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tv.kakao.com/channel/3306874/cliplink/400598324)

'나는 주인공이 싫습니다'로 시작해서 '당신의 평범한 이웃이고 싶습니다'로 마친다. 

묘하게 싫어서, 설명하고 싶다. 

주목받기보다, 나란히 있고 싶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거겠지만, 내가 좋아하는 얼렁뚱땅 흥신소 끝날 때 나오던 쿠키영상처럼 그 모든 조연들의 패치워크처럼, 모두 자신의 인생이 바빠서 여기 안 나오는 거라는 말이 더 좋다. 

살아가는 중에, 각자의 삶 속에서 모두들 주인공이다. 드러나고 특별해서 주인공인 게 아니라, 자신의 인생에서 자신이 주인공이다. 드라마틱한 무엇이 있거나 없거나, 삶이 단순하거나 복잡하거나, 그저 살아가는 순간순간 내가 집중한 내 자신이 바로 주인공이다. 

게다가 불교적 어원에 대해 말하자면, 나는 마지막 공이 빌 공,이라고까지 생각했다. 주인공이란 어쩌면 나라는 개별자에 대한 것이 아니다. 너와 나의 같은 마음, 그게 주인공,인 거다. 인싸와 같은 의미로 쓰이는 말이 아니다. 보편의 마음, 그게 주인공이다. 

평범한 이웃이고 싶어서, 주인공이 되기 싫다고 말하는 것은, 무언가 너무 소극적이라 싫다.  


(http://www.culturecontent.com/content/contentView.do?content_id=cp043316910001)

주인공[主人公]

득도한 인물을 가리키는 말 

사건(事件)이 있고 그 사건으로 이야기가 구성(構成)되는 한 편의 드라마에서 주인공은 언제나 그 사건의 중심에서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는 등장인물이다. 주인공이 있음으로써 그 이야기는 흥미진진(興味津津)하고 스릴 넘치는 파노라마를 연출(演出)한다. 그러나 주인공이란 낱말이 속세(俗世)를 벗어나 불교에 오면 아주 재미가 없어진다. 무색(無色) 무미(無味) 무취(無臭)의 진공(眞空)으로 사라져 버린다. 왜냐하면 원래 불교에서 '主人公'이란 낱말을 처음 사용하였을 때에는 득도(得道)한 인물(人物)을 가리키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외부환경에 흔들리지 않고 번뇌망상(煩惱妄想)에 흔들리지 않는 참된 자아(自我), 즉 무아(無我)를 누리는 자아를 일컫는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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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아이들이 나가 노는 중에 재방으로 보고 있다. 가끔 이가 빠지기도 하고, 회사의 묘사는 내가 이십년차고, 고지식한 제조업 공기업이라, 의아하지만 그러려니 보고 있다. 

어제는 결혼,에 대해 생각했다. 

서른 여덟의 배타미는 스물 여덟의 박모건을 만나고 있다. 배타미는 '나와 결혼하기 싫었던 건지'라고 묻는 전 남친의 청첩장을 받았고, 기묘한 술자리 합석에서 결혼에 대한 질문을 받는다. 배타미는 결혼할 생각이 없고, 박모건은 결혼할 생각이 있다. 배타미에게 피아노를 가르치는 젊은 여자는 '결혼할 의사가 없음에도 연애를 시작하는 것이 나쁜 거'라고 말한다. 

결혼하지 않겠다는 젊은 여자들, 결혼하지 않는 나이든 여자들,을 나도 알고 있다. 

내가 결혼할 때, 나의 친구들은 나의 결혼을 두고 한참을 이야기했다고도 한다. 그 자리에 내가 없어 아쉽다. 나는 지금도 가끔은 그 이야기들이 궁금하다. 무슨 말들을 했을까. 

나는 박모건의 말들이 모두 옳다,고 생각하고 있다. '어떤 만남도 이별이 있게 마련이다. 결국 헤어지는 연애도 있고, 결혼했더라도 결국 이혼이나 사별이 있을 수도 있다.' 끝없이 이어지는 연애,라는 게 가능한가. 배타미가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둘이 연애를 시작할 때, 나는 배타미가 자신의 나이 때문에 시작이 두려운 거라고 생각했다. 무모한 연애를 할 수 없어,라는 말을, 나는 '진지한 관계를 원한다'나 '결혼처럼 영원한 약속을 원한다'고 받아들였다. 그래서, 배타미의 결혼에 대한 태도까지 듣고 나니, 정말 원하는 건 뭘까, 생각한다. 언제까지나 영원히 달콤한 연애,를 원하나?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건가?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는 많은 로맨스들이 이야기를 끝내기 위한 맺음일 뿐이다. 그 다음은 어차피 관심이 없어서 이야기는 거기서 맺고 마는 거다. 이 드라마가 어찌 끝날지 모르지만, 사랑과 삶은 어떤 순간에도 끝나지 않지만, 연애를 맺는 것은 둘 중 하나 뿐이다. 결혼이라는 약속, 아니면 이별이 필요하다. 박모건이 결혼을 원하는 것은, 그 자체로는 지금의 연애가 충분히 행복하다는 말 그 이상이 아닐 수도 있다. 타미가 결혼을 원하지 않는 것은 자신의 정체성에 지표로 삼을 만큼 중요한 것인가? 너는 결혼을 원하고, 나는 결혼을 원하지 않으니 우리는 헤어지는 게 좋겠다,는 말은 그만큼 무게가 있는 말이기는 할까? 당장 달려가 모건을 잡았으니, 무게가 없었던 건데, 그런 말을 왜 자꾸 자꾸, 자꾸 하는 걸까? 


'내 멋대로 해라' ( https://ko.wikipedia.org/wiki/%EB%84%A4_%EB%A9%8B%EB%8C%80%EB%A1%9C_%ED%95%B4%EB%9D%BC_(%EB%93%9C%EB%9D%BC%EB%A7%88 )의 이나영-극 중 이름이 뭐였더라, 전경이다. 검색함.-이 고복수-양동근이다, 왜 양동근은 극 중 이름이 생각나는 걸까-의 불치병을 알고, 그 불치병을 숨기고 떠나려는 고복수에게 하던 말이 뭐였더라. 아, 나는 그 태도가 정말 좋은데. 사는 동안 살 테다. 사랑하는 동안 사랑하고, 버티지 못하면 도망갈 수도 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채로 이별당하지 않겠다던 강경한 마음. 사는 동안 살아야지. 아직 죽음이 오지 않았는데, 오는 죽음이 두려워 살기를 포기할 수는 없다. 사랑하는 동안 사랑하고, 살아가는 동안 살아간다. 사는 동안 들러붙는 그 많은 형식들, 언설들, 적당히 수용가능한 만큼만 수용하면서, 내 자신을 지키면서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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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만화를 보게 된다. 아이였을 때라면 나도 좋아했을 텐데, 어른이 되어서 본 감상은 다르다. 극장에서 본 '화염의 해바라기'는 아, 아이들은 이렇게까지 어른들을 가소롭게 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 아이들이 그러지 않더라도, 아이들은 어른들이 이렇게 멍청하고 가소롭고 한심해서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는 거구나, 이런 생각. 이미 어른인 나는, 어른이 한심해서가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상황들이 있다고 변명하고 싶지만, 영화 속의 상황은 변명의 여지가 없고 어른들은 어디 찌그러져서 아이들의 용맹함에 의지해야 하는 존재다. 

아이들이 티비로 보는 걸 곁눈질로 보면서, 저건 도대체 어떻게 봐야 해? 싶은 지경들을 만난다. 코난이 주인공이니까, 과장적으로 그려진 아이는 작지만, '은빛 날개의 마술사'에서 기장과 부기장도 쓰러진 비행기를 코난과 코난의 여자친구와 몇 몇이 비상착륙시킬 때는 의문이 계속 생긴다. 상황이 위험하면 아이라도 해야 한다. 어른이 사라진 세상에서 아이가 운전을 해야 하는 책도 본 적이 있으니, 상황이 그렇다면 누구의 손이라도 빌려야 한다. 그래도 역시, 갸우뚱하며 남편을 봤더니 역시 비슷한 생각을 했나보다. 그런 사람이 한 둘이 아닌지, 검색한 위키백과의 각주로도 달려 있다. 

아이들이 어른들을 어른들이 운영하는 세계를 무시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래야 그 다음 자신이 어른이 되었을 때 감당할 수 있을 테니까. 그렇지만, 태도의 어딘가에 존중이 있어야, 지나치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점점 더 어쩌지 못하는 일들이 늘어나고, 내게 권력이 주어진대도 욕 먹는 거 말고는 할 수 있는 일도 없다, 싶은 데다가. 가끔은 이게 뭐 그리 큰 일이라고 호들갑을 떠느냐고도 하고 싶다. 

무언가 나의 일로 받아들이고 변명을 하고 있다. 아이일 때 밖으로 발을 빼고 하던 그 말 '야! 일 좀 똑바로 하라고!!!'가 안 되는 거다. 사후적으로 제기되는 '문제'였다는 것들에 점점 더 동의를 못하고 있다. 사고의 경중에 대한 감각도 줄고, 결과가 없는데도 문제삼는 태도가 지나치다고 생각하게 된다. 

늘, 교통사고가 아니라 브레이크 밟은 걸로 언론에 오르내리는 원자력발전소에 다니고 있어서 그러는지도 모르겠다. 브레이크를 밟았다니, 얼마나 위험했던 거냐?는 말을 듣고 있는 기분이라서 그러는지도 모르겠다. 

https://ko.wikipedia.org/wiki/%EB%AA%85%ED%83%90%EC%A0%95_%EC%BD%94%EB%82%9C:_%EC%9D%80%EB%B9%9B_%EB%82%A0%EA%B0%9C%EC%9D%98_%EB%A7%88%EC%88%A0%EC%82%AC

다만 연출이 지나치게 과장되거나 현실적으로 실현하기 힘든 전개가 나온다. 극장판 중에 코난과 같은 일반인이 조종석에 들어가는 장면이 나오는데, 일반인이 조종석에 들어가는 행위는 대한민국은 물론 전 세계 적으로 2001년 9월 11일에 발생했던 9·11 테러 이후로 철저히 금지하고 있다. 또한 아마추어 조종사가 대형 여객기를 극장판에서 연출한 부두에 착륙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위키백과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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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회를 재방으로 두 번이나 조금씩은 토막나게 보았다. 

해외입양아로 성년이 되어 관장이 된 남주(라이언골드)가 덕질로 단련되었으나 직장에서 덕질을 숨기는 아이돌 홈마 여주(성덕미)를 레즈비언으로 오해한다. 아이돌에 대한 유사연애감정으로 묶인 여주와 여주의 친구는 아이돌이 묵은 호텔방을 성지순례하고, 바짝 붙어앉아 웃으며 이야기하고 사랑을 이야기하는 여자들이 느끼는 그 즐거운 행복감을 공유하고 있다. 안전하고 무해한 연애감정을 행복하게 공유하는 두 성인 여성을 남주는 그대로 연인으로 오해한다. 

나는, 어떤 태도가 더 좋은 태도일까, 생각했다. 

두 성인이 한 호텔방에 묵는 것 만으로, 그 둘을 성적인 관계로 생각하는 것.

두 성인이 한 호텔방에 묵는다. 그건 그냥 그럴 수 있는 일로 생각하는 것.

오해는 해소되고, 남주와 여주는 연애를 하게 되지만, 세상이 성적인 은유들로 가득 차고, 성적인 긴장감으로 가득 채워지는 것이 피곤하다. 그런 세상으로 변하고 있는 것 같아서 또 피곤하다.

한창 서로의 짝을 찾는 시기에, 성적인 긴장이 가득 찬 공기가 나는 버거웠다. 그것보다 더 많은 삶의 순간들, 우정들, 관계들이 있다. 사랑에도 삶에도 훨씬 더 많은 것들이 담긴다. 

못 본 체하고 말하지도 못 해서 고통의 신호를 알아채지 못하는 팡쓰치의 엄마가 되는 것도 문제겠지만, 세상 모든 따뜻함을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것도 끔찍하지 않은가. 어려운 일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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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를 봤다. 아이를 가지고 싶은 여자가 아이를 가지고 싶어하지 않는 남편이 고민이라고 출연했다. 

세 쌍둥이를 키우느라 애쓰는 여자가 남편의 무심함이 고민이라고 출연했다. 

안녕하세요,를 보고 본 콘택트, 속 언어학자는 아이의 삶과 죽음을 모두 아는 채로도 그 삶을 따라 걸어간다. 

사자소학,을 따라 쓸 때 '부모가 살아계실 때는 너무 멀리 가지 마라'라는 글귀를 보며 쿵 가라앉았던 내가 생각났다. 

돈도 많이 들고, 키우기도 힘들고 차라리 강아지를 키우며 행복하게 살겠다는 안녕하세요,의 남편을 보고 있자니, 내일의 무엇을 확신할 수 있는 것인가 되묻고 싶은 마음이 되었다. 내가 내일 과연 살아있을지를 나는 확신할 수 있는 것인가? 그런 상태로 아이를 낳아 부모가 되는 거라고. 아이의 전부를 내가 책임지지 못한다고. 

세 쌍둥이를 아내가 키우는 동안, 자신의 어머니가 양육비에 보태라고 준 돈으로 자신의 장난감을 사들이는 남편에게는 시간이 지나가고 당신은 알 수 없는 깊은 사랑에 대해 말해주고 싶었다. 어려움 없이 취하는 행복 따위는 없다고 말하고 싶었다. 새로운 기쁨에는 새로운 댓가가 필요하다고도 말하고 싶었다. 

콘택트 속 언어학자의 삶을 아프게 쫓으면서는 왜 여성일 수밖에 없는가 생각했다. 여성일 수밖에 없다. 혹은 여성이기 때문에 그러하다. 아이를 낳아 기르는 선택은 무모하기 때문에, 남성의 언어로 설명하지 못한다. 어리석다,는 것이 이런 거라면 여성은 어리석은 걸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 어떤 것보다 위대한 어리석음,이라고도 생각한다. 

사자소학,의 글귀는 나의 두려움을 알아주는 사람이 있구나, 싶어 고마웠다. 세계를 여행하는 젊은이들의 말이 넘치는 순간에, 당장 내 눈 앞에서 멀어지는 아이 때문에 심장이 쿵하고 떨어지는 부모의 나약한 마음을, 아, 그래 알고들 있어, 싶었다. 알고 있고, 그 마음을 아이에게 가르쳐주다니 고맙구나, 이런 마음이 되었다. 

부모가 되는 것은 새롭고 놀라운 어쩌면 모험,이다. 길고 느리고, 시시각각 변화하고, 원한다고 해서, 늘 가능하지도 않은 두려운 모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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