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에 깨지 않고 자는 날이 거의 없는 편인데, 어젯밤엔 깨지 않고 잤던 것 같다. 분명 새벽이겠거니, 하고 눈을 떴더니 05:23 이더라. 아아, 그냥 깨지말지. 나는 매일 05:30에 일어나는데, 칠분, 이거 어쩌라고...ㅠㅠ 하는 마음이 되어서 눈을 감았다가, 알람이 울려 끄면서 시간을 봤더니 05:48 ...
아아, 침대에서 딩굴할 시간이 없어, 일어나야해, 하고는 베개에 머리를 푹- 파묻고,
회사, 그만둘까...
생각했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이 짓, 이제 그만하고 싶어 ㅠㅠ 이럴때마다, 너 하나 먹여살리는 거 못하겠냐, 라던 엄마의 말이 자꾸 생각나고 거기에 기대고 싶어진다. 엄마, 나 좀 먹여살려 줘... 진짜 영혼을 팔고 싶다. '널 먹여살릴게' 라고 하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시집가버리겠다....하는 심정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하아- 그렇지만, 내가 원하는대로 잘 먹고 살려면, 내가 돈을 버는 수밖에 없지. 그래야 먹고 싶은대로 다 먹지. 다른 사람 돈으로 먹으려면 눈치 봐야 하잖아. 그리고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도 먹이고 싶은데. 우리 둘째 조카, 짜장면 사줘야지. 첫째 조카는 까르보나라를 좋아해. 아아, 일어나서 돈을 벌어라, 나가라! ㅠㅠ
아니, 애들 아빠,엄마가 알아서 잘 먹이겠지. 굳이 나까지 뭐..... 드러누워라.....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평소보다 늦게 일어났으므로 나는 아침밥을 먹을 시간이 없지만, 아아, 이대로 출근하면 나는 얼마나 배가 고플까, 그래서 그냥 밥을 먹었다. 열무김치와 고추장, 참기름을 넣고 슥슥 비벼 먹었는데, 아아, 쓰면서도 또 침나와. 어제 아침에도 이렇게 먹었는데 너무 맛있어서 회사에 출근하자마자 '얼른 집에 가서 열무김치에 밥 비벼먹고 싶다'는 생각만 하루종일 한거다. 그래서 집에 가서 어제 저녁에도 씻지도 않고 또 그렇게 비벼 먹고 오늘 아침에도 또 비벼먹고.
그러니까 어제는, 빨래를 두 번 돌리고, 재활용 분리수거를 하고, 음식 쓰레기를 버리고... 바쁜 와중에 뉴스룸 챙겨보다가, 아아, 끝났구나, 하고는 채널을 돌리는데, 홈쇼핑에서 립스틱 셋트를 판다. 안그래도 빨간 립스틱 하나 더 사고 싶다고 생각하던 참인데, 빨간 립스틱이 다른 버전으로 두 개나 있네, 저 셋트 좋구먼, 나는 거침없이 전화를 걸어 자동주문을 한다.
예전에 홈쇼핑에 빠져서 쇼핑한다는 사람들 얘기를 들으면, 참, 그런 것에 혹해서 물건을 주문하다니, 인간들은 왜이리 어리석단 말인가.... 생각했는데, 내가 그러고 있었다. 안봤으면 안샀을 것을, 보고 사버렸어..... 아아, 역시 회사를 다녀야 해.... 먹는 것만의 문제가 아니야. 빨간 입술을 갖고 싶다면 일어나서 돈을 벌어라!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어제 회사 동료와 점심을 먹으면서 정희진 쌤의 강연 얘기를 해줬다. 공부를 멈추지 말라고, 나는 동료에게 말했다. 공부해야 돼, 안그러면 보수적이 된다고 정희진 쌤이 그랬어, 내 생각도 그래, 그럴 수밖에 없잖아, 멈추면 안돼, 라고 말했는데, 동료는 '책은 어려워서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는데 차장님이 알기 쉽게 머리에 쏙쏙 들어오게 설명해줘서, 저는 차장님이 계셔서 좋아요' 한다. 나를 칭찬하는 말이었고 고마워하는 말이었지만, 아아, 나는 너무 안타까웠다. 나한테 듣기만으로 공부를 했다고 생각하지마 ㅠㅠ 직접 공부해. 직접 책을 읽어 ㅠㅠ 나는 안타까워서, 일단 쉬운 책을 읽으라고, 페미니즘도 인문도 정치도, 일단 쉬운 책을 읽다보면, 나중에 조금 더 어려운 책을 읽을 수 있게 된다고 말햇다. 동료는 '차장님이 계셔서 다행이에요' 한다. 아니아니, 내가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공부를 하라고 ㅠㅠ
그렇지만 학창시절 나도 공부를 안하는 학생이었고, 공부라는 게 누가 시켜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안다. 나는 동료에게, 내가 아는 게 지금보다 더 많아지면, 또 아는 게 더 많은 사람과 대화가 가능해진다...라고도 했지만, 공부하라는 잔소리를 더이상은 하지 않기로 했다. 자기 삶은 자기가 사는 것이여.....
나는 공부하는 사람이 좋다. 끊임없이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고자 하는 사람들.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고 또 다른 사람의 생각을 듣고자 하는 사람들. 어제도 공부에 대한 책을 읽었다.
자신이 이미 의사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내가 잘하고 있는지를 고민했다고 하는데, 나는 그런 부분들이 정말 좋았다. 자신의 병원을 찾아온 환자들에게 허락을 구해서 자신과 상담했던 내용을 다 풀어 적고는, 자신의 스승에게 '이거 이렇게 한 거 잘한거냐'고 물었던 삼십대 시절이었다고. 아, 너무 좋지 않은가. 이미 내가 어느 정도의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면 '이정도 공부한 내가 이거 못할 리 없지' 라는 자기 확신에 빠지기 쉬운데, 끊임없이 자기에게 물었다는 건, 정말 중요한 장점인 것 같다. 그것이 사람을 성장시키고 또 앞으로 나아가게 하며, 더 좋은 사람이 되게 하는 게 아닐까.
게다가 이제 직접 사람들과 부딪히면서 치유하는 능력을 더 갖추게 되었다는데, 그러면서 소설을 읽는 것에 대해 그것이 가진 힘을 믿는다니, 아아, 소설과 소설의 힘을 믿는 이들이여, 복되어라.
Q 전공서적을 모두 정리하고 시집과 소설 같은 문학책만 남겼다고 하셨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공부하는 데 시집과 소설 같은 문학책이 도움이 되나요?
그럼요. 심리학 공부를 하다보면 여러 심리학자들의 이론, 그들이 주창한 개념과 틀을 중심으로 사람을 분석하고 해석하게 됩니다. 공부를 많이 하면 할수록 그 이론과 개념이 전부인 것처럼 절대화하게 되기도 하고요. 그렇게 사고하고 그렇게 말하는 사람을 우리는 훌륭한 전문가로 인정합니다. 그런데 사람의 마음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아요. 아무리 탁월하고 근본적인 이론이라 해도 어느 한 학자의 개념과 틀만으로는 인간의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틀에서 벗어나는 인간의 개별성과 다양성이 얼마나 많고 깊은데요. 사람을 깊이 접하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그런 사례를 더 많이 접하게 됩니다.
사람의 마음이란 것은 보이지도 않고 만져지지도 않으니 이해하고 접근하기가 막연하고 모호합니다. 어둠 속을 걸을 때 손에 쥘 수 있는 지팡이가 있으면 그에 의지해서 주위를 천천히 더듬으면서 감을 잡고 최소한의 자기보호를 할 수 있죠. 그러나 시간이 흘러 어둠 속에서 내 시력으로도 주위를 조금씩 볼 수 있게 되면 지팡이 끝으로만 세상을 인지할 필요가 없잖아요. 내 눈을 통해서 내 주변이 어떠한지 통합적으로 인지할 수 있습니다. '지팡이 끝'으로 더듬어 세상을 '부분적으로 파악하는' 도구가 심리학 지식이라면, '내 시력'으로 세상을 '통합적으로 인지하는' 강력한 도구가 문학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부분적이기보다 통합적이고, 분석적이기보다 감성적이고 입체적입니다. 인간을 유형으로 말하지 않고 한 인간의 개별성에 끝까지 집중합니다. 그런 면에서 문학은 인간에 대한 치유적 접근에 적합한 도구입니다.
심리학 공부는 지팡이 역할로 활용하는 것이 적절한 것 같아요.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p.143-144)
김영란도 비슷한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자신이 그간 읽어온 문학으로 사람 개별에 대해 깨닫고 판결을 내리는 데 영향을 미치게 되더라고, 직업적으로도 영향을 미치더라고. 그런데 정혜신도 그런 얘기를 한다. 내 경우에는 일을 하는데 문학이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 같진 않지만, 일을 제외한 모든 부분에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 같다. 특히나 사람을 사귀는 일에 있어서는 더욱 그렇다. 연애를 하고 우정을 다지고 동료들과 관계를 맺는 모든 것들이, 나라는 인간이 하는 일인데, 나라는 인간은 문학을 포함한 다른 것들로 구성되어져 있으니까.
오늘부터는 지난번에 멈췄던 '마사 누스바움'의 [시적 정의]를 읽고 있는데, 아아, 이거 너무 좋다. 얼마나 좋으냐면, 밑줄 그으며 읽다가 양재역을 지나칠뻔했을 정도로 좋다. 색연필 들고 밑줄 그으면서 읽었다. 마사 누스바움의 이름을 외워야지, 생각했는데, 이 교수로부터 가르침을 받는 학생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생각도 여러차례 했다. 그리고 곳곳에서 소설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그것들이 참 긍정적이어서, 지난날 공대생과 연애하던 나를 수시로 떠오르게 만들었다. 어느 한 날 공대생과 나는 개구리 울음소리로 싸우게 됐는데, 아아, 나는 너무 문학적이어서 그가 나를 결코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건 나중에 시적 정의 다 읽고 페이퍼 쓸 때 언급할 것이다. 아, 싸웠다고 해서 우리가 피터지게 싸웠다거나 서로의 감정을 할퀴면서 싸웠다는 건 아니다. 낄낄대면서 싸웠지...라고 하면 싸운 게 아닌가... 어쨌든. 아, 마사 누스바움의 시적 정의, 넘나 좋구요.... 아아, 마사 누스바움. 이름을 기억할게요.
책을 안사기로 결심했었으나 물론 잘 지켜지지 않았고, 그래도 지키려고 최대한 노력중이라서, 한 번에 오만원이상 사는 대신 한두권씩 사고 있다. ㅋㅋㅋㅋㅋㅋㅋ 이게 뭐야 부질없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의미없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런데 오늘, 정희진의 신간 소식을 알게 됐다.
신간이라기 보다는, [나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라는 이전에 나온 책의 개정판인데, 어쨌든 그 책을 읽지 않았던 나로서는 반갑게 구입하고 싶은 책인 것이다. 그런데, 장바구니에 넣어둔 책이 넘나 많아. 아침부터 장바구니 들여다보며
딱 한 번만, 올해 마지막으로 딱 한 번만, 딱 한 번만 오만원이상 ... 지를까.......
를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우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 딱 한 번만..... 안될까?
안돼! 정신 똑바로 차려!
그러면, 이거 한 권만 살까?
그래, 한 권만 사.
아니 그런데, 이렇게 한 권 두 권씩 여러번 사는 것보다, 여러권 한꺼번에 사는 게 마일리지도 쌓이잖아?
닥쳐!
나는 오늘도 나와 대화한다. 나와 대화하는 힘은 열무비빔밥으로부터 나온 것이여.....
엊그제는 남동생과 자존감에 대한 얘길 나누었다. 남자든 여자든 연애를 할 때, 자존감을 잃게 만드는 상대라면 거침없이 헤어져야 한다는 게 내 지론이었는데, 내 얘길 듣던 남동생이
'누나 요즘 페미니즘 책 한참 읽더니, 이제 자존감 책읽냐?'
한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니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뭐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자존감은 책과 상관없어 밥통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빵터졌네.
오늘 마사 누스바움의 책을 읽다가 '성찰'이란 단어에 꽂혀서는, 오늘은 지하철에서 내리기를 깜빡 잊을뻔했던 나를, 커피를 사지 못한 나를 성찰하자, 하고는 혼자 써먹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제처럼, 지난달처럼, 몇년전처럼, 변함없이 출근했고,
그렇게 변함없이,
퇴사하고 싶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