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최고의 날이 되십시오 - 미래를 여는 과학 편지
한범덕 지음 / 행복에너지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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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는 놀랍게도 현재 청주시민들을 위해 일선에서 헌신하고 계신 한범덕 시장이다. 또 하나 놀라운 것은 다루고 있는 주제가 과학이다. 게다가 글 솜씨도 가히 능준해서 구구절절 명문(名文)이다. 에세이라면 응당 갖추어야 할 백미 중 하나인 ‘진솔함’이 배여 있는 것은 물론이다. 그만큼 인간미도 넘쳐난다.

여기서 잠시 저자의 이력을 살펴보자. 저자는 청주 토박이다. 그는 청주시 남주동에서 태어나 청주에서 중·고등학교를 마쳤다. 이어 서울대에서 동양사학을 전공했고, 다시 청주대·충북대에서 행정학 석·박사 학위를 따냈다. 또한 행정고시(22회), 내무부, 대전시, 대통령 비서실, 충북 정무부지사, 행정자치부 제2차관 등 요직을 두루 거친 행정의 달인이기도 하다. 한 마디로 ‘이론’을 씨로, ‘실무’를 날로 겸비한 위무경문(緯武經文)의 모범이 아닐 수 없겠다.

이제, 저자가 바쁜 와중에도 이 글을 쓰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을지 자못 궁금해진다. 이에 대한 것은 다음 소회를 읽어보면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저는 조그마한 힘이라도 보태야겠다는 생각에서 공직에서 물러나 있던 지난 2009년 ‘미래과학연구원’이라는 재단을 설립하였습니다. 그리고 과학 분야 교수님과 선생님들을 주요회원으로 하여 지역사회 과학교육증진, 과학인구 저변확대, 생활과학 진흥 등을 도모하는 일들을 하였습니다. 이 책에 담긴 글들은 그때 관심을 주셨던 분들에게 전하던 과학에 대한 단상(斷想)을 정리한 것입니다. - 7쪽

이렇게 설립된 ‘미래과학연구원’은 물론 청주에 있다. 이로 미루어 보건대 저자는 경력의 숨을 잠시 고르던 시절에도 한결같이 고향의 발전을 위해 봉사해 온 것이 아니었을까? 이보다 앞서 그는 오송국제바이오엑스포 사무총장(2002)과 충북 바이오산업추진단장(2003)을 역임한 바 있다.

책을 읽다보면 저자의 ‘단상’이 실은 인생과 과학에 관한 깊은 통찰과 혜안에서 나온 것임을 알게 된다. 그 내용도 과학의 미래, 소립자와 우주, 일상 속의 과학, 화장실과 손 씻기 등 위생 과학, 노벨상을 바라보는 젊은 과학자 12인 등 다루고 있는 꼭지도 다양하다. 그렇다고 따분하지 않다. 이야기의 보따리를 풀어내는 방식이 저자 자신의 삶과 체험 속에서 우러나온 일화를 진솔하게 드러내기 때문이다.

 

가령 ‘고등어’라는 절(節)을 보면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


저자가 신혼 초 때의 일이었다. 자신은 유달리 고등어를 좋아했지만 장모님이 워낙 비린내를 싫어하여 처가에서는 고등어를 전혀 먹을 수 없었다. 그래서 한번은 몰래 통조림을 사다가 도둑고양이처럼 먹다가 들키는 바람에 면구스러운 일이 생겼다는 것이다. -115쪽 요약

 

그 다음에는 무슨 내용이 이어질까? 바로 지구 온난화다. 고등어와 오징어는 대표적인 난류성 어족이다. 저자가 접한 2007년 자료에 의하면, 당시 고등어와 오징어의 어획고가 전년도에 비해 각각 385%, 292% 늘어났다는 것이다. 대신 한류성 어족인 명태는 어떤가? 1980년대 초 무려 연간 13만t이나 잡히던 것이 점점 줄어들어 2006년에는 6t이었다고 한다. 충북대 김학용 교수의 말을 인용해 우리나라 연평균기온이 2℃만 올라가도 대표수종인 소나무가 멸종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한편 두 살 아래 동생이 포병으로 복무 중 불발탄 폭발사고로 산화한 이야기, 대장암 판정을 받고 완치된 사연, 백내장 수술을 받은 이야기, 나이 마흔에 늦둥이 딸을 얻은 심정 등등 인간 한범덕을 살갑게 접할 수 있는 은밀한(?) 일화도 깨알같이 박혀 있다.

저자는 내용의 전문성에 대해서도 세심하게 살핀다. 가령 ‘수타면’ 절을 보면, 밀가루에 알카리성 물을 넣으면 밀가루 속 단백질 ‘글루텐’에 특이한 변성을 일으키면서 반죽의 점성과 신축성을 높아진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해서 열네 번 잡아당겨 1만 6384가닥의 면발을 지닌 ‘롱쉬몐'이 탄생했다는 것.

또한 스마트폰 등에 많이 활용되는 ’블루투스(Bluetooth)‘는 억지로(?) 직역하면 ’푸른 이빨‘이 되겠지만, 원래는 10세기 덴마크 왕의 이름에서 따왔다고 한다. 1994년 에릭슨에서 개인근거리무선통신(PANs)을 개발하면서 이 이름을 붙였다. 이외에도 디스플레이와 관련하여 LCD, PDP, LED에 대한 구분도 쉽게 설명해 놓았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이 책의 압권은 한국연구재단에서 선정한 노벨상을 바라보는 젊은 과학자 12인이다. 이에 관한 것은 2009년에 단행본《노벨상을 꿈꾸는 과학자들의 비밀노트》으로 출간되기도 했다.

저자는 청소년이나 예비 과학도들이 이 책을 통해 미래를 주도할 신기술의 트렌드를 파악하고, 과학 특히 기초과학에 헌신할 수 있는 사명감을 키우기를 요망한다. 그런 맥락에서 자랑스런 12인의 우리 과학자들은 훌륭한 롤 모델이 되지 않을까?

아래에 본문에서 소개된 순서로 12인의 과학자들을 정리해 보았다.

이광희 교수 (광주과학기술원 신소재공학과) - 57쪽
이상훈 교수 (서울대학교 뇌인지과학과) - 60쪽
이영무 교수 (한양대학교 응용화공생명공학부) - 64쪽
김기문 교수 (포항공과대학교 화학과) - 95쪽
최정규 교수 (경북대학교 경제통상학부) - 208쪽
정종경 교수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 - 227쪽
이지오 교수 (KAIST 화학과) - 230쪽
홍성철 교수 (서울대학교 생물물리 및 화학생물학과) - 237쪽
김외련 교수 (경상대학교 응용생명과학부) - 243쪽
강봉균 교수 (서울대학교 뇌인지과학과) - 247쪽
오정미 교수 (서울대학교 약학과) - 251쪽
김관묵 교수 (이화여자대학교 분자생명과학부) - 255쪽

이제, 이 책을 자양분 삼아 우리 모두 “오늘도 최고의 날”이 되도록 힘껏 뛰어보자. 과학 혁명은 아직도 왕성하게 진화 중이요, 우리가 열정을 펼칠 신천지는 무한히 열려 있다!

*아쉬운 점이 하나 있다면 꼭지별로 일자를 명시하거나, 기고한 출처를 밝혔더라면 내용을 이해하는데 더 좋았을 것이다. 사족 하나. 에필로그에 언급된 ‘후생유전학’(262쪽)의 경우 지금은 ‘후성유전학’으로 바꿔 부른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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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4
나쓰메 소세키 지음, 노재명 옮김 / 현암사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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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로 말하자면 《태풍》은 나쓰메 소세키의 지론(持論)을 토로하는 격전장이다. 이 소설이 발표된 때가 1907년이라고 하니, 러일 전쟁의 승리로 일본 제국은 한껏 동양 제일을 넘어 세상 제일이라는 욱일승천의 기세로 등등하였을 것이다.

여기에는 메이지 시대의 신법(新法)에 대한 성공의 자부심도 대단했을 터. 막부의 구 시대를 마감하고 새 시대를 연 메이지 시대는 수많은 수재들을 영국 등 선진국으로 보내 신학문을 배우게 했다. 그들이 돌아와 그들이 배운 격물의 이치로 서양의 호랑이 러시아를 때려잡았으니 어디 그러지 않을 수 있을까? 그것도 신식 화포로 맞서서 말이다.

국비로 영국 유학을 다녀온 소세키 역시 한껏 고양되었을 것이다. 이 소설에는 그런 기운이 가득 넘쳐난다. 이른바 소세키식의 계몽론이 득세한다.

이 소설에는 메이지 시대 당시를 대표하는 인물 유형이 등장한다. 시라이 도야를 중심으로 하는 계몽주의와 지사적 관점이 한 축이고, 나카노 슌타이가 대변하는 신흥 유한계급의 전형이 또다른 축이다. 이 사이에 낀 다카야나기 슈사쿠는 햄릿형 인간의 유형을 보여준다.

소세키는 도야를 통해 자신의 지론을 맘껏 펼쳐 보인다. 아마도 눈이 팽팽 돌아갈 정도로 세상이 급변하는 당시, 소세키 자신도 나름대로 중심을 세우고 싶었을 것이다. 그것이 따분하긴 하지만 위엄을 잃지 않는 지사론(志士論)이다.

도야는 세상이 자신을 인정해 주지 않는 것은 학문의 본체에 근거지를 둔 데서 나온 고매한 결과라고 자부한다. 그는 인격 면에서는 세속 사람들보다 자신이 높은 경지에 있다고 자신한다. 돈도 권력도 없는, 그런 그는 천하의 선비로서 부끄럽지 않게 과업을 이루고자 붓의 힘에 의지하고 싶어 한다. 돈에 쪼들리는 빈궁함 속에서도 실업가 형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기를 꺼려하고, 팔리지 않을 《인격론》을 집필하는데 매달린다.

소설의 전개는 도야와 나카노-다카야나기(둘은 친구 사이로 같이 등장) 이야기가 교대로 이어진다. 다카야나기가 도야를 만난 것은 그가 고쿄 잡지에 실린 도야의 ‘해탈과 구애’를 읽고 감회를 나누기 위해서다. 소설적 전개로는 중반(전체 12장 중 6장)에서다.

다카야나기의 입장을 이해하는 것은 소설을 제대로 소화하는데 있어 매우 중요하다. 소설의 대미는 다카야나기가 도야의 《인격론》을 백 엔에 구입하는 장면에서 끝난다. 사실 다카야나기와 도야는 소설 맨 처음에서 첫 조우했는데, 이 사실은 다음과 같은 절규에서 알 수 있다.

“아니, 잘못 했습니다. 이 원고를 꼭 제게 넘기십시오. 선생님! 저는, 선생님의 제자였습니다. 에치고의 다카다에서 선생님을 괴롭혀서 쫓아냈던 제자 중의 한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넘겨주십시오.” - 206쪽

세상은 뫼비우스의 띠 처럼 돌고 도는 법이다. 원래 다카야나기가 갖고 있던 백 엔은 나카노가 준 것이다. 다카야나기는 요양을 떠날 요량이었는데, 요긴한 곳에 쓰라고 나카노가 준 것. 결국 다카야나기는 도야의 《인격론》을 사는 데 투자한다. 도야는 궁핍한 생활에 보태 쓰려고 퉁방울이라는 사람에게서 백 엔을 빌렸다가 빛 독촉에 시달리며 무안을 당하고 있던 참이었다. 극적인 반전인 셈이다.

 

▲《태풍》이 들어 있는 책의 표지(1908)

 

소세키는 무엇을 의도했을까? 결국 소설 속에서 다카야나기는 도야의 고매한 인격을 선택했다. 유한계급 나카노에게서 흘러나온 돈이 다카야나기의 인격을 변모시키는 매개가 되었다는 것은, 아무리 물질 문명이 발달하더라도 사람의 품위를 세워주는 인격, 나아가 일본의 정신을 고양시키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이렇듯 에치고에서 못된 학생이었던 다카야나기가 도야와의 만남을 통해 정화되는 과정은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모티브다. 결국 소세키는 인간을 고치는 것(즉 개조)이 가능하고, 그것은 고매한 인격의 감화를 통해 올바른 인성을 회복하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결국 처량하게 전당포에 들락거리고, 아내의 등쌀에 시달리면서도 도야의 인격론은 멋지게 승리를 거둔 셈이다.

그런데 소설 제목이 왜 ‘태풍’인가? 이의 단초를 얻을 수 있는 신체시(新體詩) 한 편이 본문에 소개되어 있다.

 

흰 나비, 흰 꽃에
조그만 나비, 조그만 꽃에
  흩어져 있네, 흩어져 있네
기나긴 근심은, 긴 머리카락에
어두운 근심은, 검은 머리카락에
  흩어져 있네, 흩어져 있네
부질없이, 부는 태풍
부질없이, 사는가 속세에
흰 나비도 검은 머리카락도
  흩어져 있네, 흩어져 있네  - 109쪽

 

아, 부질없이 부는 태풍에 속절없이 흔들리는 우리의 인생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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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을 체포하라 - 14인 사건을 통해 보는 18세기 파리의 의사소통망
로버트 단턴 지음, 김지혜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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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로버트 단턴은 1939년 미국 뉴욕 출생이다. 그는 하버드 대학과 옥스퍼드 대학에서 공부하였다. 1964년 1년간 「뉴욕 타임스」 기자로 근무한 뒤, 1965년부터 하버드 대학에서 교수생활을 시작했다. 1968년부터 프린스턴 대학에서 유럽사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그는 ‘책의 사가(史家)’로 유명하다.

내 생각에 그는 역사서를 치밀하게 고증하는 유별난 특기를 지니고 있는 것이 틀림없겠다. 특히 18세기 프랑스 역사를 꼼꼼하게 살펴 본 《고양이 대학살》과 《시인을 체포하라》가 그러했는데, 이 두 권의 책은 내게 신선한 재미를 선사해 주었다.

먼저 고양이 대학살을 보자. 이 일화는 단턴이 쓴 《고양이 대학살》(원제 The Great Cat Massacre and Other Episodes in French Cultural History, 1984)에 소개된 여섯 일화 중에서 두 번째로 소개되어 있다. 요즘같이 고양이를 반려 동물로 존중하는 시대에는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1730년대 파리로 돌아가 보면 꼭 그렇지 않았다. 이 사건의 배경은 생 세브랭 가에 몰려 있는 인쇄소 골목이었다. 당시 견습 인쇄공들은 사람 이하의 취급을 받은 모양이었다. 그들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


“더럽고 추운 방에서 잤고 동이 트기 전에 일어나 하루 종일 직인들에게 모욕을 받고 주인에게 학대를 받으면서 일했으면서도 먹을 것이라고는 찌꺼기밖에 받지 못했다.“ - 112쪽

 

그 와중에 니콜라 콩타라는 견습공은 마침내 분노를 폭발시키게 된다. 당시 자신이 일하고 있던 인쇄소의 안주인은 고양이에 열광해서 애지중지하면서 ‘초상화를 그리게 시켰고, 구운 새고기를 먹일 정도’였다. 게다가 도둑고양이들은 자신이 먹을 것을 훔쳐 먹기도 하고, 밤이면 콩타가 자던 거처 지붕 위에서 온밤을 울어대 잠을 설치게 만들었다. 왜 아니겠는가, 나라도 열받겠다! 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 당시 관습을 이해하고 넘어가야 한다. 고양이는 마녀의 화신이라고 여겨졌다는 점이다. 에드거 앨런 포의 작품에도 등장하듯이, 검은고양이는 ‘흉조(凶兆)’라고 여겨져 특히 그러했다.

 

마침내 콩타는 작전을 꾸민다. 그는 동료와 함께 주인 부부가 거처하는 곳에 올라가 고양이 울음 소리를 흉내 내면서 주인들을 노이로제에 빠지게 만든다. 마침내 도둑고양이 소탕령이 내려지고, 그들은 빗자루, 철봉 등으로 눈에 띄는 모든 고양이를 학살하기 시작했다. 안주인이 애지중지하던 고양이가 먼저 당한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이렇듯 '고양이 대학살'의 진상은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던 노동자들의 울분이 고양이를 통해 표출된 것이다. 단턴은 이를 부르조아에 대한 프롤레타리아의 저항으로 살짝 언급하면서도 독자들에게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의 전조로서 보다는 하나의 사회적 맥락으로 이해해 주기를 바란다.

 

이러한 시각은 《시인을 체포하라》(원제 Poetry and the Police, 2010)에서도 이어진다.  '시인(詩人)' 사건이 발생한 것은 루이 15세 시절, 왕이 1749년 쟝 모르파 백작을 유배시킨 이후 왕을 비난하는 시가 공공연히 나돌기 시작하면서였다. 절대 권력은 항상 불안하다. 자신의 지위를 넘보거나 위협하는 세력은 그냥 놔두지 않는다.

그렇다고 어디 잠잠해지는가?  반대파나 그 지지자들은 나름의 레지스탕스를 시작하는 법이다. 왕은 시인을 체포하라고 명령한다. 1749년 7월 4일 밀고에 의해 의학생 프랑수아 보니가 맨 처음 체포된다. 이어 보니는 취조를 받으면서 지레 겁을 먹고 '불온한 시'를 건네준 자의 이름을 불게 된다. 이렇게 해서 줄줄이 14인의 ‘시인’이 체포된다. 이른바 ‘14인 사건’이다.

여기서 시를 짓거나 유포한 사람들이 14인에 그쳤을까 하는 의문은 중요하지 않다. 당연하게도 당시 성직자나 지식인 사이에는 왕조에 대한 반항적인 태도가 만연했기에, 시의 원출처에 이르기는 거의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저자가 ‘14인 사건’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려 한 것은 무엇일까? 그는 서문에서 《시인을 체포하라》를 집필한 동기 중의 하나로 당시 파리의 거리 곳곳을 누비면서 당시 여론에 대해 추적해 보려한다고 고백한다. 여론 혹은 물자체는 우리의 이해를 벗어나는 것이기에 그 시대의 매체를 통해 어떤 메시지를 추적하려 한다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 이런 저자의 입장은 푸코든 하버마스든 개념적 문제와 상관없이 사실 자체에 대한 상세 묘사를 통해 으레 품평하기 좋아하는 독자들에게 그 판결의 묘미를 넘겨주는 세련된 솜씨가 아닐 수 없다.

저자는 말미에 ‘14인 사건’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하고 있다.

"인터넷이 존재하기 훨씬 전, 정보가 입으로 전달되고 평범한 사람들 사이에서 시가 아주 효과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던 시절에 정보 사회가 작용했던 방식을 드러내 보여주었다." - 162쪽

에드워드 카(E. H. Carr)는 일찍이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통해 '역사란 역사가와 그의 사실들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의 과정,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설파한 바 있다. 이런 맥락에서 저자의 일련의 작업들은 근대사의 숨겨진 비사(秘史)를 통해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세상사의 오묘한 조화라든가 처세의 지혜를 제공한다.

나는 이책을 읽고 SNS 등 다양한 소통 수단이 발달한 요즘, 18세기 프랑스 시대에 절대권력의 ‘불통’에 맞서 어떻게 지식인이나 서민들이 이를 희화하고 풍자해서 자신들의 언로(言路)를 만들어나갔는지 잘 엿볼 수 있었다. 으레 ‘불통’의 시대는 희생양을 필요로 해 왔다. 그게 고양이든 시인이든 무슨 상관있으랴!

불통의 사회, 왜곡된 담론의 시대에는 유비통신이 곳곳에 넘쳐나기 마련이다. 이를 루이 15세 식으로 틀어막는다? 아마도 시간이 흐른 즈음 또 누군가에 의해 서술되고, 그 독자들은 이를 읽으면서 한껏 키득거릴 것이다. 오호 통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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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7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김영하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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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미국은 그야말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질주하고 있었다. 제1차 세계 대전의 여파로 그간 역사의 패권을 차지하고 있는 유럽의 위세가 미국에게 넘어가던 시기이기도 했다.

거의 모든 국부(國富)를 전비에 쏟아야 했던 유럽과는 달리 미국의 경제는 날개달린 쿠페 처럼 폭주했다. 자동차의 시대였고, 증권거래소가 넘쳐 났으며, 재즈 열풍이 불었다. 한편으로 1920년부터 시행된 금주법으로 탈법, 암거래와 갱단이 넘쳐났다. 휘황찬란하고 화려했던 상류층, 그리고 고달프고 질곡된 빈민층의 삶이 공존하는 시대. 그때가 그랬다.

이 시기에《위대한 개츠비》는 태어났다. 피츠제럴드가 이 작품을 발표한 때가 1925년이었으니 꼭 중간 무렵이다. 작가의 눈은 예리했다. 그의 필체는 당대와 시대적 모순을 가감없이 들춰내 버렸다.

어쩌면 데이지는 우리가 쫓는 꿈인지 모른다. 전쟁이 한창이던 무렵 그녀는 열여덟 꽃다운 청춘이었다. 그녀에게 반한 제이 개츠비는 그녀를 갖기 위해 자신의 질풍노도와도 같은 서막을 시작한다. 인연은 잠시 엇박자를 맞아 데이지는 톰 뷰캐넌을 만난다. 자신과 교류할 수 있는 동급을 만났으니, 유례가 없을 정도로 화려하고 당당한 결혼식을 올린다. 뷰캐넌은 자동차 네 대에 백 여 명을 이끌고 와서 호텔 한 층 전체를 빌리고, 결혼 전날 데이지에게 삼십오만 달러짜리 진주 목걸이를 선물한다. 하지만 톰에게 그녀는 단지 갖고 싶은 하나의 꽃이었을 뿐이다. 신혼여행에서 갓 돌아온 톰은 호텔 객실담당 메이드와 차를 타고 가다가 사고를 당한다. 게다가 머틀(윌슨 부인)과의 불륜은 모두의 파국을 초래하게 될 지경이었으니…

이야기는 닉 캐러웨이라는 ‘나’가 이끌어간다. ‘나’는 데이지와 개츠비를 잇는 매개이기도 하고, 데이지와 개츠비의 실체를 독자에게 여과없이 들려주는 제삼자가 되기도 한다.

처음에 ‘나’는 데이지 부부가 프랑스에서 일 년을 보낸 이유에 대해 딱히 알 길이 없었다. 그저 뚜렷한 이유도 없이, 으레 부자들이 그러하듯 그들도 폴로를 좇아 이리저리 떠돌아다닌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중반께 이르러 데이지 부부가 프랑스로 떠난 이유는 톰의 불륜 때문이었다. 소설은 현재와 과거가 절묘하게 교차하며 전개된다. 현재 시점은 주로 ‘나’에 의해, 그리고 과거 시점은 개츠비의 회고에 의해 주도된다. 내가 보기에 이런 구도는 피츠제럴드가 자신이 진정으로 말하고 싶어 했던 것이 무엇인지 잘 드러내주기 때문이리라.

개츠비는 데이지를 너무나 오랫동안 꿈꾸고 숨막힐 정도로 이를 악물로 기다려왔다. 하지만 주인공 닉에게는 그것이 지나치게 생생한 환상으로 보였다. 데이지의 실체를 알기에 과연 그녀가 개츠비의 광신적인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는 것일까 하고.

데이지가 운전하던 노란색 쿠페가 톰의 불륜 상대 윌슨 부인을 치인다. 이 때 데이지 옆에 타고 있던 개츠비는 자신이 운전대를 잡고 있었노라고 거짓 증언이라도 해서 데이지를 보호하려 한다. 그러나 운명은 비극으로 끝나고 만다.

결국 휘황찬란하고 눈부신 파티는 거대하고 부조리한 몰락으로 끝을 맺었다. 개츠비의 꿈은 거의 실현된 것처럼 보였다. 자신이 이룬 부(富)와 가까이하게 된 연인 데이지와의 조우를 통해서 말이다. 하지만 결국 그 꿈은 어둠 아래 굽이치는 도시 너머 한 켠 어딘가에 도사리고 있는 우리의 현실 속에 또아리를 틀고 있을 수 있다.

 

‘나’는 서른을 맞은 즈음 읊조린다. 불길하고 위협적인 또 다른 십년이 기다리는 여정…. 미국은 광기어린 20년대를 보내다가 대공황 이후 전혀 성질이 다른 극심한 불황의 30년대를 맞이했다. 이것이 인생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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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태인의 비즈니스는 침대에서 시작된다]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유대인의 비즈니스는 침대에서 시작된다 - 1% 부자들의 탈무드 실천법
테시마 유로 지음, 한양심 옮김 / 가디언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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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그들을 부자로 만들었는가?
세계 인구의 0.25%에 불과하지만, 노벨상 수상자의 20%를 차지하고, 전 세계 억만장자 상위 400명 중에 15%를 차지하는 유대인들…

세계적으로 명성 있는 인물과 대부호를 많이 배출한 유대인은 과연 다른 민족에 비해 천부적으로 우수한 것일까?

저자는 위의 질문에 자신만의 해법을 찾아 나간다. 저자의 입장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유대인을 거의 모든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나게 한 것일까?

유대인은 무기를 만드는 일에 앞서 학문의 길을 닦았다. 학문이 없는 곳엔 아무리 훌륭한 창칼이 있어도 그것은 녹슨 고철과 다름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토라』(Torah, 모세 5경)와 『탈무드』(Talmud)를 학습하는 것이 그것이다.(9~10쪽)

 특히 유대 민족 지혜의 소산인 탈무드는 수천 년 동안 세계 각지에 흩어져 수난의 역사를 통과해야 했던 유대 민족을 이끌어주는 공동의 윤리 지침서 역할을 했다. 그렇기에 그들은 흩어져 살아도 민족적 자부심과 전통을 잃지 않고 서로 도우며 큰 성공을 일궈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저자 테시마 유로는 고향이 한국 부산이다. 1942년생이니 올해 일흔이 훌쩍 넘었겠다. 그간 저술 활동도 왕성해서 국내에 소개된 유로의 책이 제법 된다. 주제는 주로 탈무드의 지혜와 유대 민족의 우수성에 대한 것들이다. 이번 책은 탈무드 중에서 ‘돈의 철학’에 관한 것.


돈은 모든 문을 열어주는 황금열쇠이다!
저자는 탈무드에는 유독 ‘돈’에 대한 현세 철학이 많다고 언급한다. 유대인에게 있어 돈을 번다는 것은 다른 민족들처럼 단순히 의·식·주의 생활을 영위하고 사치를 위한 수단으로서가 아닌,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필수불가결한 요소였을지도 모른다. 나라가 없으니 돈이라도 있어야 자신들의 존재를 드러낼 수 있지 않겠는가 말이다.

유로는 독자에게 탈무드에 담긴 유대인의 지혜를 배워 자신의 삶을 보다 풍유롭게 만들어 줄 한층 강화된 사고력과 정신력을 함양할 것을 조언한다. 우리가 논어를 읽어 처세의 지혜를 얻듯이 유대인들의 탈무드를 통해 유대인의 성공 비결을 배워보는 것은 인문학적 소양도 얻을 겸 더없이 유익한 일이 아닐까 싶다.

책은 5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아래 타이틀에서 보듯 저자는 탈무드에서 ‘돈의 철학’을 간추려 ‘탈무드 실천법’ 32가지를 흥미로운 사례와 교훈을 안겨주는 우화를 덧붙여 제시한다.

 

제1장 부자의 줄에 서라.
제2장 비즈니스는 넓게, 얕게, 많이
제3장 신용은 최고의 화폐
제4장 치밀한 계약이 이익을 보장한다
제5장 지혜는 마르지 않는 금고


각 장 말미에는 ‘머리맡에 두고 읽는 탈무드 지혜’와 ‘유대인의 철학’같은 금과옥조가 덧붙여져 있는데, 이게 참 별미다. ^^

여기서 잠시 책 제목을 언급하고 넘어가자. 제목이 “유대인의 비즈니스는 침대에서 시작된다”다. 언뜻 보면 미인계를 써서 상대방을 성적으로 홀리는 은밀한 거래를 말하는 것이라고 의심할 수 있다. 물론 당연히 아니다. 그렇다면?

유대인들은 태어나자마자 탈무드를 쓰고 배우며 익힌다고 한다. 이쯤 되면 부모나 조부모는 그 아이나 손자에게 침대 머리맡에서 탈무드를 읽어 주었을 거라고 쉽게 상상할 수 있다. 또는 침대 머리맡에 탈무드를 두고 언제든 꺼내 읽었을 것이다(‘머리맡에 두고 읽는 탈무드 지혜’가 힌트가 될 것이다). 그러니 유대인의 지혜는 침대에서 시작되는 셈이고, 이 책은 게 중에서도 ‘돈의 철학’, 즉 비즈니스에 관한 것이다.

위기가 없을 때 위기상황을 대비한다
이 책에는 삶의 처세술에 대한 것도 꽤나 다루지만, 단연 사업 계약, 소유권, 거래 등 책의 제목에 충실히 따르는 사례들이 훨씬 많다. 특히 내가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들의 유비무환을 위한 자세다.

요즘 전북 지역을 중심으로 조류독감 H5N8이 유행하고 있다. 저자는 이러한 비상사태 발생에 대비하여 종합적이고 포괄적인 사전 책을 철저하게 세워두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한편 컨설팅 회사 ICTS (International Consultation in Targeted Security)는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 출신에 의해 혹은 그 위기관리 비결을 전문적으로 자문한다고 한다. 저자는 ICTS식으로 구체적인 위기관리 대응요령을 언급한다. 우리에게도 좋은 참고가 되지 않을까 싶어 여기 옮겨 본다.

 

첫째, 일어날 수 있는 위험을 철저히 예측하고 분석한다.
둘째, 현재의 인원·자료·위치·교통·운수·창고·비축 등을 정확히 파악한다.
셋째, 대체 시스템을 점검한다.
넷째, 긴급 사태를 대비한 조기 회복 시스템을 고안한다.
다섯째, 긴급 상황에서의 비용을 분석하고 예측해본다.
여섯째, 위기관리 매뉴얼을 작성한다.
일곱째, 교육 훈련을 실시한다.
여덟째, 수시로 위기 대응 시스템을 개선한다.


혹여 싱겁다고 실망하지 마시라. 이런 ‘기본’이 안돼 낭패 본 일이 어디 한둘인가. 저자는 우리가 십계명을 지키듯 위의 기본적인 원칙을 제대로 실행하자고 조언한다.

최근 이스라엘과의 교류가 늘면서 이와 관련된 서적도 소개가 많이 되고 있다. 창성으로 승부하는 IT와 R&D 강국의 면모를 보여주는 것도 있는가 하면 이처럼 마르지 않은 지혜의 샘, 탈무드에 대한 이야기도 빠지지 않는다. 때로는 유대 민족은 그들만의 선민 사상에 매몰되어 팔레스타인과 아랍 민족에 냉혹할 정도로 이기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일찍이 셰익스피어가 샤일록이라는 유대인을 잔인한 고리대금업자의 전형으로 창조한 것도 당시 유대인들이 돈에 대한 집착이 얼마나 치밀했는지 잘 보여준다. 아울러 이는 유럽 사람들이 유대인에게 갖고 있던 감정도 어떠했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잠시, 이 글을 읽는 분들께 재미로운 숙제 하나를 드리고 마치겠다.

만약 한 사람이 “이것은 전부 내 것이다”라고 말하고 또 한 사람은 “이것의 절반은 내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탈무드(미쉬나)에서는 “이것은 전부 내 것이다”리고 말한 자는 그 물건의 4분의 3을, “이것의 절반은 내 것이다”라고 주장한 자는 그 물건의 4분의 1을 사는 것으로 한다고 가르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정답은 본문 190쪽에 나와 있다.

비록 현세에 유대 민족이 미국의 지원과 핵으로 무장하여 자신들의 생존을 갈구하고 있지만, 대승적인 공존의 미덕을 배우지 못한다면 1세기경 로마에게 멸망당해 세상천지로 뿔뿔이 흩어져 떠돌았던 비극의 역사는 다시 반복될 수 있다. 그러기에 탈무드는 ‘돈의 철학’에 앞서 ‘공존의 철학’이 되어야 하고, ‘상생의 지혜’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탈무드에서 “부자가 되기를 원한다면 베풀어라.”라고 했듯, 아랍과 공존하기를 원한다면 베풀어 달라, 제발!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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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코머핀 2014-01-23 1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확인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