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장 속의 과학 - 과학자의 눈으로 본 한국인의 의식주
이재열 지음 / 사이언스북스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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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 때마다 우리 부부는 작은 실랑이를 한다. 한옥에서 지내본 경험이 전무한 난 한옥체험을 하자하고 신랑은 “거긴 취사가 안돼” “그런데선 밤에 떠들고 못 논다” “화장실이 푸세식일걸?”하는 이유를 대며 반대한다. 결과는 언제나 나의 패배. 질 거 뻔히 알면서도 매번 한옥을 고집하는 내가 신랑은 이해할 수 없는지 도대체 이유가 뭐냐고 물었다. 난 비오는 여름날 대청마루에 누워 처마에서 낙숫물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 겨울엔 문창살을 사이에 두고 마당에 함박눈이 사락사락 내리는 기분을 느껴보고 싶다고 했다. 그랬더니 푸하하 웃더니 한마디 덧붙인다. 어렸을 때 외가가 한옥이라 지내봤는데 좋은 거 하나도 없더라고. 여름엔 벌레들이 달려들고 겨울엔 엄청 춥다고. 칫, 그런 거라도 좋으니 난 한번 지내봤음 좋겠네!!




어릴 때부터 줄곧 도시에서만 자라 시골의 정취를 느껴보지 못해선지 시골이나 옛것에 대한 막연한 그리움을 품고 있다. 휴가나 제사때, 아니면 언제든 무작정 찾아가도 반겨주는 고향이 내게도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과학자의 눈으로 본 한국인의 의식주’란 부제가 붙은 이 책은 ‘주(住), 마음 속에 품은 집’ ‘식(食), 우리 몸을 채우는 먹을거리’ ‘의(衣), 우리를 감싸안는 옷’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전개되는 순서 때문인지 책을 읽으면서 왠지 잊고 있던 고향을 방문하는 기분이 들었다.




넓은 들판을 가로질러 마을을 찾아가면서 우리의 마을이 주로 자리잡는 지형, 바람을 막아주고 물을 주는 ‘장풍득수’, 뒤는 산이요 앞으로 물이 흐르는 ‘배산임수’에 대해 얘기하고 마을에 다다라서는 마을의 입구를 알리는 동시에 길손에게 휴식의 공간이 되어주는 당산나무에 어떤 의미가 있고 어떤 역할을 하며 뭐라고 불리는지, 주로 느티나무를 당산나무로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살펴본다. 큰 몸체로 마을을 지켜주는 당산나무에 머물렀던 시선은 이제 고향집으로 향한다. 높게 쌓아올린 도심의 담과 달리 흙과 돌멩이로 쌓아올린 낮은 담장 사이로 언뜻 눈에 들어온 그리운 집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저자는 우리의 옛 담장은 안과 밖, 너와 나의 것을 경계를 짓고 가르지 않는 자연의 일부라고 말한다.




그리고 집안에 들어서서는 마당에는 기후와 방위를 고려해서 나무를 심었으며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지 않았음을 상기하고 앞마당과 뒷마당의 온도 차이로 대청마루에 신선한 바람이 부는 옛 집의 구조는 대기의 순환현상을 잘 이용하는 등 자연과 기후에 적응할 수 있는 집을 지어 살았다고 한다. 문턱이 있고 없고에 따라 숨은 의미를 비롯해 사랑채와 안채의 역할, 부엌 아궁이에 불을 지피는 행위 등 우리의 옛 집 곳곳엔 자연을 거스르거나 환경을 헤치지 않으면서 생활했던 옛 조상들의 지혜를 만날 수 있어서 감탄하게 됐다.




그리고 식(食)에서는 우리의 김치과 간장 된장 같은 미생물이 빚어내는 우리의 먹거리에 어떤 과학이 숨어있는지, 장을 담글 때 고추와 숯을 넣는 이유와 의미에 대해 살펴보고 의(衣)에서는 모시, 삼베를 비롯해 자연염색에 대해 알아봤는데 염색함으로써 더욱 질겨진다는 제주도의 갈옷이 인상적이었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잊고 있던 고향집을 찾아가 푸근하게 편안하게 지내다 온 기분이다. 저자가 얘기한 우리 옛 집의 우수함과 과학적 원리, 거기에 숨은 조상들의 지혜는 시간이 지나면 금방 잊혀지겠지만 집 안에서 사람이 편안하게 살 수 있어야 담장 밖의 사람들과 좋은 인간관계를 맺으며 살 수 있다는 한 줄의 문장은 오래도록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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