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진짜 앞일을 모른다고, 어제 나는 우연하게 한 웹툰에 대해 알게 됐는데, 이걸 어떻게 알게 된건지 통 기억은 나지 않고, 으응? 하고 네이버에 검색했다가, 아아, 퇴근길 내내 스맛폰으로 웹툰 보고, 집에 가서 저녁 먹고 씻고 또 잠들기 전까지 눈알 빠지게 웹툰을 본 것이었다. 그것은 이것.
츤데레 남자와 .. 에 또 전생을 오가면서 벌어지는 로맨스인데, 읽다보니 재미있어가지고 아 눈알 빠지는 줄 알았어. 그런데 이게 어제 그렇게 아무것도 안하고 잉여롭게 웹툰웹툰 보다보니까... 보지말자, 하는 생각이 드는 거다. 아직 절반정도 밖에 못본것 같은데, 이걸 보게되니까 그냥 아무것도 안하고 이것만 봐? 책도 안읽고 운동도 안하고 걍 이것만 보는 거다. 흐음. 이건 좋지 않아... 이래선 아니되지... 오늘 아침까지 이걸 본다면 오늘 출근길도 내내 스맛폰에 빠져살겠구나 싶어서 아예 보지 않았다. 그렇다고 딱히 책을 본 건 아니지만. -0-
아무튼 그래서 안보는걸로..
이렇게 뭔가 이것에만 빠져드는 게 나로서는 달갑지 않은일인데, 그래서 가급적 뭐든 확 빠져드는 걸 피하는 편인데, 그러다보니 이 책의 이런 구절이 떠올랐다.
틈만 생기면 몰래 화장실로 도망쳐서 칸막이 안에서 소설을 읽었다. 그러나 돈은 거의 다 루디스에서 벌었다. 루디스는 웨스트 브로드웨이의 허세 충만한 작은 와인바였는데 부티 나는 고객층을 상대로 전통적인 샐러드와 연성 치즈를 팔았다. 하나같이 어여쁜 웨이트리스들이 코카인과 퀘일루드를 비롯해 여타 마약들의 섬세한 차이를 논하며 이거다 저거다 갑론을박하는 걸 보면 청년 철학자들의 열정이 무색했다. 동료 직원들은 이 주제에 대한 나의 침묵을 도덕적 질책으로 읽었지만 사실 나는 늘 마약을 무서워했다. 이런 물질에서 얻을 수 있는 자극과 충격에 마음이 끌리지 않았다. 내 관심은 언제나 균형을 흩트리는 게 아니라 유지하는 쪽에 있었던 것이다. (p.239)
웹툰 얘기하다가 갑자기 마약 인용문 가져오니까 뭔가 읭 스럽고 야 웹툰 이랑 마약이랑 같냐, 막 이렇게 될 것 같지만, 나는 '시리 허스트베트'가 마약을 하지 않는 이유에 너무 공감이 갔다. '내 관심은 언제나 균형을 흩트리는 게 아니라 유지하는 쪽에 있었던 것이다'는 말. 나 역시 마찬가지. 나는 견고한 내 일상이 깨지거나 무너지는 거에 굉장히 스트레스 받는 타입이라서, 갑자기 웹툰을 하나 연달아 보노라니 퇴근길과 잠자기 전이 그전과는 달라져버리는 거다. 그래서 아, 이건 안되겠다, 한 것. 만약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웹툰을 보게 된다면, 아마도 웹툰을 일상에 스며들게 해서 내 견고한 일상 그 일과중의 하나로 만들 수 있겠지만, 나는 지금 다른 걸 받아들여서 일상을 재정비하고 싶지가 않다. 이건 내 성향이고 사고방식이고 행동패턴이고 뭐 그래서, 아마도 그간 연애를 할 때마다 상대를 힘들게 했었던 것 같다. 나는 내 일상을 깨뜨리는 게 싫어서 자주 만나는 걸 싫어했고 통화하는 것도 싫어했지, 지하철 안에서도 통화 하는 거 싫어하고, 친구들 만나서 통화하는 거 싫어하고 이러다보면 통화를 할만한 때가 없고, 아직도 기억나는 게, 투피엠 봐야돼서 전화 못한다고 했더니, 당시에 사귀던 남자친구가 벙쪄서 나한테 이메일을 보냈던 거다. 너 뭐냐고.... 미안합니다. 저는 정말 저를 너무 사랑하는가 봐요.......... 언젠가부터 뚝 끊어서 이젠 어느 가수가 있는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과거 그 시절에는 연말에 가요결산 프로그램 보는 것도 나의 당연한 일정중 하나였고, 그리고 나는 투피엠을 당시에 좀 좋아했었어. 심장 쿵쿵 하는 그 춤 말이야... 그거 보는게 남친보다 좋았어. 이런 나라서 미안해... 다시는 나같은 여자 만나지마.....
음.....
왜 이소라의 난 행복해까지 오게 됐지? 영문을 모르겠네.... 내가 오늘 글쓰기 창을 열었을 때는 웹툰을 봤는데 이제 안보겠다, 를 쓰려고 한건데... 어쨌든.
어제 머리를 자른다고 하고 머리를 잘랐다. 자, 내가 자르려고 했던 머리는 이것!
이 책 표지 보자마자 미장원에 전화해서 일곱시반 컷트 예약했었는데, 그간 자르려고 자꾸 그랬어도 '안자르면 2만원 절약'을 속으로 되새기며 안갔었는데, 어제는 갔어! 2만원을 썼다!
내 머리를 해주신 쌤은 이건 그림이라서 볼륨감 있게 그렸지만, 실제로 내 머리로는 볼륨감이 있을 수 없다 하셨다. 머리가 너무 얇고 힘이 없다고. 힝- 네, 알아요... (시무룩) 그렇지만, 잘랐고, 자르고 빨간 립스틱을 바르고 출근한 오늘은 뭔가 새로운 기분이 든다. 새로운 기분! 다시 태어날 수 있을 것 같아!!
뭔가 좀 다르지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 하트 벗기면 더 다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역시 머리는 얼굴이 완성해주는 것인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무튼. 오늘 아침에 자른 머리로 출근하면서, 흐음, 좋은데? 예뻐, 예쁘군, 새로운 기분이야, 새롭게 태어나야지, 하고 눈누난나 출근을 하다가 텀블러를 가지고 오지 않았다는 걸 알게됐다. 으음. 그럼 커피 패스하고 가자, 라고 생각했다가, 또 너무 일찍 출근을 하게 됐고.... 최근에 계속 일찍 출근하지만..... 오늘 사무실에 일찍 들어가기 싫었고...... 그래서 에라이, 그렇다면 스타벅스에 가서 시나몬롤이나 천천히 먹고가자! 하고는 스타벅스엘 갔다. 그런데 ㅠㅠ 시무룩 ㅠㅠ 시나몬롤이 없어 ㅠㅠ 직원분에게 '시나몬 롤 없나요?' 물으니, 직원은 뭔지 잘 모르는 것 같았어 ㅠㅠ 그리고는 '진열된 거 밖에 없어요' 라고 한다. 시무룩. 시나몬롤 ㅠㅠ 없어 ㅠㅠㅠ
머그컵에 아메리카노 받아서 시나몬롤과 아침 여유를 즐기려던 나는 좀 쓸쓸해졌어. 어쩐지 쓸쓸해짐.... 해서 하는 수없이 그냥 가자, 하고는 종이컵에 아메리카노를 받아 가지고 나왔다.
어쩐지 사진도 쓸쓸해....너무 이른 출근이라 바깥은 어두워... 쓸쓸해......
그렇게 쓸쓸해진 마음으로 사무실에 도착하고 가방을 놓고 일할 준비를 하다가 화장실에 갔는데, 또 화장실 거울에 비친 나를 보니까...예뻐...................좋았어! 괜찮아! 아침부터 텀블러 안가지고 나왔고 시나몬롤 못먹었지만, 괜찮아!!
어제 퇴근길에 미장원에 들렀다가 집에 갔는데 들어오는 나를 보기도 전에 엄마가 '머리 잘 자르고 왔어?' 물으시는 거다. 아니, 어떻게 알았지? 엄마, 나 미장원 다녀온 거 어떻게 알았어, 말도 안했는데? 했더니 엄마는, '타미가 말해줬어' 하시는거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러니까 평소처럼 타미는 제외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었고 타미가 '이모 오늘 미장원 갔다가 집에 간대. 머리 자른대' 했다는 거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놔 ㅋㅋㅋㅋㅋㅋㅋㅋ 내가 여동생하고 톡하면서 나 이렇게 할려고, 하면서 사진 보내주고 예약했다고 했더니, 여동생은 타미에게 말하고 타미는 울엄마한테 말한것. 덕분에 울엄마는 나랑 연락한 것도 아닌데 내 스케쥴을 알게 됐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이놈의 가족 ㅋㅋㅋㅋㅋㅋㅋ 사생활이 없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에겐 샹그릴라 라는 모임이 있다. 만들어진 지는 아주 오래되었는데, 각자 사는 지역이 다르다보니 고작해야 일년에 네다섯번 만나는 게 전부이다. 지난번에는, 12월 초였나, 통영에서 화장실이 두 개인 큰 방을 잡아 밖에 나가지 않고 안에서 계속 먹고 마셨다. 준비한 술도 안주도 많았다. 그렇게 얘기를 하는데, 원래 좋으니까 이 만남이 유지되어왔던 거겠지만, 시간이 갈수록 더 좋아지는 거다. 한 명이 '우리 만약 누군가 빻은 발언을 하면, 우리끼리라도 야 그건 아니다 라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라고 한 말이 오래 남는다. 다른 모임에 갔다가 빻은 발언을 많이 들었는데 자기가 더 심한 말로 받아치지 못한게 계속 후회가 된다면서, 우리끼리라도 말해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거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만큼 알아왔고 또 함께 이야기 나누고 공부도 하고 있어서 오히려 더 조심하는 사람들이라, 아마도 우리 안에서는 그런 일이 거의 없을 것 같고 또 있더라도 서로 기분 나빠하지 않으면서 말해줄 수 있을 것 같다. 그 모임이 있고난 뒤 우리는, 우리가 시간이 갈수록 더 좋아지네, 라는 공통된 얘기를 했는데, 요즘 여기에 대해 곰곰 생각해본다. 오래 보았는데 더 좋아진다는 것에 대해서. 그건 아마도 우리가 서로 다르지만 그런 서로에게 익숙해졌기 때문일 것이고, 각자가 또 각자의 자리에서 성장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뒤늦게 합류한 멤버는 '다정하다는 게 이렇게 좋은건 줄 몰랐다'라는 말도 했다. 다정한 건 이렇게나 좋다. 계속 다정해야지.
아까도 잠깐 얘기했지만, 나는 내 견고한 일상을 무너뜨리는 게 너무 싫고 거기에 무언가 영향을 미친다는 게 너무 싫다. 나는 나의 일상을 유지할것이다. 내가 했던 대로 계속 유지해나가야지. 다시 두 발을 단단하게 하고 설 것이다.
머리도 예쁘게 잘랐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