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 동의 - 지금 강조해야 할 것
밀레나 포포바 지음, 함현주 옮김 / 마티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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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셋 준 리뷰를 작성하려고 했는데, 비구매자들의 백자평을 보고 하나 더 올리기로 한다. 그들이 백자평을 통해 주장한것, 그러니까 '동의에 대한 비아냥'은 정확히 이 책에서도 사례로 언급되어진다.



동의에 관한 한 우리가 제일 먼저 배워야 할 것은 물어보기다. 미투 운동이 한창일 때 "그럼 섹스를 할 때마다 법률 계약서를 써야 하냐"는 비아냥 어린 질문을 들어봤을 것이다. 본질을 벗어나는 이런 질문은 대화를 계속할 수 없게 하고, 일상생활속 성폭력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태도를 반증할 뿐이다. 법률 계약은 성적 동의와 아무 관련이 없다. 동의는 소통과 배려, 인간적 존중이 있어야 가능하고 이런 것들은 법으로 규제되지 않는다. ( p.60-61)


내가 별을 셋 주고자 했던 까닭은 이 책이 너무 기본적이기 때문이었다. 뭐야 이런건 읽지 않아도 아는거잖아, 라는 생각을 했으므로 중간에 덮을까도 여러번 생각했다. 그때마다 '겸손해지자'고 내가 나를 달랬다. 이 책은 매우 기본적인 페미니즘 입문서이자 관계 입문서이다. 페미니즘에 대해서 혹은 인간 관계, 남녀 관계에 대해서 일단 기초부터 시작해야 겠다 생각하는 사람들이 읽으면 좋을 책이다. 이런 책이 대체 왜 필요한가 싶다가도 이런 책이 있어야만 비로소 이런 걸 알 수 있는 사람도 있겠지 싶어서 씁쓸하다가, 그러나 이런 기초적인 사항들에 대해 모르는 사람들은 자기가 뭘 모르는지도 모르고 이 책을 읽을 시도조차 하지 않겠지, 라는 생각이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들긴 했다. 그리고 그들은 이 책에 달린 비구매자 백자평에서 볼 수 있듯이, '야 자연스런 섹스에 일일이 동의 물어보고 분위기 깨라는거냐' 라며 비아냥대겠지. 그게 이 책이 필요한 이유이나 그러나 이 책을 읽지 않는 이들이 더 많다는 뜻도 될것이다. 뭐야 계약서 받고 섹스하라는거야? 라고 비아냥 대는 사람들이 이 책을 읽을 생각이나 할까? 안한다에 오십원..



중간중간 작가와 나의 생각이 달라서 갸웃했다. 어떤 다른 지점에 대해서는 '그래, 그건 그럴 수 잇겠구나' 했지만, 어떤 다른 지점에 대해서는 '그건 아닌것 같은데' 했다.동의에 대해서도 그렇고 이 책은 강간문화에 대해서도 기본적인 개념을 알려준다. 실제로 '야 강간 문화가 어디있냐' 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자주 볼 수 있는데, 일일이 설명해주기도 귀찮고 어차피 그렇게 물어보는 사람들은 설명해준다고 듣지도 않을 것이고. 강간문화와 강간신화, 성적 동의에 대한 기본 개념에 대해서 아주 잘 알려주는 책이니, 몰라서 알고 싶은 사람은 물론이고 그런게 어딨냐고 비아냥 대는 사람들도 읽어보면 좋을 책이다.


다시 말하지만 입문서로 적절하다 하겠다.




강간 문화는 가해자가 성폭력을 저지르기는 쉽고,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알리고 그에 맞는 지원을 받는 것은 어렵게 만드는 사고방식과 관습, 사회 구조의 총체다. 여기에는 젠더와 섹슈얼리티에 대한 고정관념이 포함된다(성적으로 남성은 적극적이고 여성은 소극적이라고 여기며, 이에 어긋나는 여성은 ‘음탕하다‘라고 낙인찍는 사회 분위기 등). 또 강간으로 판단되는 상황과 ‘진짜‘ 강간 피해자라면 응당 어떤 행동을 보이라고 단정짓는 것도 강간 문화의 일면이다(육체적 폭력이 수반된 경우에만 ‘진짜‘ 강간이라는 인식, ‘진짜‘ 피해자라면 사건을 즉시 신고할 것이고 정신적 외상이 심하겠으나 지나치게 히스테리를 부리지는 않으리라는 인식). 강간범은 어두운 골목에서 튀어나온 괴물이며, 남자친구나 아버지, 대학생이나 정치인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 또한 강간 문화의 일부다. - P17

한편, 여성이 노출이 ‘심한‘ 옷을 입고 자기 자신을 보호하지 못할 만큼 술을 마시거나 밤늦게 혼자 다니는 것은 강간을 유발하는 행동이며, 이 때문에 남성은 자신을 통제할 수 없게 된다는 고정관념도 강간 신화의 대표적인 예다. 또 여승의 음주는 비난의 이유가 되고, 남성의 음주는 자기 행동에 대한 핑계가 된다. 이로써 강간의 책임이 가해자에게서 피해자에게로 옮겨 간다. 잠재적 가해자에게 ‘강간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잠재적 피해자에게 ‘강간당하지 말라‘고 말하는 형국이다. 이는 공공장소를 자유롭게 다닐 권리, 입고 싶은 옷을 입을 기본적 권리를 제한한다. 이런 신화들은 성적인 것과는 전혀 상관 없는 상황에서 여성의 행동으로 동의를 추정할 수 있다는 잘못된 생각을 양산한다. - P40

특정 집단을 소외시키는 인종화(피부색이나 혈통을 근거로 타자화하는 것)도 강간 문화에 상당히 기여한다. 예컨대, 미국 문화에서 강간은 보통 흑인 남성이 백인 여성을 대상으로 저지르는 범죄라는 인식이 오랜 기간 만연해 있었다. 이는 백인 남성이 흑인 여성 노예와 여성 토착민을 강간했던 역사를 지우고 수정하려는 의도적 노력의 결과로 볼 수 있는데, 이런 아픈 역사는 지금까지도 흑인 여성과 토착민 여성을 심각하게 억압하고 있다. 실제로 미국 내 흑인 여성과 토착민 여성이 성폭력을 당하는 비율이 백인 여성보다 훨씬 높다. 게다가 흑인 여성이나 토착민 여성이 성폭력 피해를 신고해도 수사관이나 검사가 피해 여성들의 증언을 귀 기울여 듣지 않을 뿐더러 불신하여 사건을 추가 조사하지 않는다. 유색인 여성을 성폭력에 취약하게 만드는 편견은 이 밖에도 많다. - P42

성적 동의는 나와 상대방의 신체적 자율권을 존중하는 것이다. 타인에게 마땅히 보여야 하는 신중함과 배려를 바탕으로 상대방을 대하고, 내가 그런 것처럼 성관계를 맺을 의사가 상대방에게 있는지 확신할 수 없다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성적 동의를 고민할 때 신체적 자율권 개념은 순전히 나를 위해서도 필요하다. 나의 신체적 자율권을 행사하고 싶다면 당연히 타인의 신체적 자율권을 존중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다고 섹스와 섹스를 둘러싼 모든 결정 과정이 재미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핵심은 성관계가 어느 한쪽의 만족감을 위해 타인의 몸을 이용하는 일방적인 행위가 아니라는 점이다. 즉, 우연한 만남에서든 오래된 관계에서든 성관계는 ‘상호‘ 교류를 의미한다. - P55

계속해서 동의 상태를 확인한다는 것은 묻고 답하는 순간에 일단 행동을 멈추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섹스를 자기 욕구 만족을 위해 타인의 몸을 이용하는 행위라고 생각하지 않고, 타인을 존중하면서 서로 행복한 성적 경험을 공유하는 행위라고 생각한다면 나뿐 아니라 상대방의 요구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당연해진다. 즉, 상대가 만족하는지, 내 행동을 상대가 좋아하는지, 여전히 동의하는지 거듭 확인해야 한다. - P64

경찰관이 강한 어조로 안 된다고 말하는 모습이 담긴 영상을 사용자가 재생할 수 있는 앱도 있다. 이 앱의 개발자는 성관계를 강요하는 사람에게 이 영상을 보여주면 거절 의사를 더 명확히 전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 같은 주장의 기저에는 모호한 대답은 곧 ‘좋다‘라는 뜻이며 ‘싫어하는 척하는 것일 뿐이다‘라는 강간 신화가 깔려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무엇보다 신체적 자율권을 존중받기 위해 경찰 영상까지 동원해야 하는 지경까지 가서는 안 된다. - P79

반성폭력 운동에 대한 백래시는 역사가 길다. 예를 들어보자. 1991년에 미국 안티오크 대학의 한 페미니스트 단체가 캠퍼스 강간과 데이트 강간 관련 캠페인을 벌였고, 대학 당국은 ‘말을 통한 지속적 동의‘ 여부로 강간을 규정하도록 정책과 교칙을 수정했다. 즉, 육체적 관계가 진행되는 내내 서로 동의가 유효한지 말로 확인할 의무가 있다고 강조한 것이다. 이로 인해 학내 강간 가해자들은 징계를 받거나 퇴학당했다.
안티오크 대학의 사례는 뉴스 방송을 타고 전국에 퍼졌고, 누구나 이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여론은 극도로 부정적이었다. 1993년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Saturday Night Live)에 나왔던 ‘이것이 데이트 강간?‘이라는 콩트만 봐도 짐작할 수 있다. 이 콩트에는 한 남학생이 여학생에게 그녀의 옷차림을 칭찬해도 되는지, 입에 키스해도 되는지, 엉덩이를 만져도 되는지 과장되게 물어보는 장면이 나온다. - P182

이것 말고도 안티오크 대학 정책에 조롱을 던지는 백래시는 많았다. 당시 사람들은 성적 관계에서 동의의 초점을 맞추는 것 자체가 비현실적 기대이며, 말로 동의 여부를 확인하면 ‘분위기를 망치고‘ 덜 ‘자연스러워‘진다고 말하곤 했다. - P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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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겟타 2020-03-09 1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입문서의 역할을 제대로 한거라면 좋은책이겠지요? 기본이 중요하니깐요..저도 다음번에 읽어볼게요.

다락방 2020-03-10 07:38   좋아요 0 | URL
네. 별 것도 아닌 가장 기본적인 내용인데(상대의 동의를 얻고 섹스하라!) 이걸 비아냥대는 사람들이 있네요. 하하하하하하하하하. 이런 책이 왜 나오나 했더니 그런 사람들 때문에 나오나봐요. 휴..

추풍오장원 2020-03-11 17: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어봐야겠군요. 백자평 중 하나는 비아냥으로만으로 치부하기엔 힘든 측면도 있는것 같아 읽어보고 판단해야겠습니다.

다락방 2020-03-11 17:21   좋아요 0 | URL
네. 직접 읽고 판단해야죠.
그 구매자평들은 안읽고 판단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