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하는 여자가 강하다 - 능력 있는 현대 여성은 왜 무기력한가
레베카 라인하르트 지음, 장혜경 옮김 / 이마 / 2017년 3월
평점 :
절판


내가 페미니즘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고 그것을 더 알고 싶어질수록 다른 것들에 대한 앎의 욕망도 더 커졌다. 페미니즘에 대한 책을 읽고, 말을 하고, 생각을 나누고 하는 일련의 과정들을 거칠수록, 언어란 것에 대해 궁금해졌고 종국에는 내가 알아야 할 것은 철학이 아닌가 생각하게 되었다. 학문은 이렇게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겠구나, 하는 것도 최근에야 깨달았다. 나에게 그것의 시작이 페미니즘이었지만, 누가 어떤 다른 공부를 시작한다 해도 결국 우리는 만났을 것이다. 학문은 연결된 것이니까. 내가 언어학을, 사회학을, 정치학을, 경제학을 그리고 철학을 좀 더 잘 알게 된다면 페미니즘에 대한 시야도 좀 더 넓어지고 사고도 확장될 것이라는 게 눈에 보였다. 만약 누군가가(혹은 내가) 언어학을 먼저 공부하게 됐다면 혹은 경제학에 먼저 관심이 생겼다면, 그 사람은 그 분야에 대한 관심으로 파고 들어가다가 결국 페미니즘을 만나게 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페미니즘이 학문으로 분류되든 그렇지 않든, 결국은 모르는 상태에서는 '공부'해야 하는 것이었고, 공부는 하면할수록 얼마나 모르는 게 많은지 세상에 얼마나 알아야 하는 게 많은지를 알게 되는 것이니까.



재차 말하지만 나는 이 모든 것이 결국은 철학이라는 것으로 따라가지 않나 싶었다. 그렇게 철학을 공부하고 싶었다. 대학시절 관심도 없던 철학을, 성인이 되어서도 나와는 무관하다 생각했던 철학을 만나고 싶었고, 그 숱한, '이름만 들어본' 철학자들의 이론서를 먼저 읽는 것보다는, 개념을 먼저 잡고 가야겠다고 생각하게 됐다. 그런데 마침, 맞춤하게 이 책이 눈 앞에 똭- 보이는 게 아닌가. 좋다, 철학을 공부하기에 앞서, 철학하는 여자가 강하다고 말하는 이 책을 읽어보자. 이것은 내가 접근해야 할 철학에 대한 가장 좋은 입문서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거다. 그러나, 내 예상은 빗나갔고, 결과적으로 나는 이 책에 실망했다. 이 책은 내가 생각한 '철학에 대한 입문서'가 아니었다. 이것은 오히려 '자기계발서'에 가까웠다. 아니, 자기계발서다. 조금더 상세히 분류하자면, '여성에게 맞춤한 자기계발서'쯤이 될텐데, 그렇다 해서 이 책이 무용하냐 하면, 그건 또 전혀 그렇지 않다.



이 책은 우리가, 특히 여성들이, 우리를 가둔 굴레를 벗어던지자고 시종일관 얘기한다. 우리가 그렇게 모든 걸 다 잘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계속 강조한다. 그러니까, 너무 당연한 얘기다. 우리는 훌륭한 일꾼이면서 동시에 어진 엄마이고 다정한 아내의 역할을 모두 다 갖출 수 없다. 그런 역할들을 모두 다 수행하려고 하느라 잠잘 시간마저 부족한데, 이것은 과연 우리가 '당연히' 가져가야 할 역할인가, 하면, 그렇지 않다는 거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좀 더 당당해져야 하고, 거부할 수 있어야 하고, 남자들보다 더 많이 노력하지 않아야 하고, 힘을 가져야 한다는 거다. 얌전하거나 착하지 말자고, 겸손하지 말자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은 분명, '나는 열심히 살고 있는데 왜 딱히 속시원한 느낌이 아닐까'를 고민하는 여성들에게 유의미한 책일 것이다. 그들로 하여금 세상과 고정관념에 맞서게 하는데 도움을 줄만한 책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문제는, 내게는 이 책이 필요가 없다는 데에 있다. 이 책의 저자가 말하는 바를 충분히 알겠고, 저자의 뜻에 충분히 동의하지만, 나는, 이 잘난 나는!!! 이미 저자가 '앞으로 우리가 살아야 할 모습'이라고 생각하는 그 지점을 넘어서 있는 것이다!!!!! 



으음, 이 책은 의미 있지만 내게 필요친 않은 책이군, 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는 절반도 채 읽기 전에 이 책을 덮을까를 진지하게 고민했다. 세상은 넓고 읽어야 할 책 또는 읽고 싶은 책은 쌓여있는데, 굳이 필요없는 책을 읽으면서 이 유한한 시간을 보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철학에게 조금 더 가까이 가고 싶은 나의 마음, 나의 이 애절한 마음은, 책장을 덮는데 반대했고, 철학자라는 저자의 말을 끝까지 들어보자고 결심하게 되었던 거다. 처음 내가 이 책에 기대한 바대로 이 책은 내게 '맞춤한' 책은 아니었다. 그러나 저자는 자신의 주장을 얘기하면서(우리가 권력을 가지자!! 충분히 가질 수 있어!!), 계속해서 철학자들을 소환해낸다. 이 철학자는 이런 말을 했어, 이 철학자는 저런 말을 했지, 하면서. 그래서 어떻게 되었냐고? 



나는 한나 아렌트가 궁금해졌다.




궁금해지는 게 많다는 게 나는 좋다. 궁금한 게 많다면 그 궁금함을 모두 해소할 수는 없지만, 해소하기 위해 노력할테고, 그건 공부로 이어지는 것일테니까. 책은 모든 문제에 대한 궁극적 해답은 결코 될 수 없지만, 어떻게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조언을 해준다. 이 책은 딱히 내게 필요한 책은 아니었지만, 다른 철학책을 또 읽어보자, 결심하게 되었다. 




지난 주말에는 창원까지, 페미니즘 철학 강의를 들으러 다녀왔다. 강의를 들었더니 칸트와 들뢰즈에 대해 빠샥하게 알게 되었다.... 라고 하면 너무나 아름다운 결론이겠지만, 나는 '이것은 무슨 말인가.... '하게 되어버렸고, 그래서 더 열심히 공부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기에 이르렀다. 강의를 들으러 온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보다 나이가 많았다. 그런데 다들 앉아서 조금이라도 더 들으려고, 궁금한 것에 대해 질문하며 열중했다. 질문도 뭘 알아야 할 수 있는 건데, 나는 지식이 1도 없으니 질문도 못하겠더라. 공부를 하면할수록 내가 얼마나 많은 것을 모르는 가에 대해 깨닫게 된다. 




철학은 무엇인가.

나는 누구인가.

너는 누구인가.

왜 우리는 이렇게 지내는가.

인생은 무엇인가.

그들은 왜 그렇게 되었는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왜 너는 너이고 나는 나인가.



이 모든 근본적인 질문은 결국 철학이다. 우리는 계속 묻고 답을 해야하고 그것을 멈추지 말아야한다. 나는 지치지 않고 게속 앞으로 나아가고 싶은데, 체력이 딸리는 것 같다는 느낌을 더러 받기도 해서, 아아, 이래서 어른들이 공부도 다 때가 있다고 하는구나.... 하는 생각도 들어....그치만, 무릇 공부란 멈춰서는 안되는 것이야. 열정적으로 공부해서 후다다닥 앞으로 가면 좋겠지만, 그러다가 지쳐서 널브러지면 오히려 뒤로 가게 되어버린다. 꾸준히 가야겠다.



학창시절 나는 공부를 못했지만, 특출나게 점수가 높은 과목은 있었다. 나는 이게 바로 공부 못하는 사람의 특징인가보다, 오늘 생각했다. 모든 학문이 연결되어있다는 결론에 이르자, 그래서 전교1등 아이들이 전과목을 다 잘했구나 싶어지는 거다. 세계적인 석학들이 모든 분야에 보통 이상의 지식을 가지고 있는것처럼, 그들은 외국어에도 능통한 것처럼, 무엇을 알고자 하는 욕망과 그것을 채워주는 지식이란 것은 결국 다 연결되어 있는 것 같다. 공부를 잘하는 사람은 이미 그것을 알고 있고 응용한 게 아닐까. 나는 너무 늦된 아이였어....그랬던거야.....





마지막으로 별점에 대한 고민을 한다...철학적으로..

나는 이 책에 대해 별을 셋을 줄것인가 넷을 줄것인가...그러니까 사실 읽으면서는 셋이다!! 했는데, 나는 내 자신의 주된 인물이니 내가 읽은 그대로 평을 해야하긴 할것인데, 그런데 이 저자가 틀린 말 한 거 하나 없고 다른 사람들에겐 유의미한 내용일 것이니까 조금 더 줘도 되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최종 결론은 3.5가 되었는데, 알라딘엔 반점짜리가 없으니까...셋이나 넷 둘 사이에 결정해야 할 것인데, 그렇다면 셋을 줄것이냐 넷을 줄것이야.... 하다가 그래, 올림을 하자, 하고는 별을 넷을 주기로 지금 막 나와 내가 쇼부를 쳤다.


삶은 이렇게 질문의 연속이다. 늘 질문하고 늘 답을 구하면서 인간은 앞으로 나아가는 거야....




이 생에서는 엄마가 되지 않을 수 있다. 직장에서 행복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인생의 남자가 딴 여자의 품으로 달려갈 수도 있다(그러지마...딴 여자의 품으로 가지마.......돌아와, 짜샤.........). 하지만 그것이 곧 우리가 무언가를 놓쳤다는 뜻은 아니다. 우리가 성급하게 땅에서 뽑아 버리는 바람에 말라빠진 식물을 보며 화를 낼 동안 다른 식물들이 조용히 소리 없이 싹을 틔운다. (p.57)





쉽게 반말을 하거나 상대의 반말을 용인하지 마라. 당신은 성인이다. 특히 직장이라는 무대에서 튀어나오는 반말은 쉽게 용인해서는 안된다. 반말은 친밀함을 넌지시 암시하지만 그 친밀함은 대부분 존재하지 않거나 존재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당신에게 은근 슬쩍 반말을 던지거나 당신을 별명으로 부르는 상사는 그 반말 의식을 악용하려는 사람이다. 이럴땐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정확한 발음으로 상대의 이름과 직위를 호명해야 한다. 그럼 권력은 당신 편이 될 것이다. (p.98)

유독 철학과에선 지위가 높은 여성을 만나기 힘들다. 철학과 여대생들은 대학 시절부터 제대로 대우를 못 받고 무시당하기 일쑤이며 재능없는 인간 취급을 당한다. 철학이란 것이 남자들만 가진 희귀한 재능이라도 되는 듯이 말이다.
오랜 시간 방에 틀어박혀 혼자서 비환원주의적 유물론이나 포스트 형이상학의
자유 개념을 연구하여 자식 대신 상을 타고도 남을 만한 우수한 글을 쓴 여성은
‘정상이 아니다‘. 틀림없이 ‘미쳤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녀의 글을 남자 동료가
쓴 글보다 더 나쁘게 평가하며 그녀의 말을 히스테리컬하다고 낙인찍거나, 더
나아가 아예 입을 못 열게 만든다. 그런 경험, 그 비슷한 경험들 탓에 많은 여성
학자들은 교수 자리를 아예 처음부터 꿈도 꾸지 않는다. (p.145-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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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24 11: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8-24 12: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syo 2017-08-24 1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철학책 좀 보니까 철학 그거 뭐 별거 없더라구요. 한 300000년 정도 공부하면 싸그리 정복할 수 있겠던데요? ㅠㅠㅠㅠㅠㅠㅠㅠ ㅠㅠㅠㅠㅠㅠㅠㅠ

다락방 2017-08-24 13:24   좋아요 0 | URL
ㅎㅎ 그정도 공부하면 정복 가능하단 말이죠? 오케바뤼 알겠어요. 일단 영생을 얻겠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앞으로 제가 철학 공부하는데 선배님 도움 좀 받도록 하겠습니다. 많은 지도 부탁드려요. (꾸벅)

syo 2017-08-24 13:27   좋아요 0 | URL
네, 그렇다면 제가 1년정도 먼저 시작했으니 299999년은 우리 함께 달려볼까요??ㅠㅠㅠㅠㅠ

다락방 2017-08-24 13:30   좋아요 0 | URL
흑흑 그래요 ㅠㅠ 그 머나먼 길, 쇼님과 함께라면 흑흑 외롭지 않겠지요 흑흑 ㅠㅠㅠㅠㅠㅠㅠㅠㅠ 우리 함께 달려봐요..아니, 난 좀 걸으면 안될까요? (글썽)

syo 2017-08-24 13:37   좋아요 0 | URL
걸으셔도 되요. 뭐 한 백년 살다 가는 인생 600000년 걸리나 300000년 걸리나 큰 차이 있겠어요? 쉬엄쉬엄 갑시다, 막걸리나 마시면서.

다락방 2017-08-24 13:39   좋아요 0 | URL
음... 비도 오는데......막걸리 얘기를 하니.........몹시 흔들리는군요.
오늘 저녁에 막걸리를 마실까 말까 마실까 말까...................................................

아아 역시 삶은 고민의 연속이여..................

비연 2017-08-24 14: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한나 아렌트가 궁금합니다...

다락방 2017-08-24 14:18   좋아요 0 | URL
세상은 궁금한 것 투성이죠.... 제가 혹여 공부하게 된다면 페이퍼로 공유하도록 하겠습니다. 불끈!!
 
넛셸
이언 매큐언 지음, 민승남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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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하하 탄생으로써의 복수, 삶으로써의 응징!!
책장을 덮고 한템포 쉰 다음에 피식- 새어나오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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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ient-guest 2017-08-22 1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오늘부터 100자평도 하시는 겁니까?? 저처럼 치매방지용으로??ㅎ

다락방 2017-08-22 10:59   좋아요 1 | URL
그니까요. 이거 필요해요. 안그러면 읽었는지 안읽었는지, 읽었다면 어땠었는지 기억이 1도 안나서 말이지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줄리아 차일드'는 남편의 직장이 파리가 되면서 덩달아 파리로 오게 된다. 남편이 직장에 간 사이 자신은 무엇을 할까 고민해서 모자만들기라든가 하는 일거리에 도전해보지만 영 재미가 없다. 그러다 요리 학교에 가게 되었는데, 달걀 삶는 것 같은 걸 가르치는 게 아닌가. 이에 줄리아는 교장선생님께 '그보다 더 고급진 수업을 듣고싶다'고 말한다. 교장은 더 어려운 수업이 있긴 하지만 학생이 전체 다 남자라며, 그런데 들을 수 있겠냐고 묻는다. 줄리아는 듣겠다고 한다.


줄리아가 그 수업에 들어가보니 학생들이 죄다 남자이고, 게다가 그녀를 보는 시선이 곱지 않게 느껴진다. 양파를 썰어야 하는데 줄리아가 잘 썰지 못하고, 그때 자신이 느낀 기분이 싫었던 줄리아는, 집에 가서 온종일 양파 써는 연습을 한다.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퇴근 후에 집에 돌아온 남편 역시도 오자마자 눈물을 흘린다. 양파가 매워서. 줄리아는 '남자들이 나를 무시하는 그 눈빛이 싫다'면서 열심히 양파를 썰고, 그 후의 수업에서 줄리아는 다른 어떤 남자들보다 양파를 잘 썰게 된다. 이 성격은 물론 양파썰기에만 적용되는 게 아니라서, 무얼 해도 줄리아는 우수한 학생이 되는 것이다.





줄리아의 남편은 집에 돌아와서 양파냄새가 자신을 반겨도 신경질을 내지 않는 남자였다. 이들 사이엔 아이가 없고, 아이가 없는 현실에 줄리아는 가끔 마음 아파하지만, 그런 그녀를 남편은 안고 토닥토닥 '알아 알아' 하면서 다독여준다. 그녀가 요리에 흥미를 갖게 되고 열심히 하는 모든 과정에서, 그리고 그 요리를 책으로 출판하는 그 긴긴 시간동안, 남편은 충실한 지원자가 되어준다. 줄리아가 절망할 때 다독여주고, 줄리아의 책이 8년여의 노력 끝에 드디어 출판된다고 했을 때는 함께 환호성을 질러준다. 진심으로 '함께' 기뻐한다. 그가 온화한 성품이기도 하지만 줄리아를 무척 사랑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중간에 사람들과 함께한 식사 자리에서 남편은 아내와 어떻게 결혼하게 됐는지를 얘기한다. 이전부터 알아온 친구였는데, 어느날 '내가 결혼할 사람은 이 여자다'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그때 줄리아의 나이는 마흔이었다고 한다. 마흔의 줄리아는 폴을 만나 결혼하고 그 뒤로 아주 사이좋은 부부가 되어서 그 누구보다 뜨겁게 서로를 사랑하고 위한다. 이렇게 남편이 아내에 대한 사랑과 믿음을 여러 사람에게 드러내는 순간, 아내 줄리아는 자신의 가슴에 달았던 하트를 남편을 향해 움직인다.






'줄리'는 그런 줄리아 차일드를 무척 존경하고, 무료한 일상에서 블로그를 시작하며 그녀의 모든 요리에 도전하기로 한다. 그녀의 요리책에 나온 레시피대로 음식을 만들어 매일 포스팅을 한다. 줄리아에게 그랬듯, 줄리에게도 요리는 자신이 무척 좋아하는, 자신을 위로하는 과정이었다. 현재의 줄리가 오래전의 줄리아와 좀 다른 점이 있다면, 줄리는 요리를 실패했을 때 절망한다는 것. 닭 요리를 하려고 싱크대 위에 올려두고 준비하다가 통째로 바닥에 떨어뜨렸을 때, 그녀는 숫제 바닥에 그냥 누워버리고 만다. 난 안돼, 난 안될거야, 이런 제기랄... 그녀의 절망은, 나에게까지도 전해져서, 아아 이것은 스트레스가 크다...하게 되는 것이다. 


처음 줄리가 블로그에 글을 쓰고 자신이 요리를 만든 과정을 올릴 때, 그녀에게는 독자가 아무도 없었다. 남편과 친구들만이 응원을 보탤 뿐, 줄리의 엄마조차도 그런 짓을 하지 말라고 하는 거다. 게다가 아무도 내 블로그를 보지 않는다는 절망하에, 혹시 누가 내 글을 읽고 있나요? 물었을 때, 마침 그때 기쁘게 딩동- 하고 달린 댓글이 엄마였어....'너 아직도 글 쓰고 있니?'






그러나 그녀는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요리에 계속 도전한다. 이 과정에서도 역시 그녀에게는 그녀를 응원하고, 그녀가 만든 음식을 먹으면서 감상을 얘기하고, 그녀가 절망할 때 달래주는 좋은 남편이 있었다. 남편은 그녀에게 서운해하기도 한다. 그녀가 퇴근 후에 요리를 만들고 블로그를 하느라 결혼 생활에는 충실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신과의 섹스가 줄었기 때문에. 그래서 어느 한 날엔 남편도 폭발하고 만다. '나는 천사가 아니야!' 그렇게 남편이 집을 나가 버리는데, 줄리는 하룻밤을 그 없이 보내고난 후, 남편이 그리워진다. 자신은 이기적이고, 이렇게 이기적인 사람이 좋은 남편을 가질 자격이 있을까, 에 대해서 포스팅을 한다. 그리고 남편 직장의 자동응답기에 메세지를 남긴다.



당신 없이 자려니까 이상해, 당신이 그리워.



그 날, 자신이 이기적이었는가에 대해 고민하고 남편을 그리워 한 날, 그녀는 자신의 블로그에 저녁을 요거트로 먹었다고 쓴다. 


yogurt for dinner.




잠이 오지 않았던 줄리는 벌떡 일어나 마트로 가 다시 요리할 재료를 산다. 그렇게 장바구니를 채워 터벅터벅 집에 돌아오는데, 집 앞에서, 집으로 돌아오던 남편을 만난다. 그들은 다투었고 그렇게 남편은 화가 나서 집을 나갔지만, 그렇게 다시 돌아왔고, 서로를 웃으며 반겨준다. 


싸우고 화해하고, 이 과정이 자연스럽게 넘어가는 것. 이게 오래된, 사랑하는 사람들의 자연스런 수순 아닐까. 싸우고 어색하지기 보다는 자연스레 화해할 수 있는 바로 이것.




줄리는 줄리아의 책에 있는 모든 요리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블로그는 인기가 많아졌고, 그녀에게 음식의 재료를 보내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책을 내자는 제안도 여러차례 들어왔고(실제로 책을 냈다고 한다), 뉴욕타임즈에는 그녀와 그녀의 블로그에 대한 글도 실렸다. 이 모든 과정들이 내게는 낯설지 않았는데, 그녀가 요리로 블로그 활동을 유지했다면, 나는 책읽는 것으로 그것을 유지하고 있으니까. 줄리와 줄리아는 모두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오래, 열심히 해서 그것에 대한 성과를 냈다. 그것으로 기쁨을 찾았고 그것으로 다른 사람들로부터도 인정 받았다. 좋아하는 일을 꾸준히, 열심히 하는 것만큼 좋은 게 없는 것 같다. 그게 가장 훌륭한 것이여..


줄리아는 책을 내기까지 8년이 걸렸다. 그녀의 원고는 출판사에서 거절당하기도 했는데, 또다른 출판사의 여자 편집자는 직접 그 레시피대로 요리를 만들어보고, 너무 맛있어서!! 그 책을 출판하기로 한다. 자신이 직접 검증을 거친 것. 그때 만들었던 대표 요리가 소고기찜이었다. 아래 사진이 바로 그 요리! 줄리는 한 번 실패했던 그 요리!




이때 편집자가 자신이 만든 요리를 맛보면서 맛있다고 감탄하는 장면은 정말 좋은데, 나는 사람들이 맛있는 걸 먹으면서 실제로 감탄하고 맛있어하고 신음소리를 내는 그 반응들, 리액션을 정말 좋아한다. 특히나 좋아하는 사람이 그러면 너무나 좋은데,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고 제대로 맛있어 하는 사람들, 진짜 너무 소중해... 맛있는 표정과 신음소리, 정말 좋지 않은가!



그리고 요리 바보인 나도, 계속계속 요리가 하고 싶어졌다. 내가 정성스레 만든, '맛있는' 음식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불러모아 내놓고 싶어졌어...

(안돼, 그러지마, 그러지마...)






영화 너무 좋다. 펜팔친구 얘기도 나오고, 블로그 얘기 나오는 것도 좋다. 너무나 잘나가는 친구들 앞에서 위축됐던 줄리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아낸 것도 좋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모든 과정에 누군가와 함께 하는 것도 좋고. 기쁨도 슬픔도 우울함도 성공도 함께 나눌 파트너가 있다는 것은, 인생의 참된 축복인 것 같다. 



에이미 아담스 나온 영화 많이 봤는데, 이 영화에서 제일 좋았다.

이 영화의 원서가 있던데(이게 줄리가 쓴 책인듯), 사고 싶은 마음 따위, 눌러버렸!!

포기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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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7-08-21 1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이 하신 요리 먹으러 가는 상상을 한 번 해 봅니다. 아마도 메뉴는 ˝눈물없인 똠양꿍˝이랄지 ˝지옥에서 건져온 불닭발˝이랄지 ˝쫄면 돼지시든지˝랄지, 뭐 그런 게 나올 것 같아요.

다락방 2017-08-21 11:52   좋아요 2 | URL
아니 이 분이 지금 뭐라시는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쫄면 돼지시든지 좋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공부하고 싶은 게 많아서 큰일이에요. 요리도 이것저것 해보고 싶은데, 제일 먼저 포기해야 한다면 요리를 포기해야 할듯. 요리를 못해가지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이런거 저런거 다 해보고 싶지만 현실은 구몬 밀리고!! 시사인 밀리고!! 다 밀린다 밀린다 밀려!!!

뭐, 언젠가는 그런 날이 오지 않을까요. 이 다락방이!! 제가!! 근사한 음식을 준비하고 쇼님을 초대하는 날이요. 있겠지요. 있기를 바라봅니다.

심술 2017-08-21 1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숨어서 읽기만 하다 첨 댓글 달아봅니다.

저도 이 영화 좋아해요. 두 번 봤는데 첨 봤을 땐 언제였는지 잊었고,
다만 극장이 아니라 집에서 TV로 본 것만은 기억나네요,
둘째로 본 게 바로 지난달인가 지지난달인가 EBS였나 OBS에서 주말밤영화로 해 주는 걸 봤죠.

영화에서 줄리아 차일드 남편 연기한 배우가 스탠리 투치였죠.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 줄리아 차일드 아니 미란다 프리쓸리에게 시달리는
앤 해써웨이에게 패션잡지사에서 살아남는 법을 가르치던 게이로
<당신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에선 아내 브리짓 폰다를 못살게 굴던 찌질한 남편으로 기억해요.
이 영화에선 맥카시즘에 시달리고 극우꼴통스런 장인에게 시달리는 양심적인 시민이자 이해심 많고 착한 남편이더군요.

메릴 스트립이랑 에이미 아담스는 워낙 유명해서 더 할 말이 없고요.

구몬이랑 시사IN이랑 요리랑 다 잘 하시기를.

다락방 2017-08-21 13:13   좋아요 1 | URL
네, 맞아요. 줄리아 차일드의 남편은 양심적인 시민이자 이해심 많고 착한 남편이었죠. 아내를 위로하는 것도 그렇지만, 아내의 성공에 함께 진심으로 기뻐하는 장면이 참 인상적이었어요. 파트너의 자세란 모름지기 이런 게 아닐까, 라는 생각도 했고요. 줄리의 남편 ‘크리스 메시나‘도 좋았어요. 역시나 다정한 남편이었고요. 영화속 여자들이 똑똑하고 멋져서 좋았는데, 그녀들의 남편들 모두 다정한 사람들이어서 또 좋았어요.

저는 굿다운로드로 이 영화 다운 받아놓았는데, 참 잘했다 싶어요. 친구가 이 영화 좋다고 엄청 얘기해서 진작 다운 받아놓고 이제야 보았는데, 보면서 아 이래서 보라 그랬구나 싶더라고요. 참 재미있게 봤고 좋은 영화였어요. 에이미 아담스는 이 영화에서 제일 예뻤어요. 흣.

구몬이랑 시사인은... 아, 모르겠어요. 하기 싫어요...Orz

지나 2017-08-21 15: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지금 줄리앤 줄리아 책으로 보고 있는데 잘 읽어져요ㅠㅠ 벌써 며칠째 잡고 있는건지

다락방 2017-08-21 15:41   좋아요 0 | URL
앗. 원서를 읽고 계신건가요? 책은 잘 안넘어가나 보군요. 세상에 읽을 책이 아주아주아주아주 많으니, 다른 책 읽으세요, 쥴리님. 그리고 이건 그냥 영화로 보시는 게 어떠세요? 영화 무척 좋아요!

지나 2017-08-21 15: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헐 원서라니요 지금은 절판 됬지만 한글판이 있답니다.먹는거 좋아해서 술술 읽힐줄 알았는데ㅠㅠ

다락방 2017-08-21 15:56   좋아요 0 | URL
아 한글판이 있었군요! 검색했을 때 원서만 나오길래 원서 읽으시는 건줄 알았어요.
먹는 거 좋아해서 저도 이 영화 보는 게 즐거웠던 것 같아요. 소고기찜 만든 거 보니까 막 먹고싶고 ㅋㅋㅋㅋㅋ

transient-guest 2017-08-22 1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 괜찮지요. 사실 이거 보고서 저 옛날 파리에서 지독한 편견을 이겨낸 아주머니의 책을 구했나 구하려다 말았나..아무튼 좋았습니다.ㅎㅎ 근데 메일 스트립 남편으로 나온 배우의 러브-러브 연기가 좀 질척했던 기억이..확실하지는 않지만 이 분이 게이로 알고 있는데, 그래서 그랬는지 키스가 너무 연기스럽게 질척하더라구요..ㅎㅎ

다락방 2017-08-22 11:30   좋아요 0 | URL
아 저는 남편분이 너무 다정해서 좋았거든요. 다정하고 진심으로 함께 기뻐해주고 늘 옆에 있어주고 이러는 거 너무 좋아가지고 질척했다는 생각은 못했어요. 메릴 스트립의 억양이 좀 어색했지만, 그건 역할을 위해서 그런 것 같고요. 줄리와 줄리아의 남편 둘 다 너무 다정하고 애정뿜뿜해서 이영화가 더 좋더라고요! 긍정적 남편의 모습을 보여준 몇 안되는 영화인 것 같아요. ㅋㅋㅋㅋㅋ
 

11:00-18:00 까지 강의 들어요!! 짱이죠!!!!! (씐남 ㅋㅋㅋ 그런데 이렇게 딴짓 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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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7-08-19 12: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플라톤..... 들뢰즈.......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다락방 2017-08-19 13:50   좋아요 0 | URL
아오 ㅋㅋㅋㅋㅋㅋㅋㅋ 방금 점심 먹었어요. 헤헷

비연 2017-08-19 16: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짱이에요!

다락방 2017-08-19 16:29   좋아요 0 | URL
들뢰즈 어려워요... ㅠㅠ
 

















어젯밤에 자기전에 이 책에 대한 근사한 리뷰를 읽었다. 그 리뷰는 퍽 낭만적이었는데, 그것은 아마도 독서공감이 낭만적이기 때문이겠지? 낭만적인 책을 읽으니까 낭만적인 리뷰 나오고 뭐 그러는 거 아니야? 어쨌든 그 리뷰는 나를 추억에 잠기게 했다. 일단 어떤 리뷰였는지 링크를 걸도록 하겠다.



http://blog.aladin.co.kr/syo8kirins/9533769



그러니까 나는 아마 가끔 y 의 이야기를 이 공간을 통해 했을 것이다. 그는 나의 직장 동료였다. 과거형으로 말한 건, 그가 몇 해전에 퇴사하고 지금은 이 회사에 없기 때문인데, 퇴사 전에 그는 나와 간혹 술을 마시곤 했었다.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마시기도 했고 나와 둘이 마시기도 했다. 내가 롤카베츠 먹고 싶다고 했던 걸 기억하고 일본 출장 갔다가 슈퍼에서 파는 롤카베츠 사진을 찍어와 보여주기도 하고, 롤카베츠 하는 식당을 알아냈다고 주말에 롤카베츠 먹으러 가자고 하기도 했다. 그렇게 어느 일요일에는 그를 만나서 롤카베츠를 하는 식당을 가기로 했는데, 막상 가보았더니 그 날은 영업을 하지 않았고, 그래서 우리는 하는수없이 고기를 구워먹고 2차로 와인을 마시러 갔더랬다. 와인을 마시러 간 곳은 저렴한 bar 였는데, 거기에서 그는 맥주를 마시고 나는 와인을 마셨더랬다. 와인을 따라주는 바텐더에게 많이 주세요, 했더니 한 잔 가득 따라주어 내가 얼마나 씐났었는지 모른다. 그리고는 신청곡을 받아 음악도 재생시켜주길래 harlem blues 를 신청했는데, 우앙, 옆에 남자 앉아있고(응?), 앞에 와인 놓여있고, 그리고 할렘 블루스 나오고 그러니까 세상 좋아서 내가 으악 어떡해~~ 했더랬고, 내가 어쩔 줄 몰라하자 그는 옆에서 '울어도 돼요' 했더랬다. 내가 너무 좋아서 진짜 딱 울고 싶은 기분이었다니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쨌든 그래서 그날 술이 떡이 되도록 마셨던 기억... 


이건 독서공감과 아무 상관이 없는데, 그를 떠올리면 이 날이 가장 먼저 생각나서 이 얘기가 나왔네. 어쨌든. 그 후에 그는 퇴사를 했고, 퇴사를 한 후에 가끔 나와 연락을 했었는데, 뜸한 연락 사이로 내가 독서공감 책이 나오자 띡- 하고 그에게 아무 말도 없이 링크를 보냈던 거였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그는 가끔 책을 읽는 사람이었고, 그래서 나랑 책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었던 터라 링크를 보내면 어쩌면 그가 읽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던 거다. 어쨌든. 그 후에 연락하면서 그가 종로에 맛있는 닭볶음탕집을 알고 있다며 함께 먹으러 가자고 해서 퇴근 후에 그를 만나러 종로로 갔는데, 그 집은 정말 맛집이었는지 줄을 서 있더라. 줄을 서 기다리는 동안 그는, 나를 만나러 오기 전의 예의 같은 거라며, 밤새 독서공감을 다 읽었다고 했다. 아 뻘쭘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러더니, 감상을 아이폰 메모장에 적어왔다는 거다. 그래서 그런가보다 했는데, 우리 차례가 되었고, 테이블에서 닭볶음탕이 막 끓고 있는데, 그는 자신의 아이폰을 꺼내더니 자신이 쓴 감상을 읽어주겠다는 게 아닌가. 아니, 안읽어줘도 되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걸 나한테 왜읽어줘 뻘쭘하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읽어주기 전에 그는, 자신이 아는 사람중에 책을 낸 사람이 또 있고 그래서 그 책도 읽었었는데, 내 책이 훨씬 재미있다고 했다. 어쨌든 그는, 끓고 있는 빨간 닭볶음탕을 앞에 두고, 내 앞에 마주 앉아, 자신이 메모장에 기록해온 독서공감의 리뷰를 읽어줬다. 아 듣는 동안 부끄럽고 뻘쭘해서 빨리 끝나기를 바랐었지. 그치만 내 글에 대한 감상을 듣는 건 즐거웠어. 결론적으로 그가 쓴 감상의 주제는 그거였다. '이 여자랑 사귀고 싶다면 이 책 먼저 읽어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진짜 얼마나 부끄럽던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리고 우리는 소주잔에 소주를 따라가며 소주를 마시고 닭볶음탕을 먹었다. 닭볶음탕은 그런데, 내가 좋아할만한 딱 그런 타입은 아니어서, 내가 다시 찾을 곳은 아니긴 했다. 



아무튼 오늘 저 링크된 리뷰를 읽다보니 이 y 생각이 나는 거다. 리뷰의 느낌이 비슷해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갑자기 그와 동동주 마시러 갔던 일도 생각나고, 둘이 갈비 먹으러 갔던 것도 생각난다. 화장실 좋은 갈비집이었는데, 자신은 술집을 차린다면 반드시 화장실을 좋게 만들고 안에다 만들거라는 얘기를 했던 것도 기억난다. 오래전이었는데, 술집 화장실은 여자들 좋게 만들어야 한다는 거였다. 남자들은 여자들이 가자는대로 따르게 되어 있다며, 결국은 손님을 많이 끌기 위해서라도 좋은 화장실을 만들어야 한다는 거였다. 우리가 둘이 따로 만난 횟수가 별로 많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기억을 떠올려보니 함께 순대국도 먹으러 갔었네. 물론 소주랑. 또 을지로 노가리집에 갔었다. 내 입에 계란말이 넣어주겠다는 걸 내가 한사코 거부했던 기억이 난다. 그가 정말 맛있는 보쌈집이라며 같이 가자고 해서 종로에서 내려 한참을 걸어 찾아갔던 보쌈집도 생각나고, 이자까야에 갔던 적도 있다. 야, 양재에서는 맛있다고 소문난 족발집을 가기로 해서 둘이 함께 가는데, 퇴근 후라 그가 양복을 차려입고 있어서, 함께 걷는 동안 그냥 양복 쫙 빼입은 남자랑 걷는 것도 혼자 흐뭇해했던 기억도 있다. 아, 우리 되게 뭔가 많이 먹으러 다녔구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한번은, 그가 퇴사하기 전이었는데, 여름 휴가 끝나자마자 그가 메신저로 다정하게 말을 걸어 휴가 잘 다녀왔냐 묻는데, 어, 뭔가 평소랑 느낌이 달라, 내게 요구하는 게 있는 듯한 느낌이야? 그래서 뭐냐, 너 할 말있지, 했더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모방범2권 좀 빨리 빌려달라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내가 휴가 가기 전에 1권 빌려줬었는데, 이 친구가 그걸 읽고는 다음권이 궁금해서 이제나저제나 나 휴가 끝나기를 기다렸다는 거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빵터졌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지금은 그와 연락하지 않는 사이가 되었다. 어쩌다 그렇게 됐는지는 모르겠는데, 그가 취직은 했는지, 어떻게 사는지 소식을 전혀 모른다. 아마 그도 내 두번째 책이 나온 소식을 전혀 알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럴 가능성이 더 높다. 어쩌면 우리가 여태 알고 지냈다고 하더라도, 내가 헬페미가 되는 순간.... 멀어지게 됐을지도 모른다. 사람일은 알 수 없지. 미래는 예측불허, 그리하여 생은 의미를 갖는 것. 









나는 워낙에 책읽고 글 쓰는 걸 좋아하긴 하지만, 책읽고 글 쓰는 일은 진짜 좋은 것 같다. 하면 할수록, 반복될수록 즐거움이 크다. 오래전에 써둔 글을 읽는 것은 오글거릴 확률이 더 크지만, 그 때의 기억과 느낌을 확 불러내주는데, 그게 또 그렇게나 좋다. 언젠가 한 번은 내가 한 남자 때문에 어떤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아아 어쩌지 사귈까 말까-, 지난 일기를 읽다보니 과거의 어떤 연애를 앞에 두고 내가 똑같은!! 고민을 한 기록이 있더라. 오오. 내가 이랬었구나, 오오 지금이랑 똑같은 갈등을 하고 있네.... 그때는 '한 번 해보자' 를 선택했었고 이번에는 '하지말자'를 선택했다. 뭐가됐든 어떤 선택을 했다면 가지 않은 길에 대한 후회는 남는 법. 

나에게 기록은 의미있다. 이 기록은 시간이 지나면 더 큰 의미로 다가올 터. 열심히 읽고 열심히 쓰자고, 열심히 읽고 쓰면서 또 생각한다. 내가 이것을 좋아한다면, 내가 좋아할만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크다. 그리고 정말 좋다. 읽고 쓰는 게.


책 읽는 게 너무 좋은데, 진짜 너무 좋은데, 정말 너무 좋은데, 그래서 이 기쁨을 다른 사람들도 다 알았으면 좋겠는데, 오만년전에 남자아이들하고 술 마시다가 '책 좀 읽어라' 고 말해서 대판 싸운 적이 있다. 감자탕 집이었지... 하하하하하. 나한테 아무리 좋은 것도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는 순간 강요가 되어버리니 이제는 책 좀 읽어라, 하고 서투르게 말하지 않는다. 어차피 그게 뭐든, 공부든 운동이든 독서든, 다 자기가 깨달아서 시작해야 하는 것이여..



아, 좋은 아침이다. 낭만적인 리뷰도 읽고(이건 어젯밤에 읽었지만), 그 리뷰로 인해 과거에 좀 만났던 남자 생각도 하고(응?), 내가 만들어온 샌드위치도 먹고(계란+살라미+치즈+딸기쨈), 좋구먼...
행복은 이렇듯 멀리 있지 않다. 내가 만든 샌드위치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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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17-08-18 10:0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아침에 뉴스란에 뜬 그분의 리뷰를 읽었어요.읽는 내가 다 설렐정도였는데 역시 다락방님은!!!^^
글이 주는 힘이란,
때론 그날 하루의 기분을 좌우하는걸 보면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다락방 2017-08-18 10:38   좋아요 1 | URL
맞아요, 책나무님, 정말 그래요!
글 너무 좋죠. 글 읽는 거 너무 좋아요. 글로 쓰여진 책이라니, 더 말할 것도 없고요. 제가 읽고 쓰는 사람이라서 너무 좋아요. 헤헷.
우리 앞으로도 열심히 읽고 쓰고 살아요!!

syo 2017-08-18 10: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롤카베츠 고기 와인 맥주 떡(?) 닭볶음탕 소주 동동주 갈비 순대국 노가리 계란말이 보싼 족발 샌드위치 계란 살라미 치즈 딸기잼.

이것이 이 한 편의 페이퍼에 언급된 음식들의 이름입니다.... ˝집밥 다선생˝이세요.

그나저나 저 링크의 글은 참 좋군요. 좋아요를 누르고 싶은데 아무리 눌러도 북플이 안된다고, 너는 그 글에 좋아요를 눌러서는 결코 안된다고 하네요.... 왤까요?ㅋ

다락방 2017-08-18 10:39   좋아요 1 | URL
저 링크의 글에 저는 좋아요를 눌렀습니다만 ㅋ

우리가 음식에 대해 얘기하지 않고 무슨 얘기를 더하겠습니까. 음식만큼 중요한 게 어딨습니까. 연애는 하지 않고 살 수 있지만, 음식은 먹지 않고 살 수가 없지요.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