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다음 이야기 2 - 제2의 전국 시대, 중원을 지배한 오랑캐 황제들
신동준 지음 / 을유문화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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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권에서 흥미로왔던 부분은 동진이 패망하고 남조의 송이 들어설 때였다. 동진 역시 서진의 사마충 같이 백치 황제가 등장했다. 유유는 동진을 찬탈해 보위에 올랐다. 이가 곧 송무제다. 이로써 동진은 원제 사마예가 건강에서 건국한 후 103년 만에 망하고 말았다(420). 유유는 경우 2년 만에 60세의 나이로 병사하고 만다. 이어 어린 태자 유의부가 뒤를 이어야 했다.

유유는 유방의 부인 여후와 서진 사마충의 부인 가남풍 등이 나라를 어지럽힌 전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자필 유언장을 남겨 모후에게 정사 간여를 금지시켰다. 그 대신 4명의 대신들을 보정 대신에 임명하여 보필케 한다. 문제는 이 네 대신들이 계략을 꾸며 유의부를 폐하고 셋째 유의륭을 옹립했다. 이가 송문제다.

다행히 송문제는 17세에 즉위해 30년 동안 재위하면서 송의 기반을 착실히 닦았다. 나는 송문제 부분을 읽다가 눈이 휘둥그레지는 기발한 착상을 접할 수 있었다.

원가 22년(445) 유의륭은 임읍(베트남 중남부와 캄보디아)를 치게 했다. 임읍의 국왕 범양매가 전국의 병사를 모아 결전을 치렀다. 이 싸움에 철갑으로 무장한 많은 코끼리 부대가 등장했다. 송나라 군사는 이런 진세를 처음 본 까닭에 크게 당황했으나, 즉시 사자가 백수의 왕이라는 것을 생각해 내 수많은 사자 모형을 만들었다. 과연 코끼리들이 크게 놀라 달아났다. 놀라운 발상이 아닐 수 없겠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송문제는 한창 활약할 무렵 태자 유소에게 피살당하고 만다. 박숙비에게 폐태자의 기밀을 얘기하는 바람에 유소의 귀에까지 들어갔고, 이 말을 들은 유소가 야음을 틈타 기습을을 했던 것이다. 정도전이 이방원의 기세를 꺾으려다 기습당해 비명에 횡사한 것처럼.

저자는 선비족 탁발규가 386년에 창업한 북위에 대해 높이 평가한다. 바로 효문제(탁방굉)가 실시한 호한융합 정책 때문이었다. 당시 한족 학자들은 북방 민족(선비족) 출신인 그를 폄훼하기도 했다. 저자에 따르면 "탁발굉이야말로 남북 민족이 하나로 융합해 현대의 중국 민족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한 당대 최고의 인물"이었다!

한편 북위가 북연을 정벌할 때 고구려가 등장한다. 북연의 황제 풍홍은 북위에 10여 개 큰 군(郡)을 잃으면서 힘이 날로 쇠약해졌다. 북귀군 4만 명이 도성 아래까지 오자 풍홍은 아들을 인질로 보냈다. 당시 풍홍은 은밀히 고구려에 사람을 보내 구원을 청했다. 고구려 장수왕이 이를 받아들였다. 436년 풍홍이 일족과 백성을 이끌고 고구려 땅으로 망명하니 북연은 패망하고 말았다(117쪽).

여기서 눈을 뗄 수 없었던 부분이 있었다. 풍홍의 손녀가 훗날 북위의 태후가 되었는데, 그녀가 바로 그 유명한 풍태후다. 풍태후는 지략과 과단성, 잔인함 등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그녀는 헌문제 탁발홍을 독살하기에 이른다. 할아버지의 복수를 대신해 준 것일까?

신동준 선생은 풍태후에 관한 이야기를 10여 쪽에 걸쳐 하고 있다. 유방의 부인 여후, 측천무후, 서태후 등과 비견될 정도로 명성이 드높았기 때문일 것이다. 탁발홍 사후 등극한 황제가 바로 효문제 탁발굉이었다.

사실상 2권은 북위에 관한 역사가 중심이라고 봐도 무방하겠다. 저자는 분량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130여 쪽을 할애한다.

 

이어 저자는 북조와 남조의 역사를 교대로 서술해 간다. 아래 연대표를 참고하면 흐름을 따라잡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한다. 아울러 말미에 덧붙여진 주요 연대표와 연호도 함께 보면 좋겠다!

 

 

저자는 위진 남북조 300여 년 역사를 훑으면서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다.

속어에 '호랑이 자식이 개일리 없다'고 한다. 그러나 사서를 이와 전혀 다른 현상을 볼 수 있다. 부친은 개세(蓋世)의 영웅인데 반해 아들은 천하의 망나니인 경우가 많았다. 전한 제국을 세운 유방의 경우를 보자. 그의 아들 한혜제 유영은 종일 황음한 모습을 보이며 정무를 돌보지 않았다. 삼국 시대 촉나라 유비의 뒤를 이어 42년 동안 제위한 유선의 경우에는 비록 제갈량 같은 현신이 보좌하기는 했으나 결국 패망을 면치 못했다. - 391쪽

이외에도 저자는 몇 가지 사례를 더 든다. 가령 서진의 무제 사마염은 백치 아들인 혜재 사마충에게 보위를 넘겨주었고, 수문제 양견에는 황음무도한 아들 수양제 양광이 있었다. 그렇기에 수는 그 치세가 40년을 넘지 못했다.

한편 당태종 이세민의 나약한 아들 고종 이치는 결국 측천무후에게 나라를 빼앗겼다. 명태조 주원장의 경우도 한없이 어질기만 한 태자가 일찍 죽는 바람에 황태손인 건문제 주윤문에게 보위를 넘겼다가 결국 내란이 일어나 연왕 주체가 이를 빼앗았다.

정치에서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후계자를 잘 선정해야 후환이 없는 법이다. 그렇기에 사회주의권은 유독 후계자 선정에 공을 들인 모양이다. 직장인이라면 어떨까? 역시 후임자를 잘 만나야 한다. 그래야 못다 이룬 과업(?)을 잘 마무리 지을 수 있다. 자칫 판도가 뒤집히는 것은 고사하고 희생양이 되기 쉬운 것이 우리 현실이다.

시리즈 1·2권을 다 읽어내기란 결코 만만치 않았다. 분량 제한 탓인지 단편적인 연대기적 서술이 중심을 이루는데다, 적지 않은 왕조의 흥망성쇠가 이어지다보니 맥락을 따라잡기가 쉽지 않은 탓이다. 허나 저자의 작은 일침이 정신을 번쩍 차리게 한다.

수천 년에 달하는 장구한 역사를 지닌 중국을 이해하는 데에는 절대적인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사상과 사고방식, 생활 양식, 문화 유형은 역사의 산물일 수밖에 없다. (중략) 중국에 대한 '지피'가 전제되지 않는 '지기'는 사실 속 빈 강정이나 다름없다. - 445쪽

나는 이 책을 통해 오늘을 사는 현대인으로써 필요한 생존과 삶의 지혜를 배운다. 수 천 년의 역사가 흐른 시점에서 한 국가의 부귀영화는 덧없는 것일 수도 있지만, 그 속에는 흥망성쇠의 징조가 항상 드러나 있었다.

탄광 안 카나리아나 사라센의 탑처럼 현실의 징조를 미리 간파하고 조기에 대응할 수 있다면 우리는 큰 위기를 슬기롭게 모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에 나는 과거와 역사를 통해 오늘을 사는 많은 혜안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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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다음 이야기 1 - 제2의 전국 시대, 중원을 지배한 오랑캐 황제들 삼국지 다음 이야기
신동준 지음 / 을유문화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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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준 선생의 필력은 거침이 없는 듯하다. 이번에는 삼국지 다음 이야기를 들고 우리를 찾아왔다.

삼국지 다음 이야기는 위진 남북조 시대를 다룬다. 우선 위진 남북조 시대 연대를 잠깐 보자. 난 항상 헷갈려서 자신이 그닥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춘추 시대 (B.C. 771 ~ B.C. 453)

전국 시대 (B.C. 453 ~ B.C. 221)

 

진 (B.C. 221 ~ B.C. 206)

초 (B.C. 208 ~ B.C. 205)

서초 (B.C. 205 ~ B.C. 202)

한 (B.C. 202 ~ 220)

   전한 (B.C. 202 ~ 8)

   신 (8 ~ 23)

   후한 (25 ~ 220)

삼국 시대 (220 ~ 280)

   위 (220 ~ 265)

   촉한 (221 ~ 263)

   오 (229 ~ 280)

진 (265 ~ 420)

   서진 (265 ~ 316)

남북조 시대 (317 ~ 589)

   동진 (317 ~ 420)

수 (581 ~ 618)

당 (618 ~ 907)

위 연대에서 '위진 남북조'만 따로 간추려 표로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위에서 보듯 위진 시대(220 ~ 316)는 조조가 세운 위(220 ~ 265)와 사마씨가 세운 서진(265 ~ 316)이 존속한 96년이다. 사마씨의 시조는 조조의 참조였던 사마의다.

 

 

남북조 시대 (420 ~ 589)는 서진의 후신인 동진 (317 ~ 420)을 포함한 한족의 남조 정권과 북방 민족의 북조 정권이 대립하다가 581년 수에 의해 통일될 때까지를 말한다. 그 시기는 282년이다. 이렇듯 위진 남북조 시대 (220 ~ 589)는 370년간 지속되었다.

저자에 따르면 현재 한족 사가들은 이 당시를 역사상 가장 고통스럽고 어두운 시기로 보고 있다. 그래서 북방 민족이 세운 북조 정권을 ‘5호 16국의 난’이라고 표현한다. 이 시기(314 ~ 439)는 흉노, 갈, 선비, 저와 강 등 5호가 대두하여 흉노의 한(漢)을 세운 후 선비족의 북위가 통일할 때까지를 말한다.

중국 학자들은 북위가 들어선 시점부터 수가 통일할 때까지를 진정한 남북조 시대로 보고 있기도 한다. 이는 한족 중심의 사관(史觀)에 의한 그릇된 중화 개념에서 비롯되었다.

또한 오, 진(서진 및 동진) 그리고 남조의 송, 제, 양, 진의 6개 한족 왕조를 일컬어 육조라고 부르기도 한다.

저자는 북조는 결코 야만의 문화가 아니었다고 주장한다. 강건한 상무 정신을 토대로 뛰어난 정치·군사 문화를 독자적으로 만들어 나중에 수·당의 시기에 천하 통일의 밑거름이 되었다고 평한다.

위진 남북조 시대를 조망함으로써 난세를 바라보는 안목을 제공하고자 한다. 시작은 위나라의 조조에서 비롯된다. 조조는 영토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흉노와 오환 등의 북방 민족을 백성으로 적극 끌어들여 군사력 강화의 계기로 삼았다.

저자는《자치통감》을 기본으로 하되,《삼국지》,《진서》,《송서》,《남제서》,《양서》,《진서》,《위저》 등 관련 사서를 두루 인용했다. 인용된 문헌만으로도 이미 기가 죽은 나는 과연 책 내용을 감당할 수 있을지 걱정되기 시작했다.


'삼국지 다음 이야기' 1권은 조조가 위를 세운 시대부터 동진 말기(5세기초)를 다룬다. 저자에 따르면 이 시기는 제2의 전국시대에 버금갈 정도로 무차별적인 정복 전쟁이 만연했다

하지만 저자의 시선은 대체로 위진남북조 시대, 특히 북방민족의 화려한 등장에 긍정적인 편이다.저자에 따르면 이 시기에 문학과 음악, 회화, 서법, 종교 등 전 분야에 걸쳐 불교와 도료, 유교, 법가, 명가 등 수많이 사상이 각축을 별이면서 제2의 전국시대를 영위했다.

또한 위진남북조 시대는 동아시아 역사의 분수령에 해당된다. 뒤이은 통일 왕조 모두 이 시기에 마련된 사상과 제도 등을 토대로 천하를 운영할 수 있었다. 그 예로 삼국 시대 당시 위무제 조조와 위문제 조비 때 만들어진 둔전제와 구품중정제가 서진남북조 때 들어와 부병제, 균전제, 과거제 등으로 정립된 것이다. 이들 제도는 이후 약간의 손질이 있기는 했으나 그 골격만큼은 청조 말까지 그대로 유지됐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조조에 대한 왜곡을 바로 알게 되었다. 저자는 리쭝우의《후흑학》과 이중톈의《삼국지 강의》에서 조조는 마음이 시커먼 심흑(心黑)의 대가로 묘사된다.

신동준 선생은 조조가 적의 속셈을 훤히 알고 역으로 그 허점을 찌를 줄 아는 당대 최고의 전략가였다는 점에서 볼 떄 심흑의 대가였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전장에서만 발휘된 것으로 사마의와 달리 사람을 다룰 때 심흑을 구사한 적이 없다.

마오쩌둥도 조조를 심흑의 인물이기는 커녕 오히려 자신의 희로애락을 그래도 드러내는 심백의 인물에 가깝게 보고 있다. 사실 난세에 보인 조조의 탁월한 리더십은 오늘날에도 배울 점이 많겠다. 주어진 상황을 냉철히 진단하는 통찰, 인재를 단박에 알아보는 지감, 미련없이 포기할 줄 아는 결단 등 그 예이다.

한편 사마씨에 의해 성립된 서진 이야기는 자못 흥미로왔다. 진무제 사마염은 왕위를 백치 황제라 불린 사마충에 넘기면서 형제·친인척 간 내분, 팔왕의 난이 벌어져 나라 멸망을 재촉했다. 후계자를 잘 정해야 함을 배울 수 있는 대목.

여기서 사마충의 비 가남풍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녀는 '황음무도한 여인'이었다. 백치 황제를 대신해 천하를 좌지우지했고, 온갖 음란한 짓을 다 벌였다. 측천무후의 등극을 위한 전조였을까? 훗 사마충 곁에 어진 현비(賢妃)가 있었더라면 역사는 달라졌을지 모른다.

요즘같이 목숨을 걸고 고언을 마다하지 않았던 대쪽같은 선비 정신이 아쉬울 때도 없다. 당시 진원달은 이에 비견될만한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흉노족의 실력자 유총이 황후를 위해 황의전을 화려하게 수리하려 하자 고언을 간한다. 이 때 그는 쇠사슬을 허리체 차고 나무와 묶고 있었다.

진노한 유총은 참수하라고 명했으나, 위사들이 쇠사슬을 풀지 못해 쩔쩔 맸다. 마침내 황후까지 나서 만류하자 화를 풀게 되었다. "경은 응당 짐을 두려워해야 하는데 오히려 짐이 경을 두려워하게 만들었소." 저자는 진원달과 같은 인물이 있었기에 유씨 나라가 그나마 일시 지속될 수 있었다고 평한다.

중국이 G2의 강자로 부상한 지금, 중국 역사 전반에 대한 통찰이 무엇보다 절실하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그간 내가 잘 몰랐던 위진남북조의 역사에 대해 체계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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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의 잃어버린 세계 - 캄브리아기 폭발의 비밀을 찾아서
마틴 브레이저 지음, 노승영 옮김, 이정모 감수 / 반니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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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은 삼엽충 이전의 화석이 발견되지 않자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1859년《종의 기원》을 쓸 무렵, 선캄브리아기 지층에서는 화석이 발견되지 않았다. 따라서 화석의 증거를 얻을 수 없었던 다윈은 불안하기 조차 했다.

지구 역사에서 캄브리아기 때에는 '캄브리아 대폭발'이라고 할 정도로 생명체가 가히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캄브리아기는 5억 4200만 년 전에 시작되었으니, 선캄브리아 시대는 45억 년 지구 역사의 90%를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그 이전의 선캄브리아기 지층에서는 화석이 발견되지 않아 생명의 흔적이 감지되지 않았던 것이다. 이것이 책 제목이기도 한 “다윈의 잃어버린 세계”다.

과연 '잃어버린 세계'는 어떻게 된 것일까? 다윈의 딜레마는 깊어져 갔다. 그 당시 다윈으로서는 해결할 수 없었기에 결국 이 딜레마는 후대 학자들에게 과제로 남겨졌으니.

케임브리지대 고생물학 교수 마틴 브레이저는 이러한 “다윈의 잃어버린 세계에 대해 집중적으로 다룬다.

5억 4,400만 년 전에서 5억 4,300만 년 전의 100만 년 사이에 지구 역사상 처음으로 동물 하나가 눈을 떴다. 눈 달린 삼엽충이 나타난 것이다. 눈이 모든 것을 바꾸었다다. 빛에 적응해야 했고, 벌레 같았던 동물들은 갑옷을 두르고, 경고 색을 과시하고 위장 형태와 위장 색을 띠거나, 추적하는 적을 따돌릴 수영 실력을 갖추어야 했다.

마틴 브레이저에 따르면 캄브리아기 폭발의 원인은 '눈'이 아니라 '입'이라고 말한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탄산석회로 한층 단단해진" 강력한 이빨의 출현이다. 입의 시대에는 ‘프로토헤르트지나’라는 골격 화석이 등장한다.

저자는 다윈의 잃어버린 화석을 찾기 위해 세 지역을 중점적으로 탐사했다. 그가 이끄는 발굴팀은 시베리아, 중국, 외몽골을 여행하며 알다노트레타나 아나바리스테 같은 패각 화석에 보존된 패턴을 조사했다. 이 패각 화석들은 다윈의 잃어버린 세계를 찾는데 소중한 실마리를 제공해 주었다.

나는 책을 펼쳐 들었을 때 고생물학에 익숙하지 않은 데다 낯선 용어도 많이 나오는 바람에 읽어내기가 여간 녹록지 않았다. 포기하지 않고 계속 읽어 나갔다. 반 쯤 읽었을 무렵일까, 어느새 흐름을 따라 잡을 수 있게 되었다. 너나 할 것 없이 뛰어든 다른 고생물학자들과의 경쟁적인 발굴 장면은 마치 미지의 세계를 탐사하는 모험가들 마냥 흥미로왔다.

게다가 현미경으로만 관찰할 수 있는 아주 작은 화석인 '미(微)화석' 연구라든가 고대 생물의 몸부림 흔적이 표면에 새겨진 ‘흔적 화석’에 대한 이야기는 재미로움을 넘어서서 경이에 가까웠다. 지구의 역사를 밝혀내는 데 앞장서는 학자들의 뜨거운 열정과 세심한 관찰력을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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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정오에서 세상을 바라보다
서태옥 글.사진 / 초록비책공방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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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옥
, 그는 어느 날 인생의 정오를 지나며 시작했다. 우리의 감정을 위로해줄 그 무언가를 찾는 여정을.

이 책은 그간 페이스북과 블로그에 틈틈이 올린 사진과 글이 영글어진 것이다. 독서광인 아내가 일러준 좋은 글, 자신의 심금을 울려준 말을 모아 좋은 생각, 힘이 되는 생각으로 정리하고, 이에 어울려도 좋은 사진들을 발품손품 팔아 찍었다.

그는 책에 담긴 소소한 생각들을 너도 나도 읽어서 우리가 살아갈 힘을 얻고, 인생을 헤쳐 나갈 의지를 키우기를 바란다.

저자는 보건복지부에서 감사업무를 맡고 있다. 정말 숨 가쁘게 달리는 하루, 그 바쁜 와중에도 천천히 가면서 잠시 멈출 곳에서 쉬어 가기를 원하고, 그래서 천천히 주변 상황을 다 포용하면서 자기 소명을 다하는 그런 사람이 되자고 다짐하는 멋진 남자다.

 

아내 생일과 결혼기념일도 꼬박꼬박 챙기는 살가운 남편이다. 아니, 쇼핑 카트 안에 아내의 물건을 슬며시 채워 넣어줄 줄 아는 멋쟁이다. 장인어른의 마지막 투병, 그는 출장 중 늦은 밤에 잠시 어른을 찾아뵙고, 우는 아내의 슬픔을 어루만져줄 줄도 안다.

우리에게 사소한 도움, 따뜻한 말 한 마디, 공감의 눈길, 그리고 토닥토닥아끼지 말고 나누자고 속닥인다. 여백에 머리로만 있던 사람들을 가슴 안으로 들이자고 다독인다. 그렇게 사람과 일과 세상에 좀 더 너그러워지자며 웃는다.

또한 인생을 순항할 수 있는, 그 어떤 쓰나미도 견딜 수 있는 밑짐을 조심스레 찾는다. 위기에 흔들리지 않고 중심을 잡을 수 있는, 유혹과 고통에 넘어지지 않을 지주 같은 밑짐을. 그래서 업무량도, 껄끄러운 인간관계도, 마이너스 통장으로 이체되는 보수도 역경을 견뎌야 경력이 되듯 그렇게 이겨내고자 한다.


사소한 일상도 작은 도구도 우리의 스승이 된다. 김밥을 말면서 서로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 얼마나 잘 어울리며 살아가는지를 배우고, 추운 겨울날 피어나던 하얀 입김을 보며 참 가슴 따뜻하다고 느낀다.

들판에 남은 벼쭉정이를 보고는 고개를 숙이는 미덕을 훑고, 아름다움을 가졌음에도 자세를 낮추는 낙엽에서 겸양의 지혜를 줍는다. 휴가 떠난 날 한숨 푸욱 잤고 나더니 자신 안에 아군이 많이 생겼다고 좋아한다.

그는 또한 사회복지사다. 동료들에게 "아무리 헌신을 강요받더라도 가끔은 쉬면서 감정을 충전하자"는 조언을 잊지 않는다. "충만한 마음으로 그들을 대하는 것도 사명이니까."

사람보다 귀한 것은 없다!
어떻게 행동으로 보여줄 수 있을까? 누군가에게 커피를 건넬 때에도 격려 한 스푼, 애정 두 스푼을 넣어주자. 그렇게 하루에 한 번씩 나를 인정해 주고, 그리고 하루에 한 사람을 진심으로 인정해 주자.

 

이렇듯 성과를 내야 인정받은 현실에서 그는 제 힘껏 몸을 태워 끓기 직전까지 온도를 올려놓은 99가 홀대 받지 않는 사회, 아흔 아홉 번의 외로운 망치질이 대접받는 사회를 소망한다.

"에스키모가 슬픔이 가라앉고 걱정과 분노가 풀릴 때까지 하염없이 걷다가 마음의 평안이 찾아오면 그때 돌아서는 것처럼 때로는 지친 심신을 내려놓고 자신을 다독여 주자."

책을 다 읽고 나니 귀접기가 숱하게 달렸다. 책갈피도 제법 두툼하다. 욕심을 버려야 하건만, 이런 과욕은 놓치고 싶지 않다.

어디, 오늘 오래된 친구와 막걸리 한 잔 나눌까?
그리고
모든 하루를 마치고 들어설 때,
전쟁 같은 집안일, 모든 걸 견딘 아내에게 건네는 말

오늘도 수고한 당신, 나 왔소.”

좋은 것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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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의 탄생 - 우리는 왜, 어떻게 질병에 걸리는가
홍윤철 지음 / 사이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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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홍윤철 교수는 서울대학교 예방의학교실에서 환경의학에 대한 교육과 연구를 하고 있다. 그는 자신이 오랜 기간 연구해온 성과를 정리하면서 독자에게 풀어내고 싶은 방담(放談)이 있었을 것이다.

홍 교수는 우리가 인류의 조상이라고 알고 있는 문명 이전의 수렵채집인들은 과연 현대인게 유행하는 질병을 앓았을까?”라는 화두로 시작한다. 그에 따르면 조상이 살았던 시대에는 그렇지 않았다.

화두는 이어진다. 왜 우리의 조상들은 이러한 병을 앓지 않았을까? 이와 같은 변화 그리고 그 차이는 근본적으로 어떤 이유 때문인가?

인류의 건강은 긴 역사를 통해 유전자가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며 생존력을 극대화하는 과정에서 확보되었다. 그렇다고 한 번 적응했다고 해서 다가 아니다. 끊임없는 상호작용을 통해 계속해서 적응해야만 했다.

우리 세포는 DNA 코드의 서열 변화 때문에 다양하게 분화되지만, 세포 안에서 유전자 발현이 달라지면서 그 기능이 달라지는 경우도 많다. 후자는 최근 각광을 받고 있는 후성유전(저자는 후생유전이라고 명기하고 있으나 후성유전으로 용어가 바뀌었다)이다 *후성유전에 관한 상세 설명은 맨 아래 보론 참조

후성유전은 우리 몸에 생기는 암이나 질병의 발현 기전을 위한 연구에 많이 활용되고 있다. 가령 암의 경우 비록 가족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무조건 생기지 않는다. 오히려 식습관이나 흡연, 오염물질 등 외부 환경과의 상호 작용에 대한 반응으로서 생길 때가 많다. 이 원인 물질이 DNA 결합 분자를 대체하면서 DNA를 교란시킬 때 암이나 당뇨등 만성질환이 생길 수 있다. 따라서 잘못된 결합을 바로잡을 수 있다면 우리는 암이나 만성질환을 퇴치할 수 있다. 이처럼 후성유전은 교정 가능하다.

어쨌든 저자의 관심은 여기에 머무르지 않는다. 홍 교수에 따르면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가 지닌 맹점은 생존 경쟁을 만들어 내는 환경을 간과했다는 점이다. 유전자를 둘러싼 환경을 제대로 보지 않고는 대립유전자 간의 생존 경쟁이란 의미가 없다는 것.

저자는 질병의 원인이 사람에게 들어와서 병을 일으킨다기보다는 인간의 유전자가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부적응 상태가 질병을 일으킨다고 본다. 오늘날 환경에 대한 이러한 부적응은 고혈압, 당뇨, 알레르기, 암과 같은 질병의 유행으로 나타나고 있다.

재레드 다이아몬드가 총 균 쇠에서 환경적 요인이 각 대륙간 문명의 불평등을 초래한 주요 요인이라고 주장하지만, 저자는 그러한 환경적 변화는 인류 역사를 통해 계속해서 변해 왔기 때문에 부차적이라고 지적한다. 이보다는 환경적 변화에 대한 인류의 적응의 차이가 중요하다. 급격한 환경 변화에 우리 몸의 유전자는 충분히 적응할만한 시간적 여유를 가지지 못해 다양한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가 이 책을 관통해서 주장하고 있는 핵심은 다음 세 가지다.

첫째, 인류의 유전자는 인류가 생활해 온 환경과는 별개로 독립적으로 진화해 온 것이 아니라 환경에 적응하면서 형성되었다.

둘째, 1만 년 전 수렵채집에서 농경목축으로 생활양식이 전환되면서 시작된 문명화 이전 시기에는 인류의 조상에서 오늘날 우리가 흔히 보는 만성질환은 찾아보기 어렵다.

셋째, 인류는 농업혁명과 산업혁명의 두 가지 커다란 혁명적 환경 변화를 거치면서 새로운 환경을 맞이하게 되었고, 유전자가 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데에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질병이 탄생하게 되었다.

책은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질병의 탄생을 서술하고, 2부는 질병을 탄생시킨 환경 요인 그리고 3부는 문명이 만든 질병을 다룬다.

홍 교수는 농업혁명이 질병 탄생의 서막을 열었다고 평가한다. 인류가 농경 시대 들어 군집 생활을 시작하면서 질병이 대규모로 유행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어 질병을 탄생시킨 환경 요인으로 영양, 기후 변화, 햇빛, 운동(오래달리기 예), , 담배, 산업 혁명 화석 연료 등 8가지를 든다.

 

▲이집트 테베 서쪽 지구에 있는 기원전 13세기 전후 묘지 관리인 센네젬의 무덤안에 그려진 벽화. 가축을 이용해 농사를 짓는 이집트인의 모습

코넬대 스펜서 웰스 교수 역시 저자의 시각과 일치한다. 그는 판도라의 씨앗에서 농경이 인류에게 낀친 '불행' 중 하나로 이전에는 별로 염려하지 않았던 전염병이 한꺼번에 수많은 생명을 앗아갔던 사례를 들고 있다.

지구 온난화는 무더위와 사막화 등으로 인한 피해 뿐만 아니라 모기 등 질병매개곤충 의 과잉 번식으로 새로운 질병을 초래할 수 있다. 가령 우리나라의 경우 동남자 등지에 서식하던 뎅기열 모기가 국내 남부 지방에서 일부 서식하기 시작했고, 뎅기열 환자 국내 유입도 매년 늘어나고 있다.

또한 산업 혁명은 도시화로 인해 열악한 위생 문제를 가져왔다. 이에 결핵, 콜레라, 장티푸스등 또다른 질병 탄생의 시기였다.

하지만 우리는 산업 혁명 덕도 보았다. 이와 함께 눈부시게 발전한 과학 기술은 신선한 야채, 우유 그리고 육류의 공급을 크게 늘리는 데에 기여했다. 그간 큰 위협이 되었던 질병의 원인과 발생 기전을 규명하고, 치료제와 백신을 개발함으로써 인류의 건강 수준을 대폭 나아졌다.

한편 산업화는 점차 고도화되면서 생활 환경을 질적으로 변화시키게 되었다, 이는 또다른 질병을 초래하는 원인이 되었다. 우리 몸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에는 무리였다. 너무 짧은 기간에 수많은 변화들이 생겼기 때문이다. 적응 과정 속에서 어긋나는 부분들이 생겨나고 병원체와 인간 사이에 형성된 균형이 깨지면 2003년 사스와 2009년 신종 플루같은 팬데믹 상황이 발생했다.

끝으로 저자는 문명이 만든 질병으로 전염병, 비만, 당뇨, 고혈압, 심혈관질환, 알레르기, , 우울증 등 8가지를 꼽는다. 이는 앞서 열거한 환경적 요인들과 그 관련성을 두고 설명한다.

건강을 위협하는 요인들은 시대에 따라 달랐다. 가령 지구 온난화 등 기후변화 문제는 산업화 이전에는 용어조차 생소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인류의 건강을 위협하는 위기 중에서 최우선적으로 다루어야할 과제가 되었다.

주제가 무엇이든 통사적 고찰은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닐 것이다. 게다가 질병이라는 부담스런 주제임에도 저자는 전문적인 식견과 풍부한 사례를 들어 잘 풀어나갔다. 문체도 깔끔해서 읽는 재미도 좋고 읽는 속도도 난다. 자고로 과학을 다룬 교양 도서는 이랬으면 싶다.

 

[보론] 후성유전이란 무엇일까?

DNA
는 세포 속에서 벌거벗은 상태로 있지 않다. 다양한 단백질 분자들로 이루어진 옷을 입고 있다. 이 분자들은 DNA와 화학결합을 이룬다. 전문가들은 이 결합을 DNA 메틸화, 히스톤의 디아세틸화 등의 방식으로 부른다. 이 분자들이 중요하게 부각된 이유는 결합된 분자들이 DNA의 행동을 바꾸어, 유전자 활성을 더 높이거나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분자들은 일시적으로 붙어 있을 수도 있지만 평생 갈 수도 있다. 평생 가는 경우 이 정보도 유전되기도 한다. 우리 몸에 있는 간세포나 근육 세포의 경우 DNA 유전 정보는 똑같다. 그런데 어떤 것은 간세포로 분화하고, 어떤 것은 근육 세포가 되는가는 바로 후성유전으로 설명할 수 있다
.

후성이란 말은 전성과 대비되는 용어다. ‘전성가 이미 정자와 난자 속에 결정론적으로 정해져 있다는 의미고, ‘후성은 환경적 요인 등에 의해 얼마든지 변화될 소지가 있어 나중에 가 형성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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