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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가 소중했던 사람들
김혜원 지음 / 도솔 / 2005년 6월
평점 :
품절
아들을 교통사고로 잃은 어머니가 있었다. 어느날 며느리가 보낸 김밥을 먹으려던 시어머니는 왠지 이상하다는 느낌에 젓가락으로 김밥을 찔러봤다. 젓가락은 새까맣게 변했다. 그제서야 시어머니는 깨달았다. 자기 아들도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는 것을. 어머니는 경찰에 재조사를 의뢰했고, 교통사고를 낸 운전사와 그를 면회온 며느리와의 녹취록에는 돈 4천만원을 왜 입금하지 않았냐고 다그치는 운전사의 증언이 담겨 있었다.
돈을 빼앗기 위해 금은방을 하는 부부를 죽이고, 운전기사까지 죽인 후 마당에 묻고도 몇 달을 아무런 가책 없이 산 사람이 있었다. 도박빚을 갚기 위해 제자를 유괴한 뒤 그를 살해한 학교 선생도 있었다. 돈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17명을 죽인 희대의 살인마도 있었다. 난 이들이 나와는 다른 종의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호랑이가 사슴이 될 수 없는 것처럼, 그들은 평생 교화되지 않은 채 야수의 본성을 지니고 살아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그들에게 사형을 선고하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책을 쓴 김혜원님은 그들 역시 우리와 같은 인간이며, 끊임없는 사랑으로 그들을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그 믿음을 실천하기 위해 30년을 바쳤다.
그 결과는 자못 놀라웠다. 17명을 죽인 김대두는 죽기 전까지 하느님의 사랑을 다른 재소자들에게 전도했으며, 금은방 사건의 범인 박철웅, 남편과 시어머니를 죽인 여자도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며 남은 생애를 보냈다. 그들이 쓴 참회의 편지들을 보면서 난 내가 그간 잘못 생각했음을, 그들에게 잘못된 편견을 가졌음을 깨닫게 된다. 죽는 순간까지 억울하다고 외치며 죽어간 사형수의 얘기에서 오류에 가득찬 인간이 다른 인간을 심판한다는 것이 얼마나 잘못된 일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탁월한 문장력과 해박한 지식, 그리고 오랜 세월 사형수를 돌본 경험이 어우러진 이 책을 읽다보니 사형수들도 한 인간이며, 사형제도의 존속이 꼭 필요하냐고 주장하는 저자에게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저자의 시각이 빛나는 대목. 저자는 여성 사형수의 입을 빌어 이렇게 말한다.
“이 안에 들어온 여자들, 하나같이 난다 긴다 하는 사람들이어요. 똑똑하고 잘났어요. 그 잘남을 못봐주고, 여자라고 자꾸 누르고 구박하니까 모로 터질 수밖예요”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지 못한다 해도, 저자의 다음 말에는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여성들이 저지르는 흉포한 범죄의 배경에는 남성의 습관적 폭력이나 성폭행 같은 권위적인 횡포가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런데도 그들은 가족과 자식들에게마저 외면을 당한 채 쓸쓸한 죽음을 맞거나 고독한 수형 생활을 하고 있다. 그와 반대로 아내를 죽인 남편의 경우 온 집안의 버림을 받는 예가 아주 드물다. 참 알 수 없는 일이다]
제레미 리프킨은 <노동의 종말>에서 일자리가 없어진 미래의 대안으로 자원봉사가 활성화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재소자들의 친구가 되어 하느님의 말씀을 전함으로써 그들에게 감춰줬던 인간의 마음을 되찾게 해주는 일은 자원봉사 중에서도 가장 보람있는 일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