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여행처럼 - 지금 이곳에서 오늘을 충만하게 사는 법
이지상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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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둘째아이를 갖기 전. 신랑이 내년부터는 회사에서 연월차 수당이 없어지기 때문에 올해 남은 휴가를 써야 된다며 인도를 다녀오자는 얘길 꺼냈다. 인도엔 친정언니 가족이 머물고 있으니 우리 세 식구 여권발급과 항공권만 있으면 되니까 비용부담도 적다면서. 갑작스럽지만 결혼 이후 처음 하는 해외여행이라 마음이 들떠서 여기저기 여행사에 문의를 하는 둥 법석을 떨었다. 그런데 결론은 여행백지화. 간단하게 여겼던 여권과 항공권 비용이 생각보다 컸다. 이 돈이면 신랑 월급을 몇 년이나 모아야 되는데...라는 생각이 대망의 해외여행에 급제동을 걸었다. 6년 전 그 때 이후로 지금까지 줄곧.




지금 생각하면 예전의 내가 진짜 바보였다. 왜 그랬을까? 인도에 가면서 숙식해결 되는 것만 해도 어디야? 그냥 눈 딱 감고 갈걸...이제 가려면 둘째 아이까지 있으니 비용이 배로 들어 갈텐데, 때론 고달픈 현실은 책장 접듯 제쳐두고 과감하게 일을 저질렀어야 했는데 진짜 왜 그랬지? 스스로에게 물음을 던지지만 ‘내가 바보천치’였단 대답만 가슴에 울러퍼질 뿐이다.




파랑과 하양이 대비를 이룬 표지, 여행서적치고 너무 단순한 거 아냐? 싶을 정도로 심플하다. 본문을 읽기 전에 책장을 휘리릭 넘겨도 낯설지만 아름다운 이국의 풍경을 담은 컬러 사진은 온데 간데 없고 자세히 들여다봐야 뭔지 알 수 있을, 그것도 흑백 사진이 몇 장 있을 뿐이다. 참, 요상한 책이로세. 원래 여행책은 글 반, 사진 반...이래야 되는 거 아냐? 대체 어떤 여행이야기를 담았길래 이렇게 글이 많은 거야?




저자는 제일 먼저 자신이 여행을 떠나게 된 이유를 말한다. 아침에 일어나 밥 먹고 출근하고 일하고 퇴근하는 일상의 연속 속에서 불현듯 ‘무엇 때문에?’라는 의문이 떠올랐다고. 돈을 벌기 위해서란 답조차 왠지 의미를 상실한 것처럼 여려졌던 저자는 과감하게 회사를 그만두고 배낭여행을 떠난다. 오랫동안 이어질 그런 여행을...




저자의 과감한 행동에 ‘이야, 대단한데?’하며 부러워했던 난 다음 장에서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해외여행’이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빼어나게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하는 곳이나 선진문화를 직접 느껴볼 수 있는 곳, 이름난 문화유산이나 작품들을 고스란히 간직한 곳으로 떠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진 한 장을 찍더라도 돈을 쓴 표시가 나야 된다고 여긴다. 그런데 저자의 여행은 달랐다. 열악하고 불결한 숙소는 기본이거니와 심각한 분쟁으로 인해 목숨이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기도 했고 숨쉬기도 어려울 정도의 무더위와 갖가지 풍토병, 호시탐탐 여행자를 노리는 소매치기와 사기꾼들에 무방비로 노출된 여행은 그야말로 낭만적인 여행과는 정반대의 것이었다.




그래서! 대체 이 사람은 여행이 어떻다는 거야? YES, NO 대체 어느 쪽이야? 슬며시 의문을 들려는 찰라, 저자는 넌지시 얘기를 꺼낸다. 여행은 굳이 먼 곳으로 떠나는 것만이 아니라고. 여행은 즐거움과 자유로움을 주지만 그와 동시에 고달프다는 걸 잊지 말라고. 어딜 가더라도 여행을 가는 것처럼 설레는 마음을 갖는 것, 그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지쳐갈 때 떠올려야할 것이 바로 ‘카르페 디엠’. 자신이 머물고 있는 현재의 삶에 몰입하고 최선을 다해 즐기는 것. 그것이 바로 진정한 여행이자 언제나 여행처럼 살아가는 거라고 말한다.




그러고보니 언젠가 신랑이 비슷한 말을 했던 기억이 난다. 차 안에서 책에만 얼굴을 파묻고 있는 내게 “지금의 이 풍경은 오늘 단 하루만 가능한 것”이라고. 비슷하게 반복되는 일상이지만 창 밖에 펼쳐지는 풍경과 모습을 매번 새롭고 보고 즐길 수 있어야 삶의 낙이 있지 않겠느냐...는 말을 했었다. 그랬었지. 일상 속의 새로움. 지금의 내게 절실하게 필요한 것. 그건 바로 ‘지금 이 곳에서 오늘을 충만하게 사는 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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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커 (양장) - 제3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배미주 지음 / 창비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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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지난주까지 우리집은 어수선과 너저분, 그 자체였다. 책이 여기저기 무더기로 쌓여있는 건 하루 이틀이 아니니 차치하더라도 문제는 바로 옷이었다. 계절로 치면 분명 봄, 겨울옷을 넣고 봄옷을 내놓아야 할 시점인데도 꽃샘추위가 좀처럼 물러날 기세를 보이지 않았다. 날씨가 풀렸나 해서 내복을 벗겨서 유치원에 보내면 어느새 다시 추워져서 아이는 콧물을 달고 있었다. 소빙하기니 뭐니 하는 말이 사람들 입에 심심찮게 오르내리는 날이 한동안 계속 되더니. 어느 날엔가 갑자기 더위가 찾아왔다. 일부 지방에선 30도를 웃도는 날씨. 부랴부랴 여름옷을 꺼내면서 한껏 툴툴 댔다. 무슨 넘의 날씨가 이래? 에잇, 아직 겨울옷 정리도 못했는데. 이게 뭐야. 집이 더 지저분해졌잖아!




얼마전 읽었던 <얼음 없는 세상>이란 책에서 극지방의 얼음이 녹으면서 어떤 일이 생기는지 소름끼칠 정도로 실감나게 알게 됐다. 불과 지구의 온도가 1도 가량 올랐을 뿐인데도 우리가 느끼는 불편은 엄청났다. 그런데 만약 상황이 지금보다 더 나빠진다면? 그땐 어떤 일이 벌어질까? 제 3회 창비 청소년 문학상 수상작인 <싱커>가 그 의문에 대신 답을 해준다. 온난화가 멈추거나 늦춰지지 않고 지금 그대로 계속될 경우 지구의 미래는 암울한 어둠뿐이라는 것.




21세기 중반, 인류는 포화상태의 지구를 벗어나 외계행성에서 삶을 이어나갈 수 있을지 실험해보기로 결정하고 거대 지하도시 ‘시안’과 열대우림을 재현한 ‘신아마존’을 건설한다. 하지만 그들의 계획은 성공하지 못하고 오히려 치명적인 바이러스로 인해 몰살위기에 처한 인류는 땅위의 삶을 잊고 시안에서 삶을 이어가기에 이른다.




초국적 제약회사인 바이오옥토퍼스에서 개발한 장수 유전자에 의해 평균수명이 곱절로 늘어나면서 백 살이 훨씬 넘어서까지 출산했고 그렇게 태어난 아이는 늦둥이라고 해서 기숙사에서 따로 지낸다. 주인공인 미마 역시 늦둥이로 자신의 생일을 맞아 용돈으로 기억력을 강화시켜주는 스마트약을 구하기 위해 시안에 정착하지 못한 난민들이 모여있는 메이징타운을 찾는다. 미마는 그 곳에서 헤이베이와 쿠게오를 만나고 그들에게서 살아있는 물고기와 함께 ‘싱커’라는 게임의 테스터 제의를 받는다.




한편 미마의 친구 부건은 미마가 갖고 있던 물고기가 동굴성 물고기로 원래는 눈이 없었지만 역진화에 의해 눈이 생겨났다는 걸 알아차린다. 생전에 바이오옥터퍼스사의 미생물 연구원이었지만 갑작스레 죽음을 맞은 부건의 아버지가 줄곧 연구하던 것이 바로 역진화 발생기였던 것을 떠올린 부건은 미마에게서 뇌파동조를 통해 아마존을 체험해볼 수 있다는 ‘싱커’라는 게임에 대한 얘기를 듣고 호기심을 갖는다. 그리고 미마와 부건은 유전자 귀족을 가진 탕쯔칭 패거리에게 괴롭힘을 당하던 다흡과 함께 싱커 게임을 실현시킨다. ‘맵을 실현시키고 반려수를 선택하고, 싱크하는 거야.(61쪽)’ 처음엔 호기심으로 시작된 게임이었다. 하지만 드넓게 펼쳐진 파란 하늘과 눈부신 태양 대신 인공 빛을, 몸속에 주입한 칩에 의해 홀로그램으로만 동물을 접했던 아이들은 이내 ‘싱커’게임에 빠져들어 신아마존의 자연과 동물들에게 동조하게 되자 기존의 세력과 충돌이 일어나 미마와 부건을 궁지로 몰아넣는데...




지금으로부터 150여년이 흐른 지구, 뇌파동조 게임 ‘싱커’로 인해 인공으로 건설된 거대 지하도시 시안과 신아마존, 메이징 타운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싱커>. 뒷 표지에 이 작품에서 영화 [아바타]가 연상된다는 대목이 있었지만 [아바타]를 보질 않은 나로선 오롯이 <싱커>에 집중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싱커>는 SF요소를 지니긴 했지만 내용은 그다지 새로운 면이 없었다. 다만 예전 [태고의 유전자]란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된 ‘역진화’를 부건에 의해 들었을 땐 깜짝 놀랐다. 인류의 미래를 위해 꼭 필요한 연구였지만 일부 기득권의 이해에 어긋나는 것이었기에 서랍 깊숙이 잠재우고 말았다는 대목에서 불현듯 분노가 치밀었던 기억도 떠올랐다.




눈을 감고 생각해본다. 내가 미마라면, 부건이나 다흡, 그리고 수많은 아이 중의 하나였다면... ‘싱커’를 통해 난생 처음 동물을 봤을 때, 처음 접하게 된 ‘비’를 온 몸으로 맞을 때, 그리고 저 높은 곳에 펼쳐진 파란 하늘을 봤을 때 어떤 느낌이었을까...분명 낯설면서도 무척 신기하고도 아름답다고 여기겠지. 하지만 그런 느낌들을 우리의 아이들이, 우리 후손들이 느끼지 않았으면 한다. 언제든 아름다운 자연과 동물을 접할 수 있도록, 그 속에서 밝은 희망을 잃지 않고 자랄 수 있는 미래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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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타티타
김서령 지음 / 현대문학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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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성 쌍생아.’ 한 번에 배란된 2개의 난자가 따로 수정되어 생긴 쌍생아로서, 생김새 및 성격이 서로 다르다.(네이버 백과사전)




소연과 미유. 여기 두 소녀가 있다. 서로 다른 집, 서로 다른 가족 속에서 태어났지만 두 아이는 이란성 쌍생아와 다름없었다. 엄마가 직업을 가진 일하는 여성이었기에 아이들은 너무 오래되고 어려서 채 기억할 수도 없는 영아기와 유아기, 어린 시절을 함께 보냈다. 똑같은 밥과 똑같은 간식을 먹고 똑같은 장난감으로 함께 놀았다. 똑같은 피아노 교실을 다니며 똑같은 곡을 연주했다. 티타티타. 젓가락 행진곡을.




뭐든지 똑같은 것을 공유하며 자랐지만 두 아이는 너무나 달랐다. 마치 이란성 쌍생아처럼. 소연이 싱글맘 엄마와 이모와 함께 부족하지만 사랑을 받으며 자랐다면 미유는 풍족하지만 가족 모두가 아슬아슬한 곡예를 벌이는 듯한 분위기 속에서 불안감을 안고 성장했다. 서로 상반된 성장환경은 성인이 된 아이들을 서로 다른 길에 접어들게 했다. 소연은 어린 시절 겪었던 아버지의 부재로 인해 서툴면서도 누군가를 사랑하는 걸 멈추지 않았고 미유는 사랑이라는 이름 속에 숨겨진 어둠과 두려움, 그로 인한 상처 때문에 사랑을 회피하고 멀리하려 했다.




책은 이렇게 이란성 쌍생아처럼 같으면서도 동전의 양면처럼 너무나 다른 소연과 미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성인이 되어 같은 집에서 함께 지내는 그녀들이 직업을 갖고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 사랑을 나누고, 가족들과의 관계 속에서 용서하고 화해하고 때로 상처받는 모습들을, 그런 속에서 그녀들의 가슴엔 어떤 물결이 이는지 세밀한 표현으로, 담담하면서도 절제된 문장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요구한다. 오직 그녀들을 지켜봐달라고. 어린 시절 그녀들이 생전 처음 피아노를 배울 때, 음계도 악보도 모르면서 서툴게나마 젓가락 행진곡을 연주했듯이 성인이 되었어도 마찬가지라고. 앞으로 나아가길 원한다면 성장통을 두려워해선 안된다고. 아기에서 소녀로, 소녀에서 여자로 성장하고 삶을 살아가는 과정은 모두 어찌보면 젓가락 행진곡과 같은 거라고.




소연과 미유. 결코 미워할 수 없는 두 주인공과의 만남은 나 자신을 돌아보게 했다. 서툴고 때로 실수를 하더라도, 앞으로 어떤 일이 닥쳐올지 예상조차 할 수 없더라도 삶은 살아내야 한다는 것. 자신을 둘러싼 수많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때로 상처를 받더라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 서로 겉돌고 어긋나던 음이 마침내 조화를 이룰 때, 그런 과정을 거치는 것만으로도 삶은 아름다운 게 아닐까 싶다.




연못가의 어린 두 소녀. 두 발을 담그고 물장구를 치는 모습이 마치 두 개의 손가락으로 피아노 건반을 누리는 것처럼 보인다. 티타티타....어디선가 젓가락 행진곡이 들려오는 기분이 든다. 서로 다른 두 음이 내는 조화에 귀 기울이고 있을 때...그 위를 날아가는 은빛 나비떼. 그녀들의 진정한 삶이 드디어 시작됐다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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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강의
야오간밍 지음, 손성하 옮김 / 김영사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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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 중에 한자를 공부하는 이가 있는데 중년의 나이인데도 틈틈이 공부해서 얼마전 사범자격증까지 취득했다. 늘 한자를 벗 삼아 지내선지 한문학에도 조예가 깊어서 간혹 고민거리나 조언을 청할 때면 슬며시 고전의 한 대목을 끄집어내 얘기를 하는데 전혀 특별하지 않은 애긴데도 왠지 마음에 위로가 됐다. 그때 언니가 자주 인용하는 것이 바로 <도덕경>이었다. 이해하기 쉬우면서도 그늘진 곳을 밝혀주는 느낌이 무척 좋았다. <도덕경>을 읽으면 나도 언니처럼 상대방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대화능력을 가질 수 있을까...




중국 고대의 철학자이자 도가(道家)사상의 창시자인 노자의 사상을 공부하기란 쉽지가 않을 듯했다. 왠지 보기만 해도 머리가 지끈거릴 것 같았다. 이런 핑계 저런 핑계를 대며 미루다가 드디어 한 권의 책을 만났다. 세계적인 노자 연구가로 알려진 야오간밍의 <노자강의>였다. 두툼한 고대철학 서적을 앞에 두고 언뜻 이런 생각이 들었다. 생몰 연대조차 명확하지 않은 노자. 그가 5천 글자로 써서 남긴 책에 과연 무엇이 담겼기에 2500년이란 오랜 세월을 넘어서면서까지 수많은 이들이 찾고 그 속에서 삶의 지혜를 얻는 것인가.




<노자강의>는 저자인 야오간밍 교수가 중국의 방송프로그램인 [백가강단]에서 강연한 내용을 기초로 한 것으로 2부 18강으로 구성되어 있다. 새까만 한자만 빼곡하지 않을까, 내용도 <도덕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순서대로 설명해주는 건 아닐까 걱정했는데 다행히도 책은 강의의 주제에 따라 그에 맞는 대목을 인용하면서 대화체와 구어체로 쉽게 전하고 있다. 예를 들면 2강 ‘노자, 음식의 도를 말하다’에서 노자의 ‘오미가 사람의 입맛을 버린다’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미식을 탐하던 왕의 일화로 설명한 다음 “함이 없음을 하고, 일이 없음을 일삼으며, 맛이 없음을 맛있게 여긴다(63장)”는 세상의 제아무리 맛있고 훌륭한 음식도 맛을 제대로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냐. 평범한 음식도 맛있게 먹고 느낄 수 있어야 한다며 노자의 ‘음식의 도’를 풀어낸다. 또 5강 ‘노자, 현대 여성의 아름다움을 말하다’에서 저자는 예쁜 얼굴과 섹시한 몸매를 갖기 위해 현대 여성은 너도나도 성형을 하고 이젠 멀쩡한 사람까지 ‘귀신같은 몸매’를 갖기를 원하는데 정말 애석한 노릇이라며 안타까워한다. 그러면서 미추(美醜)는 본래 사물의 양면성인데 지나치게 아름다움만을 추구하면 ‘악’으로 전환되어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먼 ‘추’가 된다는 노자의 사상을 통해 무슨 일에든 억지를 부리면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짚어준다. 이렇게 저자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일상 속에서, 삶을 살아가면서 만나게 되는 문제들을 노자의 사상과 지혜와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우리가 어떻게 풀어내면 되는지, 때론 뜨끔하고 때론 쿡쿡 웃음이 나오는 쉽고 편안한 문체로 알려준다.




‘노자가 정말 우리 곁에 있을까요?’ 저자는 제일 먼저 이런 물음을 던진다. 노자가 정말 우리 곁에 있을까. 이 말은 즉, 이미 죽어서 그의 육체가 자연으로 돌아간 노자의 사상을 현대의 우리가 왜 알아야하는지 마음에 먼저 새겨두라는 의미가 아니었을까 싶은데 저자는 자신의 물음에 세 명의 초등학생이 어떻게 대답했는지, 그 속에 숨은 의미를 넌지시 알려준다. 노자는 정말 우리의 생활 속에 함께 있다는 것. 이미 우리의 삶 속에 깊이 녹아들어 있다는 것을.




실제로 책을 읽다보니 내가 그동안 알게 모르게 노자의 사상들을 접했다는 걸 알게 됐다. 큰 인물은 쉽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각고의 노력 끝에 이뤄진다는 ‘대기만성’, 꾸밈없이 자연의 순리에 따른 삶을 산다는 ‘무위자연’, 높은 선은 물과 같아서 아래로 흐르면서 항상 낮은 곳을 채운다는 ‘상선약수’...이 모두가 노자의 사상이라니. 새삼 노자의 사상의 깊이를 깨닫게 됐다. 그리고 현실의 고통과 일상의 고단함을 극복할 수 있는 밝은 빛과 같은 지혜를 얻을 수 있었다.




내게 큰 걱정거리가 있는 까닭은 내가 몸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내게 몸이 없게 된다면, 내게 무슨 걱정이 있겠는가(13장) - 73~7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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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치를 누를 때
야마다 유우스케 지음, 박현미 옮김 / 루비박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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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졸업 후 잠깐 학원 강사를 했다. 아파트가 밀집된 곳, 다른 지역보다 생활수준이 높고 사교육 시장이 넓은 곳이어서 그만큼 학원 강사도 많았는데, 시험기간만 되면 바짝 긴장해야 했다. 시험성적을 올려야 한다는 강박감도 있었지만 그것보다 더 큰 문제가 있었다. 시험결과만 나오면 그때마다 아이들이 아파트 옥상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이번엔 어느 학교래...누구 친구라던데...우리 학원 아이가 아니라서 다행인가...하는 이야기가 강사들 사이에서 오고갔다. 살얼음판 위를 걷는 듯 아슬아슬한 느낌, 언제 터질지 모르는 고무풍선의 팽팽한 긴장감이 얼마나 소름끼치게 싫던지 곧 사표를 냈다. 그리고 알게 된 것. 아이들은 성적 때문이 아니라도 자살을 한다는 것. 너무나 쉽게(?) 자신의 생명을 끊는다는 거였다.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시원스레 펼쳐진 바다와 하늘을 닮은 파란색 표지, 높다란 철조망 위를 훌쩍 뛰어넘는 아이의 모습이 그려진 <스위치를 누를 때>를 읽으면서 예전의 일이 떠올랐다. 늦은 밤까지 이어진 보충수업 시간, 아이들을 바라보며 ‘제발 무사해라. 힘들어도 견뎌내!’하고 주문을 걸던 날들, 어제 강의실에 들어섰던 아이들 모두를 오늘도 만날 수 있길 빌었던 날들이 바로 엊그제처럼 선명했다.




청소년 자살억제 프로젝트. 청소년을 비롯한 젊은이들의 자살을 억제하기 위해 정부는 한 가지 실험을 고안해낸다. 우선 무작위로 선발된 아이들이 다섯 살이 되면 심장에 특수한 전자기기를 부착하는 수술을 했다. 그런 다음 일정한 나이가 되면 센터로 보내지게 되는데, 이때 아이들에게 주어지는 것은 누르는 즉시 심정이 정지하도록 만들어진 빨간 스위치였다. 가족들과 떨어져 낯선 곳에서 지내게 된 아이들, 하루 잠깐 다른 아이들을 만나는 것이 전부인, 그것마저 감시원이 따라붙는 생활 속에서 아이들은 점점 지쳐갔다. 가족이나 친구를 비롯해 어느 누구의 면회도 금지된 채 편지도 쓸 수 없는 완전한 고독은 아이들로 하여금 서슴없이 스위치를 누르게 했다.




책의 주인공인 요헤이는 이런 아이들을 지켜보는 감시원으로 그가 있던 센터의 마지막 아이가 스위치를 누르자 요코하마로 이동하게 된다. 정부의 실험으로 수많은 아이들이 죽어가는 걸 지켜보면서 자신의 무력함을 느끼게 된 요헤이. 그는 요코하마 센터에서 놀라운 걸 목격하게 된다. 모든 행동에서 감시를 받는 하고 극한 상황 속에서도 7년 동안 살아남은 아이들이 있었다. 다카미야 마사미, 신조 료타, 코구레 기미아키, 이케다 료. 십대 사춘기에 접어든 시기의 네 아이와 만남은 요헤이의 가슴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킨다. 아이들의 일기에서 삶의 열정과 가족에 대한 애정, 희망을 감지한 요헤이. 네 명의 아이들은 요헤이에게 있어 더 이상 감시의 대상이 아니었다. 마치 요헤이는 아이들이 자신 의 동생처럼 여기고 그들에게 말을 건네며 조금씩 다가서는데 처음엔 요헤이를 낯설게 여기던 아이들도 차츰 마음의 문을 열게 되게 된다. 하지만 이케다 료가 어느 날 빨간 스위치를 누르자 요헤이는 남은 세 명의 아이들을 탈출시키기에 이르는데...




젊은이들의 자살을 억제하기 위해, 어떤 상황 속에서 인간이 자살을 결심하고 행동으로 옮기는지 밝혀내기 위한 실험 '자살억제 프로젝트'. 책을 읽는 내내 의문이 들었다. 과연 이런 실험으로 자살을 억제할 수 있을까. 실험을 위해 감금된 아이들에게 미래는 있을까. 스위치를 누르지 않고 끝까지 살아남더라도 그 아이의 마음엔 어떤 상처가 남을 것인가. 실험의 주체였던 정부의 행위는 과연 정당한가.




비인간적인 실험을 행하는 정부에 분노하고 아이들이 처한 상황에 안타까움을 느끼며 책을 읽고 나자마자 충격적인 소식을 접했다. 15~24세 청소년의 사망원인 1위가 바로 자살이라는 거였다. 성적 때문에, 직장 때문에 스스로 자신의 생명을 끊는 아이들. 소설 속에서 만난 아이들이 현실의 세계로 걸어 나왔다. 아이들의 손에 정녕 스위치를 쥐어져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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