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부터 삼겹살을 너무 먹고 싶었다. 진짜 미치게 먹고 싶었는데 같이 먹을 사람이 없거나 같이 먹을 시간이 없었다. 그렇게 먹지 못하는 하루 이틀이 쌓여가고 있었고, 아아, 먹고싶다 어떡하지...를 계속 고민하다가, 나는 문제 해결에 뛰어난 사람!! 혼자 먹기로 했다. 아직 삼겹살 집에 혼자 가 고기를 구워먹는 건 어렵고. 시장에 엄마가 잘 가는 정육점이 있다. 나도 몇 번 들러 거기서 고기를 사 본 적이 있었다. 마음이 급했다. 육시 땡! 하자마자 다다다닥 버스 정류장에 갔는데, 버스는 9분후에 온단다. 아아, 나는 마음이 급한데, 이런 식으로 버스 기다리면서 시간을 잡아 먹으면 안되는데... 하면서, 다른 정거장으로 가 버스를 기다릴까를 고민했다. 그러다 거기서도 버스가 안오면 더 낭패다 싶어, 하는 수없이 9분을 서서 버스를 기다렸다. 그래도 걸어가는 것보다는 빠르다... 하고. 그렇게 양재역에 도착해 3호선을 기다리는데, 얼라리여, 이번엔 수서행 열차가 온다. 하필 왜... 나는 마음이 급한데....나는 수서에서 멈추면 안된다. 오금행을 타야 해. 하는 수없이 그 열차를 보내고 다음 열차를 기다린다. 마음이 급한데..너무해 진짜... 왜이러는 거야. 그렇게 오금에 도착해 5호선을 타려는데 이번엔 8분을 기다리란다. 아. 너무하다 진짜. 나 마음이 너무 급해. 그렇게 8분을 기다려서 5호선을 타고 강동역에 내려 이번엔 상일동 행을 타려는데, 씨 ㅠㅠ 막 상일동행 출발. 그 다음 열차는 마천행이고, 나는 또 그걸 보낸 후에 타야해. 아아, 세상은 내가 삼겹살 먹기를 원하지 않는가.... 어쨌든, 먹겠다는 나의 의지가 강했으므로 먹기로 하였으나, 대신 많은 것들을 생략했다. 얼마전에 트위터에서 본 전자렌지용 오믈렛을 만들어 같이 먹고 싶었고, 그러려면 파프리카를 사야했는데, 파프리카 사면서 시간 더 잡아먹겠다 싶어, 안되겠다, 오믈렛 패쓰! 했다. 그리고 길동역에서 내려 다다다닥 정육점으로 가 목살 1만원어치와 삼겹살 1만원어치를 샀다. 파도 좀 썰어주세요, 했더니, 정육점 사장님은 그렇게 해주셨다. 나는 검정 봉다리에 든 고기와 파를 들고 또 다다다닥 집으로 갔다. 고기와 파를 일단 씽크대에 두고 부랴부랴 샤워를 했다. 후다닥. 제대로 구워먹으면 너무 일이 커진다. 나는 프라이팬에 간단히 나 먹을만큼만 굽기로 했다. 그렇게 고기를 구웠고, 자, 이걸 어디다 담아 먹을까, 하다가, 후훗, 알라딘 굿즈로 받은 식판 생각이 똭!! 났다. 그래, 그거야! 아직 굿즈 식판 인증도 못했겠다, 이 기회에 굿즈 식판도 인증하자! 그렇게 와인도 꺼내왔다. 파는 커다란 볼에 넣고 이것저것, 이를테면 고춧가루, 간장, 참기름, 식초를 때려 넣어 슥슥 비볐다. 그리고 이렇게 근사한 한상 차림을 완성!!

아름답지 않습니까...
문제는, 저 그릇이 식판인 게 티가 안난다는 거... 알라딘 굿즈 인증하려고 찍은 건데, 내가 파무침과 고기를 너무 많이 담아가지고 나눠진 칸이... 구분이 안된다...... 헐 ㅋㅋㅋㅋㅋㅋㅋ 그냥 둥그런 접시 같지만, 식판 맞습니다. 한 친구가 이 사진을 보고 식판이란 나의 말에, '칸이 구분되어 있긴 한거지?' 물었다. 되어 있다고, 되어 있어!!!
내가 너무나 기다리던 시간이었다. 흙흙.
구하라 그러면 얻을 것이요, 두드려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
삼겹살을 먹고 싶었고, 당최 언제 어떻게 누구와 먹어야 하느냐...를 해결하지 못하다가, 너무나 간절하게 원하니까 방법이 똭 생각났어. 그렇게 나는 아름다운 상차림으로 혼술을 했다. 후다다닥 파무침 만들었는데 맛있었어. 고기도 맛있고. 좋았다...
식탁에 둔 채 사진을 찍고는 거실로 식판을 가져와 텔레비젼을 켰다. 트윗에서 누군가 백종원이 베트남 먹방했던 프로그램 얘기한 게 생각나 다시보기로 봤다. 하노이에 가서 퍼를 먹고 분짜를 먹고 반미 먹는 게 나왔는데, 내게 낯설지 않은 하노이 거리와 하노이 음식들 보는 게 세상 좋았다. 게다가 백종원 왜 이렇게 잘 먹어? 왜이렇게 맛있게 먹어??? 뭔가 백종원이 돌아다니면서 맛있게 먹고, 그 음식에 대해 설명해주는 게 너무 좋아서, 홀리듯 그 다음 방송도 시청했다. 자카르타편. 여기도 음식이 세상 종류 많네. 거기서 또 먹고 싶은 거 다 먹는 백종원 보면서, 와, 백종원하고 세계 여행 먹방 다니면 너무 좋겠다, 생각했다. 여행 타입이 완전 내 타입이야. 관광 일절 안해. 물론 프로그램 성격상 그 때는 먹방 간거긴 한거지만, 이야, 완전 내 타입이야. 백종원하고 세계를 두루 다니며 먹방하고 싶다... 우와. 멋져.
밤 열 시가 다 된 시간, 여동생이 왔다. 일이 있어 온거였는데, 내가 삼겹살 먹고 있는 걸 보고는 '맛있겠다' 한마디 한다. 평소 식탐이 없는 여동생이라, 당연히 '아니'라고 답할 줄 알고, '좀 구워줄까?' 했더니, '응!!' 이런다. 야.... 진짜야? 물으니 '어!!' 하는 게 아닌가. 나는 밤 열 시에 여동생을 위해 삼겹살을 구워줬다. 파무침은 없는데.... 여동생은 괜찮아, 김치랑 먹으면 돼! 해서, 김치와 삼겹살을 차려주었다. 여동생은 완전 맛있다고, 오랜만에 먹는다면서,
우와, 내가 우리 유공이가 구워주는 삼겹살을 먹네~
이러면서 세상 행복해했다. 나는 이왕 이렇게 된 거, 야, 백종원 베트남 먹방 보여줄게, 하고는 내가 봤던 거 다시보기로 틀어주었다. 세상 행복하지? 후훗. 여동생은 내가 그랬듯이 삼겹살을 먹으면서 베트남 쌀국수 여행에 관한 프로그램을 보았다. 그렇게 여동생이 삼겹살을 다 먹어갈 때쯤, 남동생이 귀가했다. 냄새도 냄새지만, 여동생이 먹고 있는 걸 보더니, 이건 뭐야뭐야 한다. 응, 삼겹살, 너도 구워줄까? 물으니, 자기는 됐단다. 과자랑 맥주 먹겠다며, 그렇게 거실에 어제, 삼남매가 모였다.
삼남매가 모여 이러저러한 얘기를 하다가, 여동생이 그런 얘기를 했다. 자기가 오늘 라디오를 들었는데, 사내 연애를 했다 헤어진 사람이 사연을 보냈더라, 그 여자의 말인즉슨, 사내연애였으므로 어쩔 수 없이 맞닥뜨리게 되고, 가끔은 연락도 하며 지낸다, 최근에 연락할 때 그 남자에게 '나는 너에게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니?' 라 물었더니, '나보다 더 나를 잘 아는 사람' 이라고 했다, 이게 무슨 뜻이냐, 이게 사랑이었단 뜻이냐, 라고 청취자가 사연을 보냈다는 거다. 여동생은 그 방송을 듣고 내 생각이 났다고 했다.
언니에게 물어보고 싶었어. 언니, 나보다 더 나를 잘 안다는 건 무슨 뜻이라고 생각해?
나는,
그건 그냥 말 그대로야. 나보다 더 나를 잘 안다는 거지. 그 뜻 그대로야. 우리는 가끔 나 자신에 대해서도 모르잖아. 뒤늦게 발견하게 되는 것들이 있잖아. 그런데 상대는 나보다 그걸 먼저 더 캐치할 수 있다는 거지.
까지 얘기했는데, 옆에서 남동생이 여동생에게 그랬다.
"누나, 사랑에 실패한 사람한테 뭘 물어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우리 셋 다 빵터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완전 눈물나게 웃었다. 남동생은 "나한테 물어, 내가 다 대답해줄게" 하더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어쨌든 나는 계속 얘기했다.
내 경우엔 칠봉이랑 남동생이 나보다 더 나를 잘 아는 것 같았어, 어느 한 날은 내가 점심에 오뎅탕을 시켰는데, 점심에 뭐 먹었냐고 칠봉이가 묻는 거야, 그래서 나는 오뎅탕이라고 답했지, 그러니까 그가 '떡볶이는 안시켰어?' 묻더라고, 나는 그걸 어떻게 알았냐고 깜짝 놀랐더랬어, 사실 오뎅탕과 공기밥과 떡볶이를 시켜뒀었거든, 그러니 양이 많아 저녁에는 점심에 남긴 떡볶이와 공기밥을 먹었어, 집에 오니 남동생이 저녁은 뭘 먹었냐 묻더라고, 그래서 나는 떡볶이라 답했지, 공기밥 얘기는 부러 하지 않았어, 많이 먹는다고 뭐라 할까봐, 그랬더니 남동생은 '누나가 떡볶이만 먹었을 리 없는데, 또 뭐 먹었어!' 라고 하더라고. 이것봐, 이 둘은 너무 나를 잘알지?
그러자 남동생은 빵터져서, 그게 지금 예라고 든거냐, 이거에 적절하다고 생각하냐 했고,
그러자 여동생은
"언니. 그건 누구나 다 알걸? 언니 많이 먹으니까?"
하는 게 아닌가! 흐음.. 그렇구나...
그렇게 대화하다가 나는 여동생 에게 살며시 기댔는데, 여동생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나를 안아줬다. 아, 너무 좋았어. 포옹 너무 좋은 것... 내가 기대면 안아주고 내가 어딜 쓰다듬어도 그것이 사랑임을 알아주는 사람. 너무 좋았다. 지난 주에는 타미가 나를 오래 안아주었는데. 얘네 모녀는 나를 참 잘 안아줘. 좋아. 삼겹살을 구워줘서 안아준건가. 헤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