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을 체포하라 - 14인 사건을 통해 보는 18세기 파리의 의사소통망
로버트 단턴 지음, 김지혜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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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로버트 단턴은 1939년 미국 뉴욕 출생이다. 그는 하버드 대학과 옥스퍼드 대학에서 공부하였다. 1964년 1년간 「뉴욕 타임스」 기자로 근무한 뒤, 1965년부터 하버드 대학에서 교수생활을 시작했다. 1968년부터 프린스턴 대학에서 유럽사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그는 ‘책의 사가(史家)’로 유명하다.

내 생각에 그는 역사서를 치밀하게 고증하는 유별난 특기를 지니고 있는 것이 틀림없겠다. 특히 18세기 프랑스 역사를 꼼꼼하게 살펴 본 《고양이 대학살》과 《시인을 체포하라》가 그러했는데, 이 두 권의 책은 내게 신선한 재미를 선사해 주었다.

먼저 고양이 대학살을 보자. 이 일화는 단턴이 쓴 《고양이 대학살》(원제 The Great Cat Massacre and Other Episodes in French Cultural History, 1984)에 소개된 여섯 일화 중에서 두 번째로 소개되어 있다. 요즘같이 고양이를 반려 동물로 존중하는 시대에는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1730년대 파리로 돌아가 보면 꼭 그렇지 않았다. 이 사건의 배경은 생 세브랭 가에 몰려 있는 인쇄소 골목이었다. 당시 견습 인쇄공들은 사람 이하의 취급을 받은 모양이었다. 그들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


“더럽고 추운 방에서 잤고 동이 트기 전에 일어나 하루 종일 직인들에게 모욕을 받고 주인에게 학대를 받으면서 일했으면서도 먹을 것이라고는 찌꺼기밖에 받지 못했다.“ - 112쪽

 

그 와중에 니콜라 콩타라는 견습공은 마침내 분노를 폭발시키게 된다. 당시 자신이 일하고 있던 인쇄소의 안주인은 고양이에 열광해서 애지중지하면서 ‘초상화를 그리게 시켰고, 구운 새고기를 먹일 정도’였다. 게다가 도둑고양이들은 자신이 먹을 것을 훔쳐 먹기도 하고, 밤이면 콩타가 자던 거처 지붕 위에서 온밤을 울어대 잠을 설치게 만들었다. 왜 아니겠는가, 나라도 열받겠다! 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 당시 관습을 이해하고 넘어가야 한다. 고양이는 마녀의 화신이라고 여겨졌다는 점이다. 에드거 앨런 포의 작품에도 등장하듯이, 검은고양이는 ‘흉조(凶兆)’라고 여겨져 특히 그러했다.

 

마침내 콩타는 작전을 꾸민다. 그는 동료와 함께 주인 부부가 거처하는 곳에 올라가 고양이 울음 소리를 흉내 내면서 주인들을 노이로제에 빠지게 만든다. 마침내 도둑고양이 소탕령이 내려지고, 그들은 빗자루, 철봉 등으로 눈에 띄는 모든 고양이를 학살하기 시작했다. 안주인이 애지중지하던 고양이가 먼저 당한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이렇듯 '고양이 대학살'의 진상은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던 노동자들의 울분이 고양이를 통해 표출된 것이다. 단턴은 이를 부르조아에 대한 프롤레타리아의 저항으로 살짝 언급하면서도 독자들에게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의 전조로서 보다는 하나의 사회적 맥락으로 이해해 주기를 바란다.

 

이러한 시각은 《시인을 체포하라》(원제 Poetry and the Police, 2010)에서도 이어진다.  '시인(詩人)' 사건이 발생한 것은 루이 15세 시절, 왕이 1749년 쟝 모르파 백작을 유배시킨 이후 왕을 비난하는 시가 공공연히 나돌기 시작하면서였다. 절대 권력은 항상 불안하다. 자신의 지위를 넘보거나 위협하는 세력은 그냥 놔두지 않는다.

그렇다고 어디 잠잠해지는가?  반대파나 그 지지자들은 나름의 레지스탕스를 시작하는 법이다. 왕은 시인을 체포하라고 명령한다. 1749년 7월 4일 밀고에 의해 의학생 프랑수아 보니가 맨 처음 체포된다. 이어 보니는 취조를 받으면서 지레 겁을 먹고 '불온한 시'를 건네준 자의 이름을 불게 된다. 이렇게 해서 줄줄이 14인의 ‘시인’이 체포된다. 이른바 ‘14인 사건’이다.

여기서 시를 짓거나 유포한 사람들이 14인에 그쳤을까 하는 의문은 중요하지 않다. 당연하게도 당시 성직자나 지식인 사이에는 왕조에 대한 반항적인 태도가 만연했기에, 시의 원출처에 이르기는 거의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저자가 ‘14인 사건’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려 한 것은 무엇일까? 그는 서문에서 《시인을 체포하라》를 집필한 동기 중의 하나로 당시 파리의 거리 곳곳을 누비면서 당시 여론에 대해 추적해 보려한다고 고백한다. 여론 혹은 물자체는 우리의 이해를 벗어나는 것이기에 그 시대의 매체를 통해 어떤 메시지를 추적하려 한다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 이런 저자의 입장은 푸코든 하버마스든 개념적 문제와 상관없이 사실 자체에 대한 상세 묘사를 통해 으레 품평하기 좋아하는 독자들에게 그 판결의 묘미를 넘겨주는 세련된 솜씨가 아닐 수 없다.

저자는 말미에 ‘14인 사건’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하고 있다.

"인터넷이 존재하기 훨씬 전, 정보가 입으로 전달되고 평범한 사람들 사이에서 시가 아주 효과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던 시절에 정보 사회가 작용했던 방식을 드러내 보여주었다." - 162쪽

에드워드 카(E. H. Carr)는 일찍이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통해 '역사란 역사가와 그의 사실들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의 과정,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설파한 바 있다. 이런 맥락에서 저자의 일련의 작업들은 근대사의 숨겨진 비사(秘史)를 통해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세상사의 오묘한 조화라든가 처세의 지혜를 제공한다.

나는 이책을 읽고 SNS 등 다양한 소통 수단이 발달한 요즘, 18세기 프랑스 시대에 절대권력의 ‘불통’에 맞서 어떻게 지식인이나 서민들이 이를 희화하고 풍자해서 자신들의 언로(言路)를 만들어나갔는지 잘 엿볼 수 있었다. 으레 ‘불통’의 시대는 희생양을 필요로 해 왔다. 그게 고양이든 시인이든 무슨 상관있으랴!

불통의 사회, 왜곡된 담론의 시대에는 유비통신이 곳곳에 넘쳐나기 마련이다. 이를 루이 15세 식으로 틀어막는다? 아마도 시간이 흐른 즈음 또 누군가에 의해 서술되고, 그 독자들은 이를 읽으면서 한껏 키득거릴 것이다. 오호 통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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