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공부를 한다. 미리 한 학기씩 두 학기씩 앞서서 문제집을 풀고 내년에 겨우 중 2인데, 스톱워치를 책상에 올려놓고 시간을 재면서 공부를 한다. 방학을 하고는 밤 열두시까지도 잠도 안 자고, 아침에 깨지도 않고 점심무렵에나 깬다. 그러지 말라고 건강하고 좋은 습관을 가지는 게 중요하다고 자꾸 자꾸 말하는데, 내가 혹시 행동으로는 그러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 칭찬을 한 적도 야단을 친 적도 없는데, 그래서 그러는가도 생각한다. 학교에서는 시험도 성적표도 보내주지 않는데, 학원에서는 벼라별 말을 듣고 현대의 또래집단 학생이 된다. 과학공부를 앞서 하려니 지난 학원 방학 중에는 나에게 가져와서 뭘 물어본다. 원자핵에 양전하가 핵의 주위를 도는 전자에게 음전하가 있다는 설명을 하면서, 이해할 수 있을 만큼 단순화시켜서 가르치는 각 단계에 대해 의구심이 생긴다. 처음 핵과 전자에 대해 배울 때는 이렇게 배웠지. 그림으로 그릴 수 있는 것처럼, 양성자와 중성자와 전자의 모습들을, 이러면서 보았다. 그러다가, 태양을 중심으로 도는 행성처럼 묘사되던 핵과 전자가, 구름처럼 묘사되고, 결국은 알 수 없는 어떤 것이 되기까지 결국 이해하지 못 했던 현대물리의 어떤 순간까지가 떠올랐다. 그러면서, 저 가르침은 옳은가, 이런 생각도 했나 보다. 

지난 블랙독,에서 학생은 자신이 틀렸다는 시험 문제가 현대 물리의 관점에서 오답이 아니라고, 학교 내에서 문제제기 하는 대신 학교 밖에서 문제제기해서 결국 정정을 받는다. 교과과정을 통해서는 오답이고, 교과과정을 벗어나 학문적으로는 오답이 아닌 그 상황에 내가 딸의 과학 요약집을 보던 기억이 떠올랐다. 서양의 학문이 나아가는 방식과 동양의 학문이 나아가는 방식이 이렇게 다른 건가, 싶기도 했다. 내가 교사고, 그 다음을 알고 있는데, 이해하기 쉬우라고 단순화시켜 가르치는 것은 어떤 불편한 느낌을 주지는 않을까, 같은 생각도. 동양의 학문이 그래서 신기한 말들을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계속 읽도록 한다면, 서양의 학문이 온갖 것들로 쪼개놓은 온갖 학문을 초보적인 형상화부터 시작해서 점점 점점 기존의 관념을 부정하면서 나아간 게 아닐까도 생각한다. 서양의 학문을 배우는 방식의 지금 학교는, 그러니까 초등학교의 어떤 배움이 중학교에서 부정되고, 중학교의 어떤 배움이 고등학교에서 부정되고, 고등학교의 어떤 배움이 대학교에서 부정될 수 밖에 없는 게 아닐까, 라고도. 동양의 배움이 결국 알 수 없는 상태를 인정하게 되는 그래서 기이할 수밖에 없는 게 아닐까, 라고도 생각했다.

가르치는 것이 어렵구나, 배우는 것도 역시 어렵다. 점점 모르는 것이 늘어나는 그 각각의 단계에서 어떻게 배우고 어떻게 가르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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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스럽다,가 오지랖,이 욕인 세상에 살고 있다. 

그렇지만, 그게 욕일 수 있는 세상,을 의심한다. 

은희경의 소설을 읽으면서였나, 이제 시골에서 나고 자란 정서는 소수자가 되겠구나, 라고 생각한 때가 있었다. 인구의 거의 대부분이 도시에 살고 있다. 촌에 사는 사람을 무능으로 낙인찍기도 하고, 그 자체로 혐오하는 정서도 가끔 느껴진다. 그렇지만, 나는 촌스러운 게 나쁜 말인지 의심하고, 그걸 나쁜 말로 쓰는 사람들의 우월감을 동정한다. 촌스러운 것, 촌스러운 채 살아남는 것은 삶을 구성하는 단순한 것들을-먹고, 자고, 싸고, 사랑하고- 인식하고, 그게 얼마나 중한지 아는 거고, 부풀려진 말들에 휩쓸리지 않고 부풀린 허상 뒤에 똑같은 존재를 알아차리는 거다. 


드라마를 보면서, 무너진 공동체를 그리워하는, 도시에서의 외로움 가운데 이상향을 그리는 마음같다고 생각했다. 가깝게 지내지는 못해도, 오랜 세월이 쌓여서 마음으로 의지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드러내지 않아도 드러나는 강함에 대한 이야기이고, 세상이 훨씬 더 살 만 하다는 이야기이다. 


강함은 드러내지 않아도 드러난다. 그 강함은 그 자체로 약한 사람을 건드린다. 

시샘을 받기도 하고, 쑥덕거리기도 하고, 상처를 주려는 시도들을 하게 만든다. 

나보다 처지가 나빠서, 적어도 나는 저 사람보다 행복해도 된다고 공연히 우쭐했던 약한 마음이 그 사람이 웃으면 김이 빠진다. 내 마음 속에 행복과 불행을 타인의 것들과 비교하는 가운데, 마음은 더 약해지고, 행복은 멀어진다. 

행복은 비교하는 가운데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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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인사합니다, 굿모닝, 굿애프터눈, 굿 이브닝' 영화의 마지막 대사라는데, 뭔지 아냐고 딸이 물었다. 알 것 같은데, 모르겠더라. 트루먼쇼의 마지막 장면이다. 과장적으로 입꼬리가 올라간 짐 캐리가 바다인 줄 알았던 물에 들어가 하늘인 줄 알았던 벽으로 난 작은 문을 열면서 혹은 열기 전에 하는 말이다. 전 세계에 그가 중계되고 있고, 그는 웃으면서 작별인사한다. 숨기 위해서. 

드러낸다,는 것에 대하여, 생각하는 중이다. 드러낼 수 있으려면 권력이 있어야 해, 와 그렇다고 해도 드러낸다고 해서 권력이 있다는 건 아니야. 드러내지 말라,는 말은 억압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스스로를 보호하라,는 말이기도 해. 숨을 수 있는 것도 권력이야. 숨기거나 드러내거나 내가 결정할 수 있어야 권력이기는 하지. 

전해지지는 않을 것이다. '네가 겁먹었다는 걸 들키면 안 돼'라고 딸에게 말한다. 목줄이 풀려 달려오는 하얀 개를 보고 금방 울음을 터뜨릴 거 같은 어린 딸에게, 지금은 안 될 거 같아도 겁먹은 거 들키면 안 되,라고 말해준다. 네가 겁 먹은 걸 알아차리는 순간, 상대는 달라져. 네 감정이 전해지거든. 처음에는 들키지 않으려고 겁먹지 않은 걸 연기한 거였어도, 조금 더 그러다보면 정말 겁나지 않을 수도 있어. 사람은 약하기도 하고 악하기도 해서 나보다 약한 사람을 보호하기도 하지만 괴롭히기도 해. 들키지 마, 너의 약함을. 그러니까 너무 드러내지 마. 감당할 수 있는 힘이 있을 때, 감당할 수 있을 만큼 드러내. 괜찮아. 너 자신을 보호해. 연기하라는 말처럼 들릴까. 그런 의미는 아닌데. 

어쩌다 발견한 하루,를 볼 수 있을 때 가끔 본다. 스테이지와 쉐도우, 드러나는 삶과 숨는 삶. 무언가 SNS시대의 은유처럼 보인다. SNS를 먼발치에서 보고 있는 나는 단오처럼 스테이지와 쉐도우가 저렇게까지 다른 삶을 견디지 못할 것이다. 여주다를 짝사랑하는 서브남주처럼 '왜 나는 쉐도우에서도 설정값을 못 벗어나지'가 차라리 좋다. 그 간극을 줄여서, 결국 스테이지를 바꾸는 것이, 단오의 목표라는 것도 안다. 지난 목요일의 단오는 심장병으로 결국 죽게 되는 자신의 스테이지를 바꾸지 못하더라도, 쉐도우의 마음을 좀 더 누리기로 하루를 잊지 않고 사랑하기로 결심했다. 결국 스테이지에서 연기할 수밖에 없더라도, 지킬 수 있는 자신의 쉐도우를 좀 더 살기로 했다. 결국 죽는 운명이니 비극이고, 그게 빠를 수도 늦을 수도 있는 게 모든 인간이다. 스테이지와 쉐도우를 가깝도록 해야, 삶이 살 만 해진다. 마음이 버텨주고 시간을 지나가게 할 수 있다. 벌어진 스테이지와 쉐도우 사이에서 상처는 벌어져 피가 흐르고, 죽음을 당기고 마음은 무너진다.

SNS를 쓰는 누구나에게, 스테이지와 쉐도우가 가깝도록, 너무 과한 연기는 하지 말라고, 아무도 아무 말도 해주지 않아도, 내가 나에게 해주면 되니까, 더 크게 웃지 않아도 되고, 더 크게 말하지 않아도 되고, 더 크게 화내지 않아도 되고, 더 크게 슬퍼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다.

나만, 오직 나만, 내 마음을 알아준다면, 어떻게든 살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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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 마마무 팬이라 퀸덤을 보고 있다. 너무 늦게 시작하고 너무 늦게 끝나서 그래도 겨우 무대를 보고,  딸이 추천한 짤들을 유튜브로 검색해서 봤다. 그러고도 낮에 재방을 하고 있길래 무대도 평가하는 장면도 보았다. 

어지러운 편집, 지저분한 단절들-그렇다, 나는 무대영상만 보고 싶다!- 을 꾹 꾹 참고, 2차 경연의 세 팀 무대를 봤다. 데스티니를 부르는 오마이걸, 파이어를 부르는 (여자)아이들, 식스센스를 부르는 러블리즈,를 보았다. 딸은 1차 경연에서 6위한 러블리즈가 이번에도 6위면 탈락이라고 퀸덤,구조 안의 경쟁 자체에 분개한다. 그게 아니더라도 충분히 재밌을 텐데,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유튜브 영상으로 1차 경연 영상은 왜 러블리즈가 6위였을까, 궁금해서 봤다. 이슈가 많이 된 멋진 영상도 궁금해서 봤는데, 기본적으로 원본이 없어서 뭔가 의미있는 말은 할 수가 없다. 나는 노래를 보기보다 듣는 사람이고, 아이들이 채널권을 독점한 이래로 음악방송들을 볼 수도 없었다. 음악방송에서 노래 가사를 아래쪽으로 읽으면서, 춤추는 모습을 보는 거 사실 좋아하는데, 못 보고 있다. 남편은 내가 그런 방송을 좋아하는 걸 이해 못 했고, 유튜브를 찾아보는 데 익숙한 아이들은 무작위로 배열되는 노래들을-그러니까 좋아할 수도 싫어할 수도 있는- 보는 것보다 만화를 보고 싶어했다. 그래서 아츄,는 노래는 좋지만 퍼포먼스는 모르고, 원본과 얼마나 달라졌는지 알아차릴 만한 사람이 아닌 거다. 1차 경연 영상에서 러블리즈,는 노래와 겉도는 퍼포먼스를 보여줬다. 사랑하게 되어서 요리를 배우고 있는 그런 노래를 걸크러시한 까만 옷을 입고, 뒤돌아서서 자켓을 내려 어깨를 드러내는 식으로 춤을 췄다. 6등이 두 번이면 탈락인 구조도 경쟁도 물론 나도 좋아하지 않지만, 사람의 보는 눈이란 다 거기서 거기라서 왜 6등인지는 알 것 같았다. 그 영상에 달린 댓글들도 대부분 그렇다. 재방에서 본 서로가 서로를 평하는 자리에서 러블리즈를 자신보다 못한 퍼포먼스를 보여준 팀으로 지목한 박봄도 '팀의 본 모습을 보고 싶었다. 1차 경연처럼 걸 크러시를 해서 골랐다'라고 말했다. 


나에게 잘 어울리는 옷이 있고, 내가 입고 싶은 옷이 있다면, 무얼 입어야 할까?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있고, 내가 잘 하는 일이 있다면 무얼 해야 할까? 살아가면서 언제나 맞닥뜨리게 되는 질문이다. 하고 싶은 일을 잘하면 좋고, 입고 싶은 옷이 잘 어울리면 좋지만 쉽지 않다. 내게 없는 걸 알기 때문에 선망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입고 싶은 옷을 입고, 하고 싶은 일을 한다고 해도 마음이 편하고 좋은 것도 아니다. 좋아보였던 옷이고 일이지, 입어/해 보기 전에 정말 좋을지는 알 수가 없다. 수없이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가면서 어울리는 옷을 찾아 입고, 잘 하는 일에 정붙이면서 살아가야 하는 게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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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스타,를 12년째 지켰다는 윤종신,이 이방인프로젝트를 하겠다고 떠나게 되면서 하는 방송을 잠깐 재방채널을 돌리다가 만났다. 방송과 함께 자라 열두살이 된 아들과 아내가 영상편지를 보내고, 함께 자리를 지킨 다른 엠씨들이 인사를 하는데, 김구라의 말이 인상적이라 적어두고 싶다. 

"잘 지내고, 영화같은 일이 안 생기길 바란다, 지루하고 심심한 14개월을 보내길 바란다",는 말. 

아내도 있고, 아이도 있고, 여전히 하고 싶은 도전들이 있어서 떠나는 윤종신에게 김구라가 하는 말은 좋은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남편도 있고, 아이도 있는 내가 너무 그 말이 공감이 되었다. 영화같은 일, 이 생기는 것은 그게 어떤 영화라도 반갑지 않다. 호러나 스릴러는 그 자체로 끔찍하고, 멜로라고 해도 환영할 수 없고, 코미디영화라고 해도 다른 사람이나 우습지 내가 주인공인 코미디 영화는 반갑지가 않다. 

삼백이에서 겁없는 젊은이를 겁주기 위해 도깨비가 기다린 그 십수년처럼, 이미 가진 게 많아 두려움이 많은 나는 윤종신에게 하는 김구라의 말이 그대로 덕담으로 들렸다. 영화같은 일 따위 벌어지지 않는 채로 한결같아 보이는 지루한 일상 가운데에서 드라마틱한 영화를 꿈꾸는 젊은이들 뒤에서 배경처럼 있어도 괜찮다,는 마음이다. 나의 일상,들이 그대로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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