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의 왈츠 밀란 쿤데라 전집 4
밀란 쿤데라 지음, 권은미 옮김 / 민음사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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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사랑일까? - 쿤데라가 준비한 독자와의 이별

『이별의 왈츠』는 온천이 유명한 체코의 한 소도시를 배경으로 5일 동안 일어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가을이 시작되어 나무들이 노란색, 붉은색, 갈색으로 물들고 있던 어느 월요일(첫째 날), 그것도 일이 다 끝나 갈 무렵이었다. 소도시에서 불임 치료를 위해 온천장에 온 부인들을 담당하고 있는 '젊은 미혼 간호사 루제나'는 얼마 전 하룻밤을 보낸 트럼펫 주자 클리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클리마는 루제나의 비장한 목소리를 듣는 순간 공포에 사로잡혔다. 그녀가 클리마의 아이를 가졌다고 한다. 바람끼가 조금이라도 있는 남자라면 이 순간이 얼마나 공포스러운지 알 것이다.

유명 트럼펫 주자였던 클리마에게는 전직 가수이자 여전히 아름다운 아내 '카밀라'가 있다. 그는 비록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긴 하지만, 자신의 아내를 사랑한다고 말한다. 그는 자신의 사랑을 아무도 이해할 수 없으며, 심지어 아내도 이해할 수 없다고 한다.

문제의 그날밤, 두 사람에게 그 자리를 만들어 준 베르틀레프와의 대화인데, 과연 누가 그의 사랑을 이해할 수 있을까.

"아무도 이 사실을 이해 못 해요. 그 누구보다 제 아내는 더욱 이해 못 하죠. 그녀는 위대한 사랑이 우리가 바람피우는 걸 포기하게 만든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잘못 생각하는 겁니다. 매순간 뭔가가 저를 다른 여자에게 접근하도록 만들어요. 그러나 그 여자를 소유하는 순간, 마치 다시 아내 카밀라 곁으로 저를 되던져 버리는 어떤 강력한 반동에 실린 것처럼 그 여자에게서 떨어져 나가게 되죠. 그래서 제가 다른 여자들을 찾는다면, 그건 단지 매번 새로 부정을 저지를 때마다 더욱더 사랑하게 되는 제 아내에게로 저를 이끌어 주는 이 반동과 약동, 그리고 (다정함과 욕망, 겸손에 가득 찬) 이 찬란한 비상 때문이라는 느낌을 받아요."

"그러니까 루제나 간호사는 당신에게 단지 아내에 대한 당신 사랑을 확인시켜 줬을 뿐이다?"

"그렇습니다. 그것도 극도로 기분 좋은 확인이죠. 왜냐하면 루제나 간호사는 처음 볼 땐 무척 매력적이거든요. 그리고 그 매력이 두 시간 후에는 완전히 다 사라진다는 것 또한 아주 유리하죠."

"(…) 당신 부인이 당신에게 전부라는 사실은 바로 다른 모든 여자들은 당신에게 아무것도 아니라는 거고, 달리 말하면 당신에겐 창녀들이란 거죠. 그런데 그건 하느님이 창조하신 피조물에 대한 심한 모독이고 크나큰 멸시인 겁니다. 이봐요, 친구, 그런 사랑은 일종의 이단이에요." 50~51쪽

둘째 날(화요일), 클리마는 루제나의 사랑 혹은 감정에 호소하며 아이를 단념시키려고 소도시로 간다. 클리마가 그녀를 사랑하니까, 단 둘만의 시간을 즐기기 위해 아이는 필요하지 않다고 말했지만, 루제나는 아이가 자신에게 무기가 되어줄거라고 믿고 있다. 그 예로, 자신을 피하기만 하던 클리마가 아이 이야기를 하자마자 자신을 찾아오지 않았던가.

그녀는 자신의 전화 한 통으로 모든 상황이 변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 유명한 트럼펫 주자가 수도에서 그녀를 만나러 왔으며, 멋진 자동차로 그녀와 드라이브했고 또 그녀에게 사랑 고백을 했다. 그녀는 자신의 임신과 이 갑작스러운 힘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다는 걸 의심할 수 없었다. 만약 그녀가 이 힘을 포기하지 않으려면 임신을 포기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92쪽

그녀는 자기 배 속에 든 것을 아주 강렬하게 의식하기 시작했고, 그것이야말로 성스럽다고 생각했다. 그게 그녀를 변모시켰으며 격상했다. 그것이야말로 그녀를 이 개 잡는 미치광이들과 구별 지어 줬다. 그녀는 자신에겐 포기할 권리가 없노라고, 자신에겐 타협할 권리가 없노라고 생각했다. 그녀 배 속에 유일한 희망이 있기에, 미래로 가는 유일한 입장권이 있기에 말이다. 145쪽

자신의 힘만으로는 그녀를 설득할 수 없게 되자, 클리마는 온천장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어떻게 보면 원인 장소 제공자였던) 미국인 사업가 '베르틀레프 씨'와 그녀의 상관인 '슈크레타 의사'에게 도움을 청한다. 베르틀레프 씨는 클리마의 생각(사랑의 방식)에 동의할 수는 없지만 그를 돕겠다고 한다. (왜냐하면 친구니까.)

당시 이 나라에선 쉽게 낙태를 허용하지 않았는데, 마침 슈크레타 의사가 낙태 허용 여부를 결정하는 위원회 소속이었다. 그러면서 클리마에게 협연을 제안한다. 자신이 드럼을 칠 수 있는데, 이 곳에서는 같이 연주할 사람들이 부족해서 할 수 없었다고. 클리마는 시간이 부족했지만(슈크레타가 제안한 날은 목요일이었다.) 어쩔 수 없이 그 협연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슈크레타 의사에게 낙태 허용 여부에 대한 결정권이 있었고, 클리마에게도 일종의 알리바이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수요일(셋째 날) 아침, 슈크레타의 친구인 야쿠프가 그를 찾아온다. 야쿠프는 곧 이 나라를 떠날 예정이었는데, 예전에 슈크레타에게서 받은 파란색 알약(독약)을 그에게 돌려주기 위해서다. 그냥 버려도 될텐데, 굳이 그에게 돌려주려고 온 것은 아마 핑계였으리라. 이 온천장에는 야쿠프가 후견인으로 돌봐주고 있는 소녀(올가)가 있었는데, 그는 올가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싶었을 것이다.

올가는 처형당한 친구의 딸로, 야쿠프는 아버지처럼 그녀를 후원해주고 있었다. 그러나 사실 야쿠프는 올가의 아버지 때문에 감옥에 다녀오고 정치적 탄압을 당했다. 복수를 해도 이상하지 않았겠지만 그는 아버지처럼 올가를 후원해주고 있다. 아마도 (올가를 포함한) 사람들에게 자신의 관대함을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비록 자신은 올가의 아버지 때문에 탄압 당했더라도 이렇게 돌봐주는 아량을 지녔다고. 그는 자신이 항상 품 안에 지니고 다녔던 연한 파란색 알약을 올가에게 보여주며 그 약의 사연을 들려준다.

"십오 년도 더 되었지. 이 약을 지닌 지. 감옥에 갔다 온 이후, 깨달은 사실이 하나 있었어. 적어도 하나의 확신이 필요하다는 거야. 자신의 죽음을 자기 의지대로 할 수 있고, 또 그 방법과 때를 선택할 수 있다는 확신 말이야. 그런 확신이 있으면 많은 일들을 견뎌 낼 수 있지. 언제든지 원할 때 최악의 사태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는 걸 아는 거지. (…) 이 나라에선 이런 것들을 언제 필요로 하게 될지 절대로 몰라. 그리고 그건 내게 원칙의 문제야. 모든 인간은 성년이 되는 그날 독약을 받아야 한다고 봐. 그걸 위해 엄숙한 예식도 거행되어야 하고. 자살을 고취하려는 게 아니라 반대로 더 큰 확신과 평온을 누리며 살기 위해 말이야. 자신의 삶과 죽음이 자기 손에 달렸다는 걸 알면서 살기 위해서지. (…) 슈크레타 의사는 실험실에서 생화학자로 일을 시작했지. 처음에 나는 다른 사람에게 그런 부탁을 했지만 그는 독약을 주지 않는 게 자신의 도의적 의무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슈크레타는 일 초도 망설이지 않고 이 알약을 직접 만들어 줬어. (…) 무엇보다 그가 나를 이해했기 때문일 거야. 내가 자살극이라도 벌이며 혼자서 만족스러워하는 히스테리 환자가 아닌 걸 그는 알고 있었어. 무엇이 문제인지 그는 이해했던 거야. 오늘 나는 그에게 이 약을 돌려줄 거야. 더 이상 필요치 않을 테니까." 135~136쪽

한편, 루제나의 아버지는 다른 노인들과 함께 공원을 뛰어다니는 개들을 공공질서를 어지럽힌다며 포획하고 있다. 마침 개 한 마리가 위험에 처한 것을 목격한 야쿠프는 그 개를 안고 온천장으로 들어가려고 한다. 이때 루제나가 야쿠프를 막는다. 온천장은 온천 요양객을 위한 호텔이지, 개를 위한 곳이 아니라며. 하지만 남자의 완력을 어떻게 루제나가 막을 수 있겠는가.

"인류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멍청이들을 생산해 낸다는 거야. 그게 내 전공이거든. 바보스러울수록 더 자식을 원해. 완벽한 인간들은 기껏해야 자식을 하나 낳고, 자네처럼 가장 나은 인간들은 자식을 아예 낳지 않기로 결정하지. 정말 엉망이야. 나는 말이야, 인간이 이방인들 사이에 태어나지 않고 형제들 사이에서 태어날 수 있는 세상을 꿈꾸며 시간을 보낸다네." 183쪽

불임 치료 전문의사로 이름난 슈크레타에게는 계획이 있다. 그는 자신이 치료해 준 미국인 사업가 베르틀레프의 양자가 되고 싶어한다. 물론 2년 전에 베르틀레프의 부인이 아들을 낳을 수 있도록 도와주긴 했지만, 심지어 그의 양자가 되기에는 나이가 너무 많기도 하지만, 슈크레타는 그의 양자가 되기 위해 2년 동안 끊임없이 암시를 해왔다. (하지만 베르틀레프는 조금 둔한 사람이었나보다.)

그리고 한가지 더, 슈크레타의 불임 치료 비법을 야쿠프에게 들려준다. 심지어 이 비법은 베르틀레프에게도 통했다. 그의 계획대로라면 이 나라에서 태어나는 많은 아이들이 형제가 될 것이다.

"내 계획을 자네에게 말해 줄게. 시험관 안에 든 게 바로 내 정액이야. (…) 그 방법으로 난 벌써 상당히 많은 여성들의 불임을 치료했어. 여성들이 아이를 가질 수 없는 게 상당 부분 단지 남편 때문이라는 걸 기억해 두라고. 나는 전국에서 많은 환자들을 받고, 사 년 전부터 이 도시 진료소에서 산부인과 검진 책임자로 일하지. 시험관에 주사기를 갖다 댄 다음 진찰받는 여성에게 번식력이 왕성한 액체를 주입하는 건 누워서 떡먹기야."

"아이를 몇 몇이나 가졌지?"

"수년 전부터 그 일을 하고 있지만 정확한 계산은 못 해. 내가 아버지인지 언제나 확신할 수는 없거든. 내 환자들이 자기네들 남편과 관계를 가짐으로써, 말하자면 내게 부정한 짓을 하기 때문이지. 그리고 그들이 집으로 돌아가 버리면 내 치료가 성공했는지 전혀 알 수 없는 경우도 있어. 이곳에 사는 환자들의 경우에는 더 확실하지."

(…) "그렇게 많은 여성들이 자네 아이를 갖는다는 건 정말 멋진 일일 거야……."

"모두가 서로 형제야." 185~186쪽

넷째 날, 드디어 콘서트가 열리는 목요일이다. 카밀라는 남편이 소도시에서 콘서트를 한다는 이야기를 믿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남편에게 직접적으로 물어볼 수가 없었고(자신이 의심하고 있다는 것을 남편이 몰라야 했기 때문에), 남편을 따라 그곳에 갔다가 콘서트 같은 건 없다는 걸 알게 될까봐 두려웠다. "그녀는 그를 잃을까 두려웠다. 그런데 바로 그 두려움 때문에 결국 그를 잃을지도 몰랐다!" (192쪽) 그러나 카밀라는 그곳에 가보기로 했다. 만약에 진짜라면 남편을 응원하기 위해 왔다고 말하면 될 것이다.

야쿠프는 루제나가 깜박하고 두고 간 약통을 발견한다. 그 약통에는 야쿠프가 늘 가지고 다니는 알약과 비슷하게 생긴 진정제가 들어 있었고, '하루 세 번 복용'하라고 적혀 있었다.

야쿠프는 "바로 오늘, 연한 파란색 알약이 든 약통이 테이블 위 자기에게 주어진 것은"(222쪽) 우연한 일이 아니며, 어떤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녀는 연한 파란색 알약의 필요성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내게 말하려는 건가? 아니면 독약에 대한 이런 암시를 통해 나에 대한 꺼지지 않는 원한을 표현하려는 건가?"(223쪽)

그는 호주머니를 뒤져 둘둘 말린 종이를 꺼내 펼쳐 보았다. 자기 알약을 살펴보니, 그녀가 잊고 간 약통 속 알약보다 조금 더 진해 보였다. 그는 유리 약통을 열고 한 알을 손바닥 위에 떨어뜨렸다. 그랬다. 그의 것은 약간 더 짙었고 좀 더 작았다. 그는 약통에 두 알약을 같이 넣었다. 그러고 나서 그 알약들을 살펴보니, 얼핏 본다면 두 알약의 차이를 전혀 알아챌 수 없다는 걸 확인했다. 제일 위에, 아마도 가장 사소한 장애를 치료하는 데 쓰는 아무 위험도 없는 알약 위에, 가면을 쓴 죽음이 놓여 있었다. 223쪽

그때 루제나가 돌아와 야쿠프가 들고 있는 자신의 약통을 발견한다. 그녀는 "당신에게 부탁이 있는데, 약 한 알만 주세요."(224쪽)라고 말하는 야쿠프를 뿌리치고 약통을 가져가 버린다.

그때부터 야쿠프는 루제나가 가져가버린 독약 생각 밖에 할 수가 없었다. 루제나가 지금 당장 그 독약을 먹을 수도 있는데, 마음 속으로 변명만 떠올리며 가만히 있었다. 도대체 루제나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약 한 알만 달라는 그의 부탁을 뿌리친 것도 루제나가 아닌가. 루제나의 행적을 (소극적으로) 찾아보기도 했으니, 이제 야쿠프도 더이상 취할 조치가 없는게 아닌가.

그때 그는 자기가 간호사에게 독약이 든 약통을 준 건 우연이 아니라(즉 의식이 마비 상태에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수년 전부터 기회를 엿보던 오랜 욕망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너무나도 강해 결국은 그런 기회를 만들고야 만 그런 욕망 말이다. 242쪽

소도시에 도착한 카밀라는 남편이 다른 여자를 만나기 위해 꾸며낸 거짓말이 아니라 실제로 콘서트가 열린다는 걸 알게 된다. 카밀라는 무대 아래서 콘서트를 지켜보고 있다. 콘서트가 끝나면 클리마와 만나기로 약속한 루제나 역시 카밀라와 같은 공간에서 콘서트를 지켜보고 있다. 바로 그때 베르틀레프가 나타나 루제나를 데리고 나간다. 루제나를 자신의 방으로 데리고 간 베르틀레프는 뜬금없이 그녀를 사랑한다고 고백한다. 마치 성자처럼, 아무 조건도 없이 루제나에게 사랑을 베풀려고 한다. (여기서는 '사랑을 베풀다'가 정확한 표현이다. 하거나 주는게 아니라.) 루제나가 보이지 않자 클리마는 불안해 하고, 카밀라는 그런 남편을 의심스런 눈빛으로 쫓는다.

한편 올가는 "야쿠프에게서 아버지 역할이라는 가면을 벗기고 싶었다." (281쪽) 야쿠프는 "그 어떤 것보다도 이 여자아이와는 자고 싶지 않았다. 그는 그녀에게 기쁨을 주고 호의를 베풀기를 바랐지만, 그 호의는 관능적 욕망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뿐만 아니라 그 호의란 순결하고 사심 없고 모든 쾌락과는 무관하길 원했기 때문에, 그런 욕망을 완전히 없앴던 것이다." (289쪽) 야쿠프는 올가를 보살펴 주면서 보통 사람들과는 차원이 다른, 보다 높은 차원의 인격(관대함)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었다. (허세를 장착한 캐릭터) 그런데 내일이면 이 나라를 떠나서 다시는 올가를 볼 일도 없으니 하룻밤 정도는 상관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어쩌면 카밀라에게 준 약통에 정신이 팔려 있어서 그랬을지도.)

"자네는 자네가 관대하다는 걸 스스로에게 증명해 보이기 위해 자네 속에 있는 당연한 증오와 혐오를 억눌렀던 거야." _슈크레타 의사 344쪽

드디어 마지막 다섯째 날, 루제나는 "클리마 없이, 프란티셰크 없이도 살 수 있음을 깨달았다. 서두를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것과 시간이 충분하다는 것, 그리고 사람을 너무나 빨리 늙게 하는 이 마술에 걸린 땅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현명하고 성숙한 한 남자의 인도를 받을 수도 있다는 걸 깨달았다." (304쪽) "베르틀레프 씨는 매력적인 남자일뿐 아니라 무엇보다 수많은 달러와 전 세계를 여행할 수 있는 여권을 가진 미국인 사업가"(369쪽)인데다가 심지어 아이가 없어도 자신을 사랑한다고 말해주지 않았던가.

그날 아침, 간호사가 살아있는 것을 확인한 야쿠프는 안도한다. 하루 세 번 복용하라고 적혀 있었으니, 적어도 그녀는 이미 오래 전에 야쿠프의 알약을 먹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살아있다면 슈크레타가 준 것은 가짜 독약이었나보다. 그는 안도하며 공원을 산책하다가 카밀라를 마주치게 된다. 야쿠프는 또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한다. (마치 자기 삶에선 의미 없는 일이 하나도 없다는듯이.) 오늘 이 나라를 떠나는데, 이렇게 아름다운 여인가 마주친 것은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 카밀라의 아름다움에 매료된 야쿠프는 마음 속에서 나오는 대로 거침없이 고백한다. "마음에 드는 건 바로 당신입니다. 너무나도 당신이 좋군요. 당신은 말할 수 없이 아름다우십니다." (316쪽)

야쿠프의 난데없는 고백을 들은 카밀라는 "자기 자신에 대해 자신감이 느껴졌으며 자신이 아름답다고 느껴졌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했다. 그녀를 클리마에게 묶어 둔 게 정말 사랑일까, 아니면 단지 그를 잃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일까?" (361쪽) "인생의 행로 저 앞쪽 어딘가에 트럼펫 주자와의 결별을 의미하는 선이 그어져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처음으로 그녀에게 아무런 고통도 두려움도 불러 일으키지 않았다." (362쪽)

한편, 아침부터 찾아와 자신의 아이라며 소리치는 프란티셰크 때문에 흥분한 루제나는 약통에서 한 알을 꺼내 삼켰고, 격렬한 통증과 함께 죽음을 맞이한다. 『농담』에서 헬레나가 죽으려고 먹었던 약이 복통을 불러오는 설사약이었던 것처럼, 이번에도 설사약이 아닐까 했는데 진짜 독약이었다.

남자친구와 싸우다가 그녀가 직접 약통에서 약을 꺼내 먹었으니 사람들은 당연히 자살이라고 했는데, 어젯밤을 그녀와 함께 보낸 베르틀레프는 절대 그럴리가 없다고 한다. 그리고는 자신이 그녀를 죽였다며 체포하라고 한다. 죄를 지은 사람은 따로 있는데, 대신 십자가에 매달렸던 예수처럼, 조건없이 사랑을 베푸는 성자처럼 말이다.

그녀가 죽었으니 클리마는 더이상 아이 때문에 걱정할 필요가 없어졌다. 심지어 슈크레타 또한 클리마의 편에 서서 그를 대변해 준다. 루제나가 그의 아이를 가졌을리 없다며, 다만 낙태를 하려면 아버지의 동의가 필요했기 때문에 외부에서 온 클리마에게 부탁한거라고 말이다. (죽은 사람은 말을 할 수 없으니)

그리고 야쿠프는 자신이 진짜 살인자인지도 모른채 가짜 독약을 약통에 넣긴 넣었으니 '나는 열여덟 시간 정도 암살자였군.'이라고 생각하며 그곳을 떠난다. 인상적인 것은 야쿠프가 자신의 행동을 『죄와 벌』에서 전당포 노인을 죽인 라스콜리니코프와 비교했다는 것이다.

실험으로서, 그리고 자아 인식 행위로서의 살인, 이는 그에게 뭔가를 환기했다. 그래, 라스콜리니코프였다. 인간이 열등한 자를 죽일 권리가 있는지 알려고, 그리고 자신이 살인을 견딜 힘이 있는지 알려고 사람을 죽였던 라스콜리니코프였다. 그 살인을 통해 그는 자기 자신에 대해 스스로 질문을 제기했던 것이다.

그래, 라스콜리니코프와 유사한 점이 있었다. 즉 살인의 무용성, 그 이론적 성격, 그러나 차이점도 있었다. 라스콜리니코프는 재능 있는 인간이 그 자신의 이익을 위해 열등한 생명을 희생할 권리가 있는가를 스스로에게 물었다. 하지만 야쿠프가 간호사에게 독약이 든 약통을 주었을 때 그는 그와 유사한 어떤 것도 염두에 두지 않았다. 야쿠프는 인간이 타인의 샐명을 희생할 권리가 있는지 자문한 게 아니었다. 반대로 야쿠프는 평생 인간에겐 그럴 권리가 없다고 믿었었던 것이다. 야쿠프는 사람들이 추상적 이념을 위해 타인의 생명을 희생하는 세계에 살았다. 야쿠프는 그런 사람들의 얼굴을 잘 알고 있었다. 때로는 뻔뻔하게도 순진하며, 때로는 슬프게도 비겁한 그 얼굴들, 온갖 변명을 늘어놓으며, 하지만 은밀하게 자기 이웃들에게 잔인한 판결을, 그네들 스스로 그게 잔인하다는 걸 익히 알고 있는 그런 판결을 내리는 그 얼굴들 말이다. 야쿠프는 그 얼굴들을 잘 알고 있었고 또 증오했다. 더욱이 야쿠프는 모든 인간은 타인의 죽음을 원하며, 단지 두 가지, 즉 처벌이 두려움과 살인을 행하는 데 따르는 물질적 어려움이라는 두 가지 사실만이 인간들에게 살인을 단념케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야쿠프는 모든 인간들이 몰래, 그리고 멀리서 살인할 수만 있다면 인류는 몇 분 후면 사라지리라는 걸 알고 있었다. 따라서 그는 라스콜리니코프의 실험은 완전히 헛된 것이라고 결론지어야만 했다. 352~353쪽

여기서 약간의 반전은 루제나의 죽음이 자살이 아니라는 걸, 루제나를 죽인 사람은 야쿠프라는 것을 눈치챈 올가와 클리마의 마음이 다시 자신에게 돌아오자 (언젠가는 하게 될) 이별 준비를 하는 아내 카밀라의 존재였다.

곳곳에 던져져 있는 상징 덩어리, 『이별의 왈츠』

모든 것을 읽어낼 수는 없었겠지만, 이 소설은 상징들로 가득하다.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자신과 닮은 형제들로 이루어진 세계를 꿈꾸는 슈크레타와 늘 사람들에게 베풀고 다니는 성자 같은 베르틀레프의 대립이 돋보인다.

슈크레타가 꿈꾸는 사회는 마치 조지 오웰의 『1984』 속 사회와 같은 전체주의 사회 혹은 집단 내에서의 동지애(형제애)를 중시하는 공산주의를 떠올리게 한다. 개인의 개성이나 감정은 배제하고, 똑같은 모습을 하고 똑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 상상만해도 소름 끼친다.

공원의 질서를 지키기 위해 개를 잡는 루제나의 아버지는, 그런 사회에서 아무런 의식없이 살고 있는 사람을 표현할 것일테고.

반면 베르틀레프는 유일하게 자유가 보장된 나라, 미국인 여권을 소지한 돈 많은 사업가다.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종교 조차 가질 수가 없는데, 어쩌면 그는 종교도 가지고 있을지 모른다. 왜냐하면 그의 방에는 후광을 받고 있는 턱수염 난 남자 초상화가 있고, 마치 예수처럼 사랑을 베풀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의견과 달랐지만 친구라는 이유로 클리마에게도 도움을 줬으며, 루제나에게는 조건 없는 사랑을, 심지어 슈크레타가 바라는 일이기 때문에 그를 입양하기까지 한다. 야쿠프가 지은 죄에도 마치 자신이 지은 것처럼 체포하라고 하고.

하필이면 옅은 푸른색인 독약 또한 마찬가지다. 푸른색은 희망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우울함을 상징하기도 한다. 게다가 후광처럼 영광 혹은 보다 고귀한 것을 상징하기도 하는데, 그 모든 것이 각각 다르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같거나 함께 존재한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하필이면 푸른색인 걸 보면.

제목에 대한 고찰. 왜 『이별의 왈츠』인가?

왈츠는 남녀가 한 쌍이 되어 둥글게 원을 그리며 추는 경쾌한 춤으로, 보통은 남녀 파트너가 계속 바뀐다. 마음에 드는 파트너를 만나도 어쩔 수 없이 (이별하고) 파트너를 바꿀 수 밖에 없다.

콘서트를 빌미로 모두 같은 공간에 모였던 '넷째 날', 그들은 각자 '이별의 왈츠(행위)'를 춘다.

1970년 대 초에 『이별의 왈츠』를 끝낸 후, 나는 작가로서의 내 행로가 완결됐다고 여겼다. 당시는 러시아 점령 치하였고 우리, 즉 아내와 나는 다른 일들을 근심하고 있었다. 내가 육 년 동안 완전히 중단되었던 글쓰기를 별 열정 없이 다시 시작한 것(프랑스 덕분에)은 프랑스에 온 지 일 년이 지나서였다. 잔뜩 주눅이 들어 있던 나는 다시 한 번 발밑에서 단단한 지반을 느끼기 위해 과거에 이미 만들었던 것을 되살려 보고자 했다. 『우스운 사랑들』의 후속편 같은 것을 써 보는 것 말이다. 엄청난 퇴보 아닌가! 『배신당한 유언들』, 249쪽

쿤데라는 1997년 체코어 판 후기에서, 처음에는 소설의 제목을 '에필로그'로, 나중에는 '이별'로 붙였으나 프랑스 출판인 갈리마르의 마음에 들지 않아서 지금의 제목을 고쳐서 발표했다고 한다. '에필로그' 혹은 '이별'이라는 제목을 붙인 것은, 그가 프랑스로 떠나기 전, 체코에서 마지막으로 쓴 소설이기 때문이다. 그는 체코를 떠나면 더이상 글을 쓸 수 없을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모두 담아냈고, 독자와의 '이별'도 준비했던 것이다.

그런 자신의 모습을 소설 속 인물인 야쿠프에게 투영했을 것이다. 비록 야쿠프처럼 직접적으로 누군가를 죽이진 않았더라도, 조국에 그 모든 사람들을 남겨두고 떠나는 마음이 그렇게 무겁지 않았을까.

그는 자신이 그의 유일한 조국을 떠난다는 것, 그리고 다른 조국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37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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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루시 바턴 루시 바턴 시리즈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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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외로움에 사무치는 일이 없도록 글을 쓰자!

이건 아주 좋아요. 발표할 수 있을 거예요. 잘 들어요. 가난과 학대를 결합한 것 때문에 사람들이 당신을 쫓아다닐 거예요. '학대'라니, 정말 바보 같은 단어 아닌가요. 아주 상투적이고 바보 같은 단어예요. 사람들은 학대 없는 가난도 있다고 말할 거예요. 그래도 당신은 절대 아무 반응도 하지 말아요. 자기 글을 절대 방어하지 말아요. 이건 사랑에 대한 이야기고, 그건 당신도 알 거예요. 이건 자신이 전쟁에서 저지른 일 때문에 평생을 하루도 빠짐없이 괴로워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예요. 이건 그의 곁을 지켰던 한 아내의 이야기예요. 그 세대에 속한 아내들은 대부분 그랬으니까요. 그녀가 딸의 병실에 찾아와 모두의 결혼이 좋지 않은 결말을 맺었다는 이야기들을 강박적으로 하는 거예요. 정작 자신은 그 사실을 인지하지도 못해요. 자기가 그러고 있다는 걸 그녀 자신도 몰라요. 이건 딸을 사랑하는 한 어머니의 이야기예요. 불완전한 사랑이긴 하지만요. 왜냐하면 우리 모두 불완전한 사랑을 하니까요. 하지만 이 작품을 쓰면서 내가 누군가를 보호하려 한다는 생각이 들면 이 말을 떠올려요. 지금 나는 잘못하고 있는 거야. 124쪽

이것은 한 작가의 강의에서 루시 바턴(화자)이 쓴 글에 대해 받은 평가이다. 당시 쓰고 있던 소설의 일부 대신 그녀는 "엄마가 나를 보러 병원에 왔을 때의 장면을 스케치한 원고"(123쪽)를 꺼내놨고, 작가의 응원에 힘입어 이 글을 발표한다.

한 남자의 아내로, 두 딸의 엄마로, 자신의 이름으로 발표한 글이 있는 작가이기도 한 그녀는 얼핏 보면 부족함 없이 행복해 보이지만 사실 마주하지 못하는 기억들이 있다. 그것은 가족들과 함께했던 어린시절의 기억들이다.

병원에 입원한 루시 바턴을 간호하기 위해 오랫동안 왕래가 없었던 엄마가 찾아왔다. 남편의 부탁드로 엄마는 망설임 없이 비행기를 타고 날아왔던 것이다. 달리 할 것이 없는 병실에서, 며칠동안 엄마와 루시는 어린시절의 기억을 소환해 이야기를 나눈다.

하지만 결국 내가 원한 건 다른 것이었다. 내가 원한 건 엄마가 내 삶에 대해 물어봐주는 것이었다. 나는 엄마에게 내가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말하고 싶었다. 68~69쪽

전쟁 참전으로 인한 외상 후 스트레스 때문에 어린시절부터 루시 바턴을 학대했던 아버지, 여자 속옷을 걸치고 온동네를 뛰어다녔던 오빠, 추운 집이 싫어서 수업이 끝난 뒤에도 따뜻한 학교에 남아서 숙제를 하고 책을 읽었던 루시. 루시 뿐아니라 누구에게라도 지긋지긋했을 것 같은 그곳. 다행히 루시는 열심히 책을 읽고 공부를 한 덕분에 장학금을 받고 다른 지역의 대학교로 진학하게 된다. 그 이후로 루시는 더이상 가족을 만나지도, 생각하지도 않았다. 가족들 또한 루시를 찾지 않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작가가 된 그녀가 다른 차원의 사람처럼 보였기 때문이리라.

담임선생님은 내가 독서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고 내게 책을 주었는데, 그중에는 어른들이 읽는 책도 있었다. 나는 그 책들을 읽었다. 고등학생이 된 뒤에도 나는 여전히 따뜻한 학교에서 숙제를 했고, 숙제를 마치면 책을 읽었다. 그 책들 덕에 몇 가지 얻은 것이 있다. 이것이 내 말의 요점이다. 책이 내 외로움을 덜어주었다. 이것이 내 말의 요점이다. 그래서 생각했다. 나도 사람들이 외로움에 사무치는 일이 없도록 글을 쓰겠다고! 33~34쪽

우리가 일련의 일들을 기억하는 방식에는 두 가지가 있다. 마치 사진을 찍어놓은 것처럼 세세하게 기억하거나 떠올리는 것조차 싫어서 잊어버리려고 애쓰거나. 루시의 경우엔 후자였다. 처음엔 어린 시절을 상기시켜주는 어머니의 이야기들이 싫었다. 그 이야기들을 글로 쓰기 시작한 것도 차마 말로 쏟아낼 수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다행히 한 작가의 응원으로 그 글들을 세상에 내놓을 수 있었고, 덕분에 그녀는 작가의 길을 걸을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이건 내 이야기이다.

그럼에도 이건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몰라의 이야기이자 내 대학 룸메이트의 이야기이고, 어쩌면 프리티 나이슬리 걸즈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 엄마. 엄마!

하지만 이 이야기는 내 것이다. 이 이야기만큼은. 그리고 내 이름은 루시 바턴이다. 216쪽

리뷰들을 살펴보다가 궁금증이 생겨 읽게 된 소설이었다. 뭐라고 특정할 수 없는 매력이 있는 소설처럼 보였는데, 읽어보니 정말 그랬다. 게다가 섬세한 표현들이 종종 띄어서 좋았다. 몇 권을 더 읽어보면 그녀만의 매력을 특징지을 수 있을까.

우리가 다른 사람 혹은 다른 집단보다 스스로를 더 우월하게 느끼기 위해 어떤 방법을 찾아내는지가 내게는 흥미롭다. 그런 일은 어디에서나, 언제나 일어난다. 그것을 뭐라고 부르건, 나는 그것이, 내리누를 다른 누군가를 찾아야하는 이런 필요성이 우리 인간을 구성하는 가장 저속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111쪽

나중에, 내 첫 책이 출판된 뒤에 나는 어느 의사를 찾아갔는데, 그녀는 내가 만나본 의사 중에서 가장 자애로운 사람이었다. 나는 종이에 그때 그 수강생이 뉴햄프셔 출신의 재니 탬플턴이라는 사람에 대해 말했던 것을 썼다. 내 결혼생활에서 알게 된 것을 썼다. 내가 말로는 할 수 없었던 것을 썼다. 그녀는 그걸 전부 읽은 뒤 말했다. 고마워요, 루시. 괜찮을 거예요. 187쪽

모든 생은 내게 감동을 준다. 2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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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에서 한아뿐
정세랑 지음 / 난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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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두 덕후의 이야기! 우주가 아무리 넓어도 직접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야기들이 있다!

그러니까 이 모든 일은 결코 한아의 외모 때문에 벌어지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의 추측과는 달리.

어쩐지 친해지고 싶은 호감형이기는 하지만 평일 오후 두시의 6호선에서 눈에 뛸 정도지, 출퇴근 시간 2호선에서는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을 희미한 인상이었다. 길에서 말 걸어오는 사람들 때문에 피곤한 인생을 살아야 했던 적은 한 번도 없고 본인도 그 점을 다행이라고 여기고 있다.

6개월에 한 번도 손질하지 않는 아무렇게나 늘어진 머리에, 직접 짠 니트와 걸을 때마다 편안하게 접히고 움직이는 긴 치마는 한아의 가게가 있는 서교동 골목의 분위기 그대로였다. 조금 멍하게 걷는 편이었다. 가만두면 정거장이나 역을 늘 놓칠 것 같은 표정으로. 9~10쪽

이 소설의 첫문장처럼, '한아'는 누군가 보고 반할만큼 멋진 외모와 스타일의 소유자가 결코 아니다. 그런데 그는 2만광년 떨어진 곳에서 한아를 지켜보다가 반해버려서 모든 것을 버리고 이 먼 곳까지 오게 됐다고 한다. 오직 한아와 함께 있기 위해서. 심지어 한아와 11년 사귄 남자친구 '경민'은 '우주 자유 여행권'이라는 말에 미련없이 지구에서의 모든 것을 버리고 우주로 떠났는데 말이다.

"나도 저렇게 여기에 왔어. 2만 광년을, 너와 있기 위해 왔어."

한아는 울지 않으려 애를 썼지만 실패했다.

"경민이…… 진짜 경민이 어딨어?"

"경민씨의 이름, 얼굴, 정보…… 특히 너와 관련된 정보들과 내 우주 자유 여행권을 서로 바꿨어. 완전히 자발적인 과정이었고 경민씨를 결코 해치지 않았어. 동의하에 바꾼거야. 지금쯤은 이 은하계 바깥을 탐험하고 있을 거야." 93~94쪽

"나는 안 될까. 처음부터 자기소개를 제대로 했으면 좋았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게 더 나은 방법일 것 같았어. 그래도 나는 안 될까. 너를 직접 만나려고 2만 광년을 왔어. 내 별과 모두와 모든 것과 자유 여행권을 버리고. 그걸 너에게 이해해달라거나 보상해달라고 요구하는 건 아냐. 그냥 고려해달라는 거야. 너한테 아무것도 바라지 않아. 그냥 내 바람을 말하는 거야. 필요한 만큼 생각해봐도 좋아. 기다릴게. 사실 지금 이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난 괜찮은 것 같아. 우주가 아무리 넓어도 직접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야기들이 있으니까. 이거면 됐어." 95쪽

심지어 경민의 모습을 한 이 외계인이 망원경을 통해 한아를 보고 반해버리자, 외계인이 살고 있던 별 전체가 한아 꿈을 꿨다고 한다. 그 별의 사람들(외계인)은 "자가 분열로 번식을 하는데다가 인간보다 강한 집단 무의식으로 꿈이 이어져"(100쪽) 있어서 그렇게 공유가 된다는 것이다.

"그거 알아? 내가 너한테 반하는 바람에, 우리 별 전체가 네 꿈을 꿨던 거? 하지만 첫번째로 널 보고 널 생각한 건 나였기 때문에 내가 온 거야." 101쪽

그런데 왜 하필 한아였을까? 이 우주에는, 아니 한아가 살고 있는 이 지구에도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왜 하필이면 한아였을까? 그래서 이 경민 모습을 한 외계인도 여러 각도로 생각해 보았다고 한다.

"내가 본 너는 엄청나게 일관된 사람으로, 혼자 엔트로피와 싸우고 있는 거 같았어. 파괴적인 종족으로 태어났지만 그 본능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었지. 너는 비 오는 날 보도블록에 올라온 지렁이를 조심히 화단으로 옮겨주고,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고래를 형제자매로 생각했어. 땅 위의 작은 생물과 물속의 커다란 생물까지 너와 이어지지 않은 개체는 없다는 걸, 넌 우주를 모르고 지구 위에서도 아주 좁은 곳에 머물고 있었는데도 이해하고 있엇어. 나는 너의 그 선험적 이해를 이해할 수 없었어. 인간이 인간과 인간 아닌 모든 것들을 끊임없이 죽이고 또 죽이는 이 끔찍한 행성에서, 어떻게 전체의 특성을 닮지 않는 걸까. 너는 우주를 전혀 모르는데, 어떻게 우주를 넘어서는 걸까. 너는 너무 멀리 있는데, 나는 왜 널 가깝게 느낄까. 내가 네 옆에 있는 바보 인간보다 더 가까울 거라고, 그런데 그걸 넌 모르니까, 전혀 모르니까, 도저히 잠들 수 없었어." 102쪽

"억지로 수십억 다른 지구인들을 관찰해봤는데도 같은 감정은 느껴지지 않았어. 미적인 기준이 워낙 다르기 때문에 솔직히 인간은 아무리 봐도 아름답게 안 느껴져. 근데 너만…… 너만 아름다웠어. 빛났어. 눈부셨어." 104쪽

한편 경민과 함께 지구를 떠난 사람이 한 명 더 있다. '아폴로'라는 이름의 가수였는데, 우주대스타를 꿈꾸며 지구를 떠난 것이다. 아폴로의 팬클럽 회장이었던 '주영'은 경민의 모습을 한 그(외계인)로부터 아폴로의 소식을 듣고 아폴로가 있는 우주로 떠난다. 다시 돌아올 수 없을지도 모르는데, 지구에는 그녀의 가족과 친구들이 모두 남아있는데도 말이다. 사람들은 주영을 이해할 수 없다고 했지만, 그녀에게는 아폴로가 그 모두 아니 이 지구라는 행성 전체를 합친 것보다도 더 큰 의미가 있는 존재였다.

사람들은 왜 너 자신에 집중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을 위해 사느냐고 묻는다. 끝내는 아무것도 남지 않고, 아무도 고마워하지 않을 거라고. 하지만 그런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건전한 절대 명제, '누구나 하나의 세계를 이룰 수 있다'는 역사상 가장 오래 되풀이된 거짓말 중 하나일 거라고 주영은 생각했다. 세계를 만들 수 없는 사람도 있다. 아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탁월하고 독창적인 사람들이 만든 세계에 기생할 수밖에 없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똑같이 기여하는 것이 아니다. 거인이 휘저어 만든 큰 흐름에 멍한 얼굴로 휩쓸리다가 길지 않은 수명을 다 보내는 게 대개의 인생이란 걸 주영은 어째선지 아주 어린 나이에 깨달았다. 36~37쪽

"어떤 특별한 사람은 행성 하나보다 더 큰 의미를 가질 때가 있어요. 그걸 이해하는 사람이 있고 못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저한텐 엄청 분명한 문제예요. 난 따라갈 거야, 내 아티스트." 118쪽

"말 그대로 스타라니까. 중력이 없으면 스타겠어요? 벗어날 수 있었으면 나도 다르게 살았지. 가끔은 포기가 더 효율적일 때가 있죠." 119쪽

나 역시 오랫동안 덕후의 길을 걸어왔기 때문에 아폴로를 향한 주영의 맹목적인 사랑에 공감했지만, (설정이 다소 황당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한아의 소소한 몸짓을 발견하고 사랑해 준 외계인의 사랑에 더 끌렸다. (『옥상에서 만나요』에서도 외계인으로 추정되는 남자친구가 등장했었다.)

우주가 아무리 넓어도 직접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야기들. 그것은 아마도 너를 사랑한다는 말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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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구의 사랑 오늘의 젊은 작가 21
김세희 지음 / 민음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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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고등학교 때 말이야. 그건 다 뭐였을까? 어쩌면 우리 모두의 이야기!

'준희(화자)'는 학창시절을 떠올리며 글을 쓰고 있다. 여중, 여고를 다녔던 준희는 또래 여자친구들끼리 서로 사귀는 모습을 종종 목격했다. 준희는 그 아이들과 자신은 다르다고, 그 아이들과 같은 행동을 하지는 않을거라고 선을 그었지만, 그녀 또한 고등학교 시절에 한 학년 위의 선배를 좋아했었고, '남자처럼 짧은 머리'의 인희의 사랑을 받기도 했었다.

그 애들은 날마다 반복되는 강도 높은 수험생 생활을 견딜 만한 것으로 만들어 주는 연인 관계를 누리고 있었다. 가까이서 서로를 지켜보고, 살뜰하게 챙기고 보살폈다. 남자든 여자든 무슨 상관인가. 가끔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게 특별한 관심을 주고, 설렘을 느끼게 해 준다면. 다른 아이들과 구별해 줄 모종의 사연, 로맨스를 선사해 주기만 한다면. 또한 당시 우리의 조건에서는 남자보다 같은 학교에 다니는 여자 애인이 이 모든 요구를 더 잘 충족시켜 줄 수 있었다. 내가 무슨 말을 듣고 싶은지, 무엇이 필요한지, 다가오는 생일에 무슨 선물을 원하는지도 굳이 내색하고 가를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그럴 수 있는 사람과 그럴 수 없는 사람이 있는 것이다. 아무리 애를 써도, 아무리 그로 인한 이득이 욕심나도 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마음속 깉은 곳에서 믿을 수 없는 사람이 있다. 신자가 될 수 없는 사람. 어찌할 수 없는 일이다. 노력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니까. 난 그때까지만 해도 그럴 수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이 정해져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난 그럴 수 없는 쪽에 속한다고 생각했다. 46~47쪽

그 시절 아이들이 좋아했던 상대는 또 있었다. 아이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오빠들(!)의 팬클럽 활동은 물론이고 팬픽까지 직접 써서 돌러보며 죽을 만큼 사랑한다고, 마치 그 오빠들이 자신들과 늘 함께하는 것처럼 여겼다.

한 번도 실제로 본 적 없는, 따로 만나서 이야기를 나눌 수도 없고 친해질 수도 없는 애인이었다. 자기가 세상에 존재하는지도 모르는 사람이었다. 우리는 다들 그런 애인을 한 명씩 갖고 있었다. 한번은 민지와 이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우리가 사랑하는 오빠가 진짜 그 오빠가 맞을까? 실제로는 전혀 다른 사람일 수도 있겠지. 우리가 보는 모습은 대중을 상대로 만들어진 거니까. 화려하고 매끈매끈한 표면이니까. 그 이면에 어떤 성격이 감춰져 있는지는 알 수 없지. 135쪽

동성애니 레즈비언이니, 학창시절에 소문이 무성했던 아이들도 대학에 입학하고 성인이 되어서는 남자 친구를 만나고 결혼해서 잘 살고 있다고 한다. 그 시절, 그 감정 들을 솔직하게 밝힐 수 없었던 준희 또한 마찬가지다. 어느날 느닷없이 찾아온 인희를 보면서, 예전과 달라진게 전혀 없는 인희를 돌려보내고 나서 생각한다.

나는 과거에 머물러 있는 인희를 한심하다고 여겼다. 과거를 그리워하며 적응하지 못하는 그 애를 비웃었다. 그건 그저 유행이었다고, 그뿐이었다고 못박아 주고 싶었다. 여자 아이들 집단에서 너는 남자와 비슷하다는 이유로 인기를 얻었던 거라고 말이다. 나는 또 이렇게도 말해 주고 싶었다. 정신 차리라고, 현실을 직시하라고. 이제 우리 주변에는 진짜 남자들이 있으니 남자 흉내는 그만두라고. 아무리 흉내를 내려해도 진짜 남자를 따라갈 수는 없을 거라고. 너의 꼴은 우스꽝스럽고, 보는 것만으로도 부끄러워진다고. 158쪽

그때 나는 그것이 그 애 자신의 표현일 가능성에 대해서는 생각지 못했다. 나는 그 사실을 오랜 시간이 흘러서야, 아주 최근에 들어서야 깨달을 수 있게 되었다. 그때 난 짧은 머리와 힙합 바지를 자동적으로 남성에 대한 모방이라고 여겼다. 주머니에 손을 넣고 건들거리며 걷는 인희의 걸음걸이를 보고 남자를 흉내 내는 거라고 생각했다. 이른바 남성적이라고 말해지는 특성들이 당연히 남성들에게 속하는 거라고 여겼던 것이다. 여자들도 짧은 머리를 원할 수 있고, 그것이 ─ 당연히 ─ 그녀 자신의 표현일 수 있음을 깨닫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남자처럼 짧은 머리'라는 표현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알아차린 뒤로 세상이 달라 보이기 시작했다. 어쩌면 그것이 이 글을 쓰게 된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159쪽

이것은 준희가 살았던 작은 항구 도시에서만 유행했던 일이었을까?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즈음 여중, 여고에서 흔하게 일어나던 일이었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레즈비언이니 팬픽이니, 이런 용어만 쓰지 않았을 뿐이다.

우리도 여러 오빠들에게 미친듯이 열광했었고, 키 크고 숏커트 머리를 한 소녀들이 두루두루 인기가 많았었다. 바로 옆에 남중, 남고가 붙어 있었지만 남학생들을 만날 엄두를 내지 못했었다. 늘 높은 담벼락 안에 갇혀 있었고, 야간 자율학습이 끝나면 어느덧 버스 막차가 끝날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 시절 우리 모두가 준희였고, 인희였으며, 민지였을 것이다.

"우리 고등학교 때 말이야. 그건 다 뭐였을까?"

나는 인희의 시선을 피한 채 단호하게 말했다.

"그땐 다 미쳤었어." 150쪽

나는 남자들을 아주 좋아했다. 여자를 사랑한 적이 있다고 해서 나 자신이 동성애자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당시에도 마찬가지였다. 그것은 한때 어찌 어찌 일어난 일, 이제는 지나간 일로 여겨졌다. 나는 그때 일들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몰랐다. 그 일들이 새로운 세상에 맞지 않는다는 것만은 분명히 알았다. "난 남자를 너무 좋아해서 안 될 거야."라고 말하는 여자조차 한 여자에게 가장 커다란 사랑을 품을 수 있다는 사실은 그 새로운 세상에 맞지 않았다. 그래도 가끔 그때 일을 떠올리면 이상한 기분이 되었다. 분명 존재했으나 오래전 까마득히 깊은 바다 아래로 가라 앉아 버렸다는 대륙에 관해 생각해 볼 때처럼. 6년간 본 것들을 완전히 잊을 수는 없었다. 그 엄청났던, 소녀들의 사랑하려는 욕구. 153쪽

왜 누군가를 사랑하면 갑자기 주변 모든 사람들이 위협적일 만큼 매력적인 존재로 보이는지 모르겠다. 아름다움은 도처에 있다. 나를 제외한 모두가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어 나는 울고 싶어진다. 그들은 모두 아름답고, 모두 나의 적이다. 그들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둘러싸고 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그들의 매력을 알아볼 것만 같아서 나는 애가 탄다. 그들의 매력에 빠지지 않을 도리가 없어 보인다. 82쪽

언젠가 시골 외할머니를 보며 사람이 산골짜기 사이에서 태어나 밭에서 일하다가 그냥 그곳에서 삶을 마감할 수도 있다는 데 생각이 미쳤을 때 나는 충격을 받았다. 그러면 누가 그 사람을 기억해 주나? 9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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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도시의 사랑법
박상영 지음 / 창비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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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릿하고 쫄깃한 우럭의 맛. 어쩌면, 우주의 맛!

2019년 젊은 작가상 수상작인 「우럭 한점 우주의 맛」을 포함해 「재희」, 「대도시의 사랑법」, 「늦은 우기의 바캉스」 등 총 네 편의 연작소설이 실려 있는 박상영 작가의 두 번째 소설집이다.

네 편의 연작소설에는 닮은 듯 다른 듯한 화자, '영'이 등장한다. 현재 '영'은 30대 초반의 작가로 대도시 서울에 거주하고 있으며, 네 편의 연작소설 모두 그의 연애사를 다루고 있다.

스무살의 여름, '영'은 '재희'와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영'이 남자와 키스하고 있는 것을 「재희」에게 들켜버렸기 때문인데, 재희는 처음 본 순간부터 눈치채고 있었다고 한다. 그 덕분에 '영'과 재희는 동성 친구처럼 지냈고, 심지어 동거까지 하게 됐다. 나중에 재희의 예비 남편이 알게 됐지만, 결혼이 깨지지는 않았다. 아무튼 재희는 헤테로였으니까.

'영'은 군대에 가기 전에 연상의 공무원을 만났는데, 그 공무원의 성생활이 문란해 병을 얻게 된다. 그 때문에 6개월만에 의병 제대를 하게 됐지만 '영'은 자신의 병에게 '카일리'라는 애칭을 붙여준다. 약을 매일 챙겨 먹으면 괜찮다고는 하지만, 이 '카일리' 때문에 자유 연애를 하던 그의 행동에도 약간의 제약이 생겼다.

한때 그는 띠동갑의 편집자를 만난 적이 있었다. '영'은 그를 진짜 사랑했다고 말했다. 어머니가 투병 중일 때 만난 사람이었는데, 그는 독특한 철학을 가진 사람이었다. 「우럭 한점 우주의 맛」은 그가 들려준 이야기였다.

ㅡ 당신이 지금 먹고 있는 게 뭐라고 생각하세요?

ㅡ 광어죠. 아니, 우럭인가? 제가 사실 생선을 잘 구별 못해요. 그냥 비싼 건 다 맛있더라구요.

ㅡ 맞고 틀려요. 당신이 맛보고 있는 건 우럭, 그러나 그것은 비단 우럭의 맛이 아닙니다. 혀끝에 감도는 건 우주의 맛이기도 해요.

ㅡ 네? 그게 무슨 (개떡 같은) 말씀이신지……

ㅡ 우리가 먹는 우럭도, 우리 자신도 모두 우주의 일부잖아요. 그러니까 우주가 우주를 맛보는 과정인 거죠. 「우럭 한점 우주의 맛」, 105쪽

그 다음에 만난 '규호'에게는 '카일리'에 대한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 놓는다. 하지만 규호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고 했다. 당시 규호는 의대생인 형의 생활을 돌봐주며 '유설희 간호학원'에서 간호조무사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영'을 만나기 위해 인천에서 서울까지 그 먼 길을 오고갔다. 제주도가 고향인 규호는 육지, 그것도 '대도시'에서 살아보고 싶었다고, 그곳에서 사랑도 해보고 싶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사실 나, 네가 엄청 필요해 규호야…… 나는 자꾸만 흐려지는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며 서울로, 내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대도시로 향했다. 「대도시의 사랑법」 251쪽

이 책을 덮자마자 가장 먼저 '유설희 간호학원'을 검색해 봤다. "인천 하면 유설희지."라고 했던 규호의 목소리가 맴돌았기 때문인데, 인천 사람들은 다 안다는 그 곳이 실제로 존재하는 곳이었다니. 대구에서 태어난 작가가 어떻게 알았을까? 인천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던 것일까? 이런 쓸데없는 궁금증도 생겼다. 인천 하면 인천 앞바다에 뜬 사이다 아닌가.

규호를 떠나보낸 서른두살의 '영'은 10월 말, 「늦은 우기의 바캉스」를 가게 된다. 그곳은 1년 전 규호와 함께 왔던 곳으로, 규호와 함께 머물렀던 방에 채팅방에서 우연히 매칭된 한 외국 남자와 함께 묶는다. 그곳에서 규호를 떠올린다. 한때 자신에게 소원이었던 그 이름, '규호'를.

낯설다. 그들의 사랑이 낯설었던 건 아니다. 가장 최근에도 『항구의 사랑』을 통해 접했었으니까. 내가 낯설었던 것은 박상영 작가의 문장들이었다.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요즘에는 부쩍 읽는 나보다 작가들의 문장들이 더 젊다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2019년 젊은 작가상' 수상작이니 오죽할까.

더 낯설었던 건 강지희가 쓴 「해설:멜랑콜리 퀴어 지리학」이었다. 해설에 사용된 용어들을 보며, 이 이해할 수 없는 용어들만큼 동떨어진 사람이었다는 것을 느꼈다.

소설에서 규호의 공간이 '제주(섬)'에서 '인천'을 거쳐 '서울'로 그리고 '상해'로 점차 넓어지는 반면, 화자의 공간은 상대적으로 고정되어 있다는 것은 중요하다. 퀴어의 성적 자유는 '대도시' 속에서 더 자유롭게 탐색될 수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져왔지만, 유독 병리화되는 특정 질병과 연결된 퀴어에게 도시의 경계선은 더 강력한 제약과 통제로 작동한다. 그래서 결국 화자의 공간으로 남는 곳은 대도시 속의 공항이다. 상해로 넘어가지 못한 채 홀로 공항철도를 타고 돌아오는 그의 쓸쓸한 모습은 소설 서두에서 만료된 여권 때문에 일본 여행을 가지 못하고 홀로 돌아오던 모습과 겹쳐진다. 카일리를 가진 그에게 자유로운 이동이 보장될 수 없다는 사실은 그의 여권(시민권)이 언제나 반쪽짜리일 수밖에 없을 것임을 상기시킨다. 그리고 그 절반의 시민권이 지금 한국에서 퀴어 정치가 지닌 한계를 반영한다는 사실 역시 자명해 보인다. 「해설:멜랑콜리 퀴어 지리학」, 329~3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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