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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학생이 있다. 여학생이다. 그는 의대에 들어온 뒤 일주일만에 휴학을 했다. 그리고 일년을 쉬었다.
“그때 왜 쉬었어요?”
“들어오고 나니까 이게 아니다 싶었어요.”
학생은 예과 2년을 그럭저럭 다녔다. 이제 본과에 들어올 차례. 어머니가 호두과자를 들고 찾아온 건 그 즈음이었다.
“선생님, 우리 미자가 일년 휴학을 한 대요. 어떻게 좀 공부하게끔 해주세요.”
학생을 만났다. 밝은 표정을 지으려 애썼지만, 학생의 얼굴에선 그늘이 보였다.
“왜 휴학하려고 하나요?”
“너무 힘들어요...”
본과 1학년은 다니다 말면 다닌 데까지 유리한 법이니 버틸 수 있는 한까지 버티라고 했다.
“내년에 시작할 때 또 문제가 생길 수도 있잖아요. 어차피 한번은 겪어야 할 일인데...”
“...알겠습니다. 해볼께요.”
하지만 학생은 오래지 않아 휴학계를 던졌다. 그 어머니께 미안했다.
일년이 지나기 전, 사건이 하나 있었다. 아버님이 전격성 간염에 걸리신 것. 방법은 간이식 뿐이었다. 미자가 전화를 했다.
“선생님, 어떻게 해요?”
난 뭐라고 확답을 주지 못했다. 간이식을 한다해도 살아날 확률은 그리 높지 않고, 또, 그리고.... 간이식을 하면 학생의 경제적 상태가..... 다시 연락을 하지 못한 채 며칠을 보냈다.
“선생님, 아버님 돌아가셨어요. 애써 주셔서 감사드려요.”
난 애써 준 게 없어서 미안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올해 2월 20일, 미자는 개강 첫날 학교에 오지 않았다. 그렇게 그녀는 일주일을 빠졌다. 내가 미자를 만난 건 이번주 월요일, 난 그에게 밥을 사주며 이 얘기, 저 얘기를 했다. 동기들은 다 본 3인 판이라 같이 밥먹을 사람도 없는 판이었다.
“제가 친구 해줄께요.”
“어, 정말요?”
하지만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가끔 밥을 먹어주는 게 고작이었다. 친구라면 해줘야 할 다른 것들은 내게 불가능했다. 그 다음날, 내방으로 불러 라면에 집에서 싸온 김밥을 먹였다.
“잘 먹었습니다.”라고 인사를 하는 그녀, 미자가 제발 무사히 학교를 졸업할 수 있기를 마음 속으로 빌었다.
두 번 밥을 같이 먹고 나니 은근히 걱정이 된다. 별의별 일이 다 일어나는 곳인지라 내가 미자와 사귄다는 소문이 나돌면 어쩌나 싶다. 엊그제 벤치에 앉아 이야기하는 걸 많이들 봤을 텐데. 자기 관리가 먼저일까 아니면 그 학생에 대한 배려가 우선이 되어야 할까 솔직히 헷갈린다. 조교 생활을 포함해 13년간 교직에 몸담아 왔지만, 아직까지 학생과 스캔들이 있었던 적은 한번도 없는데. 아예 그럴 건수를 제공하지 않았었는데. 일단 일주에 두 번 정도 밥을 같이 먹자고 했다. 될대로 되라지 뭐.
얼마 전 조교선생한테 생일선물로 원두커피 기계를 받은 적이 있다. 쳐박아 놓다가 김밥 먹던 날 기계를 뜯어보며 “원두커피 사야겠구나” 했더니 오늘 미자가 “어머니가 사줬어요”라며 커피봉지를 가져온다. 이러면 안된다고 하면서 한봉지만 받고 각설탕과 커피 한봉지는 돌려드렸다. 잘한 건지 못한 건지. 끄응. 세상은 언제나 선한 마음으로만 굴러가는 게 아니다. 그리고 악은 도처에서 끼어들 준비를 하고 있다. 역시 이말을 해야겠다. 될대로 되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