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녹는 온도
정이현 지음 / 달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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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을 것을 알면서도 눈사람을 만드는 그 마음에 대하여

'윤'과 '선은' 여행을 떠나기로 했습니다. 여행을 일주일 앞둔 날, '윤'은 '선'으로부터 HWP 파일이 첨부된 메일을 한 통 받았습니다. 그 메일의 제목은 '플랜A'였고, 그들의 여행 계획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첫날, 오전 아홉시 출발. 목적지까지 두 시간 내지 두시간 삼십 분 소요 예정. 숙소:K리조트, 노선:올림픽대로-춘천고속도로-서울양양간고속도로-양양IC 진출-양양속초간해안도로. (1안: 내린천휴게소 2안: 홍천휴게소)

도착 후 점심식사 (1안: 막국수, 2안: 생선구이, 3안:물회)

그리고 그 밑에는 유명한 막국숫집과 생선구잇집과 물횟집이 각각 서너 개씩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그런 방식으로, 셋째 날까지 선은 속초 여행의 계획을 빼곡히 담아놓았다. 여러 경우의 수를 고려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비가 올 경우, 날이 추울 경우, 기념품이 사고 싶어질 경우, 커피가 마시고 싶어질 경우, 빙수가 먹고 싶어질 경우……. 「여행의 기초」 68쪽

분명 소설 속 '윤'과 '선'의 여행 계획인데, 그것도 '선'이 일방적으로 짠 여행 계획인데 낯설지 않습니다. 그것이 HWP냐, PPT냐, 문서 양식만 다를 뿐 완벽하게 제 것과 닮았습니다. 변수가 생길 일은 없지만, 혹시라도 날씨 때문에 계획이 틀어질까봐, 그럴 땐 당황하지 않고 바로 다음 일정을 소화할 수 있도록 경우의 수대로 계획을 짜놓는 편입니다.

윤이 경험해본 적 없는 세계였다.

지금껏 윤의 여행들은 즉흥적이고 충동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져왔다. 배가 고프면 먹고, 배가 안 고프면 먹지 않았다. 이 지역에 어떤 맛집이 있을까 찾아본 적은 없었다. 밥을 먹어야 할 때면 주위를 둘러보고 가장 나을 것 같은 곳을 골랐다. 실패할 적도 많았지만 그러려니 했다.

전적으로, 감(感)에 의존하는 여행. 그것이 윤의 방식이었다면, 전적으로 '표'에 의존하는 여행, 그것이 선의 방식이었다. 「여행의 기초」 70쪽

그렇다고 계획대로 실행에 옮기는 것은 아닙니다. '선'처럼 계획은 완벽하게 짜지만, 실제로 여행을 할 때는 '윤'처럼 즉흥적인 면도 상당합니다. 그럼에도불구하고 계획을 짜는 이유는, 낯선 것에 대한 '불안' 때문입니다. 계획이라도 완벽하게 짜놓아야 차편을 놓쳤을 때, 태풍을 만났을 때, 문이 닫혔을 때 당황하지 않고 그 계획들 속에서 해결책을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너는 왜 늘 계획표를 짜?"

"안 그러면 불안해서. 나는 말이야, 계획이라도 잘 세워놓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아."

"왜?"

"내가 나 자신을 어떻게 믿어?"

"야, 아니야! 너는 내가 아는 가장 믿을 만한 사람이야. 계획표 안에서도, 밖에서도 말이야." 「여행의 기초」 73쪽

혼자일 때도, 여럿일 때도, 저는 늘 계획을 세웁니다. 그리고 간절히 바랍니다. 누군가 이 '계획의 고단함'을 대신 짊어줄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이죠. 저도 '윤'처럼 말해주는 동행이 있었더라면 참 좋았을텐데 말입니다.

무작정인 것과 무작정이 아닌 것을 구분하기 어렵다는 것을, 종잇장을 반으로 접어 맞추듯이 분명한 것은 우리 생에 그다지 많지 않다는 것을 그는 알아가고 있었다. 「안과 밖」 52쪽

『우리가 녹는 온도』는 구성이 독특한 책입니다. 한 타이틀 아래 두 개의 이야기가 존재합니다. '그들은'으로 시작하는 이야기는 어쩌면 짧은 소설일지도 모르는 이야기입니다. '나는'으로 시작하는 이야기는 정이현 작가의 이야기입니다. 이렇게 10개의 타이틀 아래 이야기들이 존재합니다.

이 책에는 한동안 실려있던 단발머리의 프로필 사진 대신 좀 더 짧은 커트머리의 사진이 프로필로 실려 있습니다. 이 책에 실린 글도 그런 느낌입니다. 머리를 짧게 잘라본 경험이 있는 분들은 어떤 기분인지 아실겁니다. 한층 가벼워진 것 같지만 세련된 느낌, 그리고 뭔지모를 아쉬움 같은 것 말입니다.

어른 릴리는 저 눈사람을 다시 냉장고 속에 넣지 않을 것이다. 그냥 밖에 놓아둘 것이다. 동심을 잃어서가 아니다. 녹는 것은 녹게 두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녹아내리다가 마침내 소멸하는 과정을 이제 마음으로 지켜볼 것이다. 흔적도 없이 사라졌어도 눈사람이 분명 여기에 있었음을 기억할 것이다.

사라진 것들은 한때 우리 곁에 있었다.

녹을 줄 알면서도, 아니 어쩌면 녹아버리기 때문에 사람은 눈으로 '사람'을 만든다. 언젠가 죽을 것을 알면서도 오늘을 사는 것처럼.

곧 녹아버릴 눈덩이에게 기어코 모자와 목도리를 씌워주는 그 마음에 대하여, 연민에 대하여 나는 다만 여기 작게 기록해 둔다. 170쪽

 

 

 

일요일 일요일 일요일 다음에

월요일 월요일 월요일 다음에

화요일 화요일 화요일의 기린

두 팔을 쭉 뻗고 내 목을 감싸줘

이호석 노래 <화요일의 기린> 중에서

「화요일의 기린」 15쪽

아무 편도 들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있다. 중립을 지키면 나를 지킬 수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기꺼이 괜찮다고 하는 것이다. 기분이 상해도, 상처를 받아도, 아무렇지 않은 척 미소 짓는 것이다. 실은 하나도 괜찮지 않으면서. 종이필터 밑바닥에 가라앉은 검은색 커피 찌꺼기처럼 갈피를 잡기 어려운 감정이 그대로 남았으면서. 「괜찮다는 말, 괜찮지 않다는 말」 42쪽

나 역시 '괜찮아'를 발음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되었다는 것. 상처를 주거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상대를 지그시 바라보다가 담담하게 괜찮다고 말하는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스스로에 대해 미묘한 위로가 되었다. 그것은 적은 월급의 절반을 뚝 떼어 적금을 부으면서, 만기일이 오면 한 방에 세계일주 티켓을 끊어 탕진해버리겠다는 상상을 하는 것과 조금쯤 비슷한 느낌일지도 모르겠다. 「괜찮다는 말, 괜찮지 않다는 말」 43쪽

첫번째, 두번째, 세번째······ 그렇게 횟수를 쌓아갈 때마다 미리 스스로의 감정을 추슬러둔다. 그러다 더는 안 되겠다 싶은 순간, 딱 끊고 돌아선다. 상대의 어리둥절해하던 표정이 잊히지 않는다. 통쾌하거나 시원할 줄 알았다. 아니었다. 입안이 시고 썼다. 「괜찮다는 말, 괜찮지 않다는 말」 44쪽

초행이란 가늠할 수 없어 아득해진다는 의미일 것이다. 「안과 밖」 59쪽

애초부터 불가능한 사랑을 놓친 것처럼 안도감과 허전함이 동시에 들었다. 놓친 것이 어디 그런 것들뿐이겠느냐마는. 「안과 밖」 60쪽

여행지에서 만난 이와 사랑에 빠졌다가 일상으로 돌아와 이별을 맞은 경우를 여럿 알고 있다. 그 이별엔 또 '이런저런 이유'가 있다고 설명되곤 하지만,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안다. 낯설고 매혹적인 시공간을 공유했다는 우연이 둘을 특별한 운명의 관계로 이끌었으나, 시공간이 달라지면 그 마법의 힘이 사라지기도 한다는 것을. 「안과 밖」 61쪽

일상에서 깊은 한숨을 내쉬곤 하는 습관이 새로 생겼다고 해서, 일 년 후의 삶이 까마득한 암흑처럼 느껴진다고 해서, 그게 모두 '그 사람과의 관계' 탓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엄밀히 말해 '내 탓'이다. 그러나 누구도 자신과는 이별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상대방과 이별한다. 가장 가까운 옆 사람과 헤어지면 내가 조금은 다른 삶을 살 수 있으리라는 희망으로. 「지상의 유일한 방」 93쪽

늘 새기는 말이 있다. 한 권의 책을 백 명이 읽었다면 모두 백 개의 텍스트가 된다는 말. 다들, 따로따로 읽는다. 따로따로 느낀다. 개별적으로 살고, 개별적으로 사랑한다. 이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이별에 이르는 과정, 이별을 결심하거나 받아들이는 마음, 이별과 대결하는 태도도 모두 제각각일 수밖에 없다. 한 사람과 한 사람의 이별이라는 점, 온전히 그것에 초점을 맞춘다면 말이다. 「커피 두 잔」 124쪽

그 사람들은 내가 아니니까요. 사람들은 쉽게 말하죠. 너의 완벽주의 성향 때문이라고. 완벽해지겠다는 마음을 버리라고요. 하지만 그런 게 아니에요. 다음에 완벽한 무대를 꿈꾸어서 그러는 게 아니에요. 제 마음은 다음번이 아니라 지난번에 꽁꽁 묶여 있어요. 「어둠을 무서워하는 꼬마 박쥐에 관하여」 133쪽

나는 자주 불안한 사람이다. 이 문장을 입 밖에 내어 말할 수 있게 되는 데에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통증의 모양과 형태를 아는 것은 질병을 짐작하는 실마리가 된다고 한다. 「어둠을 무서워하는 꼬마 박쥐에 관하여」 137쪽

'위로'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어쩌면 익숙하지 않아서인지도 모른다. 위로를 하는 쪽이라면 차라리 낫다. 그러나 위로를 받는 일은 번번이 어색하기만 하다. 그래서일 것이다. 오래도록 나는 위로받을 필요 없는 사람처럼 보이기 위해 애쓰며 살아왔다. 괜찮은 척하면, 아무렇지 않은 척하면, 정말로 곧 괜찮아지는 줄 알았다. 「눈+사람」 166쪽

사람은 열심히 눈을 굴려서 왜 하필 '사람'을 만드는 걸까? 아니, 눈덩이 두 개를 8자 모양으로 만들어놓고서 왜 '사람'이라고 부르는 걸까? 이목구비를 붙이고, 모자나 목도리도 씌우면서 왜 더 '진짜 사람'에 가깝게 하려고 애쓰는 걸까? 어차피 며칠 지나면 스르르 녹아 없어지고 말 텐데! 인간의 생명은 좀더 길 뿐, 결국 눈으로 만들어진 저 눈사람의 숙명과 다를 바 없다. 눈사람 창조자가 되는 동안 인간은 혹시 그 엄혹한 사실을 잠시 잊고 싶은 걸까? 「눈+사람」 16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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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9-01-30 2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의 표지 한 번 기가 막히게 뽑은
것 같습니다 -
 
처음부터 잘 쓰는 사람은 없습니다 - SNS부터 에세이까지 재미있고 공감 가는 글쓰기
이다혜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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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사람보다 쓰는 사람이 더 많은 에세이 시대의 글쓰기!

   『처음부터 잘 쓰는 사람은 없습니다』는 머릿속에 맴도는 어렴풋한 생각을 글이라는 형태로 끄집어내는 방법을 다룹니다. '이런 거 쓰고 싶어!'라는 마음의 '이런 거'를 문장으로 바꾸는 연습입니다. 본심의 번역작업이자, 타인과의 교류에 필요한 매너의 실천방식이 기도 한 글쓰기입니다. 6쪽

지금은 에세이의 시대, 소확행의 글쓰기 시대입니다.

   분명 독서 인구는 줄어들고 있는데, 너도나도 '작가'라며 제 SNS를 기웃거립니다. 예전에는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주어졌던 '작가'라는 타이틀의 문턱이 확실히 낮아진게 보입니다. 읽는 사람보다 쓰는 사람이 더 많은 시대. 모두들 읽고자하는 마음보다는 쓰고자 하는 열망이 더 큰가봅니다. 하긴 읽는 행위는 그렇게 생산적이라고 할 수 없지만(돈이 생기거나 어떤 명예를 얻는 건 아니니 까요), 쓰는 행위는 돈이 생기거나 (비록 그것이 망작이라고 하더라도) '작가'라는 지위를 획득할 수 있는 일이므로 훨씬 더 생산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무튼 이런 열망과 욕망을 반영이라도 하듯 글쓰기 관련 책들이 쏟아지고 있고, 이 책 또한 그런 트렌드의 반영으로 기획된 것입니다 .

   이다혜 기자는 『책읽기 좋은 날』이라는 서평집을 통해 작가라는 타이틀을 얻었습니다. 그녀는 가장 흔하고 쉽게 쓸 수 있는 글이 리뷰라고 하는데, 저는 이 리뷰를 쓰는 것도 너무 어렵습니다. 특히, 첫문장과 마지막 문장을 쓸 때는 피고름을 짜듯 쥐어 짜내고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첫문장을 쓰려다가 첫 단락부터 주절주절 늘어지고 맙니다. 주절주절 시작은 했으나, 마무리는 더 어렵습니다. 시작부터 끝까지 내리 비난만 하다가 정말 쌩뚱맞게 동화처럼 마무리를 하거나 권유형의 문장으로 끝내버릴 때가 종종 있습니다. 비난만 해서 미안한 마음이 있었나 봅니다.

   아무튼, 이럴 때 이다혜 기자는 고민하지 말고 과감히 첫문장과 마지막 문장을 날려버리라고 말합니다. 진부하거나 교훈적인 마무리보다는 낫다며, 본문 쓰는 것도 힘들어 죽겠는데 톨스토이처럼 임팩트 있는 첫문장을 어떻게 쓰냐며, 마지막 문장을 없애고 약간의 여운을 주는게 더 좋을 수도 있다고 합니다.

   본문에 들어가기 위해 썰을 풀어야 한다고 어디서 가르치는지, '용건만 간단히'처럼 어려운 게 없다. 영화 리뷰를 과제로 내면 극장 가는 얘기부터 쓴다. 책 리뷰를 쓰라고 하면 책을 구매한 과정부터 쓴다. 여행기는 비행기표 구입부터 시작한다. 그 모든 과정은 재미있고 소중하며, 어떤 경우는 정보로서의 값어치도 있다. 그러나 그것들은 대체로 'TMI'다. 투 머치 인포메이션이며, 읽는 사람에게는 하품 나는 군더더기일 뿐이다. 많은 글은 그렇게 '없어도 좋은' 서두를 갖고 있다. 188쪽

   마무리와 관련해서도 중요한 한 말이 있다. '교훈적인 마무리'는 지양하자. 황희 정승식 글쓰기랄까. 장점 적당히 늘어놓고 단점 적당히 이어붙이고, "그래서 앞으로 책을 열심히 읽기로 다짐했다"식으로 끝나다니. (······) 뜨뜻미지근한 마지막 문장이라면 그냥 지워보기를 권한다. '마무리가 안 된 느낌'이라고 생각하는 마무리가 더 긴장감 있는 경우가 많으며, '마무리된 느낌'은 대체로 진부한 문장일 때가 많다. 189쪽

   그런데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가장 큰 고민은 첫문장도 마무리도 아닙니다. 기자님, 제가 줄거리 요약은 참 잘하는 편인데(사실 작가는 '참'이나 '정말' 같은 부사도 줄여보라고 했습니다.) 이 책처럼 큰 줄거리없이 병렬식으로 나열된 책의 리뷰는 어떻게 쓰나요? 물어볼 수만 있다면 정말 물어보고 싶습니다.('정말'이라는 말을 정말 많이 쓰는군요. 작가는 이런 부사들은 퇴고를 할 때 모두 삭제해도 된다고 했지만, 잘못된 예시로 남겨두려 합니다.)

   이다혜 기자와 마찬가지로 저 역시 '재미'를 위해 책을 읽습니다. 그녀의 첫 책인 『책읽기 좋은 날』을 재미있게 읽어서 이번 책 역시 제목만큼 설렘 가득한 책일거라 기대했는데, 읽기와 꾸벅꾸벅 졸기를 반복하며 며칠밤을 보냈는지 모릅니다. 반복해서 등장하는 내용이 있어서 (물론 모든 학습에서는 '반복'이 중요하긴 하지만) 집중력이 떨어지고 졸렸나봅니다.

   세상 모든 에세이는 쓸데없는 소소한 이야깃거리로 이루어지지 188쪽

   처음 언급한 것처럼, 이 책은 글쓰기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첫 문장을 쓸 수 있게 약간의 가이드를 제시해주는 책입니다. 작가는 SNS 친화적인 글들도 단행본으로 출간되는 시대이니, 서툴러도 괜찮으니까 일단 써보라고, 그리고 한 번 시작한 글은 끝까지 써서 완결 짓는게 중요하다고 말하는데 저는 여전히 두렵습니다. 왜냐하면 저처럼 非SNS 친화적인 글을 좋아하는 사람도 많을테니까요.

   우리는 다른 사람을 늘 처음부터 완성형으로 가정하고 자기 자신을 미완성태로 바라본다. 어떠한 재능도 처음부터 완성되어 있지는 않다. 실수하고 배우고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 자체가 자신의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방법이다. 노력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결과물이 애초에 원하던 그것일지는 알 수 없지만. 20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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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19-01-24 21: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뒷북소녀님.. 이 줄거리 요약이 어려운책을 무려 재밌게(!) 요약해내셨네요. 🤗 ‘정말’요약 잘하시는 듯 ^^

뒷북소녀 2019-01-24 21:58   좋아요 1 | URL
ㅋㅋㅋ오늘도 역시나, 주절주절 늘어지는 제 리뷰를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고요할수록 밝아지는 것들 - 혜민 스님과 함께 지혜와 평온으로 가는 길
혜민 지음 / 수오서재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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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있지만 따로 있는(Alone Together) 분들에게!

    특별히 하는 일이 많은 것도 아닌데 매일이 분주한 요즘입니다. 지인들에게 근황을 물어봐도, SNS를 통해 전해져오는 소식을 살펴봐도 모두가 분주합니다. 요즘 우리는 왜 이렇게 바쁘게 살아가고 있는 걸까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늘 어딘가에 '연결'되어 있어서 우리는 더 바쁩니다. 끊임없이 업데이트 되는 이런 저런 일들을 확인해야 하고, 반응을 보여줘야 합니다. 또, 누군가의 반응에 즉각적인 응답도 해줘야 합니다. 그럼에도불구하고 우리는 때때로 외로움을 느낍니다. 항상 '연결'되어 있지만 어딘가에 '누락'될까봐 걱정입니다.

    혜민 스님은 지금의 현상을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의 관심은 주로 밖으로 향해 있고, 외부 자극에 반응하는 것만으로도 너무 분주하기 때문에 지금 나는 어떤 느낌인지, 어떤 삶을 살고 싶고 어떤 가치를 추구하고 싶은지 들여다볼 겨를 없이 그냥 살아"(7쪽)가고 있다고 말이죠. 사람들은 주변이 조용할 때, 혹은 아무도 없을 때 심심해하거나 외로워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의 착각일 뿐입니다. 고요할수록 우리는 온전히 우리 자신을 만날 수 있고,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발견할 수 있게 됩니다. 저자는 이 책을 읽는 동안만이라도 그렇게 해보라고 합니다.

    고요한 마음은 아무것도 없는 심심한 상태가 아니고, 고요할수록 환하게 밝아져서 내 본래 마음과 만나게 됩니다. 부디 이 책을 읽으시는 동안만이라도 마음이 편안해지시고 지혜가 밝아지시고 스스로를 돌아볼 여유와 쉼을 찾으시길 기원합니다. 8~9쪽

    외로움을 토로하는 사람들의 면면을 살펴보니, 주변에 사람들도 많은데 자발적으로 택한 외로움이라는 것입니다. 혜민 스님은 이런 현상과 관련해 고전평론가 고미숙 선생님과도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고 합니다. 선생은 연결은 되고 싶지만 상처받는 것이 싫어서라고 말합니다. 생각해보면, 저도 그런 경우가 많았습니다. 거절 당하는게 싫어서 시도 조차 하지 않았던 적이 많았죠.

    선생님은 그건 연결은 되고 싶지만 상처받는 것은 싫기 때문 아니겠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이 서로 얼굴을 보고 이야기하면 화학반응이 일어나면서 서로를 변화시킨다. 하지만 그런 공감과 성장의 경험을 하려면 반드시 수반하는 불편함과 수고로움을 감수해야 하는데, 그것들은 하기 싫으니 상대적으로 안전한 스마트폰 뒤로 숨는 것이다. 213쪽

    항상 하는 이야기이지만 우리는 친구가 없어서 외로운 것이 아니라 내가 먼저 연락을 하지 않아 외로운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먼저 다가가야 세상도 내쪽으로 움직인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230쪽


    이 글을 쓰기 전에 온라인서점 베스트셀러 목록을 살펴봤습니다. 베스트셀러 1위에 랭크된 이 책을 포함해 그 밑으로 나열된 책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모두 비슷비슷해 보입니다. 요즘 SNS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아포리즘 같은 짧은 호흡의 문장들과 사진들이 있는 책들, 한마디로 SNS에 최적화 된 글들입니다. (지금 제가 쓰고 있는 이 글은 그 반대의 길을 가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한 눈에 마음을 사로잡는 강렬한 문장이 아닌 긴 호흡으로 천천히 생각을 전하는 책들을 좋아해서 이런 책들을 읽을 때면 나름의 아쉬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이 책을 읽는 동안만큼은 내 자신을 천천히 들여다볼 수 있었습니다. 평소 내 머릿속에서 두서없이 떠올랐던 생각들인데, 누군가 깔끔하게 정리해 놓은 글을 보니 제 생각들도 함께 정리되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자도 '이 책을 읽는 동안만'이라는 단서를 붙여놓았으니까요.

    미국 MIT 대학교 사회심리학자인 셰리 터클은 지금의 현상을 "함께 있지만 따로 있는 Alone Together" 상태라고 설명한다. 즉 같은 공간에 있긴 하지만 우리 각자의 마음은 스마트폰을 통해 모두 다른 곳에 가 있다는 것이다. 아이들의 경우 모여서 얼굴을 맞대고 함께 놀이를 하는 것이 아닌 같은 공간에서 각자의 스마트폰으로 게임이나 문자, SNS에 몰두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어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친구들과 모임을 하거나 회사에서 회의를 할 때, 하물며 함께 밥을 먹을 때도 조금이라도 지루하거나 틈이 생긴다 싶으면 스마트폰을 꺼내 메시지를 체크하거나 앱을 열어 다른 세계와 접속한다. 212쪽

    나와 맞는 부분이 하나라도 있으면

    그 친구와는 만나서 그 부분만을 함께하면 됩니다.

    내 모든 면과 맞는 친구만 사귀려고 하면 평생 외로울 수 있어요. 219쪽

    영국에 외로움을 담당하는 장관이 생겼다는 흥미로운 기사를 얼마 전에 접했다. 외로움으로 인해 고통받는 영국인이 무려 900만 명에 이른다고 하니 그런 장관이 생길 법도 하다. 외로움이 주는 정신적인 고통은 매일 담배 15개비를 피우는 정도의 해를 우리 몸에 끼친다고 한다. 2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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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1
백세희 지음 / 흔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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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행본이 가졌으면 하는 것에 대하여!

   꽤 오랫동안 베스트셀러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던 이 책의 힘(?)이 궁금했습니다. 제목이 공감되지 않았던 것도 아닙니다. 아무리 우울해도 맛있는게 생각났던 적이 있으니까요.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는 저자의 정신과 내원기록을 담은 것입니다. 의사의 동의를 얻어 치료과정을 녹취했고, 그것을 글로 정리했습니다. 정신과 상담을 한번도 받아본 적이 없어서 원래 치료가 이렇게 진행되는건지는 모르겠습니다. '정신과 전문의의 말'을 써 준 정신과의사는 신원을 밝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 상담내용에 더 의구심이 들긴 합니다. 이 책이 단순히 녹취를 나열한 것이 아닌, 전문가의 전문적인 분석까지 포함하고 있었더라면 유익한 컨텐츠가 되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참고로 이 책의 제목은 이 익명의 정신과의사의 글에서 뽑아온 것입니다. 베스트셀러가 된 이 책을 그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요?

   207쪽이나 되는(반어법입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황당했던 부분은, 아직 이야기도 치료도 덜 끝난 것 같은 부분인 154쪽에서 '2권에 계속'이라는 문구를 발견했을 때였습니다. 그리고는 개인 일기장에서 옮겨왔을법한 글들이 부록이라는 이름으로 겨우 나머지 페이지들을 채우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이런 책으로 기획한 책이 아니었으니, 저자나 기획자도 나름 분량을 채우기가 힘들었을 것입니다.

   지인 중에 내성적이고 자존감 낮은 사람이 있습니다. 이것은 그에 대한 제 평가가 아니라 그 스스로가 늘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번 이야기를 쏟아내기 시작하면, 정말 엄청나게 쏟아냅니다. 그저 듣고 있는 제가 숨이 가쁠 정도로, 말은 또 얼마나 빠른지. 가끔 신기해서 지켜보고 있을 때가 있는데, 이 책은 그 지인의 이야기를 글로 옮겨놓은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때 그의 심정도 이랬을까요? 그렇게라도 토해낸게 그 사람에게 도움이 되었을까요? 이렇게 이 책을 쓴 저자의 심정을 더듬어 봅니다.

   알라딘에서 이 책의 베스트리뷰를 찾아보면, 평점이 상당히 낮습니다. 언제나 부정적인 평이 더 강하게 표출되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낮습니다. 그런데 뒷표지에는 칭찬 일색의 리뷰들이 실려 있습니다. 동네책방과 대형서점에 진열되는 출판물을 대하는 독자들의 기대치가 달랐던게 아닐까요? 사실 저는 기대치가 엄청 낮았던 책이었기 때문에, 이 정도 평으로 그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이 책이 읽고 싶었던 이유, 오랫동안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머무르게 만든 그 힘(!)을 찾지는 못했습니다. 저자가 전직 출판마케터라니 홍보도 한 몫 했을거라 생각합니다. 어쩌면 이 책을 읽기 전부터 마음 속 답을 정해놓았기 때문에 발견하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감정의 양 끝은 이어져 있기에 의존성향이 강할수록 의존하고 싶지 않아 하죠. 예를 들어 애인에게 의존할 땐 안정감을 느끼지만 불만이 쌓이고, 애인에게서 벗어나면 자율성을 획득하지만 불안감과 공허감이 쌓여요. 어떻게 보면 일에 의존하고 있는지도 몰라요. 성과를 낼 때 나의 가치를 인정받고 안도할 수 있으니 의존하지만, 그 만족감 또한 오래가지 않으니 문제가 있죠. 이건 쳇바퀴 안을 달리는 것과 같아요. 우울함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하지만 실패하고, 또 노력하고 실패하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주된 정서 자체가 우울함이 된 거죠. 21쪽

   서로의 친밀함을 원하면서도 동시에 적당한 거리를 두고 싶어 하는 욕구가 공존하는 모순적인 심리 상태를 '고슴도치 딜레마'라고 한다. 나는 늘 혼자이고 싶으면서 혼자이기 싫었다. 의존 성향이 강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누군가에게 의존할 땐 안정감을 느끼지만 불만이 쌓이고, 벗어나면 자율성을 획득하지만 불안감과 공허감이 쌓이는 상태. 매번 상대에게 지독하게 의지하면서도 상대를 함부로 대했다. 내게 많은 것을 주는 이들일수록 지겨워하고 지루해했다. 그리고 이런 나를 또 싫어했다. 33쪽

   저는 매번 똑같은 문제를 이야기하고, 선생님도 늘 같은 답을 이야기하는 거 같아요. 제 성향이 바뀌지 않으니까 똑같은 문제가 계속되는 것 같아요. 10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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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9-01-05 2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저는 읽어 보지 않으려구요...

베스트셀러에 대한 태생적 거부감도
있지만, 아무래도 저하고는 맞지 않는
다는 느낌이랄까요.

리뷰를 꼼꼼하게 읽고 나서 가비압게 패쑤 ~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47
에드워드 올비 지음, 강유나 옮김 / 민음사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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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울프는 어디에서 비롯되었나?

    새벽 2시, 이제 겨우 외출에서 돌아온 부부. 그런데 아내가 누군가를 초대했다고 합니다. 이번에 새로 부임한 젊은 교수 부부라고 하는데, 조지는 아내의 초대도, 그 초대에 응한 두 사람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티격태격하는 사이 젊은 부부가 도착했고, 그들은 이 상황을 불편해 합니다.

    이 이야기에는 4명의 인물이 등장합니다. 조지는 뉴잉글랜드 소재 대학의 역사학과 교수입니다. 46세로 이제 흰머리가 늘어가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나이보다 들어보이고, 체격은 마른 편입니다. 반면 그의 부인 마사는, 조지보다 여섯 살 연상인 52세로 나이에 비해 젊어 보이는 편이지만 덩치가 크고 사나운 성격을 가졌습니다. 게다가 그녀는 조지가 근무하고 있는 대학의 총장 딸로, 늘 조지에게 험한 말들을 내뱉습니다. "나가 뒈져"라는 말도 아무렇지 않게 던집니다. 새로 부임한 생물학과 교수 닉은 30세로, 금발에 몸매가 좋으며 잘 생겼습니다. 그녀의 아내 허니 또한 자그마한 몸매에 금발을 가진 26세의 젊은 여성입니다.

    나름 교양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이들은, 날이 새도록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들에게서는 교양이나 지성 따윈 전혀 찾아볼 수 없고 욕설과 폭력이 난무한 말과 행동들을 합니다.

    그렇다면, 제목에서 궁금증을 자아낸 '버지니아 울프'는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요? 사실 이것은 말장난 같은 것입니다.

    "누가 두려워하랴, 커다란 나쁜 늑대(Big Bad Wolf)를."

    이것은 디즈니 만화영화 <세 마리 아기 돼지>에 나오는 동요 가사입니다. 아기 돼지들은 이 노래를 부르면서 늑대가 무섭지 않다며 허세를 부리지만 사실은 늑대가 나타날까봐 벌벌 떨고 있습니다. 이 'Wolf'라는 단어에 착안해서 'Virginia Woolf'가 등장하게 된 것입니다.

    "누가 두려워하랴, 버지니아 울프, 버지니아 울프, 버지니아 울프……." 19쪽

현실은 피 철철 살점 듬뿍!

    주인공들도 이야기 도중에 '버지니아 울프'로 대체된 이 노래를 부르곤 합니다. 여기서 버지니아 울프로 대체된 공포는 무엇일까요?

    조지와 마사 부부에게는 아이가 없습니다. 대신 자신들의 환상 속에서만 아이를 갖고 키우기로 합니다. 그런데 그만 마사가 허니에게 아이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버립니다. 두 사람만의 비밀로 간직하자고 약속을 했는데, 마사가 현실과 환상을 구별하지 못하고 허니에게 말해버리자 조지는 환상 속에 있는 아이를 죽여버립니다. 아이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마사는 엄청나게 괴로워합니다. 환상 속에만 존재하던 아이를, 환상 속에서 죽여버렸을 뿐인데도 말입니다.

    사람들은 환상을 믿고, 그것을 쫓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삶에서 환상이 빠진, 삶의 진짜 모습을 대면하는게 무서웠던게 아닐까요? 주인공들처럼, 사람들이 상상하는 교수라는 지위의 이미지와 실제 교수의 삶이 거리가 있는 것처럼, 모두들 그런 면면을 지니고 있었던게 아닐까요?

    ……어둠 속 어딘가에 있는 조지. ……내게 잘해 주지만 내가 욕을 퍼붓는 조지, 나를 이해해 주고 내가 기죽이는 조지, 나를 웃게 하지만 나는 그 웃음을 억지로 참지. 밤에 나를 안아 주고 나를 따뜻하게 안아 주지만 피가 나도록 내가 물어뜨는 조지, 내가 규칙을 바꾸는 만큼 우리가 하는 게임을 빠르게 계속 배워가는 조지, 나를 행복하게 해 주는데 난 행복하고 싶지 않아. 그래, 난 행복하고 싶어. 조지와 마사, 슬프고, 슬프고 슬프지. 1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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