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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책들과의 만남 (양장본)
데이비드 덴비 지음, 김번.문병훈 옮김 / 씨앗을뿌리는사람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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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들과의 독서모임을 7년째 이어오고 있다. 올해는 한가지 계획을 세웠다. 한 달 혹은 두 달에 한 권이라도 좋으니 고전을 읽고 함께 얘기해보자는 것. 그런데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 멤버 전원이 모이기도 힘들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책을 읽은 사람이 없어서다. 왜냐고? 어려우니까. 고전 한 권 읽으려고 한 달을 고전하다가 결국 포기해버리는 거였다. 이러길 몇 번 반복하고 나니 의문이 생긴다. 이 어려운 고전을 왜 다들 읽어야 한다고 하는 거지? 대체 이유가 뭐야?




<위대한 책들과의 만남>. 서점에서 이 책을 볼 때마다 얼마나 눈독을 들였는지 모른다. 세상 모든 고전의 원조. 불멸의 고전. 위대한 책들을 단순히 소개하는 게 아니라 ‘만남’을 갖게 해준다니! 솔깃했다. 이 책만 있으면 지금까지 고전으로 고전해왔던 나의 고생이 끝이 날 것 같았다.




책의 저자인 데이비드 덴비는 영화평론가이자 저술가로서 오랫동안 활동해왔다. 그런 그가 어느날 청강생이 되어 자신이 30년 전에 졸업했던 대학으로 다시 돌아갔다. 그것도 마흔여덟의 나이에. 대체 이유가 뭘까. ‘이 사람, 제정신이야?’란 생각이 들 정도의 결단을 내린 이유는 바로 정보의 범람에 있었다. 인터넷과 텔레비전 같은 미디어를 통해 쏟아져 나오는 엄청난 정보들. 그걸 채 소화시키지 못하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새로운 정보에 갈증을 느끼는 자신을  발견한 것이다. 자신이 애써 쌓아올린 건물의 기초가 흔들리고 정체성마저 모호해지고 있다는 위기감. 고민 끝에 저자는 자신에게 필요한 건 ‘진지한 읽기’라 느끼고 모교를 찾는다. 컬럼비아 대학 학부생들의 교양필수 과목인 [현대문명]과 [인문학과 문학] 강좌를 1년 동안 청강하기로 한 것이다. <위대한 책들과의 만남>은 바로 저자가 두 번째로 맞은 대학생활 1년 동안을 기록한 책이다.




긴 머리말을 읽고 본문에 들어갈 때 가슴이 두근댔다. 어떤 책을 읽게 될까. 머릿속에선 유명한 고전의 제목들이 마구 떠올랐다. 그런데! 이런 세상에!! 당연히 책의 제목이 있을거라 예상했던 곳엔 저자들의 이름이 자리하고 있었다. 호머, 사포, 소포클레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입이 떡 벌어졌다. 정말로 위대한 책을 쓴 위대한 인물들 아닌가. 이거 왠지 엄청 고전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드는걸....




한 권의 책을 읽으면서 토론하는 거라 생각했는데 어느 인물이 쓴 대표작을 정해두고 그걸 읽으면서 교수와 학생들이 서로 토론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작품의 구조를 비롯해서 형태, 상황, 등장인물의 말과 행위에 숨은 의미, 작품의 배경이 미치는 영향, 저자가 숨겨둔 의미...이런 것들을 학생들이 찾아낼 수 있도록 교수는 끊임없이 질문했다. 그래서? 어떻게 됐지? 어떤 내용이었지?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교수의 질문에 처음엔 당황하고 대답을 회피하던 학생들이  조금씩 자신의 의견을 내놓으면서 활발한 논쟁을 벌이고 있었다. 단순히 한 권의 책을 읽고 이해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좀 더 깊이 생각하고 사고하여 자신의 본질은 무엇인지 돌아보고 재정립해나가는 모습은 무척 인상적이었다. 그들의 교육환경이 부러웠다. 결코 쉽지 않은 강좌를 오랫동안 이어오고 있는 그들의 의지가 존경스러웠다.




천 페이지에 가까운 두꺼운 책을 저자처럼 청강생이 된 기분으로 읽어나갔다. 신이 난다고 할 정도로 책이 잘 읽혀질 때가 있는가하면 겨우 십여 페이지를 가지고 며칠에 걸쳐서 골머리를 싸매기도 했다. 거의 모든 책들이 내가 읽지 않은 거여서 교수와 학생들의 토론내용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어서 안타까웠다. 실제 수업에 참가하기라도 한 것처럼 교수의 질문 하나하나에 가슴이 뜨끔했다.




내게서 고전은 아득히 먼 곳에 있었다. 저 멀리 있는 게 무언지 궁금했지만  확인하기 위해 가까이 다가가려고 하지는 않았다. 굳이 고전을 읽지 않아도 삶을 잘 꾸려나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자만에 빠져있었다. 저자를 통해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됐다. 저자 덕분에 줄곧 제자리에서 맴돌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삶의 근원적인 문제에 대해 접근할 수 있는 책을 읽어야겠다. 좀 더 많이, 깊이 고민해봐야겠다. 그런 다음 내 삶의 방향을 점검해보자. 이런 내게 누군가 조언을 한다. 절대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대로 받아들이지 말라고. 위대한 문학 작품 속의 모든 것들은 때로 정반대를 뜻할 수도 있다는 걸 명심하라며 힘주어 말한다.




여러분은 자아를 확립하기 위해 여기에 왔습니다. 여러분은 자아를 물려받는 게 아니라 창조하는 겁니다. 자아를 창조하는 한 가지 방법은 과거로부터 창조하는 겁니다. - 8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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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인 섹스 - 일하는 뇌와 사랑하는 뇌의 남녀 차이
앤 무어.데이비드 제슬 지음, 곽윤정 옮김 / 북스넛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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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거리 여행시 앞좌석 금지!’ 남편이 내게 금지한 것 중의 하나다. 도와준답시고 앞자리에 앉아 지도를 보는 것까지는 좋았다. 문제는 바로 그 다음. 위치나 방향을 미리미리 알려줘야 하는데 “앗, 여기야!” “바로 지금! 여기서 우회전!!!” “아~악, 그냥 지나치면 어떡해!!” 이렇게 난리법석을 떨었더니 남편은 “야,  담부터는 조용히 뒤에 있어라. 이러다 사고나지. 무슨 여자가...사람 정신을 빼놓냐?”한다. 나도 나름 노력했는데 그걸 몰라주다니 너무하잖아.




그뿐이 아니다. 마트에 가선 내가 늑장부린다거나 구입한 물건들 박스에 포장도 할 줄 모른다며 타박한다. 집안청소 할 땐 제대로 정리정돈 못하고 오히려 쌓아놓기만 한다고 투덜댄다. 그러면서 덧붙이는 한마디. “이래서 여자는...차암, 편하겠어” 뭐야뭐! 불만 있음 똑바로 말을 하라고!!




남자와 여자. 왜 이럴까. 어디가 어떻게 다르길래 이렇게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걸까. 남자와 여자의 차이를 알고 싶어서 ‘화성남자, 금성여자’란 책을 읽고 싶었지만 아직 구입도 하지 않았다. 그런 차에 반가운 책을 만났다. <브레인 섹스>.




‘일하는 뇌와 사랑하는 뇌의 남녀 차이’란 부제의 <브레인 섹스>는 한마디로 남자와 여자는 같을 수가 없으니 다르다는 걸 인정하라는 거다. 그렇다면 왜 같은 수가 없는가. 그 이유는 바로 ‘뇌’에 있다고 한다. 부모에 의해서 남자나 여자로 길러지는 게 아니라 태어난다는 것. 어떻게? 유전자적인 성별은 수정시 결정되지만 뇌의 구조는 임신 6주 정도에 판가름난다. 자궁 속의 태아가 남성호르몬의 노출여부에 따라 남자의 뇌를 갖거나 여자의 뇌를 갖게 된다고 한다.




책에서 내가 가장 관심있게 본 것은 4장과 5장이었다. 선천적인 뇌 구조의 차이로 인해 남자아이와 여자아이는 어떤 성장과정을 거치는지 알고 싶었다. 말하는 시기가 여자 아이가 남자 아이보다 빠르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 이유를 몰랐는데, 저자는 그것 역시 여자 아이들의 뇌 구조 때문인데 여자 아이는 남자 아이보다 청각이 상대적으로 발달되어 있어서 읽기 능력도 앞선다는 것이다. 반면에 남자아이는 청각보다 시각 기능이 발달되어 있어서  공간이나 사물을 탐색하는 걸 좋아하며 호기심이 많아 직접 탐험하면서 스스로 알아내는 걸 즐긴다고 한다.




흔히 초등 저학년때 여자 아이들의 성적이 월등하다가 나중엔 남자아이들이 앞서는 이유도 남녀의 뇌 구조의 차이에서 오는 거였다. 그런데도 여자아이보다 학습능력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수많은 ‘정상적인’ 남자 아이들을 ‘질병’으로 오인하여 약이 처방되었다는 대목에서 아들을 키우는 엄마로서 마음이 아팠다. 또 사춘기를 맞은 남녀의 뇌가 급격한 변화를 일으켜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 갑자기 증가한 호르몬으로 인해 공격성이 나타난 아이들이 어떤 행동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저자는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구체적인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호르몬에 의해 남자의 행동을 보이는 여자, 혹은 그 반대의 경우가 있다는 것과 터너증후군을 앓거나 뇌가 발달하는 시기에 필요한 자극을 제대로 받지 못하면 언어능력이 정상적으로 발달하지 못한다는 것, 심각한 스트레스를 받는 임산부에게서 태어난 아이들은 동성애자로 성장할 위험이 높다는 대목은 충격적이었다.




이제 인정하자. 남자와 여자. 결코 같을 수가 없다. 같아서도 안된다. 뇌의 구조가 나와 같은 남편과 산다고 생각해보라. 이것보다 더한 악몽이 있을까. 이것 하나만 기억하자. 서로 다르기에 더욱 매력적인 존재다. 남자와 여자는.




참, 책에는 자신의 뇌성별을 알아보는 검사가 있어서 남편과 해봤다. 구체적으로 어떤 결과가 나왔는지 말 할 수 없지만 끝난 후 서로 마구 놀려줬다는 것만 밝힌다. “세상에 빵점이 뭐야? 빵점이” “얼씨구, 그럼 너는? 그런 점수도 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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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드라마 한 장으로 보는 지식 계보도 1
최복현 지음 / 풀로엮은집(숨비소리)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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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기억난다. 몇 년 전 우리나라에 그리스로마신화 광풍이 불었다. 토마스 불핀치의 그리스로마신화를 만화로 제작한 그 책의 독자는 주로 초등학생이었는데 당시 그 책을 읽지 않으면 아이들끼리 대화가 되지 않을 정도였다. 나도 외우기 힘든 신들의 이름을 채 10살도 되지 않는 아이들이 줄줄 외는 걸 보고  충격을 받았던 적이 있다.




한 장으로 읽는 그리스 신화 계보도 <신화 드라마>를 손에 들고 또 기대를 한다. 도전할 때마다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접어야 했던 그리스 신화!! 이제 제대로 읽어볼 수 있을까.




먼저 책날개에 소개된 저자의 최복현의 이력을 보고 놀라웠다. 주경야독으로 학자의 길에 들어서서 무엇보다 ‘인문학의 대중화’에 주력해왔던 그가 ‘까다롭고 복잡한 그리스 신화의 세계를 보다 단순화하고 신화에 쉽게 접근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에서 <신화 드라마>를 집필했다. 너무나 많은 신들, 이리저리 서로 얽혀있는 신들의 관계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보이겠다며 그리스 신화의 세계로 초대했다. 




책은 크게 3장으로 나뉜다. 1장 ‘신화의 발견’에서는 본격적인 그리스 신화를 다루기에 앞서 먼저 신이 무엇인지, 인간이 왜 신이란 존재를 만들었는지 얘기한다. 세계의 여러 신화 중에 우리가 유독 그리스 신화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리스 신들이 우리 인간과 흡사하다는 점에 있다며 그리스 신들은 인간과 비슷한 모습을 하고서 우리들처럼 사랑과 시기, 질투, 미움 같은 감정을 느끼고 심지어 약점까지도 닮아있다고 한다. 또 신화엔 4가지 종류가 있다는 것에서부터 그리스 신화를 읽기 전에 알야둬야할 몇 가지 사항, 신의 이름이 어떤 어미로 끝나는지에 따라 남신인지 여신인지 구분할 수 있다는 것과 신의 이름에 담긴 의미와 그리스 신화의 전체 틀을 간략하게 알려주고 있다.




2장 ‘그리스 신들의 탄생과 계보’에서 드디어 본격적인 신화, 신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 책에서 저자는 여러 신화들과 다른 견해를 내놓는다. 카오스는 단순히 혼돈의 상태가 아니라 ‘태초의 신’이었다는 것이다. 1세대 신으로 카오스에서 2세대 신인 대지의 신 가이아와 하늘의 신 우라노스가 나왔으며 그들이 결합해서 거인 신들이 탄생했으며 3세대 신에 이르러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제우스를 비롯한 올림포스의 12신이 등장한다. 그리고 제우스와 그의 형제자매들의 자손인 4세대 신에서부터 인간이 탄생한다. 프로메테우스가 진흙을 빚어 인간을 만든 것도 모자라 불까지 전하자 제우스는 분노하여 인류 최초의 여자인 판도라를 만들고 그녀로 하여금 온갖 질병과 불행, 절망을 퍼뜨리게 하여  인간들을 혼란과 고통에 빠지게 한다.




끝으로 3장 ‘신의 후예가 세운 인간의 나라’에서는 아테네 왕가를 비롯해 탄탈로스 왕사, 헤라클레스 왕가, 레다 가의 왕가, 트로이 왕가 등의 계보를 살펴보면서 그들이 인간의 세계와 역사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얘기한다. 신들이 정략적으로 개입하면서 벌어진 트로이 전쟁의 전개과정에 대해서도 알려주고 있다.




<신화 드라마> 이 책이 지금까지 출간된 수많은 그리스 신화 관련책과 다른 점은 바로 이러저리 복잡하게 얽혀있는 그리스 신들의 관계를 한 장의 그림으로 정리한 부록 ‘한 장으로 보는 그리스 신화 계보도’다. 그리스 신들의 가계도를 여러 가지 색깔을 사용해서 표시해두어 책을 읽을 때 옆에 두고 비교해가며 읽으면 이해하기 쉽도록 구성되어 있다.




다만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책에 수록된 그림의 크기가 너무 작다는 것이다. 본문의 내용에 따라 전면 혹은 양면에 그림을 수록하고 때로 부분적으로 확대하였다면 책을 보는 재미가 더했으리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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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장 속의 과학 - 과학자의 눈으로 본 한국인의 의식주
이재열 지음 / 사이언스북스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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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 때마다 우리 부부는 작은 실랑이를 한다. 한옥에서 지내본 경험이 전무한 난 한옥체험을 하자하고 신랑은 “거긴 취사가 안돼” “그런데선 밤에 떠들고 못 논다” “화장실이 푸세식일걸?”하는 이유를 대며 반대한다. 결과는 언제나 나의 패배. 질 거 뻔히 알면서도 매번 한옥을 고집하는 내가 신랑은 이해할 수 없는지 도대체 이유가 뭐냐고 물었다. 난 비오는 여름날 대청마루에 누워 처마에서 낙숫물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 겨울엔 문창살을 사이에 두고 마당에 함박눈이 사락사락 내리는 기분을 느껴보고 싶다고 했다. 그랬더니 푸하하 웃더니 한마디 덧붙인다. 어렸을 때 외가가 한옥이라 지내봤는데 좋은 거 하나도 없더라고. 여름엔 벌레들이 달려들고 겨울엔 엄청 춥다고. 칫, 그런 거라도 좋으니 난 한번 지내봤음 좋겠네!!




어릴 때부터 줄곧 도시에서만 자라 시골의 정취를 느껴보지 못해선지 시골이나 옛것에 대한 막연한 그리움을 품고 있다. 휴가나 제사때, 아니면 언제든 무작정 찾아가도 반겨주는 고향이 내게도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과학자의 눈으로 본 한국인의 의식주’란 부제가 붙은 이 책은 ‘주(住), 마음 속에 품은 집’ ‘식(食), 우리 몸을 채우는 먹을거리’ ‘의(衣), 우리를 감싸안는 옷’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전개되는 순서 때문인지 책을 읽으면서 왠지 잊고 있던 고향을 방문하는 기분이 들었다.




넓은 들판을 가로질러 마을을 찾아가면서 우리의 마을이 주로 자리잡는 지형, 바람을 막아주고 물을 주는 ‘장풍득수’, 뒤는 산이요 앞으로 물이 흐르는 ‘배산임수’에 대해 얘기하고 마을에 다다라서는 마을의 입구를 알리는 동시에 길손에게 휴식의 공간이 되어주는 당산나무에 어떤 의미가 있고 어떤 역할을 하며 뭐라고 불리는지, 주로 느티나무를 당산나무로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살펴본다. 큰 몸체로 마을을 지켜주는 당산나무에 머물렀던 시선은 이제 고향집으로 향한다. 높게 쌓아올린 도심의 담과 달리 흙과 돌멩이로 쌓아올린 낮은 담장 사이로 언뜻 눈에 들어온 그리운 집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저자는 우리의 옛 담장은 안과 밖, 너와 나의 것을 경계를 짓고 가르지 않는 자연의 일부라고 말한다.




그리고 집안에 들어서서는 마당에는 기후와 방위를 고려해서 나무를 심었으며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지 않았음을 상기하고 앞마당과 뒷마당의 온도 차이로 대청마루에 신선한 바람이 부는 옛 집의 구조는 대기의 순환현상을 잘 이용하는 등 자연과 기후에 적응할 수 있는 집을 지어 살았다고 한다. 문턱이 있고 없고에 따라 숨은 의미를 비롯해 사랑채와 안채의 역할, 부엌 아궁이에 불을 지피는 행위 등 우리의 옛 집 곳곳엔 자연을 거스르거나 환경을 헤치지 않으면서 생활했던 옛 조상들의 지혜를 만날 수 있어서 감탄하게 됐다.




그리고 식(食)에서는 우리의 김치과 간장 된장 같은 미생물이 빚어내는 우리의 먹거리에 어떤 과학이 숨어있는지, 장을 담글 때 고추와 숯을 넣는 이유와 의미에 대해 살펴보고 의(衣)에서는 모시, 삼베를 비롯해 자연염색에 대해 알아봤는데 염색함으로써 더욱 질겨진다는 제주도의 갈옷이 인상적이었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잊고 있던 고향집을 찾아가 푸근하게 편안하게 지내다 온 기분이다. 저자가 얘기한 우리 옛 집의 우수함과 과학적 원리, 거기에 숨은 조상들의 지혜는 시간이 지나면 금방 잊혀지겠지만 집 안에서 사람이 편안하게 살 수 있어야 담장 밖의 사람들과 좋은 인간관계를 맺으며 살 수 있다는 한 줄의 문장은 오래도록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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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잔의 차
그레그 모텐슨.데이비드 올리비에 렐린 지음, 권영주 옮김 / 이레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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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히말라야 도서관>이란 책을 읽었다. ‘세계의 지붕’이라 불리는 히말라야에 도서관을 세운 남자, 존 우드. 그가 신성한 대륙이라 할만큼 오지인 히말라야에 도서관과 학교를 세워나가는 여정이 담겨 있었는데, 책의 내용은 거의 대부분 잊었지만 아직도 기억에 남는 대목이 있다. 그의 인생과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놓는 계기가 된 단 한 마디의 말. “책을 가지고 다시 와주세요.” 간절한 염원이 담긴 말 한마디는 때로 상상 이상의 힘을 발휘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레그 모텐슨도 그랬다. 어릴 때부터 유난히 정을 쏟았던 여동생 크리스타가  간질발작으로 갑자기 죽자 그는 K2에 오른다. K2의 정상에 동생의 목걸이를 놓는 것으로 그녀를 추모하려 했던 모텐슨. 하지만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조난당하고 만다. 사경을 헤매던 그를 도와준 것은 히말라야의 작은 마을, 코르페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정성스런 보살핌으로 모텐슨은 차츰 건강을 회복하면서  생전 처음 보는 낯선 이방인인 자신을 도와준 코르페 마을 사람들에게 보답하고자 했다. 남은 돈을 털어 교과서나 학용품을 보내고 싶었다.

그런데 학교란 건물은 어디에도 없었다. 아이들이 허허벌판의 얼어붙은 맨 땅에 무릎을 꿇고 앉아 교과서도 선생님도 없이 공부하는 모습을 보고 모텐슨은 충격을 받는다. 자신이 꼭 해야 할 의미있는 일은 바로 이곳에 학교를 세우는 거라 여겼다. 그는 말한다. “제가 학교를 지어드리겠습니다.” “약속하죠.”

미국으로 돌아간 모텐슨은 학교를 짓는데 필요한 자금을 모으는데 전념한다. 오래된 차안에서 생활하고 병원 야간근무를 하면서 틈틈이 편지를 보낸다. 정치가나 사업가, 언론인 같은 사람들에게 후원금을 보내달라는 편지를 500통이 넘게 보내지만 단 한 통의 답장을 받는다. 그러다가 우연히 지인을 통해 산악인이자 과학자인 장 회르니 박사를 알게 되고 그에게서 학교를 짓는데 필요한 1만2천달러의 후원금을 받는다.

 

어렵사리 모은 돈을 가지고 들뜬 마음으로 다시 히말라야를 찾은 모텐슨. 그의 앞엔 수많은 난관이 놓여있었다. 학교를 짓기 위한 판자나 못 같은 건축자재며 자잘한 도구를 구입하는 것부터 그걸 코르페 마을로 옮기는 것까지.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코르페보다 먼저 자신들의 마을에 학교를 지어야 한다며 사람들은 옥신각신 다투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모텐슨은 코르페 마을에 가서 자신이 학교를 지을 자재를 구했다는 소식을 전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가장 큰 문제가 있었다. 코르페까지 건축자재를 운반하려면 강을 건너야 하는데 가장 중요한 다리가 없었던 것. 결국 모텐슨은 다리를 만들기 위한 자금을 모으기 위해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는데....

이후로도 모텐슨의 힘겨운 여정은 계속된다. 장 회르니 박사로부터 받은 후원금으로 다리를 놓고 운명적인 여인 타라 비숍과 사랑에 빠져 엿새 만에 결혼했다. 그리고 드디어 코르페에 학교를 짓지만 모텐슨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웃의 작은 마을에도 학교를 지어나갔다. 그 와중에 탈레반에 납치되어 감금되기도 했지만 이슬람 어린이들에게 배움의 길을 열어주고자 했던 그에게 있어  고난은 과속방지턱에 불과했다. 코르페 마을 사람들과 함께 마신 세 잔의 차에서 시작된 인연은 78개의 학교로 이어졌고 그로인해 수많은 아이들이 교육을 받게 됐다. 그야말로 기적을 이뤄냈다.

 

500쪽 가까이 되는 두툼한 책이지만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었다. 문장이나 이야기의 흐름이 마치 소설처럼, 아니 재현드라마를 글로 옮겨놓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수많은 이에게 전하는 감사의 말이 가득한 후기글을 읽으면서 가슴이 뭉클했다. 세상에 태어나 글자를 깨우치고 책을 읽고 교육을 받는다는 것에 그다지 감흥을 느끼지 못했는데 알고보니 온통 감사한 일 투성이었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다만 한가지, 책 뒤편에 있는 지도를 앞쪽에 수록했다면 책을 읽는데 더 도움이 됐을거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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