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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리와 나 - 온 가족이 함께 읽는
존 그로건 지음, 황소연 옮김, 김서진 그림 / 청림아이 / 2008년 8월
평점 :
품절
어렸을 때부터 몇 년 전까지 친정집에선 줄곧 개를 길렀다.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개가 3마리 있다. 첫 번째는 내가 초등학교 입학할 무렵 집에서 기르던 개가 새끼를 7마리 낳았는데 난 그 중 가장 작은 강아지를 예뻐했다. 내 이름을 거꾸로 한 이름을 붙여주고 우유도 주고 했는데 한 달 후에 그만 죽었다. 아침에 학교가기 전에 들여다봤을 때 강아지는 이미 차갑게 굳어있었다. 놀랍고 슬픈 마음에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두 번째는 새하얀 털이 눈부시게 예뻤던 ‘지지’. 암컷이라 애교도 많았고 무척 똑똑했다. 골목 안 사람들의 발걸음을 모두 기억하고 있어서 낯선 사람이 근처에 오면 사납게 짖어대곤 했는데 어느 날 교통사고를 당했다. 그때 충격이 너무 컸던 우리는 몇 년간 개를 기르지 않았다.
그러다 우연히 찾아간 친구 집에서 ‘지지’와 꼭 닮은 강아지를 발견하고 데려왔다. 똑같이 생겼으니까 당연히 이름은 지지 2호, ‘지지’라 불렀다, 근데 지지2호는 1호와 많이 달랐다. 수컷인데다 영리하지도 않았고 벙어리가 아닌데도 결코 짖지 않는, 한마디로 덜떨어진 개였다. 게다가 걸핏하면 가출을 해서 매번 찾아서 끌고 오느라 애를 먹었다. 그 ‘지지’가 어느날 갑자기 사라졌다. 매일 온 동네 구석구석을 돌아다녔지만 찾을 수 없었다. 그러다 두 달이 지났을 때쯤 지지가 내 꿈에 찾아왔다. 예전보다 더 새하얀 털은 반짝반짝 빛이 났고 동그란 눈은 더 크고 맑게 보였다. 그날 잠에서 깨어나면서 울었던 기억이 난다. 슬펐지만 안심이 됐다. 좋은 곳으로 간 것 같아서....
예전에 <말리와 나>란 책이 출간됐을 때 표지의 말리가 낯설지 않았다. 순진한 눈빛이 지지2호와 꼭 닮았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 말리는 이제야 만났다. <온 가족이 함께 읽는 말리와 나> 이 책은 저자인 존 그로건이 말썽쟁이 사고뭉치 강아지 말리와 13년간 함께 했던 기록을 아이들을 위해 다시 출간한 아동판이다.
존 그리건과 아내 제니는 결혼한지 1년쯤 됐을 때 강아지를 새 식구로 맞이한다. 처음 보던 존과 제니에게 유난히 애정공세를 펼치던 래브라도 레트리버 강아지에게 그들은 ‘말리’란 이름을 붙여준다. 처음엔 그저 호기심 많고 건강하다고 여긴 말리는 알고 보니 애견훈련소에서 쫓겨날 만큼 덜떨어진 강아지였다.
뭔가 작은 것을 입에 감추고 있을 때면 온몸을 흔들고 실룩거리며 맘보춤을 추고 온갖 것을 먹어치우는 엄청난 식성을 자랑한다. 목욕 타월이나 양말, 휴지조각, 냅킨을 비롯해 오디오 스피커의 스펀지 커버를 야금야금 뜯어먹기도 하고 결혼기념일 선물로 존이 제니에게 선물한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꿀꺽 삼키기도 한다. 물론 그것들은 모두 말리의 똥무더기에서 찾아내긴 하지만.
또 도그 비치에서 짠 바닷물을 양껏 들이키고선 구토를 하는 것도 모자라 용변을 보는 엽기적인 행각을 벌이기도 한다. 한마디로 초강력 울트라 슈퍼 그레이트 천방지축 말썽쟁이 말리로 인해 존의 가족은 매일 우당탕탕 난리법석을 치웠지만 언제나 웃음이 넘쳤고 말리를 변함없이 사랑했다.
하루 종일 문 옆에서 주인을 기다리고 주인의 무릎 위에 올라가는 걸 삶의 큰 기쁨이자 행복으로 여기는 말리는 더 이상 애완동물이 아니었다. 나이를 먹은 말리가 관절염 때문에 다리를 절며 다닐 때 “말리, 넌 할 수 있어.” “힘내, 말리!”하며 용기를 북돋워주는 소중한 가족의 일원이었다. 13년.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그동안 말리와 존의 가족이 일궈나간 진정한 사랑과 우정, 기쁨과 슬픔, 만남과 헤어짐은 정말 감동적이었다.
<온 가족이 함께 읽는 말리와 나>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순진하다 못해 멍청하기까지 했던 ‘지지2호’가 생각났다. 텅 빈 집에 홀로 쓸쓸하게 지낼 친정엄마를 떠올라 전화를 했다.
“엄마, 매일 혼자 뭐하우? 심심하지 않아? 강아지 키워보실래요?”
“아이고, 됐다. 지금까지 내가 뒷산에 묻은 개가 몇 마린 줄 아나?....내가 얼마나 살지도 모르고....이제 개는 그만 키울란다.”
말리를 묻은 다음해 여름, 존과 제니는 말리를 꼭 닮은 강아지를 신문에서 발견한다. ‘성질이 좀 팔팔함!’이란 소개글에 그들은 말리가 천국에서 돌아왔다면서 기쁨을 감추지 못한다. 재미삼아 한번 가볼까, 밑져봐야 본전...이라며 맞장 치는 존과 제니. 말리2호를 만난 그들의 다음 이야기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 마음에 남는 대목.
개들의 삶 속에서는 벽지와 방석, 깔개는 뜯으라고 있는 것이었다. 그것은 우리가 말리에게서 기쁨과 웃음, 보호와 우정을 대신 치러야하는 대가였다. 말리한테 쏟아 부은 돈과 녀석이 망가뜨려 놓은 것들을 합하면 요트 한 척 값은 충분히 되겠지만, 우리는 그것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 - 165쪽.
어젯밤에 나는 최악의 순간 말리의 죽음을 맞이할 마음의 준비를 했었다...이제 행복으로 가득했던 말리의 길고 긴 삶도 끝나나 보다 했었는데 말리가 내 곁으로 돌아온 것이다. 나는 말리의 머리를 들어 올려 눈을 맞추었다. “때가 되면 나한테 알려줘야 한다, 응?” 내 말을 질문이라기보다 부탁에 가까웠다....“내게 알려줘야 해, 알았지?” - 208쪽.
말리는 파란만장한 긴 삶의 터널을 지나 고요한 황혼기에 이르러 있었다. 나중에 돌이켜보니, 그날 밤 벽난로 앞에서 함께 보낸 시간은 우리의 작별 파티였다. - 212쪽.
나는 말리에게서 하루하루를 즐거움으로 채우며 지내는 법을 배웠다. 순간에 충실하고 마음이 시키는 대로 사는 법을 배웠고, 숲 속을 걷는 것이나 하늘에 날리는 눈송이처럼 대단치 않은 일에 기뻐하고 감사할 줄 아는 것도 배웠다. 무엇보다, 말리는 진실한 친구가 어떤 것인지를 내게 가르쳐 주었다..... 덜떨어지고 천방지축인 개 한 마리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을 일깨워 주다니...- 230~23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