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가 보기 시작했다. 큰 딸-스물다섯스물하나-과 막내딸-아는형님-이 채널을 가지고 싸우는 토요일 밤, 막내가 그래도 일찍 잠들면 다음에 돌려서 큰 딸과 같이 보기 시작했었다. 너무 청량한 일본만화재질이라서 어색하게 보기 시작했지만, 김태리가 너무 귀여워서 미스터션샤인 짤을 찾아보게 되더라. 그러다가, 점점 멀어졌다. 

채널다툼으로 초반부를 못 보다가, 보게 되면 늘 도입의 현재가 판타지에 낀 먼지같이 거슬렸었다. 그러다가 점점 더 현실과 가까워지면서 뭔가 심한데, 싶은 장면들을 만나게 되더라. 

7화에서 내내 나희도가 처음 펜싱을 시작하고 지금까지 아빠와의 애틋한 이야기들이 나왔다. 아빠를 통해 처음 만난 펜싱, 아빠를 통해 배우는 어떤 마음. 

11화에서 희도는 내내 엄마에게 원망을 토한다. 드라마 설정의 기이함에 더하여 양립불가한 삶의 어떤 면에 대해 생각한다. 장례식 형태로 존재하지 않는 우리 문화에서-여러 날을 두고 밤을 지내면서 보내지- 아빠의 장례식?에 오지 않고 특종을 알리는 엄마 설정은 기이하다고 생각했다. 보면서 나는 임종을 지키지 못한 거겠지, 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장례식장 묘사가 있었다. 어른은 엄마 뿐인데, 저게 뭐지, 싶은 장면이었다. 저럴 필요가 있어?라는 의구심에 이어, 조직 내에서 스스로를 약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기준이 높고 기준이 높기 때문에 더 희생하고, 기준이 높기 때문에 스스로를 더 질책하다가 회사를 그만 두는 여자들 생각이 났다. 

드라마에 멀어지는 순간들이다.

14화에서 유림이가 귀화하는 장면들은 도대체, 부모가 뭔가 싶었다. 명탐정 코난(https://blog.aladin.co.kr/hahayo/10888839)을 볼 때 들던 위화감같은 게 느껴졌다. 열심히 사는데, 망해버리기만 하는 부모의 묘사가 가혹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 상황에서 '가족이 없다면 내가 왜 펜싱은 하겠냐'며 국적을 버리고 귀화하는 것은, 도대체 뭐지, 싶었다. 어차피 가족도 국가처럼 허상인데, 싶기도 하고, 그렇게까지 책임지려는 태도는 과연 부모가 바라는 태도인가 싶었다. 유림이가 너무 기이해서 나는 다음을 다음을 기대하지 않게 되었다. 

애초에 청소년인 딸이, 엄마의 젊은 날 일기를 꺼내 보는 설정이 기분 나쁘다고. 서치의 장면들이 끔찍하다시는 자녀분들, 부모들도 자신의 젊은 날들을 들키고 싶어하지 않는답니다. 

반짝반짝 빚나던 희도가 저런 어른이 된다는 것도 싫고, 희도 엄마가 딸과 함께 아빠의 이야기를 나누지 않고 자신의 직업적 성공에 매진한다는 것도 싫고, 유림이 부모가 저렇게 젤리처럼 물렁해서 딸이 그런 선택을 하게 둔다는 것도 싫었다. 그래서 15, 16화는 정말 잠깐 봤는데, - 좋을 때만 사랑이고, 어려울 땐 짐이야, 따위의 말들로 상처를 준 다음, 연습하다 쓰러지고, 일기장에 그건 진심이 아니라고 하다가, 다음에 다시 울면서 헤어지는 장면들을 봤다- 디씨갤 보고는 안 봐도 되겠다, 싶었다. '나쁘다는 말이 많아서 좋아요'라고들 썼더라. 

첫사랑이 이어지기 보다 멀어지는 게 더 많겠지만, 내가 왜 드라마를 보겠냐고, 나 좋으라고 현실과는 너무 다른 이야기를 그냥 꾸며내는 것이 낫겠냐고 혹시 묻는다면, 현실과 같은 이별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뭐냐고 묻고 싶달까. 설득하라고, 인생은 달고도 쓰고도 짜고도 시고도 맵겠지만, 사랑만큼 강경하게 이별도 설득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반짝, 하는 좋은 순간들은, 아마도 나중에도 기억이 나기는 할 거다. 

우리 관계는 무지개,라고 희도가 말하고, 나는 사랑,이라고 이진이가 말한다. 사랑은 품이 넓고, 사랑이란 말들에 많은 관계들이 들어간다. 그래서 나는 그 장면이 그 말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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