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칼국수 팔아서 20억이래.

 

연매출은 재료값이 안 들어가, 뻥이야.

그리고 샤브칼국수면, 그게 칼국수 팔아 번 돈이라니, 고깃집에서 된장찌개나오면 그게 된장찌개팔아 번 돈이라니, 고기팔아 번 돈이지.

엄마는 줄 길면 안 간다.

 

그런데, 진행 중에 나온 칼국수 가격이 1인당 7천원.

아, 칼국수 판 건 인정.

 

근데, 저기 일하는 사람들 보이지? 벌써 몇 명이야?

열명도 넘어보이는데, 연매출 중 반이 수익인 거면-보통 그 정도 안 남아, 게다가 장소를 빌리면 세도 줘야 한다구-10억인데, 스무명이면 얼마겠냐?

 

그런데, 제목으로 크게 뽑은 연매출의 산출방식은 카메라가 찍은 그 하루의 매출액에 한달 30일, 다시 열두달,로 셈한 거였다.

 

야, 저걸 저렇게 셈하면 안 되지. 저 사람들은 일년 내내 엿새 논다니, 사람이 그러고 살 수 있다니?

일을 해서 돈을 버는 걸 계산하려면 한 달에 20일 쳐야지, 30일 내내 일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니.

네가 뭘 싸게 주고 샀다고 좋아할 거 없어. 누군가, 엄청 일하고 돈을 덜 받은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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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있다. 드문드문. 만화가 그대로 콘티로라도 쓰인 양, 기시감이 있다.
송곳 명대사를 모아놓은 다음 기사 아래 첫번째 댓글이 신경쓰인다.
'그런 노동조합은 지지한다. 그렇지만 자동차랑 항만 해운노조는 쓰레기다' -정확한 인용은 아니다.

노동조합,은 어때야 하는가, 마음이 무겁다.
이 나라 법으로 묶인 강경한 행동의 제약,에 마음이 무겁다.
노동조합,이 하는 것은 언제나 정치고, 개별 노동조합을 개별 사업장에 묶어놓는 것은 언제나 사용자가 원하는 거고, 그래서 우리나라 법에서 언제나 연대하는 행위는 불법이다.

법 안에 묶인 노동조합이 가지는 한정된 상상력은 언제나 외부자의 시선 앞에 부끄럽다.

노동자이고, 조합원이고, 언제나 노동조합을 지지한다고 말하지만, 현실에서 사안에서 나의 노동조합이 부끄럽지 않았다고 말하지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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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13 10: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1-13 13: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드라마 불패, 하지원의 '너를 사랑한 시간'을 낮시간 재방송으로 잠깐 잠깐 본다. 

아직, 이입하지 못했고, 이입하기에는 너무 산발적인 시청이라, 둘 다 너무 멍텅구리처럼만 보인다.

오랜 친구가 아마도 연인이 될 테지만, 연인이 되기 직전을 오려낸 장면들에서 남자와 여자에게 각각 닥치는 설렘을 묘사하고 있었다. 

인피니트의 엘,이 하지원을 설레게 하는 연하남으로 나왔다. 햐~멋지구나. 

둘은 같이 출장을 가서 성공적으로 일을 성사시키고는, 기분 좋게 여행기분을 내며 놀다가 숙소에 들어간다. 출장 온 일이 성공했으니, 오늘 밤은 축하하자며 꽃단장을 마친 하지원이, 엘-극 중 이름을 쓰고 싶은데 기억이 안난다-의 숙소를 노크하려고 섰다가 열린 문으로 살금살금 들어가서는, 엘이 성난 목소리로 하는 통화를 엿듣는다. '괜찮아, 된다구, 정직원. 팀장님이랑 각별하다구.~' 설렜다는 게 부끄러워서, 우두커니 서 있다가는, 알아차린 엘이 돌아보는데, '그런 거였어?고작 정규직 일자리 때문이었어?'라며 항의한다. 나는, 사랑에 속았다고 생각하는 분하고 억울한 하지원 대신, 불쌍한 인턴직원 엘에 이입해서는 '고작'이라니 '자신의 권력'을 모르다니, 한심하다고 생각했다. 

권력,을 인식했어야 한다. 

권력,을 인식한다는 것은, 권력,을 행사하는 것과는 다르다. 

각자 누리는 새털만큼의 권력, 어머니가 아이들에게 행사할 수 있는 권력,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행사할 수 있는 권력, 학부형이 선생님에게 행사할 수 있는 권력, 소비자가 생산자나 유통업체에 행사할 수 있는 권력, 젊은 여성이 행사할 수 있는 권력, 굳이 권력, 이라고 이름붙이지는 않지만, 세상을 구성하고 있는 그 작은 관계,영향력들을 인식하고 있어야 했다. 

팀장이고, 나이도 많은데, 심지어 말 한마디로 존재기반을 허물 수도 있는데, 상대의 행동에 설렘을 느꼈더라도, 자신의 위치나 권력을 인식했더라면, 그렇게 억울하지는 않았을 거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많은 관계는 그저 남자와 여자로는 오려지지가 않는다. 다른 많은 관계, 배경이나 조건,이라고 불러서 혐오하기도 하는 그런 것들이 존재한다. 그런 것들을 인식해서, 서로를 보는 걸 제약할 필요도 없지만, 그런 것들을 인식하지 못해서 서로의 행동이나 방식을 오해할 필요도 없다. 

스스로도 인식하고 있어야, '갑질'을 안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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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교육용으로 함께 보면서 이런 이야기를 한다.

야, 자식들이 저도 벌면서, 아빠가 먹이고 재우는 걸 당연히 생각하면 안되지.

그래. 

아직 순진한 2학년 딸래미가 잘도 수긍한다. 그러다가, 내가 갑자기 의문이 든다. 

근데, 요새는 그러기도 한다더라. 원하는 걸 못 해주는 부모에게 '누가 낳아달랬어?'라는 자식들도 있다고는 하더라.

그러다가, 다시 욕심 사나운 강재가-가난한 아버지와는 연을 끊더라도 병원장 사위가 되어 병원장이 되려는- 결혼한 효진이를 보면서 이건 또 다른 이야기라는 생각도 들더라. 돈이 없어, 인생을 준 아버지와 돈이 많다고 뭐든 줄 수 있지만 인생은 주지 않는 부모에 대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강재와 결혼한 효진이는, 언제나 엄마에게 묻고 엄마가 하자는 대로 하는 딸이다. 부모에게 착하고 예쁜 딸이지만, 부모가 정해준 남편이지만 진심으로 사랑하는 남편에게 '효진씨는 머리가 없어요? 생각이라는 걸 하냐구요!'라는 말을 듣는다.  

나는 부모를 벗어날 수 있던 순간부터 언제나 아무것도 안 주셔도 되니, 내 인생을 주세요,였기 때문에, 뭐든지 줄 수 있으니 네 인생을 내 맘대로 하겠다,라는 부모는 사절이다. 

아이가 지금 세상에서 유일하게 복잡한 계산없이 무한정 사랑해도 되는 유일한 존재라서 축복이라고 생각하는 나는, 내가 주는 사랑의 댓가를 바라지도 않고, 내 아이의 인생이 내 아이의 것임을 잊지 않는다. 그래서, 내 아이의 인생이 행복해서, 그 인생을 준 나를 또 사랑했으면 하고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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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어야 한다.

직장의 신,을 보면서 내가 한 최초의 코멘트.

회사란, 무엇일까,가 요즘의 화두.

미스김에게 회사란, 잔인하고 냉정한 존재라서 일한만큼 돈을 받으면 그 뿐이고, 그 안에 속한 사람들과 회사밖에서 만나는 일은 끔찍한 일이 된다. 장규직에게 회사란, 타인에게는 잔인하고 냉정할 지 모르지만, 적어도 자신에게는 관대하고 중요한 존재라서 회사 안의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어하고 '회사'에 애정없는 미스김이 그렇게 끔찍한 거다.

 

15년차 직장인인 나는, 회사가 무엇일까, 생각한다. 미스김처럼 정의하기에 나는 회사에 이입하는 순간이 많고, 장규직처럼 정의하기에는 나는 애가 둘이나 있는 엄마다.

아직 아이가 있기 전에, 가정이 있기 전에, 나는 회사를 '이윤추구를 목표로 움직이는 조직' 이라고 생각했고, 그 안에서 나의 존재, 혹은 타인의 존재가 회사에 득이 될지 실이 될지를 내 딴에 평가하고 있었다. 그래서, 아이가 생기고 더이상 회사에 그 이전만큼 헌신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 나는 내가 정의한 회사의 방식에 비추어 내 자신을 경멸하거나 혐오했었다.

그런데, 지금의 나는 회사를 특정하게 가상하지 않는다. 회사는 회사를 구성하는 사람들이 정의하는 방식으로 행동한다. 그리고, 회사를 구성하지 않는 사람들이 또 회사를 정의하는 방식으로 행동한다고도 생각한다. 회사 안의 사람들이 '회사'가 이윤추구를 위해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만큼, 회사 밖의 사람들이 '회사'가 이윤추구를 위해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회사는 결국 그렇게 움직일 수밖에 없다. 계약직이란 게 존재하지 않던 시기가 우리에게 있었고, 우린 드라마의 시작에 언제나 되풀이되는 'IMF' 이후로 '회사'는 회사 '안과 밖'에서 그런 존재로 정의되어 버린 거다. 우리의 믿음이 이미 완전히 그렇게 바뀌었다면, 회사가 다르게 움직이기를 기대하기 어렵다. 다른 회사를 바란다면, 다른 믿음을 가져야 한다. 회사는 '이윤추구를 하는 조직이라서 이익이 되는 방식으로 움직인다'는 믿음 대신, 다른 믿음을 가져야 한다. '이윤추구가 아니라,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조직으로 함께 가기 위한 방식으로 움직인다'는 믿음. 애가 둘이나 있는 엄마인 나는, 나의 회사를 다르게 정의해야, 나의 어떤 식의 무능에도 불구하고 회사에 다닐 수 있는 것이다. 회사밖에서 회사에 청렴이나, 사회공헌을 요구하는 것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써 특정하기 어려운 '회사'라는 조직에게 '사회적 책무'를 원하는 것이라면, 회사에 속한 사람들도 다른 방식으로 회사를 구성하거나 정의할 수도 있고, 노력할 수도 있다.

무엇을 만들고, 무엇을 하는 회사던지간에, 그 회사가 그 회사에 속한 사람을 대하는 방식은 단지, 회사에 속한 사람들의 얼굴로만 드러난다. 

그래서, 나는 누군가에게 내가 회사의 얼굴로 드러날 때, 아픈 당신을 위해 짐을 나눠질 존재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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