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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류사회 - 한국의 여성 인식사
이소정 지음 / 아이필드 / 2021년 10월
평점 :
절판
기다린 책이고, 재미나게 읽었다.
한국철학-인내천(人乃天)이나 홍익인간(弘益人間)-에 대한 설명은 동의하거나 공감하면서 읽었다. 음과 양은 우열의 문제가 아니고, 음이 양 위에 있어야 자연스럽게 순환하면서 가장 좋은 상태가 된다는 주역의 설명은 마음이 편해진다. 둥글게 순환하는 사회의 묘사, 여성과 남성의 우열없는 태도. 내가 살고 있는 이야기의 세상은 사람은 모두 그 안에 하늘을 품고 있다. 사람이 그대로 보살이 될 수 있는 누천년 불교의 나라였고, 기운이 모였다 흩어지는 마음이 중한 유교의 나라다.
그렇지만, 세태에 대한 이야기는 물음표가 생기고, 고대사회부터 조선시대, 그리고 지금까지의 여성인권이 떨어지는 상황의 묘사는 그게 무슨 소용인가? 싶다. 지나간 과거가, 과거에 그랬던 게 지금 뭐?라는 식. 중국 역사에 '동이족'으로 묘사되는 것이 우리 민족,이라는 말이나, 고대사 상나라가 우리 민족의 나라라거나, 하는 말들은 의미가 있는 말인가, 생각했다.
책 속에서 우리가 상나라의 후손이고, 공자도 그러하다는 대목에서는 좀 많이 놀랐다. 그게 뭐 중요해? 라는 태도에 더하여, 유사역사학에 대해 내가 배우는 초록불의 잡학다식(http://orumi.egloos.com/),이라는 사이트도 떠오르고, '한국인들이 공자도 자기 조상이라고 한다'고 분개하던 중국의 애국청년 생각도 났다.
내가 느끼는 '우리'는 무엇일까? 민족인 걸까? 생각이 많다. 내가 생각하는 우리,는 같은 말을 쓰고 여기 한반도에서 함께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여기 지금 함께 살고 있는 사람들, 그럼 내가 가지고 있는 어떤 생각들의 뿌리는 무엇일까, 역시 대답하기 쉽지 않다. 아마도 그래서 저자는 상나라부터 시작한지도 모르겠다. 남편이 왕이고, 아내는 장수인 고대의 어떤 사회를 묘사하면서, 여성의 지위가 낮지 않았다고, 다시 고려와 신라와 조선을 말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주자의 교조적인 성리학이 들어와서 조선의 여성지위가 떨어졌다고, 일제의 수용적인 태도나 성적으로 개방적인 태도 가운데 여성지위가 떨어졌다고 묘사한다. 가끔 이게 일관성은 있는 건지 의심도 한다. 옛날에 그랬던 게 무슨 소용이냐, 싶고, 그래서 모든 악덕이 외부로부터 들어왔다고 하면 되는 것인가, 싶기도 하다. 여성이 우위에 섰던 고대 사회는 남성이 우위에 선 부계사회에게 결국 주도권을 빼앗겼고, 성적으로 결벽적이고 여성에게 억압적이던 조선 사회는 일제에 무너졌다.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의 이야기가 좀 더 좋은 이야기라고 해도, 수직으로 위계지워진 서양의 철학들이 둥글게 순환하는 동양의 세계를 무너뜨렸다면, 어떡해야 하는 걸까 생각이 많다. 동양의 세계가 과연 무너졌다고 할 수 있는가, 생각하고, 지금의 문명이 계속 나아갈 수 있을까 의심하지만, 나는 사람이 곧 하늘이고,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라,는 태도를 내가 선택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