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날의 깨달음
조정래.홍세화.정혜신 외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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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장점은 필진이 화려하다는 것이다.
조정래, 홍세화, 박홍규, 김진애, 고종석, 손석춘, 정혜신, 박노자, 장회익(이 사람은 잘 모르겠다)...한국 사회에서 한끗발씩 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나도 그들은 젊은 시절 무슨 고민을 하며 어떻게 해쳐 나왔는지가 궁금하여 한수 배워보고자 구입하였다.

먼저 만족도를 현저하게 깍아먹은 이 책에 대한 불만 부터 말하자.
김진애의 <멀티인간, 실용인간, 여자인간의 '일'> 이라는 글은 심하게 '나 잘났소'를 외친다.  나도 안다. 그녀가 잘난것을. 그런데 이 책의 주제는 '젊은 날의 깨달음'이지 '나 이렇게 잘난 길을 밟아왔소'가 아니다. 한국전쟁이 막 끝나는 시점에 태어난 사람들은 다들 지지리 궁상을 떨며 허덕거리며 살았는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구나 하는 '깨달음'을 나에게 주었다. 그리고 제목 마지막의 '여자 인간의 일'이라는 대목은 왜 써붙여 놓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페미니스트적으로 보이고 싶었다면 제목만 성공했다.

두번째 흠은 젊은 날의 깨달음이라는 제목을 붙이기에는 이 모든 글들이 하나로 엮이지 않는다.  젊은 날의 깨달음과는 전혀 상관 없는 글도 있다.

세번째 글자가 매우 크고 지면 낭비를 많이 했으며 왜 하드커버까지 하여서 책값을 만원이나 받는지 이해할 수 없다. 하드 커버로 보존까지 해야할 책이라고 여겨지지 않으며 그렇게 두꺼운 종이에 대문만한 활자를 쓰지 않았다면 책세상문고에서 나오는 정도로 충분하였을 것이다. 5천원도 안되는 가격으로.

이제 장점을 말하자.

손석춘의 글은 매우 훌륭했다. 참 어려서부터 반골기질이 타고 나는가 보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초등학교 졸업 답사문을 읽는 대표로 선출되어 연습까지 마쳤으나 졸업 이틀전 어머니가 화사했던 부잣집 아들에게 그 역활을 빼앗긴다. 또 환경미화 화분을 가져오지 않는다, 시험지 값을 내지 않는다는 이유로 담임이 공개적 망신을 주는 일도 당한다. 그런데 그는 그 선생을 미워하지 않는다. 자본주의 사회의 실체를 일찍 눈뜨게 해준 은인일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사람을 위해 돈이 생겨났는데, 지금은 돈 때문에 사람이 죽고 있다. 나는 돈 없는 사람들을 위해 일하겠다."
졸업을 앞둔 교실에서 그가 밝힌 자신의 꿈이다. 그는 내가 생각하기에 돈없고 힘없는 소외된 이들이 있음을 꾸준히 세상에 대고 외치는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

그리고 이 시대의 딸깍발이 한분의 글도 의미있었다. 영남대 법대 박홍규 교수.
그는 노동법 교수이다. 그런데 그의 노동법 책은 잘 안팔린다. 이유는 다수설을 주축으로 학설을 전개해야 수험서로서의 역할이 되는데 그는 항상 노동자 편에 서서 학설을 전개한다. 그의 말대로 시험 보면 낙제는 맡아둔 것이다.
한 2년 전이었다. 그는 우리나라의 헌법학계에서 이름 석자를 쩌렁쩌렁 울리는 두 학자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서울대의 권모교수와 연세대의 허모 교수에게. 책 제목은 "그들이 헌법을 죽였다."
요지는 권모교수에게는 권력에 이론 대주기 그만하라는 것, 허모 교수에게는 반동적 학설 퍼뜨리지 말고 독일 이론 그대로 베껴와서는 독보적 학설인양 행세하지 말라는 내용이었다. 박홍규 교수가 헌법전공이 아니어서 논리의 헛점도 보이지만 대략 공감가는 내용들 이었고 누구도 입밖에 내지 못했던 말을 과감히 던진 글이었다.

그 때 서울대의 안모 법대교수가 그 글에 대한 반박을 신문에 낸 적이 있다. 그 글은 내용도 가히 엽기였지만 그 자신의 수준도 의심케 하기에 충분했다. "박군"이라고 지칭하며 선배가 후배에게 하는 충고라는 그 글은 이미 평등한 테이블에서 시작한다는 토론의 기본도 지키지 못한 글이었다.

각설하고 그러한 박홍규 교수의 젊은 시절도 특별했다. 교원노조 활동으로 구속된 아버지가 경찰서에서 머리가 빡빡 깍이던 기억으로 시작한다. 그의 젊은날은 책속에 묻혀 침잠한 세월이라 하겠다. 그러한 독서가 지금의 방대한 번역과 저술을 가능하게 한듯하다.
그의 어린시절 에피소드 둘!
"나는 중학시절, 장래 희망에 대한 작문숙제에서 선생이 아니라면 무엇이라도 좋다고 썼다가 심하게 꾸중을 들은 적이 있다."
"반공수업 숙제로 남한도 북한도 각각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를 버려야 통일이 된다고 쓴 것을 보고 아버지를 불러 정신병원에 가도록 한 교사"
역시 비범한, 난 사람이다.

그 외에 장회익이나 고종석, 조정래의 글도 좋긴 하지만 전체적 평가는 "돈 아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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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마개 2005-05-26 17: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더불어..인물과 사상사도 리뷰 알바 쓰나???
 
메콩의 슬픈 그림자 인도차이나 - 유재현의 역사문화기행
유재현 지음 / 창비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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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4월 30일은 베트남의 승전 30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이 날을 칭하는 호칭도 실로 다양하게 바뀌어 왔다. 광주폭동-광주사태-광주사건-광주민주화투쟁 처럼...
내 어린 시절 월남이 망한날, 패망일로 불리웠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한동안 어정쩡하게 미국의 철수로 전쟁이 끝난 4월 30일 어쩌구....길게 설명했던 기억.
한겨레 신문과 방송에서는 요즘 종전 30주년 이라고 나온다.
그러나 나는 승전일 이라고 부르고 싶다. 베트남 해방을 염원하는 민중이 거대 국가 미국을 몰아내고 승리를 쟁취한 날!

이 글을 쓴 이는 얼마전 읽은 '달콤한 열대'의 저자이다. 유재현. 열대 과일을 설명하는 글에 문득 문득 나타나는 저자의 역사인식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아 사보게 된 책이다.
인도차이나 반도의 메콩강이 흐르는 3국가, 라오스, 캄보디아, 베트남을여행하며 쓴 글이다.

우리가 알다시피 베트남은 우리가 한 짓이 있어 그 이름만으로도 상당히 거북스러운 나라이다. 그런데 이 나라도 도이머이 이후 상당히 바뀌었나보다. 호찌민 루트를 관광상품으로 개발하고 구찌터널에는 슈팅레인지라는 것을 만들어 전쟁중 사용한 각종 총기를 쏘아볼 수 있게 만들었단다. 박격포도 쏴보고...
그 슈팅레인지에서 베트콩의 사용 무기를 들고 드르르르륵 총을 쏘는 베트남전 참전 미국 노병이라니...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이 구지 터널은 군데 군데 관광객이 들어가 볼 수 있도록 조금 크게 파 놓은 곳이 있단다. 이 곳을 찾은 저자. 건방 떨다 호되게 다친다.

"여러분들 같으면 이 터널로 2km를 갈 수 있겠어요?"
그 말을 건네면서도 그는 별 표정이 없었고 나 또한 무심코 대답했다.
"필요하다면."
내 대답을 귓전으로 흘리지 않은 그의 표정은 아주 잠깐이었지만 묘하게 일그러졌다. 그리고 그는 말했다.
"따라와"
거의 반말투였다. 그에게는 외국어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지만 별로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나와함께 있던 두 명의 한국인은 그의 제안에 고개를 흔들었다. 한 명은 이미 다녀온 듯 했고 다른 한 명은 50대였기 때문에 동행인 다른 사내가 만류했다. 결국 나만이 그를 따라 터널로 내려갔고 그것은 아마 그가 바라던 것이었다.
길이는 100m였다. 그는 성큼성큼 허리를 굽히고 앞장서 걸어갔다. 엉거주춤 허리를 90도로 굽히고 힘겹게 그를 따라가던 내 앞에서 그는 곧 사라졌고 희미한 백열전구가 띄엄띄엄 불을 밝힌 어두운 터널에서 어느 순간 나는 혼자 남겨졌다. 끔찍한 공포가 온몸을 덮쳤다. 그만 주저 앉아 울어버릴 만큼 극심한 공포였다. 그럴 리가 없지만 영영 이곳에서 나가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터무니없는 절망감과 금세라도 무너져내릴 것만 같은 좁디좁은 터널의 어둠속에서 나는 사정없이 후들거리는 다리를 부여잡고 사라진 그의 흔적을 쫓아 걸음을 옮겼다. 온몸은 금세 식은 땀으로 젖어들었고 땀에 젖은 바지가 허벅지와 종아리를 붙들고 늘어져 걸음은 계속 엉켜들었다. 그리고 앞에 두갈래 터널이 나타났다. 나는 힘이 바진 허벅지를 부여잡고 그만 주저앉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그가 되돌아와 나르 ㄹ일으켰다. 그는 말없이 다시 되돌아 이번에는 천천히 앞장서 걸어갔다. 나는 그렇게 100m의 나머지 절반쯤을 얼이 빠진 상태에서 빠져나왔다. 햇볕이 새어 들어오는 출구를 보았을 때에도 나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건 필요하다고 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해야 한다고 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나는 벤딘의 젊은 가이드에게서 얼굴을 돌리고 무거워진 눈시울을 눌러 억지로 울음을 참았다.

그 터널을 기어 승전을 이끈 베트남 민중에게 경배!

캄보디아와 라오스편에는 가해자 베트남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베트남도 인도차이나에서 패권을 쥐기 위해 이웃나라에 가해자의 모습으로 침략을 했던 것이다.
여기서 아이러니...베트남 하면 무언가 마음의 짐이 있는데 그들도 가해자 였다고 하니 마음이 조금 가벼워 지는 이 알량함은 뭐란 말인가. "너도 똑같은 놈이야.."뭐 이런 말도 안되는 동류의식인가?

라오스에서 벌어진 미국의 비밀전쟁과(이것은 정문태씨가 그의 책에서 너무나 잘 설명해 준다) 마약산업 등 추한 미국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더불어 격렬한 내전을 겪은 베트남과 캄보디아인의 각박함과는 다른 라오스인의 따뜻함까지.
베트남과 캄보디아편을 읽으며 심신이 지치고 맘이 부대꼈다면 라오스를 읽으며 편안해 지고 늘어지는 기분을 느끼리라.

별 5개를 주지 않은 이유는 글 차례가 조금 어수선하여 저자의 동선을 온전히 따라가기에 무리가 있다. 그리고 창비의 책에서 좀처럼 찾기 어려운 오자도 1개 찾아냈다는 사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 흔해빠지 어디가서 뭐먹고 뭐사고 잘놀았다 식의 기행문이 아닌 깊이있고 저자의 내공이 보이는 훌륭한 글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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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전공은 헌법이다.
대부분 나의 전공을 들으면 이렇게 말한다. "헌법 전공이라는 사람 처음봐요"
ㅋ, 그렇다.  전공인 나도 헌법 전공자 가끔본다. 돈이 안되기 때문에 인기가 없나보다. 더불어 엄청 철학적이어서 나처럼 전혀 철학적이지 못한 인간은 매우 곤란하다.

각설하고...
갑자기 헌법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논문의 주제를 찾기 위해 헌법책을 뒤적뒤적 하다가 찾아낸 것들 때문이다. 자, 한번 보시라. 뭔 소리인지 이해가 가는가.

오늘날에 와서는 헌법이란 '국가적 공동체의 존재형태와 기본적 가치질서에 관한 국민적 합의를 법규범적인 논리체계로 정립한 국가의 기본법'이란다. 한 3번 읽었다.

우리 헌법이 예정하는 인간상이 궁금하신가?
'고립된 개체로서의 개인주의적인 인간상이나 국가권력의 객체로서의 인간상이 아니라 개인 대 사회라는 관계에서 인간 고유의 가치를 훼손당하지 아니하면서 사회관계성 내지 사회구속성을 수용하는 인간상'
여기서 내지는 또는의 의미인지 ~부터 ~까지의 의미인지 명확치 않다. 법학에서 내지는 대부분 ~부터~까지의 의미로 쓰이는데 이 경우 그렇게 되면 좀 이상하기도 하고...

읽어 보시니 인간상이 머리에 마구 떠오르시나?
이러니 다들 헌법을 알려고 하지 않나보다. 나도 읽기가 지겹거늘 다른 이들은 말해 무엇하리.
그런데, 이렇게 욕하는 나도 논문을 쓰고 나서 읽어보면 만만치 않더라는 것이다.
'~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할것이다'는 기본이며 '~되어져야 할 것이다'라는 말도 안되는 문장과 내가 쓰고도 도식을 그려가며 읽어야 이해 되는 문장들...

그리하여..어떤 사람들이 어떤 텍스트로 교육 하는가가 매우 중요한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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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5-02-23 18: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법은 현실을 지향하고, 철학은 이상을 지향한다고 생각하지만, 법중에서 헌법은 철학과 같이 이상을 지향한다고 생각해요. 결론은 헌법이 좋아요~

코마개 2005-02-24 1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별로 이상을 지향하지 않는 것 같은데요. 이게 고도의 정치적 법률이어서 알면 알수록 그지 같더라는...
 

프랑스가 프랑스어 보호 정책을 얼마나 유난스레 펴는지는 유명하다.  난 그런 일련의 정책들이 자문화에 대한 우월감으로 인한 것인줄 알았다. 그런데 얼마전 라디오 시사프로그램에서 그에 대한 설명을 듣고 매우 놀랐다.

지구상에 무수히 많은 언어가 있으나 언중의 소멸로 일년에 20여개의언어가 없어진다고 한다. 프랑스는 이러한 현상을 두고 이대로 나가다가는 영어가 세계를 지배하는, 그리하여 영어 문화만이 남는 사태를 우려한다고 한다. 따라서 우선적으로 프랑스어의 보호 정책을 통하여 언어적 다양성을 지킬 필요가 있다 판단되어 이러한 정책을 펼치게 되었다 한다.
언어를 하나 더 안다는 것은 세상을 보는 눈을 하나 더 가지는 것이라 한다. 동의한다. 언어가 가지는 그 언어문화권의 생활과 인식을 알 수 있으므로.  따라서 언어가 하나 사라진다는 것은 하나의 문화가 지구상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짐을 의미한다. 언어의 소멸은 정말 경계해야할 현상인 것이다.

며칠전 프랑스 고교생의 시위 장면이 나왔다.  현행 대입 시험 제도를 바꾸는 정책을 발표하자 이에 반대하기위해서 였다. 우리의 수능격인 바칼로레아를 여러번 치고 내신을 반영하겠다고 하자 그렇게 한다면 가난한 학생들에게 불리하게 된다며 반대 시위에 나선 것이다.

이 두가지 사례는 나를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시위와 정책의 철학이 내가살고 있는 한국이라는 나라와 근본적으로 차이를 보여주고 있었다.
프랑스인들은 뭐가 다른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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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5-02-21 1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런 프랑스가 좋습니다. 저는 나름대로 그들을 따라(?) 영어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거부가 맞나? 그냥 싫은건가? 아님 못하는 건가? 하핫. 어쨌든. 그런 프랑스가 너무 좋습니다.

코마개 2005-02-21 15: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락사스님/프랑스가 좋은 이유 하나 더 있습니다. 파업하는 사람들에게 너그럽다는거죠. 시민들은 파업때문에 교통이 불편할 수 있고 은행업무 등이 불편할수 있고 등등 이지만 그들은 생존권이라는 것을 너무도 잘 이해해준다는것! 우리나라처럼 "시민의 발을 볼모로"따위의 말이나 "가뭄도 심한데 파업이라니-파업 안하면 비오나?"따위 헛소리가 없다는게 부럽습니다.

줄리 2005-02-22 1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업하는 사람들한테 너그러운것 제가 사는 캐나다 사람들도 그래요. 언제든 우리 자신도 파업을 할지 모른다는 것을 명심한다면 어떻게 감히 그들의 생존권 투쟁에 대해 헛소리를 할수 있겠습니까..

marine 2005-03-04 0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업을 하면 제발 언론에서 그 선정적 보도 좀 안 했으면 좋겠어요 왜 그들이 파업을 하는지, 파업의 해결책은 뭔지, 파업을 할 수 밖에 없던 구조적인 이유는 무엇인지, 보도할 게 참 많을텐데, 맨날 하는 소리가 시민의 발을 잡고 있다느니, 출근 못하는 시민들이 발을 동동 구르고 있습니다, 이 따위 보도만 하고, 대체 기자들은 뭘 하는 사람들일까요?

코마개 2005-03-04 0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엇..지금 방금 나나님 서재 다녀오는 길인데...무서운 느낌이 드는건 왜지??
 

인간은 무언가 끊임없이 소유하고 싶어한다. 밥 먹고 살기위해 밥그릇이 필요하고 쓰다보면 더 이쁜 놈으로 사고 싶고, 옷이 사고 싶고 때 맞춰 바꿔입고 싶고.

나 또한 인간인지라 소유욕이 대단하다. 뭔가사고 싶은게 있으면 반드시 사고야 마는 타입이었다.
그런데 근래들어 소유욕에서 점점 벗어나고 있다. 이 해탈의 계기가 너무나 아이러니하다.

이 가부장적 사회에서 잠시 잠깐 발을 헛디뎌 결혼이라는 실수를 해버린 나는 뒷수습이 안되어 무지 곤란을 겪고 있는 중이다. 그리하여 어찌하면 이 연옥같은 상태를 벗어날까를 고민하다가 두가지 방도가 제시 되었다.
첫째, 어느날 아침 회사 가기가 죽도록 싫고 feel이 꽂히는 날 회사를 때려치우고 다버리고 떠나자.
둘째, 이 남자는 사랑하지만 이 남자와 살게 됨으로 인해 나에게 가해지는 각종 사회적 폭력을 견딜 의사가 전혀 없으므로 이혼을 하자.

머리가 상쾌했다. 그래 그러자 하는 결심이 생겼다.
그런데...갑자기 내눈에 들어오는 것들.
저 비싼 장농과 침대와 몇백만원 어치 하는 밥그릇 등등
저것들이 아깝더라는 거다.저걸 우찌해야 하나. 당장 어디 둘 곳도 없고.

이 궁리 저궁리 하다 '하~ 이것 봐라. 이제껏 내가 저것들을 소유하고 있다 생각 했더니 이제와서 보니 저것들이 나를 꼼짝못하게 잡아두고 있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이었다. 나로 하여금 이땅을 지금 당장 뜨지 못하게 하는 것도, 이혼하지 못하게 하는 것도 전부 내가 소유한 것들이었다. 여기서 안정된 지위 등등은 포함 되지 않는다. 애시당초 그런 것에는 미련조차 없는 나이므로.
정말 냉장고가 아깝고 장롱이 아깝고 내 그릇이 아까운것이었다.

허허..이런 미친년이 있나 싶겠지만 그게 사실이었다.
그리하여 냉장고와 장롱과 그릇들은 나를 지금 이 현실에 당분간 안주시킬 것이다.
언젠가 그것들이 낡아 더 이상의 미련이 남지 않게 되면 좀 더 자유로워 지려나.

하여간 그리하여 요즘 얻은 버릇은 무엇이든 사고 싶다가도 3초 후에 반드시 '소유는 자유를 억압한다'라는 말이 떠오르고 소유욕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이걸 깨달음이라 해야하나 미쳤다고 해야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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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5-02-18 2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리히프롬은 소유와 존재의 삶의 양식을 각각 나누기도 하지만 어쩌면 소유함으로써 존재를 느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많은 이들이. 저 역시 소유하기를 좋아합니다. 이것저것 수집하고 다 끌어모으고 혼자 가지고 있다가 어디 남기거나 줄데도 없으면서 그저 끌어모으는 것만으로 즐거움을 느낀답니다. ^^;

kleinsusun 2005-02-19 0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쥐님, 글 한번 정말 솔직하네요. 저랑 같은 류의 사람 같아요. 우찌 이런 친근감이...ㅋㅋ 근데...결혼하면 강쥐님이 말씀하시는 각종 사회적 폭력 물론 많겠지만, 결혼이라는 제도로 "보호(?)" 받는 그런 것들도 있지 않나요? 주변 사람들이 하도 결혼을 강요, 강권하면서 결혼이 주는 "안정감"을 말하는데.... 그런게 있나요?

코마개 2005-02-19 0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뇨, 전혀 안정감 없습니다. 남편은 그런거 느끼는것 같더군요. 그런데 저는 안그래도 시니컬한 성격이 더욱 심해졌고 다른 이들로부터 공격 당하지 않기위해 온 몸의 신경을 날카롭게 세우고 살게 되는군요. 특히 참을 수 없는것은 아무리 잘해준다 해도 시집에서 나의 삶의 방식에 대해서 이러쿵 저러쿵 참견 하는건 정말 정신과 치료를 요할만큼 스트레스를 줍니다.

코마개 2005-02-19 1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락사스님/ 글쎄...소유함으로 존재를 느낀다. 아마 참자아를 찾은 이들은 오롯이 존재 자체를 느낄 수 있지 않을까요? 당연, 범인들은그 경지에 이르지 못하겠지만. 저도 뭔가 끌어모으는것 좋아하는데 이게 한번씩 다 소용없다 느낄때가 있는데 있는데 바로 이사갈때. 왜 모든게 쓰레기로 보이는지.

2005-02-22 11:55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