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그램에서 발생하는 디지털성범죄 해결에 관한 청원



청원 당시 숫자가 빨리 늘지 않아 답답한 마음에 여기, 알라딘에도 청원독려 글을 올렸었는데 흑흑 ㅠㅠ 청원 10만명 동의 얻었고 국회까지 가서 새로운 법안에 반영이 되었다고 한다. 흑흑 ㅠㅠ 정말이지 오랜만에 좋은 소식이야. 세상은 느리지만 조금씩 천천히 변하고 있구나. ㅠㅠ 계속 소리지르면 어떻게든 변하긴 하는 것 같다. 지치지 말아야지. 지치지 말고 계속 소리질러야겠다. 청원에 동의해준 분들, 감사해요 ㅠㅠ



https://petitions.assembly.go.kr/status/onGoing/9C11598F598C39B3E054A0369F40E84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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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 동의 - 지금 강조해야 할 것
밀레나 포포바 지음, 함현주 옮김 / 마티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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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셋 준 리뷰를 작성하려고 했는데, 비구매자들의 백자평을 보고 하나 더 올리기로 한다. 그들이 백자평을 통해 주장한것, 그러니까 '동의에 대한 비아냥'은 정확히 이 책에서도 사례로 언급되어진다.



동의에 관한 한 우리가 제일 먼저 배워야 할 것은 물어보기다. 미투 운동이 한창일 때 "그럼 섹스를 할 때마다 법률 계약서를 써야 하냐"는 비아냥 어린 질문을 들어봤을 것이다. 본질을 벗어나는 이런 질문은 대화를 계속할 수 없게 하고, 일상생활속 성폭력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태도를 반증할 뿐이다. 법률 계약은 성적 동의와 아무 관련이 없다. 동의는 소통과 배려, 인간적 존중이 있어야 가능하고 이런 것들은 법으로 규제되지 않는다. ( p.60-61)


내가 별을 셋 주고자 했던 까닭은 이 책이 너무 기본적이기 때문이었다. 뭐야 이런건 읽지 않아도 아는거잖아, 라는 생각을 했으므로 중간에 덮을까도 여러번 생각했다. 그때마다 '겸손해지자'고 내가 나를 달랬다. 이 책은 매우 기본적인 페미니즘 입문서이자 관계 입문서이다. 페미니즘에 대해서 혹은 인간 관계, 남녀 관계에 대해서 일단 기초부터 시작해야 겠다 생각하는 사람들이 읽으면 좋을 책이다. 이런 책이 대체 왜 필요한가 싶다가도 이런 책이 있어야만 비로소 이런 걸 알 수 있는 사람도 있겠지 싶어서 씁쓸하다가, 그러나 이런 기초적인 사항들에 대해 모르는 사람들은 자기가 뭘 모르는지도 모르고 이 책을 읽을 시도조차 하지 않겠지, 라는 생각이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들긴 했다. 그리고 그들은 이 책에 달린 비구매자 백자평에서 볼 수 있듯이, '야 자연스런 섹스에 일일이 동의 물어보고 분위기 깨라는거냐' 라며 비아냥대겠지. 그게 이 책이 필요한 이유이나 그러나 이 책을 읽지 않는 이들이 더 많다는 뜻도 될것이다. 뭐야 계약서 받고 섹스하라는거야? 라고 비아냥 대는 사람들이 이 책을 읽을 생각이나 할까? 안한다에 오십원..



중간중간 작가와 나의 생각이 달라서 갸웃했다. 어떤 다른 지점에 대해서는 '그래, 그건 그럴 수 잇겠구나' 했지만, 어떤 다른 지점에 대해서는 '그건 아닌것 같은데' 했다.동의에 대해서도 그렇고 이 책은 강간문화에 대해서도 기본적인 개념을 알려준다. 실제로 '야 강간 문화가 어디있냐' 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자주 볼 수 있는데, 일일이 설명해주기도 귀찮고 어차피 그렇게 물어보는 사람들은 설명해준다고 듣지도 않을 것이고. 강간문화와 강간신화, 성적 동의에 대한 기본 개념에 대해서 아주 잘 알려주는 책이니, 몰라서 알고 싶은 사람은 물론이고 그런게 어딨냐고 비아냥 대는 사람들도 읽어보면 좋을 책이다.


다시 말하지만 입문서로 적절하다 하겠다.




강간 문화는 가해자가 성폭력을 저지르기는 쉽고,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알리고 그에 맞는 지원을 받는 것은 어렵게 만드는 사고방식과 관습, 사회 구조의 총체다. 여기에는 젠더와 섹슈얼리티에 대한 고정관념이 포함된다(성적으로 남성은 적극적이고 여성은 소극적이라고 여기며, 이에 어긋나는 여성은 ‘음탕하다‘라고 낙인찍는 사회 분위기 등). 또 강간으로 판단되는 상황과 ‘진짜‘ 강간 피해자라면 응당 어떤 행동을 보이라고 단정짓는 것도 강간 문화의 일면이다(육체적 폭력이 수반된 경우에만 ‘진짜‘ 강간이라는 인식, ‘진짜‘ 피해자라면 사건을 즉시 신고할 것이고 정신적 외상이 심하겠으나 지나치게 히스테리를 부리지는 않으리라는 인식). 강간범은 어두운 골목에서 튀어나온 괴물이며, 남자친구나 아버지, 대학생이나 정치인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 또한 강간 문화의 일부다. - P17

한편, 여성이 노출이 ‘심한‘ 옷을 입고 자기 자신을 보호하지 못할 만큼 술을 마시거나 밤늦게 혼자 다니는 것은 강간을 유발하는 행동이며, 이 때문에 남성은 자신을 통제할 수 없게 된다는 고정관념도 강간 신화의 대표적인 예다. 또 여승의 음주는 비난의 이유가 되고, 남성의 음주는 자기 행동에 대한 핑계가 된다. 이로써 강간의 책임이 가해자에게서 피해자에게로 옮겨 간다. 잠재적 가해자에게 ‘강간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잠재적 피해자에게 ‘강간당하지 말라‘고 말하는 형국이다. 이는 공공장소를 자유롭게 다닐 권리, 입고 싶은 옷을 입을 기본적 권리를 제한한다. 이런 신화들은 성적인 것과는 전혀 상관 없는 상황에서 여성의 행동으로 동의를 추정할 수 있다는 잘못된 생각을 양산한다. - P40

특정 집단을 소외시키는 인종화(피부색이나 혈통을 근거로 타자화하는 것)도 강간 문화에 상당히 기여한다. 예컨대, 미국 문화에서 강간은 보통 흑인 남성이 백인 여성을 대상으로 저지르는 범죄라는 인식이 오랜 기간 만연해 있었다. 이는 백인 남성이 흑인 여성 노예와 여성 토착민을 강간했던 역사를 지우고 수정하려는 의도적 노력의 결과로 볼 수 있는데, 이런 아픈 역사는 지금까지도 흑인 여성과 토착민 여성을 심각하게 억압하고 있다. 실제로 미국 내 흑인 여성과 토착민 여성이 성폭력을 당하는 비율이 백인 여성보다 훨씬 높다. 게다가 흑인 여성이나 토착민 여성이 성폭력 피해를 신고해도 수사관이나 검사가 피해 여성들의 증언을 귀 기울여 듣지 않을 뿐더러 불신하여 사건을 추가 조사하지 않는다. 유색인 여성을 성폭력에 취약하게 만드는 편견은 이 밖에도 많다. - P42

성적 동의는 나와 상대방의 신체적 자율권을 존중하는 것이다. 타인에게 마땅히 보여야 하는 신중함과 배려를 바탕으로 상대방을 대하고, 내가 그런 것처럼 성관계를 맺을 의사가 상대방에게 있는지 확신할 수 없다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성적 동의를 고민할 때 신체적 자율권 개념은 순전히 나를 위해서도 필요하다. 나의 신체적 자율권을 행사하고 싶다면 당연히 타인의 신체적 자율권을 존중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다고 섹스와 섹스를 둘러싼 모든 결정 과정이 재미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핵심은 성관계가 어느 한쪽의 만족감을 위해 타인의 몸을 이용하는 일방적인 행위가 아니라는 점이다. 즉, 우연한 만남에서든 오래된 관계에서든 성관계는 ‘상호‘ 교류를 의미한다. - P55

계속해서 동의 상태를 확인한다는 것은 묻고 답하는 순간에 일단 행동을 멈추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섹스를 자기 욕구 만족을 위해 타인의 몸을 이용하는 행위라고 생각하지 않고, 타인을 존중하면서 서로 행복한 성적 경험을 공유하는 행위라고 생각한다면 나뿐 아니라 상대방의 요구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당연해진다. 즉, 상대가 만족하는지, 내 행동을 상대가 좋아하는지, 여전히 동의하는지 거듭 확인해야 한다. - P64

경찰관이 강한 어조로 안 된다고 말하는 모습이 담긴 영상을 사용자가 재생할 수 있는 앱도 있다. 이 앱의 개발자는 성관계를 강요하는 사람에게 이 영상을 보여주면 거절 의사를 더 명확히 전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 같은 주장의 기저에는 모호한 대답은 곧 ‘좋다‘라는 뜻이며 ‘싫어하는 척하는 것일 뿐이다‘라는 강간 신화가 깔려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무엇보다 신체적 자율권을 존중받기 위해 경찰 영상까지 동원해야 하는 지경까지 가서는 안 된다. - P79

반성폭력 운동에 대한 백래시는 역사가 길다. 예를 들어보자. 1991년에 미국 안티오크 대학의 한 페미니스트 단체가 캠퍼스 강간과 데이트 강간 관련 캠페인을 벌였고, 대학 당국은 ‘말을 통한 지속적 동의‘ 여부로 강간을 규정하도록 정책과 교칙을 수정했다. 즉, 육체적 관계가 진행되는 내내 서로 동의가 유효한지 말로 확인할 의무가 있다고 강조한 것이다. 이로 인해 학내 강간 가해자들은 징계를 받거나 퇴학당했다.
안티오크 대학의 사례는 뉴스 방송을 타고 전국에 퍼졌고, 누구나 이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여론은 극도로 부정적이었다. 1993년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Saturday Night Live)에 나왔던 ‘이것이 데이트 강간?‘이라는 콩트만 봐도 짐작할 수 있다. 이 콩트에는 한 남학생이 여학생에게 그녀의 옷차림을 칭찬해도 되는지, 입에 키스해도 되는지, 엉덩이를 만져도 되는지 과장되게 물어보는 장면이 나온다. - P182

이것 말고도 안티오크 대학 정책에 조롱을 던지는 백래시는 많았다. 당시 사람들은 성적 관계에서 동의의 초점을 맞추는 것 자체가 비현실적 기대이며, 말로 동의 여부를 확인하면 ‘분위기를 망치고‘ 덜 ‘자연스러워‘진다고 말하곤 했다. - P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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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겟타 2020-03-09 1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입문서의 역할을 제대로 한거라면 좋은책이겠지요? 기본이 중요하니깐요..저도 다음번에 읽어볼게요.

다락방 2020-03-10 07:38   좋아요 0 | URL
네. 별 것도 아닌 가장 기본적인 내용인데(상대의 동의를 얻고 섹스하라!) 이걸 비아냥대는 사람들이 있네요. 하하하하하하하하하. 이런 책이 왜 나오나 했더니 그런 사람들 때문에 나오나봐요. 휴..

Comandante 2020-03-11 17: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어봐야겠군요. 백자평 중 하나는 비아냥으로만으로 치부하기엔 힘든 측면도 있는것 같아 읽어보고 판단해야겠습니다.

다락방 2020-03-11 17:21   좋아요 0 | URL
네. 직접 읽고 판단해야죠.
그 구매자평들은 안읽고 판단했으니까요.
 















조디와 토드는 이십년간 부부로 함께 살고 있다. 토드는 수시로 바람을 피우는데 조디는 이를 알고 있지만 그냥 넘긴다. 조디가 토드의 바람에 대해 알고 있다는 사실을 토드도 안다. 토드가 바람을 피우긴 하지만 이들의 부부생활에 큰 타격을 주지는 않았다. 조디는 조디 나름대로 토드에게 소심하게 복수를 하면서 이 시간들을 잘 버텨왔다. 이를테면 그의 사무실 열쇠를 빼내어 사무실에 오전 내내 들어갈 수 없게 한다든가 하는 식.


그러나 이십년이 지난 지금, 토드는 조디에게 헤어짐을 말한다. 이번에야 말로 중독적인 사랑에 빠진 까닭이다. 선정적이고 성적매력이 가득찬 21세의 여성 나타샤, 친한 친구인 '딘'의 딸. 토드는 친구의 딸과 사랑에 빠졌고 심지어 그녀가 임신까지 했다. 토드는 항상 자식을 갖고 싶어했지만 조디와의 관계에선 그것이 불가했다. 그들 부부는 자녀 대신 '프로이트'란 이름의 개를 한마리 키우고 있었다. 



나이 많은 여자라고 해서 반드시 성숙함을 보장하는 것도 아니고 젊고 어린 여성이라고 해서 반드시 육감적인 것을 드러내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소설속에서는 어쨌든 어린 여성 나타샤는 몹시 흥분하고, 선정적인 여성을 상징하고 있고 조디는 언제나 차분하고 안정적임을 상징하고 있다. 토드는 조디와 불만 없이 살아왔으면서도 그러나 나타샤에게 하루에도 여러차례 전화하면서 지금 뭘 입고 있는지 묻고 그녀를 상상한다. 그녀를 만나고 싶고 안고 싶고 그녀가 임신을 했다니 또 좋은 아빠도 되어야겠다고 생각한다. 조디와 관계가 나빴던 게 아니라서 차근차근 이혼 얘기를 하고 싶지만, 나타샤는 기다려주려 하질 않는다. 빨리 빨리. 아내에게 말했어? 어서 말하란 말야. 우리 살 집을 구해야지, 결혼식도 해야해. 


결혼이 구체적으로 진행되기 전까지는 토드가 나타샤에게 매달렸는데, 결혼이 진행되어가고 같이 살 집을 마련하고 그렇게 같이 살기 시작하면서 토드는 나타샤로부터 엄청난 구속을 느낀다. 조디랑은 이십년간 살면서 크게 소리질러본 적도 없는데 나타샤와 보내면서는 분노하고 감정을 조절할 수 없게 된다. 나타샤랑 함께 살면서부터는 조디와의 관계에서 가졌던 그 안정감이 자꾸 그립다. 조디라면 이럴 때 차분하게 이야기 나눌 수 있었을텐데.한마디로 빌어먹을 한심한 놈이다.



인간이란 이렇게 한없이 어리석어서 꼭 경험해야만 깨닫게 되기도 한다. 조디가 자신에게 주었던 게 무엇이었는지, 잃고 나서야 안다. 이십년간 고요한 일상을 누릴 수 있었던 것, 안정적인 생활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 얼마나 좋은 것이었는지, 선정적인 젊은 여성과 함께 하면서야 비로소 깨닫게 되는거다. 분명 사랑에 빠져 익사할것 같은 기분을 느끼면서 나타샤의 옆으로 온건데, 그는 스트레스에 익사할 것 같다. 그리고 그는 또다시 다른 여자에게 접근한다. 바람을 피워서 그 결과 이렇게 스트레스의 늪에 빠져버렸으면서 그는 또다시 바람피울 생각을 하는 거다.


바람피우는 이들은 잘만 산다. 그들 다수가 그렇다. 설사 그렇지 않다고 해도 그들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왜인가 하면, 대체로 사람은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강한 동기나 지속적 노력 없이는 변하지 않는다. 개인의 기본 특질은 인생 초기에 발달하고 시간이 흐르면 침범할 수 없을 만큼 완전히 자리를 잡는다. 대부분의 사람은 경험으로부터 별로 배우지 않고, 자신의 행동을 수정하려 들지 않으며, 문제는 자기 주변 사람들에게나 발생하는 것이라고 여긴다. 그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나쁘든 좋든 간에 하던 일을 계속한다. 낙천주의자들이 끝까지 낙천주의자이듯이, 바람을 피우는 이들도 계속 바람을 피운다. 낙천주의자들은 음주운전 차량에 치여서 두 다리가 부서지고 병원비를 대느라 집을 저당잡힌 후에도 이렇게 말하는 이들이다. "운이 좋았어. 죽을 수도 있었잖아." 낙천주의자들에게 이런 유의 진술은 합리적이다. 바람을 피우는 이들에겐 이중생활을 하면서 한 입으로 두 말 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p.36)



바람피운 남편을 살해할 계획을 세우는 아내의 이야기인데, 이 책은 되게 독특하다. 책 뒷표지에는 '아들러 심리학으로 샅샅이 파헤쳐 쓴 가정 스릴러'라고 되어있는데, 심리학으로 샅샅이 파헤쳤기 때문에 독특하다기 보다는 그 문체가 굉장히 가만가만한거다. 조용한 아내 라더니 정말 조용하네... 하고 책을 몇 장 읽지도 않고 생각하게 됐다니까? 스릴러가 가져오는 흥분이라든가 초조함이 느껴지기보다는 계속된 차분함이 있다. 또한 '바람피운 남편을 죽이려는 아내' 라는 큰 타이틀 속에는 그 아내의 개인적 삶이 있다. 어린 시절과 대학시절 그리고 자신 안의 상처를 들여다보려는 노력, 비로소 자신의 트라우마를 직면하게 되는 때까지. 

인간이란 매우 복잡한 존재이고 어느 한 순간으로 그 사람을 파악할 수도 없으며 이십년간 옆에 있었다 해도 마찬가지. 토드는 자신의 전아내가 자신을 죽일 계획을 세웠다는 걸 짐작이나 했을까? 조디는 남편이 헤어지고 나서 자신에게 '이렇게까지' 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못했다. 우리 좋았는데, 다정햇는데, 안정적이었는데, 그런데 나한테 이럴 수가 있을까? 그들 사이에 이십년간 함께 해 쌓아왔던 신뢰라는 것은 무너진 것이 아니라 어쩌면 처음부터 없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신뢰라는 건, 어쩌면 인간들 사이에 존재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르겠고.



이것은 아내가 바람핀 남편을 죽이고자 하는 이야기이지만, 그 전에 분명 사랑했던 남자와 여자가 있었다. 토드가 조디에게 반했던 것, 조디와 있으면서 안정적인 기분을 느꼈던 것, 그리고 나타샤가 결코 줄 수 없는 것들을 조디로부터 받았던 것-사랑과 격려와 칭찬-을 나타샤의 옆에 가서야 깨닫는 것이 너무 안타까웠다.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게 하고, 가고자 하는 방향을 가는 데 힘을 실어주는 사람이었는데. 



그즈음 조디는 그의 인생에 확고히 자리를 잡았으나 여전히 신비의 기운이 감돌았고, 그로서는 확실히 가늠할 수 없는 원천에서 광휘를 내뿜고 있었다. 그가 아는 것이라고는, 이제까지 그녀처럼 좋은 인상을 주고 싶었던 여자를 만난 적이 없다는 사실뿐이었다. 그녀가 자신에게 갖는 기대에 맞추어 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그녀가 필요로 하는, 그녀에게 어울리는 남자가 되고 싶었다. 빛을 발하는 어스름 속, 지나는 차도 하나 없는 작은 시골 동네의 다른 세계 같은 고요 속에서 두 사람은 나란히 걸었다. 향긋한 산들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왔고, 마음을 달래는 이 목욕물 같은 공기 속에서 그는 자신의 삶이 마침내 시작되었다고, 그녀야말로 자신이 숭배할 신이며 좋은 결과를 불러울 부적이라고 느꼈다.(p.175)

다른 사람의 규칙에 따라 나의 삶을 살 수는 없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디는 그를 높이 평가한다. 그의 성공, 그리고 약속을 실천하고 꿈의 영역을 걸어가는 그의 능력을 찬탄한다. 그는 조디에게 칭찬받는 게 좋다. 그녀의 칭찬은 몇 년간이나 그를 두둥실 떠오르게 하고 용기를 주었다. 또한 칭찬에는 그 자신을 약간 조절하고 궤도를 유지하게 해주는 엄격한 훈육 같은 것이 따라왔다. 그녀가 없었어도 그는 자기 길을 갈 수 있었을 테지만 그녀의 존재는 일종의 윤활유가 되어주었다. 모든 남자들이 그렇게 사랑받지는 않는다. (p.284)


조디 역시 마찬가지. 조디도 토드를 사랑했다. 토드에게 만큼은 자꾸만 더 기회를 주고 싶었다. 한 번 잘못하면 한 번 더 기회를 주고 싶었고, 백 번 잘못하면 백 번 더 기회를 주고 싶었다.



그에게 맞섰을 때, 그가 사과했을 때, 두 사람이 눈물을 흘렸을 때, 그들의 사랑을 재확인했을 때, 몇 번이고 이를 반복하면서도 그녀는 자기 안에서 일어나는 단념을 느끼지 못했다. 결국 그는 토드였고, 그가 그녀에게 소중했기 때문이다. 그의 난동, 자기 본능에 충실하겠다는 방식까지도 소중했다. 그는 잔인하지도, 불친절하게 굴지도 않았다. 토드가 비열하거나 심술궂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도리어 그 반대였다. 토드는 자기를 언짢게 해도 또 한 번의 기회를 줄 사람이었고 백 번을 언짢게 하면 백 번의 기회를 줄 사람이었다. 그러나 토드는 반드시 자기 삶을 살아야 하는 사람이기도 했고, 그러기로 결심했다. 결국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이를 받아들이는 것뿐이었다. (p.201)


이랬던 그들이었는데, 왜 토드는 나타샤에게 '사랑에 빠져 익사할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됐을까. 이랬던 그들이었는데 왜 조디는 결국 남편을 죽이고 싶어지게 된걸까. 이 감정들 모두 흔히 찾아드는 감정도 아니고 그 자체로 소중한건데, 이 소중함과 사랑이 어떻게 이렇게 변질되어 버린걸까. 사람은 뭐고 사랑은 뭘까. 너무 바보같잖아. 토드가 바람을 피우지 않고 지금까지처럼 조디 옆에서 조디의 남편으로 살았다면, 이들은 서로가 처음에 가졌던 그 감정들을 소중한 감정으로 간직한채 계속 평화롭고 안정적으로 지낼 수 있었을텐데. 어쩌면 사람은 지금 자신이 가진 것을 제대로 보지 못한 채 더 큰 걸 갖고 싶어하다가 추락해버리는 게 아닐까. 추락하지 않기 위해서라면 우리는 지금 우리가 가진 게 뭔지 자꾸만 제대로 들여다보려고 해야 하는 것인가. 사랑이 뭔지 제대로 느꼈으면서, 그리고 그렇게 느끼게 해준 사람과 함께 살기까지 했으면서, 그러면서 추락하는 사람을 보고 있노라니 인생 너무 부질없게 느껴진다... 



그리고.. 이건 다른 얘긴데..... 조디.....좀 더 많이 먹었으면 좋겠다.......남편이 올 때, 친구가 찾아올 때 상차림 그렇게 좋아하면서 그걸 자신을 위해 좀 차리고 자기 혼자만을 위해서 보드카만 깡으로 마시지 말고 안주 좀 푸짐하게 해서 잘 좀 먹고 살 좀 쪘으면..... 그것이 나의 바람이다........ 



아기 돼지 아가씨는 남편이 아무것도 모른다고 믿지만, 조디는 남편 역시 의심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녀가 익히 아는바, 거기엔 늘 낌새가 있으니까. 가령 바람피우는 이들은 종종 집중력이 흐트러지거나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 바람피우는 이들은 질문을 받으면 싫어한다. 그들의 머리카락과 옷엔 설명할 수 없는 냄새가 달라붙어 있다. 냄새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 향, 곰팡이, 풀, 구강청정제. 하루의 끝, 집에 와서 잠들기만 하면 되는데 굳이 구강청정제를 쓰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샤워는 증거가 될 만한 신체의 냄새를 없애주지만, 바람피우는 이들이 쓰는 호텔 욕실의 비누는 집에서 쓰는 브랜드와 다를 수 있다. 무엇보다도 가장 보편적인 단서가 있다. 바닥에 떨어진 붉은색이나 금색 머리카락, 립스틱 자국, 구겨진 옷, 은밀한 전화 통화, 설명 없는 외출, 몸에 난 수상한 자국.... 뜬금없이 나타난 정체모를 물건들, 화려한 열쇠고리라거나 화장수 병, 특히 밸런타인데이 같은 날 생긴 것들 - P33

조디가 학교에서 뭔가 배운 게 있다면, 그것은 앨버트 엘리스 덕분이다. 그는 정신 분석 치료에 인지 행동 패러다임 변화를 일으킨 선구자였다. 다른 사람들은 우리의 욕구나 기대를 충족시켜주려 여기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그들이 항상 우리를 친절히 대하라는 법도 없다. 이를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분노와 분개의 감정만이 남는다. 마음의 평화는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긍정적인 면을 강조할 때 온다. - P35

바람피우는 이들은 잘만 산다. 그들 다수가 그렇다. 설사 그렇지 않다고 해도 그들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왜인가 하면, 대체로 사람은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강한 동기나 지속적 노력 없이는 변하지 않는다. 개인의 기본 특질은 인생 초기에 발달하고 시간이 흐르면 침범할 수 없을 만큼 완전히 자리를 잡는다. 대부분의 사람은 경험으로부터 별로 배우지 않고, 자신의 행동을 수정하려 들지 않으며, 문제는 자기 주변 사람들에게나 발생하는 것이라고 여긴다. 그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나쁘든 좋든 간에 하던 일을 계속한다. 낙천주의자들이 끝까지 낙천주의자이듯이, 바람을 피우는 이들도 계속 바람을 피운다. 낙천주의자들은 음주운전 차량에 치여서 두 다리가 부서지고 병원비를 대느라 집을 저당잡힌 후에도 이렇게 말하는 이들이다. "운이 좋았어. 죽을 수도 있었잖아." 낙천주의자들에게 이런 유의 진술은 합리적이다. 바람을 피우는 이들에겐 이중생활을 하면서 한 입으로 두 말 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 P36

"부모님 사이의 문제가 정확히 뭐였나요?"
"아, 알잖아요. 그렇고 그런 것. 아버지는 일부일처제에 충실하지 못했죠."
"일부일처는 남자들에 맞게 만들어진 제도가 아니죠. 혹은 남자들이 일부일처제에 맞게 만들어진 게 아니던가. 어느 쪽이든 말하고 싶은 대로예요. 둘 다 사실이니까."
"그렇다고 생각해요?"
"그렇다는 것을 알죠." - P77

이 대화를 회상하며 조디는 생각한다. 그때 정신을 차리고 멈춰 생각했어야 했는데. 하지만 머릿속에서 응당 울렸어야 할 알람 소리가 그때는 이상하게도 조용했다. - P78

그즈음 조디는 그의 인생에 확고히 자리를 잡았으나 여전히 신비의 기운이 감돌았고, 그로서는 확실히 가늠할 수 없는 원천에서 광휘를 내뿜고 있었다. 그가 아는 것이라고는, 이제까지 그녀처럼 좋은 인상을 주고 싶었던 여자를 만난 적이 없다는 사실뿐이었다. 그녀가 자신에게 갖는 기대에 맞추어 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그녀가 필요로 하는, 그녀에게 어울리는 남자가 되고 싶었다. 빛을 발하는 어스름 속, 지나는 차도 하나 없는 작은 시골 동네의 다른 세계 같은 고요 속에서 두 사람은 나란히 걸었다. 향긋한 산들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왔고, 마음을 달래는 이 목욕물 같은 공기 속에서 그는 자신의 삶이 마침내 시작되었다고, 그녀야말로 자신이 숭배할 신이며 좋은 결과를 불러울 부적이라고 느꼈다. - P175

그에게 맞섰을 때, 그가 사과했을 때, 두 사람이 눈물을 흘렸을 때, 그들의 사랑을 재확인했을 때, 몇 번이고 이를 반복하면서도 그녀는 자기 안에서 일어나는 단념을 느끼지 못했다. 결국 그는 토드였고, 그가 그녀에게 소중했기 때문이다. 그의 난동, 자기 본능에 충실하겠다는 방식까지도 소중했다. 그는 잔인하지도, 불친절하게 굴지도 않았다. 토드가 비열하거나 심술궂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도리어 그 반대였다. 토드는 자기를 언짢게 해도 또 한 번의 기회를 줄 사람이었고 백 번을 언짢게 하면 백 번의 기회를 줄 사람이었다. 그러나 토드는 반드시 자기 삶을 살아야 하는 사람이기도 했고, 그러기로 결심했다. 결국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이를 받아들이는 것뿐이었다. - P201

다른 사람의 규칙에 따라 나의 삶을 살 수는 없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디는 그를 높이 평가한다. 그의 성공, 그리고 약속을 실천하고 꿈의 영역을 걸어가는 그의 능력을 찬탄한다. 그는 조디에게 칭찬받는 게 좋다. 그녀의 칭찬은 몇 년간이나 그를 두둥실 떠오르게 하고 용기를 주었다. 또한 칭찬에는 그 자신을 약간 조절하고 궤도를 유지하게 해주는 엄격한 훈육 같은 것이 따라왔다. 그녀가 없었어도 그는 자기 길을 갈 수 있엇을 테지만 그녀의 존재는 일종의 윤활유가 되어주었다. 모든 남자들이 그렇게 사랑받지는 않는다. - P284

사랑은 결국 나눌 수 없는 것이다. 한 사람을 더 사랑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을 덜 사랑한다는 뜻이다. 신의는 눈에 보이는 구조물이 아니라 사람의 내면에 존재하는 것이다. - P285

라이언이 자기 나름의 삶을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살고 있으며, 그애가 어떤 선택을 내리든 그 애 자신이 할 일이라는 사실을 조디가 받아들일 수 있었던 건 오로지 제러드 덕분이었다. 조디가 동생을 위해 바랐던 경제적 안정이나 개인적 발전 같은 건 가치있는 야심이긴 해도 그 애의 야심이 아니며, 그 애에 관한 조디의 의혹이 여러 판단에 기초를 둔 것이라 해도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의식적으로 그들에게 해를 입히는 일이라는 사실도 깨달았다. 차이를 존중하는 일이란 단순히 허락이라는 행위를 넘어 좁은 시야의 관점을 포기한다는 것임을 그녀는 이해했다. 나는 반드시 옳고 다른 사람은 틀리며, 모두가 나처럼만 생각한다면 세계는 더 나은 장소가 되리라는 전제를 버려야 한다는 뜻이었다. - P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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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0-03-08 1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사랑이 사랑이 아니게 되는 슬픈 이야기가 세상엔 너무 많네요.

다락방 2020-03-08 21:27   좋아요 1 | URL
사랑이 사랑이 아니게 되는 게, 너무 슬퍼요.. 슬픈 밤...... 일요일 밤이라서 슬픈밤인거겠죠.... 그런거겠죠.....

비연 2020-03-08 21: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떨 땐, 사랑했던 과거의 그들과 지금 사랑하지 않는 그들이 같은 사람이지 않은 게 아닐까 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그러니까 인터스텔라에서나 나옴직한 생각이지만... 일요일밤은 슬프고.. 월요일아침은 짜증스럽고.. 인생 무얼까요.

다락방 2020-03-09 08:22   좋아요 1 | URL
이미 가졌을 때는 그것이 얼만큼 소중한지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것 같아요. 그것이 물건이든 사람이든 관계이든 뭐든 말예요. 더 가지고 싶은 건 당연하지만 그러나 내가 가진 게 뭔지 일단 파악을 하는 게 중요할 것 같고요. 사랑이 사랑이 아니게 되면 비연님 말씀대로, 이 사람이 내가 사랑한 그사람일까... 라는 의심도 드는것 같고요. 그 때의 사람과 지금의 사람이 같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 네,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나저나 월요일 아침이고 이번 한주는 또 어떻게 가려나요. 잘 보냅시다, 비연님!

비연 2020-03-09 10:23   좋아요 0 | URL
월요일에 출근해서, 왜 아직 월요일일까 푸념하며 커피를 들이붓고 있는 비연입니다..
잘 지내보아요.. 잘 지냅시다... 잘 지낼 거에요!
 

빙고는 개이름? 아니아니죠. 프로이트는 개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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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물을 부어 내릴 때 아, 이것은 산미가 강한 커피겠구나 느낌이 뽝 온다. 뜨거울 때 마시면 신맛은 거의 느껴지지 않고 식을수록 점점 더 강해진다. 신맛 커피를 좋아하지는 않는데 마시기에 나쁘지 않다.
그렇지만 드립속도가 너무 느려서 답답했어... 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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