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처럼
가네시로 카즈키 지음, 김난주 옮김 / 북폴리오 / 2008년 8월
평점 :
절판


 

 

가네시로 가즈키. 재일교포로선 처음으로 ‘나오키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그는 정말 유명했다. 그의 작품 몇 편이 한꺼번에 번역 출간되고 영화로도 제작됐다. 너도나도 가네시로 가즈키의 책을 읽는 분위기였지만 난 왠지 그의 책에 손이 가질 않았다. 책장에 꽂혀있는 그의 책을 줄곧 쏘아보기만 할 뿐이었다. 언제 읽지? 지금 읽을까? 아니, 아직은 아냐... 그러다 덤벼들었다. <영화처럼>이란 제목에 나도 모르게 빨려들었다.




처음 만나는 가네시로 가즈키의 소설은 <태양은 가득히>란 단편이었다. 데뷔 소설이 영화로 제작되는 현장을 찾은 주인공이 우연히 어린 시절의 친구를 떠올린다는 내용이다. 주인공과 친구 용일은 텔레비전이나 극장에서 본 영화이야기를 하면서 서로 공감을 나눴지만 고등학생이 되면서 정반대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서로를 너무나 잘 이해하는데 비해 너무 멀어진 두 사람은 구민회관에서 [로마의 휴일]이 상영된 날을 기점으로 변화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두 사람은 극적으로 다시 만나게 되는데...주인공은 역시 아버지가 없는 게 좋다던 용일이 난생처음 ‘구원’을 느꼈다는 대목이 뭉클했고 단편 속 주인공이 조총련계 학교를 다니는 설정이라 그런지 저자와 주인공이 동일인물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두 번째 <정무문>에서는 어느날 갑자기 남편이 자살한 충격으로 집에 틀어박혀 지내는 주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남편이 빌린 비디오 테이프가 연체됐다는 전화를 받고 몇 달 만에 외출한 그녀는 비디오 대여점의 직원이 추천하는 영화들을 보면서 웃음을 터뜨리고 서서히 자신감을 회복한다. 그리고 <정무문>의 이소룡처럼 자신 안의 어둠과 공포, 부정한 세상에 맞서 싸울 용기를 되찾는다. <프랭키와 자니>에선 유난히 돈을 밝히는 변호사 아버지가 맡은 사건의 보석금을 훔쳐 가출을 계획하는 고등학생 커플이, <페일 라이더>에서는 가족을 모두 잃은 주부가 야쿠자에게 복수를 감행한다.




그리고 마지막 <사랑의 샘>에서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삶의 의욕을 잃은 위태위태한 할머니를 되살리기 위해 손자들이 ‘<로마의 휴일> 상영계획’ 작전을 펼친다는 내용인데 감동이나 여운이 가장 크게 남았다. 아무리 심각한 문제도 ‘괜찮아 오라’의 마법으로 금방 해결하는 할머니에 대한 손자들의 사랑은 할머니가 할아버지와 처음 봤던 영화인 [로마의 휴일]를 상영하기 위해 상영 장소를 비롯해 필름을 구하는 난관도 극복해나간다. 8월 31일, 드디어 구민회관에서 <로마의 휴일>을 상영하는 날, 할머니는 모처럼 환한 미소를 짓는데...




<태양은 가득히> <정무문> <프랭키와 자니> <페일 라이더> <사랑의 샘> 이 다섯 개의 단편은 주인공도 내용도 다르지만 공통점이 있다. 모두 <로마의 휴일>로 연결된다는 점이다.




서로 이웃한 동네에 살면서 제약회사의 비리사건으로 뒤숭숭한 가운데 ‘힐츠’란 비디오 대여점을 이용하고 산책길에 블루테리어를 만나기도 하던 이들이 모두 8월 31일 구민회관에서 상영되는 [로마의 휴일]을 보기 위해 모여든다. 눈매가 험악해서 직업이 의심스런 사내를 비롯해 비디오 대여점 알바생과 예쁜 여인, 부모의 이혼으로 의기소침해진 소년과 아줌마, 고등학생 커플은 모두 어둠이 내려앉은 스크린에 동화되어 간다. 앤 공주 역의 오드리 햅번의 행동에 웃음을 터뜨리고 마지막 기자회견장에서 “로마입니다. 살아있는 한 이곳에서의 추억을 잊지 못할 거예요”란 말에 환성을 보낸다. 각자가 저마다 다른 사정과 상황 속에 처해있지만 그들 모두에게 8월 31일 구민회관에서 본 [로마의 휴일]은 아마 영원히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거란 생각이 들었다.




가네시로 가즈키의 소설은 이 책이 처음이라 그의 작품에 대해 뭐라 말할 순 없다. 일상의 가벼운 소재로 나긋나긋 조용히 얘기하지만 결코 그렇다고 밋밋하지도 않다. 아련하고 극적이고 아슬아슬한 등장인물들의 모습에서 가슴 한 켠이 따뜻해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마치 현 편의 감동적인 영화를 봤을 때처럼.




책장을 덮고 일어서는데 저자의 말 한마디가 따라온다.




불이 꺼지면 이번에는 또 어떤 이야기를 볼 수 있을까. 이번에는 또 어떤 등장인물을 만날 수 있을까....우린 스크린 속에서 움직이는 등장인물이 될 수 있어. 개똥 같은 현실에서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는 거지. 그래서 극장의 어둠 속에 있을 때는 신나고 가슴이 설레는 것 아닐까? 어때, 네 생각은? - 31쪽.




참, 책을 읽고 궁금한 게 생겼다. <태양은 가득히>의 원작 소설에선 톰 리플리는 잡히지 않는다는데, 정말인가? [쇼생크 탈출]의 주인공 이름이 ‘듀플레인’인데 숨겨진 의미가 있었나? 레드가 초원을 걸어갈 때 메뚜기가 날아다니는 이유는 뭐지? 도대체 뭐예요? 알려줄래요? 가네시로 가즈키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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