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를 열심히 했었으면,이란 푸념이 얼마나 아름다운 아침인지. 좋은 걸 보고 좋은 걸 듣고 좋은 걸 읽어도 어디가 어떻게 좋다고 표현할 수 없어 기가 찬다. 그래도 실실 웃고만 있다. 왜냐하면, 이런 문장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바람이 실컷- 분다. 아, 혼자 생각하고 혼자 시라고 우긴다. 그러니까 나는 쫌 시인의 감성, 직관이 있는 것이다,라고 또 실실 웃는다.
권혁웅의 시집 <그 얼굴에 입술을 대다>를 까꿍,하는 심정으로 열어 젖힌다. 까꿍,과 동시에 펼쳐진 33쪽에서 이런 구절을 발견한다. "멱따는 소리로 꿀꿀대는 이 안절부절을 어디에 버려야 하겠습니까"「섬-코1」안절부절을 꿀꿀대는 소리에 가만히 등치시키는 이런 센스는 어디서 배우셨답니까, 누가 가르쳐 주더이까, 혼자 깨달았수,라는 질문이 입 밖으로 뚝뚝 떨어진다. 이내 좀전에 실실 거렸던 웃음이 전속력으로 사라진다. 빌어먹을 그러나 또 얼마나 아름다운 11시인지.
서동욱은 권혁웅의 <그 얼굴에 입술을 대다>를 연애 시집이라고 했다. 좀 더 정확히 권혁웅이 연애 시집을 썼다,라는 문장으로 작품 해설을 시작했다. 서동욱의 해설을 읽고 나니 한결 마음이 무겁다. 이 감각적인 시인을 나도 좀 칭찬해 볼 요량이었는데 내가 웅얼거리기만 하고 글로 쓰지 못하는 마음까정 서동욱씨는 싹쓸이를 했다. 세상에 독한 놈들 진짜 많구나. 또 한 번 하는 소리. 몽실몽싱 어정쩡 떠다니는 그 느낌들을 도대체 어떻게 그리 잔인하게 붙들어 놓는 거요, 그런 것들은 어디서 가르쳐 주는 거요, 뭔가 야로가 있다면 쫌 나눕시다, 뭐 이런 소리가 절로 나온다. 참으로 복통이 나는 그렇지만 존재의 발바닥까지 핥는 얼마나 아름다운 11시인지.
"이 돌은 오래 신음해 왔으나 내 듣지 못한 것은 입도 코도 없이 그저 앙다문 표정이었기 때문이다"「울다-심장2」그렇구나. 나는 오래 신음하였지만 입도 코도 없이 그저 앙다물고 있었구나. 그러니 신음하지만 누가 알겠는가, 알면 신기에 가깝지,라고 위무하는 이 어처구니 없는 시 해석에 혼자 들뜬다. 시인이 무슨 생각으로 그 많은 밤을 술로 혹은 여자로 혹은 친구로 혹은 불면으로 혹은 위장장애로 고생했는지 전혀 고려하지 않는 나는, 그저 몽땅 내 상황에 비추어 읽어내니, 나는 참으로 괘씸하거나 귀연운 독자다. 괘씸한 것과 귀여운 것의 거리를 이렇게 좁힐 줄 아는 나도 쫌 대견하구나,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점점 기고만장해지는 그래서 또 아쌀하게 아름다운 11시인지.
공부를 제대로 못했던 청춘이라면 연애라도 제대로 할 것을 싶다. 그랬으면 나도 모든 기관을 날렵한 감각으로 무장하고 이런 연애 시집을 썼을 것을 말이다. 그러니까 어정쩡 절충했던 지난 시절이 일제히 몰려와 인디안밥오예,를 외치는 그런 11시다. 아 약오르고 쪽팔린다. 그렇지만 진정 중요한 것은 이제부터다. 이렇게 쨍한 어딘지 가을 하늘 흉내까지 내는, 이렇게 심란한 하늘을 머리에 이고 배꼽 아래부터 울렁증이 이는 사람이라면 이 시집을 읽으시라. 산낙지 소금으로 버무리는 기분을 직접 산낙지가 되어 체험할 수도 있으니 이 아니 즐거운 경험인지. 서동욱이 못한 말이라고는 이 말 밖에 할 수 없지만 서동욱은 절대 할 수 없는 대놓고 좋다고 떠들 수 있는 나는 또 얼마나 갖은 것 없어 자유로운 사람인지. 말도 안되는 억지에 절로 흥이 돋는 오늘은 숨막히게 아름다운 11시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