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내내 기분이 너무 안좋았다. 별로 서운해하지 않아도 될 일이었을텐데 크게 서운했고 별로 화나지 않아도 됐을 일인데 크게 화가 났다. 여러가지로 기분이 너무너무 안좋았다. 술도 잘 먹히지 않을만큼. 일요일 점심 무렵 혼자 일자산에 갔다 내려오면서, 아, 컨디션 너무 개판이야, 이걸 어떻게 좋게 만들지 내내 생각했다. 자, 내 기분을 좋게 만들기 위해서 내가 나한테 무얼 할 수 있지? 를 생각했다. 그러다 퍼뜩, 잭 리처 생각이 났다. 그래, 잭 리처! 잭 리처를 읽자! 나는 언제나 잭 리처를 읽으면 잭 리처한테 쑝 가가지고 기분이 좋아졌더랬어! 그래서 나는 잭 리처를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러다 며칠전 텔레비전에서 우연히 잭 리처 영화 예고편을 본 기억이 났다. 『네버 고 백』이 영화화 됐던데, 내게 잭 리처가 많았지만 이 편은 없었다. 그래, 시간도 아직 괜찮고 날도 춥지 않으니, 서점에 가자. 오랜만에 서점에 가서 책도 구경하고, 지금 당장 읽을 잭 리처도 사자! 다른 잭 리처가 책장에 많지만, 나는 지금 당장, 네버 고 백이어야 해!! 꺄울 >.<


서점에 가기로 결정하고나서 친구에게 문자메세지를 보냈다. 나 서점 갈건데, 같이 갈래? 집에서 쉬고 있던 친구는 응 그럴게, 라고 했다. 나는 집에 가서 씻고 옷을 입고, 그리고 서점으로 향했다. 일단 친구에게 선물할 책과 내가 갖고 싶은 책을 사기 위해서, 그리고 네버 고 백도 사기 위해서 잠실에 있는 알라딘 중고서점에 먼저 들렀다. 친구는 나보다 좀 늦게 도착할 터였다. 네버 고 백은 중고샵에 없었다...흐음. 그럼 이건 패쓰. 교보가서 새 책으로 사야지. 친구에게 줄 책은 있어서 사고, 내가 갖고 싶은 다른 책들은 다 검색결과가 없다고 해서 시무룩했는데, 어어, 저 책도 내가 읽고 싶었던 책이다, 하고는 책장 사이를 둘러보다 한 권을 꺼내들었다.

















헤헷. 좋구먼, 나는 이 책을 사들고 교보로 향했다. 교보에 도착해있던 친구와 인사를 하고는 네버 고 백을 검색했다. 있었다. 아우 신나! 그렇게 샀다. 나는 이걸 오늘 당장 읽고 싶어서, 집에 안 읽은 책이 백 권 넘게 있지만, 굳이 서점엘 왔다!!! 그렇게 네버 고 백을 집어들고는, 서점을 좀 돌아다녔다. 친구가 읽고 싶다고 했던 책을 찾아서는 잠깐 훑어보고, 그 옆에 있던 페미니즘 도서들도 훑어보았다. 몇 권의 책은 북플에 접속해서 '읽고싶어요'에 체크해두었다. 까먹지 않으려고. 이건 남동생에게 읽히고 싶다, 이런 이야기들을 했고, 이 부분 좋으네, 라고 친구가 권해주는 부분을 나란히 서서 읽기도 했다.



그리고 내가 고른 책을 계산하면서, 문구 코너로 가 다이어리를 구경했다. 2017년 다이어리를 사야했다. 이것 저것 들춰보았지만 백프로 마음에 드는 게 없어서, 그나마 괜찮은 것들 두 개쯤, 아니 세 개쯤 사진을 찍어두고는, 친구에게 밥을 먹으러 가자고 했다. 다섯시를 조금 넘긴 시간이었고, 일요일에 나도 그렇고 친구도 그렇고 술을 마시지 않으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니, 그냥 밥 먹으면서 간단하게 술을 곁들이자고 했다. 그렇게 걷다가 음식점에 들어가 돼지국밥에 보쌈을 시켜두고 소주 한 병을 시켜서 천천히 먹는데, 안주도 좀 남았고..... 그래서 한 병을 더 시켰고, 그렇게 소주 두 병을 다 마신 후에, 우리는 올림픽공원을 걷기로 했다. 그새 날이 추워져 있었다. 내가 집에서 나올 때만해도 날이 따뜻했는데, 그래서 옷도 얇게 입고 왔는데.... 싫어라 ㅠㅠ




그렇게 걷다가, 내가 그러면 안되는거였는데, 우리 벤치에 앉아서 캔맥주 하나씩만 더하고 갈까, 라고 말했고... 친구는, 아아, 그러면 안되는거였는데, 거절하지 않았어... 그래서 우리는 편의점에 들어가 맥주를 하나씩 사들고 나와 마시기 시작했다. 아, 그런데 맥주는 차지, 바람은 불지, 아, 넘나 추운 것.... 친구는 계속 내게 자켓 벗어줄까? 물었고, 나는 아니야, 그러면 너도 춥잖아, 이러면서 거절하다가, 아아 이러다가 얼어죽겠다 싶어서 응 줘, 라고 말했다. 친구는 내게 자신의 자켓을 둘러주었고, 머리통이 너무 시려웠던 나는 친구의 자켓에 있는 모자를 푹 눌러쓰고 자켓을 둘렀는데, 아 너무 따뜻한 것...친구는 떨었지만... -0-


그렇게 500미리 캔맥주를 하나씩 다 마시고나니, 아아, 넘나 취하는 것..... 친구랑 신나게 수다를 떨다가 헤어져 집에 갔는데, 아아, 나는 취해서....책을 읽을 수가 없었어......이게 지금 무슨 상황이야...... 


그러니까, 네버 고 백을 당장 읽고 싶어서 서점에 갔다, 서점에 가서 그 책을 사고는 잠깐 술을 마신다는 게 취하도록 마셨고, 결국 네버 고 백은 사놓고 읽지 못한 채로 일요일 밤을 보냈다......가 된 것이다. 얼라리여~ 인생은 무엇입니까. 나는 왜 굳이, 부러, 서점에 가서 그 책을 산건가.... 왜때문에...... 너무 읽고 싶은 충동을 스스로 제어하지 못해, 일요일 외출은 삼간다는 스스로의 철칙을 어기고 달려나가 서점에 간것인데, 그렇게 산 책을 왜 읽지 못하는 상황을 스스로 만드는가..... 그래서 나는 그렇게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자신에게 벌을 내리기로 했다.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나흘간, 그 중에 사흘은 금주하는 걸로. 벌을 내리겠어...벌받아 마땅해!

그래도 그런 일요일이 지난 일주일 중에 가장 즐거운 날이었다.




오늘 아침 출근길, 드디어 어제 요란하게 나가 사가지고 왔던 네버 고 백을 펼쳤다. 작가소개를 읽는데, 오, 이런 부분이 눈에 띈다.



여가 시간에는 독서, 음악 감상, 스포츠 경기 관람 등을 즐긴다는 리 차일드는 뉴욕 맨해튼의 아파트와 프랑스 남부의 시골 저택, 그리고 이 두 곳을 오가는 항공기 좌석을 집으로 여기며 활발히 집필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책날개 작가소개中)


















아니, 이것은 내가 꿈꾸는 바로 그런 삶이 아닌가!' 뉴욕 맨해튼의 아파트와 프랑스 남부의 시골 저택, 그리고 이 두 곳을 오가는 항공기 좌석을 집으로 여기며'.... 라니.

나도 꼭 저렇게 살고 싶은데... 나 역시 내 집을 다른 나라에 하나 더 갖고 싶은 거다. 내가 한국에 사는 삶을 아예 버릴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한국어를 사용하고 한국어로 된 책을 읽고 또 나의 사랑하는 가족들이 여기 있으니까. 나는 여기를 아예 등질 수는 없다. 그래서 여기에도 나를 소속시켜둔 채, 다른 나라에도 또 내 집을 갖고 싶은 거다. 식구들을 사랑하지만 매일 보진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니, 어느 기간만큼은 외국의 집에서 지내다가 또 어느 기간 만큼은 한국에 와서 지내고, 그러고 싶은 거다. 그렇게 왔다리갔다리 하는 과정에서 비행기 역시 내 집처럼 느껴지지 않을까.... 아, 넘나 내가 꿈꾸는 삶.... 그렇게 살고 싶다........



그렇게 살도록 해야겠다. 

그렇다면, 흐음, 뉴욕 맨해튼에 아파트 한 채 마련해두어야 겠지......... 미국과 한국을 오가는 삶, 비행기 역시 나의 집.... 크- 좋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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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16-11-07 1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겨울저녁 공원벤치에 앉아서 맥주 마시는 거 참 좋아했었는데 감기 된통 걸려서 고생한 후로는 자제하고 있어요ㅠㅠ; 그야말로 베스트셀러 작가는 되어야 누릴 수 있는 삶이네요. 부럽당. 다락방님은 조만간 가능할지도^^

다락방 2016-11-07 10:48   좋아요 0 | URL
어휴, 좋긴 했는데 너무 추워서요, 문나잇님. 저도 겨울엔 좀 자제해야겠어요. 맥주가 차가운데 추운 날씨에 차가운 맥주까지 마시니까 정말 너무 춥더라고요. 덜덜덜 떨었네요 ㅠㅠ 공원벤치 맥주는 이제 여름에만 해야겠어요. 우앙 ㅠㅠ

아, 열심히 돈벌어서(그래봤자 한계가 있지만 ㅠㅠ 정해진 월급 ㅠㅠ) 정말이지 외국과 한국을 오가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ㅠㅠ

매너나린 2016-11-07 15: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꿈이 꼭 이루어 지시길 소망합니다^^
홧팅요!추운 날씨에 맥주~~캬! 그러다 감기 걸립니당.조심하세요ㅋ

다락방 2016-11-07 15:17   좋아요 1 | URL
네, 그 꿈이 꼭 이루어졌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이루어질 것 같아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 날씨에 역시 맥주는 안되겠어요. 소주랑 와인만 마시며 살아야겠습니다. 으흐흐흐흐.

hellas 2016-11-08 0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뭔가를 결심하고 샛길로 새는 매력있으심 ㅎㅎㅎㄹㅎ

다락방 2016-11-08 08:20   좋아요 0 | URL
샛길은 저의 장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mira 2016-11-08 0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두개의 잡 두개의나라에 응원해요 저도 뉴욕에 좀 불러주세요 ㅎㅎ

다락방 2016-11-08 09:24   좋아요 0 | URL
응원의 힘을 받아서 제가 반드시 두 개의 잡, 두 개의 나라를 이루도록 하겠습니다!! 화이팅!!

clavis 2016-11-09 0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락방님이 없으면 이 힘든 시간을 어케 견뎠을지ㅠ짱짱 고마운 다락방님~^^♥♥♥

다락방 2016-11-11 08:58   좋아요 1 | URL
별말씀을요!!!
제 존재가 기쁨이 된다니, 제가 더 다행하다 여겨집니다. 훗.
:)

감은빛 2016-11-11 0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에 녹색당 남성 공동운영위원장으로 당선된 분은
보성으로 귀농해 유기농 농사를 짓는 농민이예요.
이 분이 당선되어 일을 시작해야 할 시점이
한창 농사일로 바쁜 시기였어요.
주중엔 서울에서 녹색당 일을 하고,
주말엔 보성으로 내려가 가족을 만나고, 농사 일을 하고.
어휴! 저는 그렇게 못 살것 같아요.

전 공동운영위원장이었던 하승수 선배도 홍성에 집을 두고,
서울과 홍성을 오가더니.

미국과 한국을 오가신다니 그게 얼마나 피곤한 일일까 생각이 들었어요.
시차 적응도 해야 하잖아요.

다락방 2016-11-14 08:31   좋아요 0 | URL
저는 기차나 비행기를 타는 것, 어딘가를 가기 전에 설레이는 것, 이 모두가 좋아요. 또 어딘가에 갔다가 시간을 보내고 다시 편안한 집으로 돌아오는 것도 너무 좋고요. 집으로 돌아와 피곤한 몸을 침대 위에 내던진 뒤에 자는 건 또 꿀맛이잖아요. 미국과 한국을 오가는 것이 일주일에 한 번 한 달에 한 번 이라면 피곤하겠지만, 일년에 한 두 번 오고가는 거라면, 전 충분히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아주 기쁘게 할 수 있을 것 같고, 미국에 도착하면 뭐 해야지, 한국에 도착하면 뭐 해야지 생각하는 것도 너무 좋고요. 머릿속에 계획이 좌르륵 펼쳐질 테니까요.

그나저나 요즘엔 미국대신 캐나다를 선택할까... 싶어요. 캐나다 총리 너무 멋지잖아요... 캐나다 간다고 캐나다 총리 볼 수 있는 건 아니지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