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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이 백 - 갑질로 어긋난 삶의 궤도를 바로잡다
박창진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9년 2월
평점 :
품절
저자 박창진 대한항공 전 사무장
‘땅콩 회항’ 사건은 2014년 12월 5일 미국 뉴욕 JFK공항에서 대한항공 여객기가 기내 출입문을 닫고 이륙을 준비하던 중에 조현아 대한항공 부사장이 비행기를 되돌려 박창진 사무장을 내리게 한 것이다.
당시 조 부사장은 땅콩 제공서비스를 문제 삼아 책임자(객실 사무장)였던 저자에게 폭력적 언행과 함께 비행기에서 내리도록 지시해 사회적으로 ‘갑질 논란’이 크게 일었다.
땅콩 회항 사건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조 전 부사장은 법정 구속돼 1심에서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가 항소심에서 징역형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박 전 사무장은 업무상 재해를 인정받아 휴직했다가 2016년 5월 복직하는 과정에서 일반 승무원으로 강등돼 인사상 불이익을 당했다며 조 전 부사장과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작년 12월 법원은 1심에서 대한항공이 박 전 사무장에게 2천 만원을 배상하라는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이 사건은 저자의 삶을 통째로 바꾸어버렸다. 땅콩 회항 사건은 그에게 열심히 회사를 위해 일해 왔건만, 창업주와 가족들은 그를 회사의 부속품으로 생각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다.
제목 ‘플라이 백(Fly Back)’은 ‘회항’을 일컫는 말이다. 또한 저자의 헝클어진 삶을 바로 세우고 자존감을 복원한다는 은유적 의미도 담고 있다.
누구나 뜻하지 않게 삶의 궤도에서 어긋나는 순간이 있다. 하지만 그대로 주저앉을지, 어긋한 항로를 바로잡아 정상 궤도로 되돌아올지는 개인의 의지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고 믿는다. 플라이 백Fly Back. 비행기를 되돌리는 ‘회항’을 일컫는 용어다. 이제 막 출발한 비행기에서 강제로 내려야 했던 그날을 의미하는 동시에 그럼에도 내 삶을 되찾기 위해 다시 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이 책은 한 번 뒤틀린 삶을 정상 궤도로 되돌리기 위한 내 비행飛行의 기록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내 삶의 주체성을 찾고자 열심히 플라이 백 중이다.
땅콩 한 알이 결코 한 사람의 인권과 맞먹을 수 없다.
박창진 전 사무장. 그는 경남 거제에서 태어나 자랐고 부산 동아대학교를 졸업했다. 어릴 적부터 선원이었던 아버지가 외국에서 보내온 엽서를 보며 먼 나라를 동경해오다 항공사 모집 공고에 매료돼 1996년 12월 9일 대한항공에 객실 승무원으로 입사했다. 입사 후 그는 능력을 인정받아 VIP 담당 승무원과 회사 홍보 모델로 활동하는 등 한동안 탄탄대로의 이력을 쌓았다. 2005년 사무장을 거쳐 2010년 객실 전체를 책임지는 팀장이 되었다.
세상의 이목을 받는 가운데 회사가 노골적인 핍박을 가해오자 그는 한동안 마음 둘 곳을 찾지 못해 방황의 나날을 보냈다. 이후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는 내면의 목소리와 마주하면서 노동자의 권리와 개인의 정체성을 되찾게 되었다.
저자는 나름 회사에서 인정받고 있다고 여기고 절대로 내게는 땅콩 회항 사건 같은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기에 눈과 귀를 닫고 살아왔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완전한 착각이었다. 회사는 그를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쓸모없어지면 언제든지 버릴 수 있는 물건으로 생각했을 뿐이었다. 그렇게 신기루는 완전히 사라졌다.
2018년 5월 대한항공 경영정상화 및 갑질 근절 시위를 주도하는 한편 같은 해 7월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조 대한항공직원연대지부를 출범시켰다. 그는 현재 일반 승무원으로 강등당한 채 근무하면서 초대 지부장을 맡아 힘껏 활동하고 있다.
박 지부장은 땅콩 회항 사건이 일어난 2014년 12월부터 2019년 2월까지 당시 사건 이후 최근까지 4년 2개월간의 기록을 온전히 담아 책으로 펴냈다.
책은 먼저 2018년 5월 세종문화회관에서 있었던 시위부터 시작한다. 이어 저자가 대한항공 객실 승문원으로 입사하게 된 이야기, 대한항공 노조 파괴 공작, KIP(대한항공 회장 일가를 일컫는 말, VIP에서 ‘V’ 대신 ‘K’를 땄다)의 갑질 사례들(가령 퍼스트클래스에 탑승하는 조양호 회장이 좌석을 창가로 막무가내로 바꿔달라는 요구, 부인 이명희 씨가 회사 유니폼 변경시 간섭을 너무 심하게 한 나머지 외국 디자인 팀이 철수해 버렸다는 이야기 등등)이 소개된다.
저자는 2018년 5월 세종문화회관에서 있었던 시위에서 500여 명의 동료와 함께 했다.
특히 압권은 승무원 6,000명이 비행 스케줄과 탑승객의 명단을 출력하기 위해 사용하는 프린터가 회사내 단 두 대뿐이었다는 것이다. 그나마 잉크 카트리지나 용지가 떨어지면 제때 채워지지도 않았다. 이는 2014년 1월 대한항공 기내 서비스 총괄부사장이 된 조현아 씨가 복사에 들어가는 비용을 낮추라고 관리팀을 압박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기내 상품 판매도 늘릴 것을 종용했다.
갑질 사례는 이말고 더 있다. 한번은 국회교통위원회 분과위원장이라는 사람이 퍼스트 클래스에 탑승한 뒤 기내에서 제공하는 모든 레드 와인과 화이트 와인을 시음하겠다고 나섰다. 이 과정에서 응대가 늦어지면서 자신이 홀대받는다고 생각한 의원은 불같이 화를 내기도 했다.
이 일로 저자는 2013년 7월 팀장에서 팀원으로 강등됐다. 대한항공은 앞뒤 사정은 제대도 살피지도 않고 윗분의 심기를 거슬리게 했다는 이유로 무조건 징계부터 하고 봤다. 그는 2014년 7월 팀장으로 복귀하면서 VIP 탑승을 맡게 됐다. 몇 달 뒤 땅콩 회황 사건이 터졌다.
나는 “제 자존감을 위해 스스로 대한항공을 관두는 일은 없을 겁니다. 두려움도 없습니다. 진실을 이야기했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했다.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하는 다짐이었다. 그 무엇도 진실에는 저항할 수 없는 법이다.
저자는 책을 통해 작년 5월 함께 하려고 모인 사람들 앞에서 가이 포크스 가면을 걷어냈던 것처럼 회사에 속아 제대로 보지 못했던 그간의 신기루를 과감하게 걷어냈다.
박 전 사무장이 책에서 들려주는 대한항공 회장 일가, 특히 조현아 전 부사장에 관한 이야기는 회사 경영이나 조직 리더십을 위한 반면교사요, 타산지석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책을 내려놓으면서 저자의 용기에 감동했다. 아무쪼록 그가 토로한 잘못들이 바로잡혀져 국민의 몫은 국민에게 저자의 몫은 저자에게 제대로 돌아갔으면 싶다. 두손모아 박 지부장님의 건승을 기원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