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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어 있는 중심 - 미완의 시학
김정란 지음 / 최측의농간 / 2017년 9월
평점 :
시인· 문학평론가 김정란 교수의 첫 평론집 《비어 있는 중심》이 복간됐다. 이 책은 원래 1993년 출간되었으나, 그동안 절판된 상태였다. 최측의 농간에서 저자와 협의를 거쳐 일부 수정·보완해서 다시 펴냈다.
시인은 책 이름, ‘비어 있는 중심’의 의미를 찾아 나선다. 산스크리트어로 원(圓)이라는 뜻을 지닌 만달라는 수련자가 자신의 진정한 중심을 찾기 위해 사용되는 일종의 명상 수단이다. C. G. 융에 따르면 보통 만달라의 중심이 어떤 신성한 존재로 채워져 있지만, 현대인들의 내면에 깃든 만달라 중심은 텅 비어 있다. 왜냐하면 현대인들은 진정한 영적 중심과의 접촉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나는 시인으로 태어났고 시인으로 살았으며 시인으로 세상을 떠날 것이다. 그것이 내 운명이다. 처음에 ‘문학비평’이라고 분류될 수 있는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나에게 ‘문학비평가’라는 자의식은 없었다. 나는 단 한 번도 문학비평가로서 사유해 본 적이 없다. 그제나 저제나 나는 시인이다. 따라서 이 책에 쓰인 모든 글들은 시인의 정체성을 가지고 쓴 글들이다.” - 2판 서문에서
테트락티스. 이 말은 고대 피타고라스학파가 신성시했던 열 개의 점으로 이뤄진 삼각형을 뜻한다. 피타고라스는 10을 완전수라고 믿었다. 테트락티스는 신의 상징이었고, 조화 그 자체였다.
융이 말한 비어 있는 중심은 가운뎃점 하나가 더해져 비로소 완전하고 충만해진다. 시인에게 테트락티스는 우리 의식이 물질계에서 벗어나 신의 경지에 이를 수 있는 만달라다.
시인은 우리가 비어 있는 자들임을 인정하자고 다독인다. 우리가 오만하게 지배했던 자연에게 온당한 자리를 돌려주고, 새로운 형이상학으로 채우자고 말한다. 비어 있는 중심이 타락하고 세속에 물들지 않도록 다스리고 길들여 찬란한 천사의 위치로 끌어올려야 한다는 것. 그래야 인간의 내면에 깃든 선이 가장 고상한 영역에 이를 수 있다.
바로 이 시점에서 시인은 독자에게 시와 소설을 들려주고 비평한다. 시인은 이성복·정현종·송찬호·김승희·오규원 등의 시와 조세희·미셸 투르니에·헤르만 헤세의 소설 등을 분석한다. 신화와 신비주의, 오컬트 담론 등을 적절히 활용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