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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녹는 온도
정이현 지음 / 달 / 2017년 12월
평점 :
녹을 것을 알면서도 눈사람을 만드는 그 마음에 대하여
'윤'과 '선은' 여행을 떠나기로 했습니다. 여행을 일주일 앞둔 날, '윤'은 '선'으로부터 HWP 파일이 첨부된 메일을 한 통 받았습니다. 그 메일의 제목은 '플랜A'였고, 그들의 여행 계획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첫날, 오전 아홉시 출발. 목적지까지 두 시간 내지 두시간 삼십 분 소요 예정. 숙소:K리조트, 노선:올림픽대로-춘천고속도로-서울양양간고속도로-양양IC 진출-양양속초간해안도로. (1안: 내린천휴게소 2안: 홍천휴게소)
도착 후 점심식사 (1안: 막국수, 2안: 생선구이, 3안:물회)
그리고 그 밑에는 유명한 막국숫집과 생선구잇집과 물횟집이 각각 서너 개씩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그런 방식으로, 셋째 날까지 선은 속초 여행의 계획을 빼곡히 담아놓았다. 여러 경우의 수를 고려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비가 올 경우, 날이 추울 경우, 기념품이 사고 싶어질 경우, 커피가 마시고 싶어질 경우, 빙수가 먹고 싶어질 경우……. 「여행의 기초」 68쪽
분명 소설 속 '윤'과 '선'의 여행 계획인데, 그것도 '선'이 일방적으로 짠 여행 계획인데 낯설지 않습니다. 그것이 HWP냐, PPT냐, 문서 양식만 다를 뿐 완벽하게 제 것과 닮았습니다. 변수가 생길 일은 없지만, 혹시라도 날씨 때문에 계획이 틀어질까봐, 그럴 땐 당황하지 않고 바로 다음 일정을 소화할 수 있도록 경우의 수대로 계획을 짜놓는 편입니다.
윤이 경험해본 적 없는 세계였다.
지금껏 윤의 여행들은 즉흥적이고 충동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져왔다. 배가 고프면 먹고, 배가 안 고프면 먹지 않았다. 이 지역에 어떤 맛집이 있을까 찾아본 적은 없었다. 밥을 먹어야 할 때면 주위를 둘러보고 가장 나을 것 같은 곳을 골랐다. 실패할 적도 많았지만 그러려니 했다.
전적으로, 감(感)에 의존하는 여행. 그것이 윤의 방식이었다면, 전적으로 '표'에 의존하는 여행, 그것이 선의 방식이었다. 「여행의 기초」 70쪽
그렇다고 계획대로 실행에 옮기는 것은 아닙니다. '선'처럼 계획은 완벽하게 짜지만, 실제로 여행을 할 때는 '윤'처럼 즉흥적인 면도 상당합니다. 그럼에도불구하고 계획을 짜는 이유는, 낯선 것에 대한 '불안' 때문입니다. 계획이라도 완벽하게 짜놓아야 차편을 놓쳤을 때, 태풍을 만났을 때, 문이 닫혔을 때 당황하지 않고 그 계획들 속에서 해결책을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너는 왜 늘 계획표를 짜?"
"안 그러면 불안해서. 나는 말이야, 계획이라도 잘 세워놓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아."
"왜?"
"내가 나 자신을 어떻게 믿어?"
"야, 아니야! 너는 내가 아는 가장 믿을 만한 사람이야. 계획표 안에서도, 밖에서도 말이야." 「여행의 기초」 73쪽
혼자일 때도, 여럿일 때도, 저는 늘 계획을 세웁니다. 그리고 간절히 바랍니다. 누군가 이 '계획의 고단함'을 대신 짊어줄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이죠. 저도 '윤'처럼 말해주는 동행이 있었더라면 참 좋았을텐데 말입니다.
무작정인 것과 무작정이 아닌 것을 구분하기 어렵다는 것을, 종잇장을 반으로 접어 맞추듯이 분명한 것은 우리 생에 그다지 많지 않다는 것을 그는 알아가고 있었다. 「안과 밖」 52쪽
『우리가 녹는 온도』는 구성이 독특한 책입니다. 한 타이틀 아래 두 개의 이야기가 존재합니다. '그들은'으로 시작하는 이야기는 어쩌면 짧은 소설일지도 모르는 이야기입니다. '나는'으로 시작하는 이야기는 정이현 작가의 이야기입니다. 이렇게 10개의 타이틀 아래 이야기들이 존재합니다.
이 책에는 한동안 실려있던 단발머리의 프로필 사진 대신 좀 더 짧은 커트머리의 사진이 프로필로 실려 있습니다. 이 책에 실린 글도 그런 느낌입니다. 머리를 짧게 잘라본 경험이 있는 분들은 어떤 기분인지 아실겁니다. 한층 가벼워진 것 같지만 세련된 느낌, 그리고 뭔지모를 아쉬움 같은 것 말입니다.
어른 릴리는 저 눈사람을 다시 냉장고 속에 넣지 않을 것이다. 그냥 밖에 놓아둘 것이다. 동심을 잃어서가 아니다. 녹는 것은 녹게 두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녹아내리다가 마침내 소멸하는 과정을 이제 마음으로 지켜볼 것이다. 흔적도 없이 사라졌어도 눈사람이 분명 여기에 있었음을 기억할 것이다.
사라진 것들은 한때 우리 곁에 있었다.
녹을 줄 알면서도, 아니 어쩌면 녹아버리기 때문에 사람은 눈으로 '사람'을 만든다. 언젠가 죽을 것을 알면서도 오늘을 사는 것처럼.
곧 녹아버릴 눈덩이에게 기어코 모자와 목도리를 씌워주는 그 마음에 대하여, 연민에 대하여 나는 다만 여기 작게 기록해 둔다. 170쪽
일요일 일요일 일요일 다음에
월요일 월요일 월요일 다음에
화요일 화요일 화요일의 기린
두 팔을 쭉 뻗고 내 목을 감싸줘
─
이호석 노래 <화요일의 기린> 중에서
「화요일의 기린」 15쪽
아무 편도 들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있다. 중립을 지키면 나를 지킬 수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기꺼이 괜찮다고 하는 것이다. 기분이 상해도, 상처를 받아도, 아무렇지 않은 척 미소 짓는 것이다. 실은 하나도 괜찮지 않으면서. 종이필터 밑바닥에 가라앉은 검은색 커피 찌꺼기처럼 갈피를 잡기 어려운 감정이 그대로 남았으면서. 「괜찮다는 말, 괜찮지 않다는 말」 42쪽
나 역시 '괜찮아'를 발음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되었다는 것. 상처를 주거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상대를 지그시 바라보다가 담담하게 괜찮다고 말하는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스스로에 대해 미묘한 위로가 되었다. 그것은 적은 월급의 절반을 뚝 떼어 적금을 부으면서, 만기일이 오면 한 방에 세계일주 티켓을 끊어 탕진해버리겠다는 상상을 하는 것과 조금쯤 비슷한 느낌일지도 모르겠다. 「괜찮다는 말, 괜찮지 않다는 말」 43쪽
첫번째, 두번째, 세번째······ 그렇게 횟수를 쌓아갈 때마다 미리 스스로의 감정을 추슬러둔다. 그러다 더는 안 되겠다 싶은 순간, 딱 끊고 돌아선다. 상대의 어리둥절해하던 표정이 잊히지 않는다. 통쾌하거나 시원할 줄 알았다. 아니었다. 입안이 시고 썼다. 「괜찮다는 말, 괜찮지 않다는 말」 44쪽
초행이란 가늠할 수 없어 아득해진다는 의미일 것이다. 「안과 밖」 59쪽
애초부터 불가능한 사랑을 놓친 것처럼 안도감과 허전함이 동시에 들었다. 놓친 것이 어디 그런 것들뿐이겠느냐마는. 「안과 밖」 60쪽
여행지에서 만난 이와 사랑에 빠졌다가 일상으로 돌아와 이별을 맞은 경우를 여럿 알고 있다. 그 이별엔 또 '이런저런 이유'가 있다고 설명되곤 하지만,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안다. 낯설고 매혹적인 시공간을 공유했다는 우연이 둘을 특별한 운명의 관계로 이끌었으나, 시공간이 달라지면 그 마법의 힘이 사라지기도 한다는 것을. 「안과 밖」 61쪽
일상에서 깊은 한숨을 내쉬곤 하는 습관이 새로 생겼다고 해서, 일 년 후의 삶이 까마득한 암흑처럼 느껴진다고 해서, 그게 모두 '그 사람과의 관계' 탓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엄밀히 말해 '내 탓'이다. 그러나 누구도 자신과는 이별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상대방과 이별한다. 가장 가까운 옆 사람과 헤어지면 내가 조금은 다른 삶을 살 수 있으리라는 희망으로. 「지상의 유일한 방」 93쪽
늘 새기는 말이 있다. 한 권의 책을 백 명이 읽었다면 모두 백 개의 텍스트가 된다는 말. 다들, 따로따로 읽는다. 따로따로 느낀다. 개별적으로 살고, 개별적으로 사랑한다. 이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이별에 이르는 과정, 이별을 결심하거나 받아들이는 마음, 이별과 대결하는 태도도 모두 제각각일 수밖에 없다. 한 사람과 한 사람의 이별이라는 점, 온전히 그것에 초점을 맞춘다면 말이다. 「커피 두 잔」 124쪽
그 사람들은 내가 아니니까요. 사람들은 쉽게 말하죠. 너의 완벽주의 성향 때문이라고. 완벽해지겠다는 마음을 버리라고요. 하지만 그런 게 아니에요. 다음에 완벽한 무대를 꿈꾸어서 그러는 게 아니에요. 제 마음은 다음번이 아니라 지난번에 꽁꽁 묶여 있어요. 「어둠을 무서워하는 꼬마 박쥐에 관하여」 133쪽
나는 자주 불안한 사람이다. 이 문장을 입 밖에 내어 말할 수 있게 되는 데에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통증의 모양과 형태를 아는 것은 질병을 짐작하는 실마리가 된다고 한다. 「어둠을 무서워하는 꼬마 박쥐에 관하여」 137쪽
'위로'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어쩌면 익숙하지 않아서인지도 모른다. 위로를 하는 쪽이라면 차라리 낫다. 그러나 위로를 받는 일은 번번이 어색하기만 하다. 그래서일 것이다. 오래도록 나는 위로받을 필요 없는 사람처럼 보이기 위해 애쓰며 살아왔다. 괜찮은 척하면, 아무렇지 않은 척하면, 정말로 곧 괜찮아지는 줄 알았다. 「눈+사람」 166쪽
사람은 열심히 눈을 굴려서 왜 하필 '사람'을 만드는 걸까? 아니, 눈덩이 두 개를 8자 모양으로 만들어놓고서 왜 '사람'이라고 부르는 걸까? 이목구비를 붙이고, 모자나 목도리도 씌우면서 왜 더 '진짜 사람'에 가깝게 하려고 애쓰는 걸까? 어차피 며칠 지나면 스르르 녹아 없어지고 말 텐데! 인간의 생명은 좀더 길 뿐, 결국 눈으로 만들어진 저 눈사람의 숙명과 다를 바 없다. 눈사람 창조자가 되는 동안 인간은 혹시 그 엄혹한 사실을 잠시 잊고 싶은 걸까? 「눈+사람」 16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