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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타티타
김서령 지음 / 현대문학 / 2010년 4월
평점 :
품절
‘이란성 쌍생아.’ 한 번에 배란된 2개의 난자가 따로 수정되어 생긴 쌍생아로서, 생김새 및 성격이 서로 다르다.(네이버 백과사전)
소연과 미유. 여기 두 소녀가 있다. 서로 다른 집, 서로 다른 가족 속에서 태어났지만 두 아이는 이란성 쌍생아와 다름없었다. 엄마가 직업을 가진 일하는 여성이었기에 아이들은 너무 오래되고 어려서 채 기억할 수도 없는 영아기와 유아기, 어린 시절을 함께 보냈다. 똑같은 밥과 똑같은 간식을 먹고 똑같은 장난감으로 함께 놀았다. 똑같은 피아노 교실을 다니며 똑같은 곡을 연주했다. 티타티타. 젓가락 행진곡을.
뭐든지 똑같은 것을 공유하며 자랐지만 두 아이는 너무나 달랐다. 마치 이란성 쌍생아처럼. 소연이 싱글맘 엄마와 이모와 함께 부족하지만 사랑을 받으며 자랐다면 미유는 풍족하지만 가족 모두가 아슬아슬한 곡예를 벌이는 듯한 분위기 속에서 불안감을 안고 성장했다. 서로 상반된 성장환경은 성인이 된 아이들을 서로 다른 길에 접어들게 했다. 소연은 어린 시절 겪었던 아버지의 부재로 인해 서툴면서도 누군가를 사랑하는 걸 멈추지 않았고 미유는 사랑이라는 이름 속에 숨겨진 어둠과 두려움, 그로 인한 상처 때문에 사랑을 회피하고 멀리하려 했다.
책은 이렇게 이란성 쌍생아처럼 같으면서도 동전의 양면처럼 너무나 다른 소연과 미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성인이 되어 같은 집에서 함께 지내는 그녀들이 직업을 갖고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 사랑을 나누고, 가족들과의 관계 속에서 용서하고 화해하고 때로 상처받는 모습들을, 그런 속에서 그녀들의 가슴엔 어떤 물결이 이는지 세밀한 표현으로, 담담하면서도 절제된 문장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요구한다. 오직 그녀들을 지켜봐달라고. 어린 시절 그녀들이 생전 처음 피아노를 배울 때, 음계도 악보도 모르면서 서툴게나마 젓가락 행진곡을 연주했듯이 성인이 되었어도 마찬가지라고. 앞으로 나아가길 원한다면 성장통을 두려워해선 안된다고. 아기에서 소녀로, 소녀에서 여자로 성장하고 삶을 살아가는 과정은 모두 어찌보면 젓가락 행진곡과 같은 거라고.
소연과 미유. 결코 미워할 수 없는 두 주인공과의 만남은 나 자신을 돌아보게 했다. 서툴고 때로 실수를 하더라도, 앞으로 어떤 일이 닥쳐올지 예상조차 할 수 없더라도 삶은 살아내야 한다는 것. 자신을 둘러싼 수많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때로 상처를 받더라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 서로 겉돌고 어긋나던 음이 마침내 조화를 이룰 때, 그런 과정을 거치는 것만으로도 삶은 아름다운 게 아닐까 싶다.
연못가의 어린 두 소녀. 두 발을 담그고 물장구를 치는 모습이 마치 두 개의 손가락으로 피아노 건반을 누리는 것처럼 보인다. 티타티타....어디선가 젓가락 행진곡이 들려오는 기분이 든다. 서로 다른 두 음이 내는 조화에 귀 기울이고 있을 때...그 위를 날아가는 은빛 나비떼. 그녀들의 진정한 삶이 드디어 시작됐다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