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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 ㅣ 한림신서 일본현대문학대표작선 1
다자이 오사무 지음, 유숙자 옮김 / 소화 / 1997년 10월
평점 :
품절
다자이 오삼의 <만년>을 읽었다. 일본 문학 특유의 몽환적이고 신비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작품이었지만, 내가 이해력이 부족한 탓인지 그다지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이 책은 여러 편의 단편이 묶인 소설집이다. 그런데 난 네 번째 단편을 읽을 때야 비로소 이 책이 단편집이라는 걸 알았다. 첫 단편 <잎>의 ‘나’와 다음 작품인 <추억>의 ‘나’가 동일인인 걸로 착각한 탓인데, 그러고 나니까 전혀 다른 배경이 나와도 “주인공이 상상하는 거겠지”라고 생각하게 된 것. 일단 쑥스럽고, 내 이해력이 민망하다. <미션 임파서블 1>을 이해하지 못한 이해력이니,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읽고 난 느낌을 정리해 본다.
-작가 중에는 자신의 죽음을 소설 속에 암시하는, 아니 자기가 소설에 쓴대로 죽는 작가가 있다. 갑자기 생각하려니 떠오르는 사람이 별로 없지만, 레이몬드 카바는 <숏컷>에서 권총자살을 하는 사람을 등장시킨 뒤 자신도 총으로 죽었고, 이 책의 저자도 동반자살을 기도하나 여자만 죽는 소설을 쓴 뒤 정말로 동반자살했다. 어느 게 먼저일까. 자신이 느끼는 충동을 소설로 쓰는 것일까, 아니면 소설에 쓰인대로 해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 걸까.
-표제작인 <만년>은 샐린저가 쓴 <호밀밭의 파수꾼>과 분위기가 비슷하다. 이 책이 훨씬 먼저 나왔으니 샐린저에게 ‘표절’의 의심을 품어야겠지만, 표절 시비가 붙는 건 언제나 무명 작가다. <낭만파 남편의 편지>를 쓴 안정효가 조금만 늦게 그 소설을 썼다면 영락없이 쿤데라를 표절했다고 오해될 뻔한 것처럼.
-전에 이 책의 번역이 엉망이라고 지적한 적이 있는데, 그와 관계없이 이해 안가는 구절을 하나만 열거한다.
[이때의 웃음소리는 그들조차 미처 생각지 못할 정도의 대사건을 낳았다]
병원 입원실에서 사람들이 떠들고 웃고 그런 것이 어떤 사건을 낳았을까? 궁금해하며 책장을 넘겼는데 글쎄...담당 간호사가 간호부장에게 끌려가서 혼나고, “뭐 그런 거 가지고 야단을 치냐”고 환자와 보호자들이 불평한 게 전부다. 대사건이라면 적어도 격분한 환자가 불도저로 병원을 밀어버린다던지 그런 거여야지 않을까? 아니면 오사무가 활동하던 30년대는 간호부장에게 혼난 게 ‘대사건’이었을까.
첫 만남은 참으로 중요한 법이다. 오사무는 이 작품 말고도 몇 개를 더 남겼지만, 별로 읽고픈 생각은 안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