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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커 (양장) - 제3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배미주 지음 / 창비 / 201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불과 지난주까지 우리집은 어수선과 너저분, 그 자체였다. 책이 여기저기 무더기로 쌓여있는 건 하루 이틀이 아니니 차치하더라도 문제는 바로 옷이었다. 계절로 치면 분명 봄, 겨울옷을 넣고 봄옷을 내놓아야 할 시점인데도 꽃샘추위가 좀처럼 물러날 기세를 보이지 않았다. 날씨가 풀렸나 해서 내복을 벗겨서 유치원에 보내면 어느새 다시 추워져서 아이는 콧물을 달고 있었다. 소빙하기니 뭐니 하는 말이 사람들 입에 심심찮게 오르내리는 날이 한동안 계속 되더니. 어느 날엔가 갑자기 더위가 찾아왔다. 일부 지방에선 30도를 웃도는 날씨. 부랴부랴 여름옷을 꺼내면서 한껏 툴툴 댔다. 무슨 넘의 날씨가 이래? 에잇, 아직 겨울옷 정리도 못했는데. 이게 뭐야. 집이 더 지저분해졌잖아!
얼마전 읽었던 <얼음 없는 세상>이란 책에서 극지방의 얼음이 녹으면서 어떤 일이 생기는지 소름끼칠 정도로 실감나게 알게 됐다. 불과 지구의 온도가 1도 가량 올랐을 뿐인데도 우리가 느끼는 불편은 엄청났다. 그런데 만약 상황이 지금보다 더 나빠진다면? 그땐 어떤 일이 벌어질까? 제 3회 창비 청소년 문학상 수상작인 <싱커>가 그 의문에 대신 답을 해준다. 온난화가 멈추거나 늦춰지지 않고 지금 그대로 계속될 경우 지구의 미래는 암울한 어둠뿐이라는 것.
21세기 중반, 인류는 포화상태의 지구를 벗어나 외계행성에서 삶을 이어나갈 수 있을지 실험해보기로 결정하고 거대 지하도시 ‘시안’과 열대우림을 재현한 ‘신아마존’을 건설한다. 하지만 그들의 계획은 성공하지 못하고 오히려 치명적인 바이러스로 인해 몰살위기에 처한 인류는 땅위의 삶을 잊고 시안에서 삶을 이어가기에 이른다.
초국적 제약회사인 바이오옥토퍼스에서 개발한 장수 유전자에 의해 평균수명이 곱절로 늘어나면서 백 살이 훨씬 넘어서까지 출산했고 그렇게 태어난 아이는 늦둥이라고 해서 기숙사에서 따로 지낸다. 주인공인 미마 역시 늦둥이로 자신의 생일을 맞아 용돈으로 기억력을 강화시켜주는 스마트약을 구하기 위해 시안에 정착하지 못한 난민들이 모여있는 메이징타운을 찾는다. 미마는 그 곳에서 헤이베이와 쿠게오를 만나고 그들에게서 살아있는 물고기와 함께 ‘싱커’라는 게임의 테스터 제의를 받는다.
한편 미마의 친구 부건은 미마가 갖고 있던 물고기가 동굴성 물고기로 원래는 눈이 없었지만 역진화에 의해 눈이 생겨났다는 걸 알아차린다. 생전에 바이오옥터퍼스사의 미생물 연구원이었지만 갑작스레 죽음을 맞은 부건의 아버지가 줄곧 연구하던 것이 바로 역진화 발생기였던 것을 떠올린 부건은 미마에게서 뇌파동조를 통해 아마존을 체험해볼 수 있다는 ‘싱커’라는 게임에 대한 얘기를 듣고 호기심을 갖는다. 그리고 미마와 부건은 유전자 귀족을 가진 탕쯔칭 패거리에게 괴롭힘을 당하던 다흡과 함께 싱커 게임을 실현시킨다. ‘맵을 실현시키고 반려수를 선택하고, 싱크하는 거야.(61쪽)’ 처음엔 호기심으로 시작된 게임이었다. 하지만 드넓게 펼쳐진 파란 하늘과 눈부신 태양 대신 인공 빛을, 몸속에 주입한 칩에 의해 홀로그램으로만 동물을 접했던 아이들은 이내 ‘싱커’게임에 빠져들어 신아마존의 자연과 동물들에게 동조하게 되자 기존의 세력과 충돌이 일어나 미마와 부건을 궁지로 몰아넣는데...
지금으로부터 150여년이 흐른 지구, 뇌파동조 게임 ‘싱커’로 인해 인공으로 건설된 거대 지하도시 시안과 신아마존, 메이징 타운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싱커>. 뒷 표지에 이 작품에서 영화 [아바타]가 연상된다는 대목이 있었지만 [아바타]를 보질 않은 나로선 오롯이 <싱커>에 집중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싱커>는 SF요소를 지니긴 했지만 내용은 그다지 새로운 면이 없었다. 다만 예전 [태고의 유전자]란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된 ‘역진화’를 부건에 의해 들었을 땐 깜짝 놀랐다. 인류의 미래를 위해 꼭 필요한 연구였지만 일부 기득권의 이해에 어긋나는 것이었기에 서랍 깊숙이 잠재우고 말았다는 대목에서 불현듯 분노가 치밀었던 기억도 떠올랐다.
눈을 감고 생각해본다. 내가 미마라면, 부건이나 다흡, 그리고 수많은 아이 중의 하나였다면... ‘싱커’를 통해 난생 처음 동물을 봤을 때, 처음 접하게 된 ‘비’를 온 몸으로 맞을 때, 그리고 저 높은 곳에 펼쳐진 파란 하늘을 봤을 때 어떤 느낌이었을까...분명 낯설면서도 무척 신기하고도 아름답다고 여기겠지. 하지만 그런 느낌들을 우리의 아이들이, 우리 후손들이 느끼지 않았으면 한다. 언제든 아름다운 자연과 동물을 접할 수 있도록, 그 속에서 밝은 희망을 잃지 않고 자랄 수 있는 미래를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