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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치를 누를 때
야마다 유우스케 지음, 박현미 옮김 / 루비박스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대학졸업 후 잠깐 학원 강사를 했다. 아파트가 밀집된 곳, 다른 지역보다 생활수준이 높고 사교육 시장이 넓은 곳이어서 그만큼 학원 강사도 많았는데, 시험기간만 되면 바짝 긴장해야 했다. 시험성적을 올려야 한다는 강박감도 있었지만 그것보다 더 큰 문제가 있었다. 시험결과만 나오면 그때마다 아이들이 아파트 옥상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이번엔 어느 학교래...누구 친구라던데...우리 학원 아이가 아니라서 다행인가...하는 이야기가 강사들 사이에서 오고갔다. 살얼음판 위를 걷는 듯 아슬아슬한 느낌, 언제 터질지 모르는 고무풍선의 팽팽한 긴장감이 얼마나 소름끼치게 싫던지 곧 사표를 냈다. 그리고 알게 된 것. 아이들은 성적 때문이 아니라도 자살을 한다는 것. 너무나 쉽게(?) 자신의 생명을 끊는다는 거였다.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시원스레 펼쳐진 바다와 하늘을 닮은 파란색 표지, 높다란 철조망 위를 훌쩍 뛰어넘는 아이의 모습이 그려진 <스위치를 누를 때>를 읽으면서 예전의 일이 떠올랐다. 늦은 밤까지 이어진 보충수업 시간, 아이들을 바라보며 ‘제발 무사해라. 힘들어도 견뎌내!’하고 주문을 걸던 날들, 어제 강의실에 들어섰던 아이들 모두를 오늘도 만날 수 있길 빌었던 날들이 바로 엊그제처럼 선명했다.
청소년 자살억제 프로젝트. 청소년을 비롯한 젊은이들의 자살을 억제하기 위해 정부는 한 가지 실험을 고안해낸다. 우선 무작위로 선발된 아이들이 다섯 살이 되면 심장에 특수한 전자기기를 부착하는 수술을 했다. 그런 다음 일정한 나이가 되면 센터로 보내지게 되는데, 이때 아이들에게 주어지는 것은 누르는 즉시 심정이 정지하도록 만들어진 빨간 스위치였다. 가족들과 떨어져 낯선 곳에서 지내게 된 아이들, 하루 잠깐 다른 아이들을 만나는 것이 전부인, 그것마저 감시원이 따라붙는 생활 속에서 아이들은 점점 지쳐갔다. 가족이나 친구를 비롯해 어느 누구의 면회도 금지된 채 편지도 쓸 수 없는 완전한 고독은 아이들로 하여금 서슴없이 스위치를 누르게 했다.
책의 주인공인 요헤이는 이런 아이들을 지켜보는 감시원으로 그가 있던 센터의 마지막 아이가 스위치를 누르자 요코하마로 이동하게 된다. 정부의 실험으로 수많은 아이들이 죽어가는 걸 지켜보면서 자신의 무력함을 느끼게 된 요헤이. 그는 요코하마 센터에서 놀라운 걸 목격하게 된다. 모든 행동에서 감시를 받는 하고 극한 상황 속에서도 7년 동안 살아남은 아이들이 있었다. 다카미야 마사미, 신조 료타, 코구레 기미아키, 이케다 료. 십대 사춘기에 접어든 시기의 네 아이와 만남은 요헤이의 가슴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킨다. 아이들의 일기에서 삶의 열정과 가족에 대한 애정, 희망을 감지한 요헤이. 네 명의 아이들은 요헤이에게 있어 더 이상 감시의 대상이 아니었다. 마치 요헤이는 아이들이 자신 의 동생처럼 여기고 그들에게 말을 건네며 조금씩 다가서는데 처음엔 요헤이를 낯설게 여기던 아이들도 차츰 마음의 문을 열게 되게 된다. 하지만 이케다 료가 어느 날 빨간 스위치를 누르자 요헤이는 남은 세 명의 아이들을 탈출시키기에 이르는데...
젊은이들의 자살을 억제하기 위해, 어떤 상황 속에서 인간이 자살을 결심하고 행동으로 옮기는지 밝혀내기 위한 실험 '자살억제 프로젝트'. 책을 읽는 내내 의문이 들었다. 과연 이런 실험으로 자살을 억제할 수 있을까. 실험을 위해 감금된 아이들에게 미래는 있을까. 스위치를 누르지 않고 끝까지 살아남더라도 그 아이의 마음엔 어떤 상처가 남을 것인가. 실험의 주체였던 정부의 행위는 과연 정당한가.
비인간적인 실험을 행하는 정부에 분노하고 아이들이 처한 상황에 안타까움을 느끼며 책을 읽고 나자마자 충격적인 소식을 접했다. 15~24세 청소년의 사망원인 1위가 바로 자살이라는 거였다. 성적 때문에, 직장 때문에 스스로 자신의 생명을 끊는 아이들. 소설 속에서 만난 아이들이 현실의 세계로 걸어 나왔다. 아이들의 손에 정녕 스위치를 쥐어져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