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여자가 능숙하게, 호텔을 검색한다. 해변에서 가깝고, 교통이 편리하고, 스파가 있는 호텔.

그러고는 버스정류장에서, 배웅을 하는 거다. 해사하게 웃으면서, 머리를 찰랑이면서, 

'저, 여행, 안가요'

그 다음 장면에서는 사원증이라도 목에 건 듯 시커먼 직장인의 정장을 입은 여자가 화상통화하는 사람들은 부모님이다. 딸 덕분에 비행기를 타고, 여행을 하는 부모님. 


보면서, 누구에게 소구하는가, 이런 생각을 했다. 

그 광고가 '딸~ 나도 여행가고 싶어'라고 말하도록 부모님을 추동하는 광고라면, 정말 효과가 있을까, 싶고. 그 광고가 이제 돈을 벌기 시작한 젊은이가 효심을 발휘하게 할 목적이라면, 상황이 그게 가능할까, 싶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기쁘게 하려고 돈을 벌지만 저런 광고는, 이라는 생각을 한다. 

점점 취업이 힘들어지는 세상에서, 자기 시간을 기대하기 힘든 직장생활을 견디는 것이, 나의 여행이 아니라 부모님의 여행이라는 것이, 무언가 답답했다. 


광고가 없는 욕망도 만들어, 살 필요 없는 것도 사게 만드는 거라고 생각하면, 지금 저 광고가 만들어 파는 욕망은 무엇인가. 


행복한 가정이다. 

얄팍한 목적에 이렇게 거대한 욕망을 결합시키다니, 정말 효과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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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사해서, 고졸인 동료에게 학번을 물은 적도 있고, 공대 여자,에 대한 농담을 한 적도 있다. 

칭찬이니까 괜찮다고 얼굴이나 몸매를 말하는 상사들보다 나라고 조금도 더 낫지는 않다. 


주말에 해피투게더 재방송을 봤다. 최고의 한방을 홍보할 목적으로 나온 연기자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러다가, 이덕화에게 무엇을 물었더라. 이덕화가 이순재선생님한테 들은 말이라며 전했다. 선생님께, 어떻게하면 선생님처럼 오랫동안 일할 수 있을까요?라고 여쭸더니, '나는, 말을 안 해'라고 대답하셨다고 한다. 그럴 듯한 성대모사에 한바탕 와르르 웃었고, 이어서 이덕화가 부연설명을 했다. 대기시간이 길어지거나, 젊은 배우가 늦거나, '다 그럴 만한 사정이 있겠거니'하고 말을 하지 않는다,라고.

그저 '말을 안 해'라는 말만 들었을 때도, 그렇지, 말이 많으면 실수도 많지, 그러면서 고개를 주억거렸는데, 부연의 말을 듣고는 '다, 그럴만한 사정이 있겠거니'가 살면서 얼마나 어려운지 아니까, 아, 그렇구나, 싶었다. 


다 그럴 만한 사정이 있을 테니, 하고 싶은 말이라도 한 번 더 생각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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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변이 선배에게 결혼인턴제,를 브리핑하는 모습을 주말에 재방송으로 보았다. 

나도 '동거가 뭐가 나빠요?'나, '살아보고 결혼하겠다'에 반대하지는 않지만, 무언가 결혼 십수년차의 감회는 '그래봤자',라는 거다. 

동거할 때 친절한 남자가 결혼 후에 괴팍해지거나, 둘만 지낼 때는 문제없던 남자가 아이가 생긴 순간 꼴도 보기 싫은 이기주의자처럼 느껴지는 걸 1년의 인턴기간은 드러내지 못한다. 

 

지금은 차라리, '모든 도는 부부에서 비롯된다'라는 말이 진리같다. 


어디로부터도 강제되지 않는 '점 하나만 찍으면 남이 되'는 그 남녀의 관계가 모든 도의 시작이라는 말에 고개를 주억거리게 되는 거다. 서로의 노력이 없으면 쉽게 무화되는 그 관계가 바로 모든 관계의 출발이다. 관계라는 인생의 숙제들을 그저 나름의 방식으로 대하면서, 다시 또 새로운 관계들을 만든다. 남편의 가족들과 나의 가족들이 새로이 가족이 되고, 다시 우리의 아이들이 더해진다. 

늘 좋을 수만은 없는 그런 관계들에서, 나는 확장되고 결혼은 단단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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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7-05-30 07: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아요를 누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ㅠㅠ 모든 도는 부부에서 비롯되고 자식에서 완성되는 것 같아요.

별족 2017-05-30 10:06   좋아요 0 | URL
http://ygmh.skku.edu/ygmh/menu4/sub_04_01.jsp?mode=view&article_no=315600&board_wrapper=%2Fygmh%2Fmenu4%2Fsub_04_01.jsp&pager.offset=0&board_no=63
저도 여기서 보고 쓴 말이라서 제 말은 많이 부족하죠. 원문을 링크해두겠습니다.

hnine 2017-05-30 11:56   좋아요 0 | URL
君子之道, 造端乎夫婦
아, 감사합니다.
 

아이들에게 리모컨을 빼앗기고, 아이들이 보는 만화를 같이 본다. 

파파독,은 참 문제적,이야,라고 보면서, 우리나라 만화에서 아빠는 백수거나(신비아파트), 개여야(파파독) 겨우 아이들과 함께 있을 수 있다고 말했었다. 그런데, 거진 마지막으로 달려가는 이 파파독은 남편에게도 그런 동감을 불러일으키는 지경이었다. 

파파독,에서 아빠는 신기한 개조각상을 선물로 받았다가 잃어버려서 개로 변한다. 개로 변하는 순간을 목격한 딸만이 아빠가 개라는 걸 알고, 아빠와 텔레파시로 이야기하면서 돌본다. 딸이! 아빠를 돌보고, 개로 변한 아빠도 할 수 있는 한 딸을 돌본다. 학교에 개인 채로 출동하고, 젖먹이 쌍둥이 두 동생을 돌보며 일하는 엄마가 어쩔 수 없이 소홀해진 자리에서 역할을 하는 거다. 시즌2가 시작하고 어제는 아빠가 드디어 개 조각상을 찾아서 사람이 되었다. 그런데, 개로 변신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휴가로 처리했던 직장에 다시 출근하면서, 아빠는 딸을 보고 싶다면서도 늦어지는 회식에 집에 갈 수 없는 지경인 거다. 내가 투덜거릴 때는 듣고 말던 남편이 어제의 전개에는 '이야, 이런 문제적인 내용이라니'하는 지경이었다. 다음 편 제목은 심!지!어! 아빠의 선택!이다. 예고편에서 딸은 아빠가 파파였을 때가 좋았어,라고 투덜대고, 아빠는 그럼 어떡할까 고민이라는 걸 할까 싶은 지경. 이건 뭔가, 싶다. 인간인 채로, 엄마가 감당하는 만큼의 경제적 책임을 지는 채로, 아빠는 아예 아빠노릇이 안 된다는 건가. 인간이 되었습니다,로 끝날 줄 알았지, 이렇게 까지 전개되리라고는 예상못한 나는 당황했다.  

인간인 아빠보다 개인 아빠가 낫다고 생각한다면 정말이지 심각하게 병든 사회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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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키우는데, 마을이 필요한가,
마을을 만드는데, 아이가 필요한가,
내가 아이가 없다면, 나는 공동체를 요구할까.
지금의 파편화된 삶에도 그럭저럭 살아낼 수 있지 않을까.
아이들이 있어서, 자기 세상을 이제 조금씩 확장하는 아이들이 있어서, 공동체가 있기를 바라고, 그 공동체가 안전하기를 바라고, 또 그런 공동체가 서로를 믿으면서 지지하기를 바라는 게 아닐까.
아이가 없다면 공동체를 요구할까, 싶은 마음과
여자가 하지 않는다면 누가 공동체를 지지할까, 싶은 마음까지. 
그래서, 1988의 세계 속에서 아이를 함께 키우는 부모들의 마을,이 내가 젊은 어떤 날 도망치고 싶던 오지라퍼들의 세상일 수도 있는데도, 그래도 역시 그립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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