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전에 그런 페이퍼를 쓴 적이 있다. 어떤 책을 읽으려고 했는데 몇 장 읽다가 도저히 못읽겠어서 덮었다고. 물론 그런 책이 한 두권은 아니지만, 그 책을 덮은 이유가 요즘에 와서 또렷이 다시 생각난다. 그 작가의 전작을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있어 고른 거였는데, 그 다음 작품은 읽어내기가 정말 힘들더라. 형사시리즈였고 아동성범죄에 대해 다룬 거였는데, 초반에 범인이 희생자를 선택하고 탐색하는 과정이 나오는 거다. 성범죄를 저지를 대상을 찾는 그 범인의 심리가 진짜 너무 끔찍한거다. 힘들어서 더 넘기지를 못하겠어서 덮어버리고 팔아버렸는데, 요즘에야 그것이 '가해자의 시선' 때문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해자의 입장에서 글을 써버리는데 내가 도무지 그걸 따라갈 수가 없었던 것. 아직도 그 책을 몇 장 넘기면서 토할것처럼 역겹고 무서웠던 기억이 생생하다. 끝까지 읽으면 내가 어떤 느낌을 추가로 받을 수 있었을지 알 수 없지만, 그 당시엔 너무 힘들었고, 지금 생각해도 힘드니, 그 책은 읽지 않는 게 맞는 것 같다.
요즘 신문에서 가해자의 입장을 대변해주는 기사 타이틀을 볼 때마다 나는 그 책이 생각나고, 여자 입장 잘 모르겠다는 한 영화감독의 강간씬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때도 그 책 생각이 났다. 누군가는 도저히 보아넘길 수 없는 것들을 잘도 쓰고 만드는구나 싶었달까.
이건 이것대로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불쾌한 경험인데, 이와는 아주 별개로 내 안에 도덕이, 선이 뭉개지는 걸 느끼게 될 때가 있다. 사형제를 반대하면서 성범죄자가 죽어버리길 바라는 것 같은 마음, 이럴 때는 절대 선은 무엇인가, 내 안에 도덕은 무엇인가, 내 안의 가치가 서로 충돌하는 게 아닌가 싶어지는 거다. 이것은 나의 내면의 상처 때문인가, 아니면 내가 생각하는 선의 기준 때문인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그런 경험을 나는 어제부터 읽기 시작한 책에서 또 해버리고 말았다.
아직 이 책의 초반을 읽고 있고, 그래서 여러 사람들의 살아온 배경이라든가 '그것'에 의해 사고를 당하기 전의 일상 같은 것들이 보여지고 있다. 그중에 한 동성애 커플이 나오는데, 이 동성애 커플을 단지 동성애를 한다는 이유로, 동성애를 혐오하는 가해자가 마구 폭행하는 장면이 있는 거다. 그는 게임에서 받을 수 있는 모자를 자기는 받지 못했는데 이 커플 중에 한 명은 당당하게 쓰고 있다는 것에 심하게 열등감을 느끼다가 결국 그들을 지나는 길에 발견하고서는 모자를 빼앗아 짓이긴 후, 피해자를 칼로 찌르고 마구 폭행을 한다. 진짜 심하게 폭행을 하는데, 그 동성애 커플들은 가해자에게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들의 사랑을 한 게 전부였다. 눈 앞에 영상으로 폭력의 장면이 그려진 게 아닌데도 나는 제발 그만 때리라고 말하고 있었고, 누구든 나타나 저 사람들을 좀 말리라고 바라고 있었다. 그렇게 폭력을 행하던 가해자들은 결국 물 속으로 피해자를 던져버리고 마는데, 피해자는 이에 사망하고 만다.
책에서는 여기에 결정적 사망 원인이 그들은 아니라는 걸 암시하고 있다. 그러니까 그 때 거기에 '그것'이 있었던 것. 그것이 나타나서 피해자를 잡고 물어뜯고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것인데, 그 목격장면은 하도 괴상해서 경찰들은 믿어주지 않는다. 그러나 함께 있던 피해자와 가해자가 서로 다른 공간에서도 똑같은 증언을 하는 바람에 경찰중 한 명은 '어쩌면 그들이 본 게 사실은 아닐까' 하고 이상하게 생각하고 그것을 추적해야 하지 않나, 하는 거다. 이에 다른 경찰은 말한다. 그러지 말라고, 그들은 잘못 본 거라고. 그러나 이렇게 말하는 그 경찰의 더 깊은 속내, 결국 드러내고야 마는 속내에는, '아무런 잘못도 저지르지 않은 그저 동성애를 한다는 이유로 누군가를 무지막지하게 때린 가해자들에게 벌을 내려야 하는 거 아니냐'는 거였다.
"자네 이 재판에서 지고 싶나, 헤럴드?"
"아닙니다. 물론 이기고……."
"그 양아치들이 다시 거리를 활보했으면 좋겠나?"
"아닙니다!"
"그럼 됐어. 기본적인 원칙엔 서로 동의한 셈이니, 내 생각을 정확히 알려 주지. 그날 밤 다리 밑에 남자가 있었을 수도 있어. 아마 광대 옷을 입었을지 모르지만 내가 목격자들을 상대해 온 경험으로 볼 때, 어디서 광대 옷을 주워 입은 부랑아나 노숙자일 확률이 커. 그가 누구든 떨어진 동전이나 햄버거 부스러기 같은 음식 찌꺼기를 찾고 있었을 걸세. 그 나머지는 목격자들도 자신의 눈에 속은 거야, 헤럴드. 그럴 가능성이 충분하지 않을까?"
"모르겠습니다." 헤럴드는 그렇게 확신하고 싶었지만 두 사람의 진술이 정확히 일치한다는 사실을 놓고 보면……, 그럴 가능성은 없었다.
"지금부터 결론을 말하지. 난 그게 곱슬머리든 광대든, 엉클 샘 옷을 입고 죽마를 탄 놈이든 행복한 호모 허버트든 상관없어. 만약 그 친구가 이 사건에 등장한다면 말이야, 자네가 '아무개'라고 말하기도 전에 이미 양차치들 변호사가 작업에 들어갈 걸세. 변호사는 머리도 단정하고 옷도 깨끗하게 차려입은 그 두 마리 어린양들이 멜론이라는 호모를 장난삼아 다리 옆쪽으로 밀었을 뿐이라고 말하겠지. 멜론이 다리 밑으로 떨어진 후에도 살아 있었다는 점을 강조할 거란 말이야. 언윈뿐 아니라 죽은 호모의 애인인 해거티까지 그렇게 증언할 테니까. '제 의뢰인들은 살인을 저지르지 않았습니다, 천부당만부당한 소리입니다! 광대 복장을 한 정신병자의 짓입니다.' 우리가 그 말을 끄집어냈다가는 일이 완전히 꼬이고 말아, 자네도 그 정도는 알고 있잖아.' (p.66-67)
"그 사내는 호모지만 누구한테 피해를 주진 않았어. 그런데도 정비화를 신고 다니는 세 양아치를 만나 목숨을 잃은 걸세. 난 그놈들을 집어넣어야겠네, 친구. 그리고 놈들이 토머스턴 교도소에서 항문이 찢기는 꼴을 당했다는 소식이라도 들려오면 누구든 에이즈에 걸리기 바란다는 카드를 보내 줄 걸세." (p.68)
피해자와 가해자가 모두 목격한 그 광대인지 무엇인지 모를 그것을 지금 정체를 밝혀내지 않으면 앞으로 더 많은 희생자가 생길 거라는 것을, 나는 안다. 위에 '헤럴드'도 이걸 그냥 넘겨서는 안되는 게 아닐까, 라고 의심을 한다. 이것은 옳은, 정당한, 도덕을 따르는 의심일 것이다. 그러나 심정적으로는 '그놈들을 집어넣어야겠네' 라고 말하는 부틸리어에게 동의하게 되는 것이다. 응, 나도 그들을 집어 넣고 싶어. 단지 누군가의 존재 이유로, 그렇게 존재한다는 이유로 혐오의 대상이 되는 것이 끔찍하고, 그 혐오를 폭력으로 행사하는 것도 너무 끔찍해서, 그것이 잘못이라는 걸 알리기 위해서라도 그들을 감옥에 집어넣고 벌을 받게 하고 싶다. 설사 '살인'까지 이르게 한 게 그들이 '아닐지라도', 그들이 죽을만큼 피해자를 때려서 물에 던진 건 사실이니까. 여기에 대해서는 어떻게든 벌을 받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만약 그 '광대'를 인정하지 않으면, 피해자들이 어쩌면 저지른 잘못보다 더 큰 벌을 받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게 과연 더 큰 벌일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이론상이라면, 그리고 절대 선, 도덕적 기준이라는 게 있다면, 피해자와 가해자가 모두 봤다고 증언하는 그 존재에 대해 조사를 해야할 것이고, 결국 '죽음'에 이르게 한 게 누구인지 따져서, 저지른 잘못에 대해서만 벌을 주는 게 맞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그놈들을 집어넣어야겠네' 라고 말하는 부틸리어가 자꾸만 되는 것이다. 아, 도덕이란 무엇인가. 내 안의 윤리란 무엇인가. 나는 누구인가,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가.......
또, 세 양아치는 도대체 어째서 자신안의 열등감을 그런 식으로 풀어내는가.
스티븐 킹의 《그것》을 읽고싶다고 남동생이 말해서 샀고, 그래서 남동생이 먼저 읽어본다고 가져갔는데, 1권 읽기를 시도하다 포기했다. 재미없다는 게 이유였다. 그래서 결국 다른 책을 읽겠다고 했는데, '어이쿠 이런. 세 권이나 되는 걸 다 사놨는데 재미없으면 어쩐담' 하고 내가 읽기 시작하자, 어라? 난 재미있는 거다. 공포가 내가 생각하는 그 공포랑 조금 다른것 같아서 그런 공포쪽으로 막 뭐가 아직까진 무섭고 그렇진 않은데, 그 공포속에 희생된 사람들과 주변인들의 일상, 삶, 성장 과정 같은 것들을 실감나게 풀어내서 나는 그걸 읽는 게 너무 좋다. 한 사람 한 사람 개인의 이야기를 이렇듯 다양하게 풀어낼 수 있다니, 스티븐 킹은 진짜 이야기꾼이다, 사람에게 관심이 많다, 라는 생각이 든다. 결국 소설이란 사람 이야기이고, 그렇기 때문에 재미있는 소설을 쓰기 위해서라면 사람에 대해 관심과 애정이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
아직 1권의 100쪽 가량밖에 못읽었지만, 나는 스티븐 킹이 들려주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는 게 무척 흥미롭다. 사람 이야기이다 보니, 내가 꼴도 보기 싫어하는, 저렇게 약자를 혐오하는 이야기들이 나오기도 한다. 현실에서도 그러니까.
그런데 소설, 진짜 좋은 것 같다. 100쪽까지밖에 안읽었는데도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각이 들고, 자꾸 자신에게 질문하게 되고, 삶이란 무엇인가 생각하게 되고, 가치란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소설 진짜 너무 좋은 것 같아. 소설 만세다!
라고 쓰는 이유는, 내가 어제 지른 책에 대해 변명하고 싶기 때문이랄까.... 올해 말까지는 이제 책을 안사기로 결심한 다음에, 사흘도 안돼 무너진 것을 변명하기 위한 것...........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오늘 책 한 박스가 내게로 올 것이야. 여러권 넣고 아아, 금액 너무 커서 안돼..하고 빼느라, 결국 《내 이름은 루시 바턴》도 못샀고 ㅠㅠ 《스탠 바이 미》도 못샀지만.... 괜찮아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다음에 사면 되지 뭐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아 그런데 삼겹살 너무 먹고싶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