범하지 않으리라고는 장담할 수 없다. 마치, 비를 통해 세상을 쓸어버렸던 하나님 같은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 어떤 사람이, 세상을 쓸어버리려는 욕심을 갖게 된다면, 그로 인해 많은 사람들은 종국적  불행(지금은 행복감에 젖어있을지 모르나 끝에 가서는 불행해지는)에 빠져버릴 것이다. 이와 같은 세상에서 그 종국적 불행을 막아주는 노아 같은 인물은 굉장히 평범한 인물이며, 그 누구의 열렬한 지지나 환호도 받지 않는 인물임을 기억한다면 사회적 악의에 빠지는 어리석음을 범하게 되지는 않게 될 것이다.

 

4.

노아는 위기에서 벗어낫고, 위기에서 살아남았다. 그 과정에서 그의 절친인 오스카의 희생이 있어야만 했지만, 오스카의 희생으로 노아는 더 큰 종국적 불행을 막는다. 노아의 방주에서 살아남은 한 쌍씩의 온갖 동물들이 노아의 오스카와 데자뷔되는 느낌을 가지면서, 나는 이 노아를 환영한다. 그 누구의 열렬한 지지나 환호를 받게 되는 인물이 아니더라도, 나는 그 노아를 기억하며 좋아할 것이다. 방주를 만든 노아와 사회적 문제점의 정점에 도달한 노아. 노아들은 우리의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며, 우리를 또다른 새로운 세계로 이끌어줄 서로 다른 듯 닮은 새 세상의 빛이 될 것이란 기대를 숨기지 않으며 오늘의 다소 어려웠던 리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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