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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계동 아이들 ㅣ 사계절 아동문고 52
노경실 지음, 김호민 그림 / 사계절 / 2004년 12월
평점 :
제 1신
강쥐의 집 맞은편에는 구멍가게가 하나 있었다. 공사판 '판네루'로 밤이면 문을 닫고 셔터를 대신하던, 어수선하고 지저분하며, 동네 아저씨들이 모여 앉아 노가리에 소주를 한잔 하던 그런 가게였다.
그 가게말고 조금 떨어진 곳에 좀 깔끔한 '연쇄점'이 있었는데 강쥐는 그 가게를 '새가게'라고 불렀고 종종 그가게를 갔다. 그러나 동네 아줌마들은 '새가게'보다는 기존의 가게를 더 애용했다.
기존 가게는 '00이네'라고 불렀는데, 강쥐같은 동네 꼬마도 00라고 이름을 불렀지만 사실 강쥐가 이름을 마구 불러도 좋은 꼬마가 아니었다. 이쯤 되면 알것이다. 00라는 사람이 정신지체가 있구나라고....
그랬다. 00는 지금 기억에 10대 후반쯤 되는 나이였을 것이라고 짐작하는데, 어느 동네에나 있던 '바보'였던 것이다. 00이는 누나 2명에 남동생이 한명 있었다. 남동생은 00를 매우 사랑했던 기억이 있다.
강쥐는 00이를 매우 무서워 했다. 체구가 작았던 강쥐에 비해서 두배는 되는 몸집이었고, 인형 등을 뺐어 갔는데 안뺐기려고 하면 마구 때렸기 때문이다. 지금도 강쥐가 빼앗겼던 분홍색 토끼 인형이 기억난다. 다음날 00 엄마가 깨끗이 빨아다 주었던 것도.
그 후 어느정도 철이 들고 강쥐네는 이사를 갔고 그 이름을 잊었었다.
그런데 어느날 그 이름을 기억나게 한 사건이 있었다.
신문에서...
이미 결혼한 00의 언니와, 아직 미혼인 다른 언니가 00에게 "너 때문에 내가 결혼도 못하고, 시집에서 구박 받는다"며 00를 목졸라 죽였다는 기사였다.
제 2신
강쥐와 동갑인 순이가 있었다. 그런데 순이는 생일이 빨라서 한해 먼저 학교에 들어갔다. 강쥐는 유치원에 다니고. 유치원에서 돌아오면 순이는 아직 학교에서 돌아오지 않아서 강쥐는 순이를 목이 빠져라 기다려야 했다. 그런데 강쥐는 순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냥 아쉬운 김에 노는 거였다. 왜냐면 너무 얌체였고 순이의 언니 오빠도 욕을 하고 사납게 굴었기 때문이다.
순이의 아빠는 리비아에 다녀오셨다. 하긴 80년대 리비아에 아버지가 가 있는 사람 발에 체이도록 많았다.
순이 아빠는 리비아에서 돈을 많이 벌어서 오셨고, 어느날 같이 모시고 사는 할아버지 할머니를 제주도 효도관광을 보내 드렸다.
그리고 며칠 후 할아버지 할머니가 관광에서 돌아오셨을때 동네가 발칵 뒤집어졌다.
순이네 식구가 아무도 모르게 몽땅 이사를 가버린 것이다.
그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어떻게 되었을까??
제3신
강쥐를 어려서부터 매우 이뻐하던 아줌마가 있었다. 항상 깨물어 보자 하시며 이뻐서 물고 빨고 하셨다.
그집 언니 오빠들도 매우 이뻐했다. 아줌마는 아픈 우리엄마를 대신해서 소풍도 따라가 주고 하셨다.
강쥐가 성인이 되었을 때였다. 엄마가 "아줌마 돌아가셨대. 자살하셨대"라고 하는 것이었다.
너무 놀라 "왜?"라고 묻자 "모르지. 그런데 그 딸년한테 전화해서 엄마 지금 죽을거라고 그랬는데 딸이 맘대로 하라 그러고 끊었대. 그리고서는 나중에 아들이 퇴근해 들어오니까 죽어 있더래"
강쥐가 어린시절을 보낸 지지리 못살던 사람들의 동네에서 벌어졌던 일들이다.
이것 말고도 엄청 엄청 많은 사연이 있다.
그럼 강쥐가 매우 좋지 않은 환경에서 자란 것일까?
그럴 수도 있다. 그 동네는 빈민들이 많이 살았고 지금도 정말 못사는 동네니까.
이 책이 그렇다.
못사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 중에서도 아이들의 이야기.
못살기 때문에 목숨 부지하기 위해서 악착같을 수 밖에 없고, 있는 자에게는 악다구니로 보이지만 당사자에게는 생존의 얘기인 일들.
상계동에서 만나는 내 어린시절의 모습이다.
사족 : 서울올림픽 당시 판자촌이던 상계동을 외국인이게 보이는게 부끄럽다며 정부는 상계동이 보이지 않게 길에 차단막을 설치하고 철거를 단행하여 이에 대항하는 주민들의 저항을 '상계동 올림픽'이라는 영화(?)로 만들었다. 그 상계동은 지금 어찌 되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