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까지 이 책의 <제2편> 까지 읽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나는 토요일 친구들의 만남에 기대를 걸고 있었는데, 그러니까 만남시간 두 시간 전쯤에 나가서 까페에 가 커피 한 잔 과 함께 이 책을 읽는다, 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미래는 예측불허....토요일 오전에 운동을 하고 집에 오니 온 몸이 너무 곳통.... 나는 쓰러져 자버리고야 말았고, 아하하하하, 일어나서 부랴부랴 나가려고 하니 한 30분 정도의 시간을 혼자 있을 수 있겠더라. 그렇지만, 지하철로 이동하는 시간도 있으니, 그래, 읽자! 하고는 책을 챙겨 가지고 나갔다. 그러나, 아, 언제나 그렇듯이, 미련한 생각이었어....


그러니까, 이 책은 무겁다 ㅠㅠ

무거워 ㅠㅠ

무겁다고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진짜 무거워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게다가 내가 요즘 들고 다니는 가방도 무거워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가방 따로 들어도 가볍지 않고 책 따로 들어도 무거운데, 나는 그 가방에 이 책을 넣었다!!!



그래도 다행인 건, 지하철 타자마자 앉을 수 있었다는 것. 만약 서서 한 팔에 가방 껴고 책 펼쳐 읽었으면 팔이 진짜... 후달렸을 거야. 앉을 수 있었던 건 축!복! 


그렇게 읽었는데, 진짜 몇 장 읽지도 않았고, 채워야 할 분량은 아직 많이 남아있는데, 종로3가에 도착했다. 도착해서 어디가서 책 읽을까, 하면서 약속장소까지 걸으면서 두리번 거리는데, 버거킹에서 너겟을 싸게 판다고 해서 잠시 동공지진 일어났다가, 아아, 너겟 먹으면서 책 읽기 거시기하고, 약속이 삼겹살인데 너겟 먹고 친구들 만나는 거 어쩐지 비겁해..하면서는 힘들게 그 앞을 패쓰하고, 그러려고 한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못 지나치는 것처럼, 알라딘 중고서점 나오니까, 나는 끌리듯이 들어갔는데, 으으으응, 어떤 책이 있나, 뭘 살까, 하고 돌아다니다가, 내가 들고 있는 가방이 진짜 핵무거워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야, 구경을 못하겠다, 하고는 서점 안의 계단형 의자에 철푸덕 앉아버렸다. 아아, 그래, 내친 김에 여기서 책을 읽자, 하고는 가져온 제2의 성을 꺼냈는데..아 피곤하다..피곤해....몹시 피곤해......나는 왜 무거운 책을 들고 나왔는가, 몇 장이나 읽는다고..... 이 책을 가져가기로 결정한 몇 시간 전의 나여, 너 미워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나는 정말 몇 장 안읽은 채로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집에 돌아갔는데, 그래도 아직 내게 일요일이 남아 있으니 괜찮다 생각했다. 일요일에 읽으면 돼...괜찮아.... 그렇지만.............일요일엔 요리하느라 고되어서...(응?) 


어쨌든 제2편까지 다 못읽었다는 슬픈 소식...슬픔의 새드니스...




몽테뉴는 여자에게 주어진 독단적이고 부당한 운명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말했다. "여자들이 이 세상에 도입된 규칙을 거부한다고 해도 전혀 잘못이 없다. 그런 규칙은 여자들과 상의하지 않고 남자들이 일방적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마땅히 그들 사이에는 알력과 분쟁이 일어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여자들의 투사 노릇까지 하지는 않았다. (p.26)



버나드 쇼(영국 극작가. 노벨 문학상 수상. 1856~1950)의 경구는 잘 알려저 있다. 그는 말했다. "미국의 백인은 흑인을 구두닦이로 고정시키면서, 흑인은 구두닦이 말고 다른 직업엔 적합하지 못하다고 결론짓는다." 이와 비슷한 상황에서 이런 악순환을 찾아볼 수 있다. 개인이나 집단이 열등한 지위에 고정되어 있을 대 그 개인 또는 집단이 '열등'하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하다'는 마르이 의미를 잘 이해해야 한다. 이 말은 헤겔(독일 철학자. 변증법과 이성주의를 주창했다. 1770~183.1)의 동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하다(etre)'는 말은 '됐다'는 뜻으로, 즉 현재와 같이 만들어졌다는 의미이다. 그렇다. 오늘날 여자들은 대체로 남자보다 열등하다. 여자들은 불리한 상황에 놓여 있다 보니 남성들에 비해 가능성도 충분히 주어지지 않는다. 문제는 이런 사태가 영속적이어야 하는지를 아는 일이다. 

많은 남자들은 이런 사태가 영속적이기를 바라고 있으며, 이를 위한 투쟁을 포기하지 않았다. 보수적인 부르주아 계층은 여전히 여성해방에서 자기의 도덕과 이익을 위협하는 위험을 발견한다. 어떤 남성들은 여성을 경쟁자로서 두려워하고 있다. 전에 한 남학생이 <에브도 라탱>에 이렇게 썼다. '의과나 법과를 지망하는 여학생은 우리의 일자리를 훔치는 것이다.; 그도 이 사회에서 자기가 가지는 특권을 의심하지 않는다. 경제적 이해관곕만이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억압이 억압자에게 보증하는 이익 가운데 하나는 억압자들 중 가장 하찮은 자조차도 우월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미국 남부의 한 '가난한 백인'이 자기는 '더러운 흑인'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위로한다. 그리고 부유한 백인들은 그 자존심을 교묘하게 이용한다. 마찬가지로 가장 평범한 남자들도 여자들 앞에서는 자신을 반신(半神)처럼 생각한다. 몽테를랑의 경우도, 그가 남자들 사이에서 남자로서 자기의 역할을 해야 할 때보다도, 여자(이것도 의도적으로 선택한 여자들이지만)와 마주할 때 자신을 영웅처럼 생각하는 것이 훨씬 더 쉬웠다. (p.27-28)




위의 부분 읽다가 진짜 또 빡쳤던게, 정말 그렇기 때문이다. 한정적인 공간, 한정적인 자리를 줘놓고는 '너네는 그것밖에 안돼' 이딴 개소리들을 하고 있지 않은가. 





페미니스트 친구들을 만나는 일은 즐겁다. 우리는 어떤 것이 쓸모 없는 일인지에 대해 얘기했다. 왜 '진정한'페미니즘 운운하고, 페미니즘이 잘못됐다고 빽빽거리는가, 그 시간에 몰카찍지 말라고, 강간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이 훨씬 더 나은 게 아닌가, 그게 우리가 가야할 길이 아닌가, 라고 우리는 얘기했다. 이상하지 않아? 왜 페미니스트에겐 모든 점에서 다 옳고 잘해야 한다고 하는거야? 우리도 인간인데? 우리는 우리가 믿는 것,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가는건데, 왜 거기에 다른 많은 것들이 나를 흠없는 인간으로 만들어야 해? 한 사람이 어떤 정체성을 가지면, 그것이 종교이든 채식이든 페미니즘이든, 자기가 옳다는 방향을 향해, 신념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고, 그 과정에서 숱한 오류와 잘못에 부딪히기도 하는 거잖아? 그런데 왜 자기들은 '몰카 안된다', '여자를 죽이지 말라'고, '데이트 폭력 하면 안된다'고 하는 일엔 입을 다물고 페미니즘이 그러면 안된다, 이러면 안된다, 저려면 안된다고 하는거야? 너무 쓸데없지 않아?



그리고 우리는 술잔을 기울이며 계속 얘기했다. 사실 우리는 이만큼 살아왔고, 세상이 더이상 바뀌지 않아도 크게 어려움을 겪지 않는 지점에 와있다고. 이미 우리는 나이를 먹을만큼 먹었고, 어려운 지점을 다 견뎌왔고, 남자 따위한테 지지도 않고 속박 당하지도 않을 위치에 있고, 맞서 싸울 수 있고, 같이 지랄해줄 수 있고, 그래서 지금 당장 세상이 안바뀌어도 굳세게 또 즐겁게 살아갈 수 있다고. 그렇지만 지금 더 젊고 어린 여자들이 살아갈 세상을 바꿔야 되기 때문에 페미니즘 계속 공부하고 페미니스트로 살아야 한다고, 헬페미로 살아야 한다고. 초등학생들 사이에 여성혐오 컨텐츠가 많이 소비된다는데, 우리 아이들 어떡하냐고, 세상 진짜 바꿔야 된다고, 거칠게 얘기했다. 그리고 내 친구들, 비혼이며 앞으로 출산과 육아랑 크게 상관없을 것 같은 친구들이 술잔을 높이 들며, '우리에게 아이가 조카가 없고 또 아마 앞으로도 있지 않겠지만, 다락방의 조카가 살아갈 세상을 위해서 계속하자'고 얘기했다. 나 역시 내 조카를 생각하고 있었던 바, 친구들의 그 말에 갑자기 울컥, 가슴이 먹먹해지며 눈물이 차올랐다. 2차로 자리를 옮겨, 나는 친구들에게 '아까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 정말 고마웠어' 라고 말했고, 친구들은 다시 한번 '다락방의 조카를 위한 세상을 만들자'고 해줬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헬페미 만세 ㅠㅠ 고마워 페미친구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아 또 쓰다가 눈물이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좋은 시간이었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페미 만세!!




버릴 건 버리고가자고 많이 얘기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고 싶다. 물욕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사람을 의미한다. 나는 함께 살아갈 세상, 더불어 좋은 세상을 만들자고 생각했지만, 굳이 끌고 가는 일이 무슨 소용있을까 싶다. 버릴 건 버리고, 취할 건 취하면서 앞으로 나아가야지 안그러면 지친다. 숱한 여성혐오 컨텐츠에 둘러 쌓여있는 어린 조카 얘기를 하며, 개콘이나 드라마를 봐도 그냥 여성 비하, 여성 혐오가 우수수 쏟아지는데, 일주일이나 이주일에 한 번 만나서 '조카야, 그건 잘못된거야' 라고 내가 말하는 것이 무슨 소용있을까, 그렇다고 아이가 달라질까, 나 역시도 차별발언과 비하발언을 했다가 뒤늦게 뉘우쳤듯이, 아이도 저절로 뉘우치게 되진 않을까, 고민하는 내게, 친구들은 '그 말을 중간중간 들어왔던 아이는 듣지 않았던 아이보다 확실히 더 나을거다' 라고 해줬다. '네가 아이를 완전히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고 과속방지턱의 역할을 해준다고 생각해라'고 해서, 또 그 말들에 감사한 시간이었다. 무엇보다, 삼겹살이 진짜 맛있어서... 계속 생각나....명이나물도 리필해주는 좋은 고깃집 ♡ 삼겹살 오랜만에 먹었는데 넘나 맛있고, 나는 삼겹살 진짜 너무 좋아하고, 삼겹살 또 먹고 싶은데, 다가오는 토요일에 친구랑 약속 잡고 있는데, 홍대에서 영화보자고 했었는데, 아앙, 삼겹살도 먹을까...... 삼겹살....... 삼겹살 진짜 너무 맛있어. 고기 만세야. 내일은 또 다른 친구 만나서 더덕구이 먹을거야 ♡ 칠봉아 더덕구이 먹고싶지? 누나가 대신 먹어줄게. 꼭꼭 씹어 먹어줄게 ♡ 더덕구이 시키면 불고기도 나왔었던 것 같은데...헤죽헤죽..... ^____________^




그나저나 스티븐 킹의 《it》 3권의 내용을 들어버렸는데 개충격이고....킹 아저씨 왜그랬을까 지금 너무 어처구니 없고....... 계속 읽어보도록 하겠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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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17-10-30 1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스티븐 킹의 <it>... 락방님 읽고난 감상 보고 사던가 해야겠어요. 왠지 망설여지네요...ㅜ

다락방 2017-10-30 10:47   좋아요 0 | URL
분노의 포도보다 더 충격적 장면이 나오는 것 같아요. 아.... 제가 읽어보고 얘기하겠습니다. 좀 오래 걸리겠지만요... Orz

잠자냥 2017-10-30 1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it> 3권의 내용을 스포일 당하셨습니까?????!!! 개충격 느끼신 그 부분이 제가 말한 그 부분 같은데.. 음암엄.... (그 개충격 당하신 부분이 앞으로 만들어질 영화에서도 그려질지.... 음.. 궁금하긴 합니다... 영화는 영리하게 뺄 건 빼고 그랬던데... 음...)

다락방 2017-10-30 11:19   좋아요 0 | URL
네, 아마도 말씀하신 부분이 그 부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저 너무 충격이라 ㅠㅠㅠ 아직 제가 읽은 건 아니니까, 제가 읽어볼게요. 끝까지.... ㅠㅠ 킹아쩌시가 왜 도대체 어째서 ㅠㅠㅠ

clavis 2017-10-30 17: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세!아멘!ㄲ ㅑ악..입니다 이렇게 락방님은 오늘도 열정을 다하셨군요♡♡♡저도 제 조카를 위한 오늘을 힘껏 살고 있어요!

다락방 2017-10-31 10:40   좋아요 1 | URL
우리 힘껏 살면서 앞으로 나아갑시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야 제 조카도 또 클래비스님 조카도 더 나은 세상에서 살게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전 제 조카 진짜 너무 사랑하고, 이런 세상에서 아이들 살아갈 생각하면 너무 한숨나요. 클래비스님, 우리 용기있게 전진합시다!

아무개 2017-10-30 2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타미야 이모야들이 있다. 열심히 공부하고 살께.
너의 과속방지턱이 되어줄께!

다락방 2017-10-31 10:40   좋아요 0 | URL
고마워요, 아무개 이모님. 우리 모든 이모들이 다같이 열심히 공부하며 산다면, 조금 더 나아질 수 있는거겠죠? 희망을 갖고 걸어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