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이었던가, [꽃보다 청춘]이란 프로에 최지우가 나온 적이 있었다. 맞나? 이서진하고 그리스로 여행을 가는 프로그램이었던 것 같은데, 나는 평소 그 프로그램을 보지 않다가, 그 프로를 시청하던 애인이 최지우 좋다 그래서 어쩐지 발끈 하는 마음에 봤더랬다. 내가 본 회차에서는 호텔에 도착하고 짐을 푸는 장면들이 나왔는데, 최지우는 자신의 캐리어에 전기포트를 가지고 왔더라. 나는 그 장면에 대해 애인에게 이렇게 말했었다. '전기포트는 좀 오버 아닌가? 저건 그냥 어딜 가도 다 있는데 왜 가지고 다니는거지?' 라고. 나는 그 당시에 정말 그렇게 생각했었다. 내가 다녔던 국내의 호텔과 모텔에 모두 전기포트가 있었고, 그동안 다녔던 해외호텔에도 전기 포트는 있었으니까. 그리고 이걸 잊고 지내다가 작년에 포르투갈을 갔는데, 포르투갈 호텔 방에 전기포트가 없었다. 읭?????
나는 호텔 프런트로 내려가 열심히 설명했다, 전기로 물을 끓이는 주전자....어쩌고 하면서. 직원은 잘 알아듣지 못했고, 결국 나는 인터넷으로 사진을 찾아서 캡쳐한 뒤에 이런 거 없냐고 물은 거다. 직원은 레스토랑에 있는 걸 가지고 올라갈 순 없지만 저기에서 뜨거운 물을 끓여서 니네가 사용할 수는 있고, 다음날 아침에 너네 객실에 가져다주겠노라 답했다. 나와 일행은 사발면을 먹고 싶었던 거였고, 그 시간이 새벽으로 넘어가는 늦은 밤이었으므로, 알겠노라 답을 하고 레스토랑으로 가 뜨거운 물을 받아 사발면을 먹을 수 있었다. 다음날 아침 우리는 외출했고, 돌아오니 객실에는 주전자가 있었다. 주전자와 놓여있던 큰 받침대에는 각종 차(tea)의 티백도 종류별로 있었다. 아, 유럽 호텔에는 전기주전자가 없기도 하구나, 그런데 말하면 갖다주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서는 바보같이, 그때의 일을 잊었다. 그렇게 나와 친구는 미국에 갔다.
오, 그런데 뉴욕의 호텔에도 객실내에 물을 끓이는 주전자가 없었다. 호텔에 짐을 푼지 이틀째였나 삼일째였나, 내내 의식하지 못하고 있다가, 아아 사발면이 간절하다, 오늘 저녁엔 두 개씩 사발면을 먹자, 하고 주전자는 있지? 둘러봤더니 없는 게 아닌가. 헐... 이것은.... 뭐여???? 이번에는 구구절절 설명하지 말고 편하게 묻자 싶어 또 캡쳐를 해가지고 프런트로 내려가 이거 달라 말했다. 그러자 직원은 이것이 무엇에 쓰는 물건이냐 물었다. 커피머신이니?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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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것은 전기로 물을 끓이는 것이고 차를 마시는데 사용한다고 말했다. 우리가 차를 마실 건 아니지만, 사발면을 이해시키기 어려울 것 같아 차라고 말했다. 직원은 '우리는 물은 있지만 이런 거는 없어' 라고 말했다. 친구와 나는 멘붕에 빠졌다. 아... 이게 없을 수도 있다니. 나는 작년에 보았던 최지우의 여행장면이, 캐리어에서 전기주전자를 꺼내던 장면이 생각났다. 친구에게 말했다. 그때 이런 일이 있었는데, 최지우가 알고 그런 거네, 여행 많이 다녀서 없는 데가 많다는 걸 알고 준비한거네.... 친구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경험이 중요하구나.
우리는 사발면을 제법 많이 가져왔고, 이걸 먹고 싶었다. 게다가 우리는 앞으로 계속 여행을 다닐 거였다. 그래서 친구와 나는 '그냥 이번 참에 작은 걸로 하나 사서 앞으로 계속 가지고 다니자' 로 결론을 내렸다. 그거 얼마 비싸지도 않고, 작은 걸로 사면 되니까, 하고서는 오전에 미술관에 갔다가, 오늘 오후에는 우리가 쇼핑하고 싶었던 거 슬렁슬렁 쇼핑하고 주전자나 사가지고 일찍 들어가자, 했다. 그리고 전날 들렀던 전자용품가게에 들어갔다. 전자용품 잡화점 같은 곳이었는데, 핸드폰과 컴퓨터에 필요한 용품들도 있었고 주방에 필요한 제품까지, 가전제품이 다 있는 곳이었다. 우리는 직원에게 사진을 보여주고 이거 있냐 물었다. 직원은 지하에 내려가보라고 했다. 지하에 내려가니 다른 건 다 있는데, 커피 메이커도 있는데, 이건 없더라. 다시 다른 직원에게 물었다. 이번에 직원은 자기네 가게에는 없지만 <Duane reade>에 가면 있을 거라 했다. 우리는 고맙다고 말하고 나와서 구글 지도로 duane reade 를 검색했고, 지도를 보고 찾아갔다. 약국도 같이 붙어있고 술이며 청과류 과자, 샐러드까지 다 파는 곳이었기에 당연히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도무지 보이지 않았다. 역시 직원에게 물어봤다. 한 직원은 이런거 본적 없다고 했고, 다른 한 직원도 마찬가지로 우리는 이런 걸 가지고 있지 않다고 했다. 아니, 주전자를 ... 안팔아? 이거 그냥 우리나라에서는 홈플가도 있고 이마트가도 있고 하이마트 가도 있고, 인터넷으로 검색하면 좌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 종류별로 뜨는데?????????
이미 한참 걸었던 친구와 나는 다리가 아프고 몹시 피곤했다. 그렇지만 우리가 호텔로 가기 위한 셔틀버스를 기다리던 근처에 백화점이 있다는 걸 기억해내곤, 그 백화점에 한 번만 더 가보기로 했다. 그렇게 백화점을 향해 걷다가 다른 백화점을 먼저 만났고, 그곳에 들어갔더니 1층이 샤넬 향수 매장이었다. 나는 마침 향수를 사기로 했던 터라, 거기에서 실컷 직원과 이 향수 저 향수 시향하며, 그렇지만 이건 내가 너무 오래써서 나는 이제 변화를 원해, 했고, 그렇게 마음에 쏙드는 향수를 샀다. 직원이 가장 좋아한다는 향수를 추천해줬지만, 내가 망설이다 내가 고른 걸 사니, 직원은 내게 '내가 추천한 향수도 니가 최종적으로 마음에 들어했으니까, 좀 써봐, 내가 덜어줄게' 하고는 작고 빈 케이스를 꺼내 거기에 덜어주었다. 오! 땡큐라고 말한 뒤에, 나는 스맛폰을 보여주며, 근데 여기에 이 주전자를 파느냐고 물었다. 직원은 그 사진을 보더니 '여기엔 없지만 메이시스 백화점엔 있을거야' 라고 하더라. 아..지쳐..힘들어.... 우리는 웃으며 땡큐라고 말하고는 구글로 메이시스 백화점을 검색했다. 십일년전에 가보았던 곳이었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있는 곳에서는 너무 멀었다. 우리는 지쳤고 피곤했고 배도 고팠다. 친구는 호텔후기를 검색해보았다. 누군가가 '여기는 주전자가 없지만 끓는 물을 갖다달라 하니 가져다주었고 그래서 팁을 줬다'라는 후기를 썼더라. 그래 우리 이제 지쳐서 힘이 없어, 이제 그만 숙소로 들어가 끓는 물 달라고 하고 팁을 주자, 고 최종적 결정을 내렸다. 그렇게 너무 지쳐서 무거워진 몸을 이끌고 셔틀 타는 곳으로 갔다가, 눈앞에 있는 <블루밍데일 백화점>을 보았다. 저기만 마지막으로 딱 한 번만 가보자, 하고는 친구와 들어갔다. 1층에서 직원에게 이런 거 파냐 물으니 6층이 키친용품을 다 팔고 거기에 있을거라고 하더라. 우리는 너무나 지치고 힘들었지만, 그래도 이거 사려고 돌아다니고 예기치않게 반나절을 다 주전자를 위해 썼는데, 이렇게라도 사게되면 충분히 만족한다며, 부푼 희망을 안고 6층에 갔다. 정말 부엌 용품들이 많았고, 우리는 두리번두리번 거렸다. 그리고 드디어 발!견! 발 to the 견!!
찾았어!!
하고 내가 외치고 친구가 어디어디? 하면서 내게로 왔다. 정말 그곳에 우리가 그토록 애타게 찾던, 반나절이나 찾아 헤매던 주전자가 있었다. 그런데 다 사이즈가 크더라. 흐음... 이렇게 큰 건 캐리어에 넣기도 불편한데..이렇게 큰 건 필요하지 않은데.... 그냥 여기서 쓰다 놓고 갈까...라고 생각하고 하나를 들어 가격을 보니 $80.00 이 넘더라. 어머. 무슨 이게 8만원이 넘어!! 옆에 있는 다른 모델을 들어보니, 그건 $100.00 이 넘었다. 어머. 다른 것들도 들어보니 다 그 가격대고, 제일 처음에 본 8만원대가 가장 저렴한 것이었다. 친구와 나는 그냥 끓는 물 갖다달라고 하고 사지말자, 했다. 반나절을 주전자를 사려고 내도록 돌아다닌 게 아까웠지만, 그렇다고 10만원이나 주고 주전자를 여기서부터 사갈 수는 없지. ㅠㅠ
백화점을 나오니 밖은 이미 어둑해졌고 숙소로 돌아가는 시간이 또다시 저녁이었다. 아, 오늘은 일찍 들어가서 쉬고 싶었는데, 또 몸이 부서지도록 걸었어. 그날 우리는 28,000보를 걸었다 ㅠㅠ
셔틀버스를 기다렸다 타고 호텔 앞에 내려서, 프런트에 들러 뜨거운 물을 가져다줄 수 있냐고 물었다. 직원은 반 층 내려가는 레스토랑을 가리키며, 저 곳에다 말하면 된다고 했다. 나는 내려가서 뜨거운 물을 가져다줄 수 있냐 물으니 그가 손가락으로 한 방향을 가리킨다. 거기에는 마치 우리나라 편의점 어디에나 반드시 있는, 뜨거운 물을 공급하는 커다란 주전자가 있다. 그걸 주전자라고 해야하나, 암튼 엄청 큰 뜨거운물통이 있어서, 니네가 원하는 만큼 원하는 때에 받아가도 된다는 거다. 아니, 이런 게 여기 있었는데, 반층만 내려오면 있었는데, 친구와 나는 이 뉴욕 한복판에서 반나절동안 대체 뭘한거지??????????????????????????
몸이 부서져라 걸으면서도 구하지 못한 것을, 이렇게 가까이에서 얻을 수 있었는데.... 하아- 파랑새는 언제나 곁에 있었어... ㅠㅠㅠㅠㅠㅠㅠㅠㅠ 친구와 나는 정말 지치고 피곤했다. 우리 사발면 두 개씩 먹자! 하고는 사발면 네 개에 물을 부었다. 그리고 커다란 맥주를 한 캔씩 땄다. 680미리 정도 되는 큰 맥주였다. 친구 하나 나 하나, 우리는 건배를 하며, 오늘 주전자 사러 돌아다니느라 수고했다고 서로를 격려했다. 그리고 각자 자신의 몫으로 앞에 놓여진 사발면 두 개를 흡입했다. 꿀맛이었다.
한국에 돌아와 인터넷으로 주전자를 검색했다. 하나 사두기 위해서였다. 나는 또 여행을 갈거니까.
이거봐, 내가 원하는 작은 사이즈의 주전자들은 2만원도 안되는 돈으로 살 수 있다규!!!!!!!!! ㅜㅜ
친구와 나는 레고매장에 가서 이미 조카들의 선물을 구매했었다. 그런데 친구는 조카들에게 옷도 사주고 싶다고 하더라. 그렇게 우리는 <GAP> 매장에 들어갔다. 이미 다른 곳에서 쇼핑한 것들로 가방이 무거웠던 터, 친구는 티셔츠 두 개를 고르기 위해 아동복이 있는 2층으로 올라갔고, 나는 1층에서 짐을 지키며 친구를 기다렸다. 잠시후 친구가 몇 벌의 옷을 가지고 내려와 어떤 것이 더 예쁜지를 물었고, 그렇게 두 벌을 최종선택했다. 두 벌의 가격은 40달러가 넘었는데, 친구는 20프로 할인하는 티셔츠들이라며 32불 정도에 샀다는 거다. 음...32불에 티셔츠 두 벌... 나도 갑자기 조카들에게 옷을 사주고 싶어졌다. 32불로 두 벌인데... 조카들에게 똑같은 옷을 사서 입히고 싶다는 욕망이 맹렬하게 타올랐다. 그래서 이번에는 친구에게 네가 기다려, 라고 말한 뒤에 내가 2층으로 올라갔다. 나 역시 20프로 할인하는 매대에서 옷 두 벌을 골랐다. 친구에게 내려가 이렇게 살까 하는데, 했더니 친구가 '작으면 못입지만 크면 입을 수 있다, 한 치수 더 큰 걸로 바꿔와라' 고 해서, 그 현명한 충고를 감사히 받아들이며 다시 올라가 사이즈 큰 걸로 바꿨다. 그리고 마침 저 쪽에 직원이 보이길래 가서는 물었다. "이거 저기 20프로 할인한다고 되어있던 매대에서 고른건데 할인되는 거 맞니?" 라고. 직원은 내게 "네가 갭가족이라면 절반 가격에 살 수 있어" 라고 하더라. 아니 나는 갭가족이 아니야, 나는 여행객이야, 라고 하니, 직원이 무언가를 내민다. "그렇다면 이걸 가져가, 이건 40프로 할인쿠폰이야" 하는 게 아닌가. 내가 제대로 알아들은건가?? 나는 고맙다고 말하고는 그 쿠폰을 가지고 계산대로 갔다. 계산대에서는 20프로 할인을 해 계산을 해주더니, 내 쿠폰을 보고는 거기서 또 할인을 해준다. 결과적으로 40불 이상의 티셔츠를 20불도 안되는 돈에 샀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니, 세상은 나한테 왜이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나한테 왜이렇게 잘해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 직원한테 묻기를 잘했구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무나 주는 쿠폰인 것 같긴 했는데, 친구는 아무것도 묻지 않아 아무것도 받지 못했다. 그런데 쿠폰은 두 장이었고, 거기에는 '하나는 당신의 쿠폰, 하나는 당신의 친구에게 선물해요!' 이런 식으로 쓰여있었고, 나는 얼른 친구가 있는 데로 돌아와서는, 이러이러한 일이 있었다 말하고, 이 쿠폰 줄테니까 너도 다시 계산가능한지 물어보자, 해서는 우리의 짐을 바리바리 싸들고 다시 카운터로 향했다. 나는 직원에게, 이 친구가 아까 계산했는데 이 쿠폰을 뒤늦게 사용해서 재계산이 되느냐 물었고 직원은 단호하게 "No!" 라고 말했다. 친구와 나는 풀이 죽어 알겠다고 돌아서려 했는데, 갑자기 직원이 빵 터지며 "농담이야, 카드 줘봐!" 한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이놈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우리가 니가 농담을 하는지 아닌지 모른단 말이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친구도 그래서 덩달아 할인받았다. 나는 칭찬 받고 싶은 강아지처럼, 계속해서 친구에게 물었다.
"나 잘했지, 잘했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오, 그리고 <빅토리아 시크릿>!!
친구와 나는 아주 오래전부터 외국에 가면 꼭 속옷을 사오자 얘기했었다. 친구도 나도 가슴이 큰 편이라 국내에서 딱히 예쁜 브라를 사기가 어려운거다. 일전에 어느 잡지에서 누군가 그런 경험을 쓴 걸 보았다. 남자친구가 "너는 왜 미운 속옷만 입냐"고 타박했다고. 그래서 "내 가슴이 커서 국내에서 예쁜 브라를 찾을 수가 없어!" 하고 성질을 버럭냈더니, 그다음부터 남자친구가 해외출장 갔다 올때마다 예쁜 브라를 사다준다는 거였다. 오, 외국에는 큰 가슴을 가진 사람이 많고, 그래서 브라도 더 다양하구먼... 하고는 내내 벼르다가, 이번에 뉴욕 간김에 빅토리아 시크릿에 가보자! 했던 것. 사실 가면서도 큰 기대를 하진 않았다. 미국 사이즈로는 내 가슴 사이즈를 알지도 못하는데 무작정 산다고 맞을지도 모르겠고, 입어 보면 되기는 하겠지만 그것도 어쩐지 좀 쑥스러울 것 같고..수줍을 것 같은데.....
일단 매장에 들어가자마자 속옷이 너무 많아서, 2층까지 속옷이 있어서 뭔가 신나기 시작했다. 이 예쁜 속옷들.. 아항, 너무 좋아. 그렇지만.. 내가 여기서 하나라도 살 수 있을까? 그렇게 이것 저것 둘러보고 이거 예쁘다 저거 예쁘다 이러고 있는데, 직원 한 명이 와서는 너네 사이즈가 몇이냐 물었고, 우리는 한국사이즈밖에 모른다 답했다. 그랬더니 줄자를 꺼내며 재줄까? 묻는다. 우리는 좋다고 재달라고 했고, 직원은 나를 먼저 잰 뒤에 너 사이즈는 뭐야, 하고는 자신이 가진 종이에 사이즈를 적어준다. 마찬가지로 친구의 사이즈를 재주고는 너의 사이즈는 뭐야, 하고는 안내장 같은 종이에 사이즈 체크를 해준다. 우리에게 그 종이를 주면서, 매장에 너희들 도와줄만한 사람들한테 니네 사이즈 얘기하면 잘 골라줄거야, 라고 해주었다. 그래서 그 종이를 들고 돌아다니다가 예쁜 브라 앞에 멈춰 서 있으려니 직원이 다가오고, 네 사이즈 뭐니? 물어 종이를 내미니 맞는 사이즈를 찾아준다. 그렇게 몇 벌을 골라들고 직원을 따라가면 착용해볼 수 있는 곳에 안내해주고, 열쇠를 열고 들어가라고 말하며 문을 열어준다. 몇 벌 입어 보고 있으려니 직원이 너 어떠니, 괜찮니 묻는다. 나는 나와서 이건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건 어쩌고 저쩌고 말을 하며 마음에 안든다고 말을 하니 알겠다며 다른 것을 추천한다. 나는 내가 눈여겨 봤던 브라 앞에 서서는, 이것도 줘봐, 했더니, 이건 되게 타이트하게 나오는 거니까 컵을 하나 작게 하고 둘레 사이즈를 하나 늘려서 착용해야 해, 내 말을 믿어, 하고는 브라를 찾아준다. 그래서 나는 또 탈의실로 갔다. 그리고 지금 가져온 브라 두 개를 해본다. 와- 짱좋아! 너무 좋아! 완전 내 스타일이야!!!
직원은 이번엔 어때, 네 마음에 드니? 하고 바깥에서 묻는다. 나는 안에서 비명을 질렀다. 너의 추천은 완벽했어, 이거 너무 좋아. 직원은 니가 좋다니 나도 너무 좋아 이러면서 덩달아 웃었다. 그래서 나는 총 브라 세 개를 골랐고, 직원이 추천해준 팬티들을 입어보다가 팬티는 내 스타일이 아니야, 하고는 거절했다. 친구도 몇 개의 브라를 샀고, 우리는 정말 신이 나서 숙소로 돌아왔다. 매장을 나서기 전에 나는 나를 도와준 직원에게로 가 나 이제 갈게, 오늘 도와줘서 정말 고마웠어, 라고 얘기했다. 친구와 나는 거기 한참을 머물렀던 것. 그녀는 자신도 기뻤다면서 나를 포옹하고는 내 볼에 가볍게 입을 맞춰주었다. 입술이 닿은 건 아니지만....나.....이런 거 처음이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몰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내가 여태 해외를 다니면서, 아니 국내도 통틀어서, 아니 인생 전반에 걸쳐서, 가장 많이 영어로 대화한 사람, 가장 오랜 시간 나와 영어로 대화한 사람이 뉴욕 빅토리아 시크릿 직원이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름다운 나의 인생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숙소에 돌아와서 다시 해보는데, 아, 뭔가 이건.... 인생 브라다....인생 브라야...... 나는 너무 신이 났다. 친구도 내가 산 걸 사고싶다고 했고, 나는 내가 산 걸 '더' 사고 싶었다. 마침 동생 선물도 샀는데, 사이즈를 바꾸는 게 좋을 것 같아 '우리 내일도 빅시에 가자' 약속했고, 그렇게 다음날 빅시로 향했다.
나는 새로 더 살 거라 괜찮긴 했지만, 동생 것을 바꾸는 게 문제였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바꿀 생각 안하고 영수증을 박박 찢어서 버렸던 것. 어제 나를 도와줬던 직원을 찾아서 사정을 설명해보겠지만, 그래도 영수증도 없는데 교환이 될까... 싶은 걱정스런 마음이 들었던 거다.
다음날 도착한 빅토리아 시크릿 매장에서 어제 나를 도와준 직원, '라쟈'는 보이지 않았다. '트레시'(기억이 가물..이 이름이 맞나)라고 자신을 소개한 남자 직원이 무얼 도와줄까 묻고, 나는 라쟈를 찾는다 말했다. 그녀는 오늘 휴가라며, 자신이 도와줄 수 있을테니 말하라고 했다. 나는 어제 내가 선물로 브라 하나를 구입했는데 이거 교환하고 싶다, 그런데 영수증이 없다, 라고 말했다. 그러자 직원은 '너 어제 카드로 계산했니 현금으로 계산했니'를 물었고, 나는 카드라고 답했더니, 그렇다면 노 프라블럼이라며 자기를 따라오라고 한다. 니가 원하는 사이즈는 뭐니? s 사이즈! 그러자 직원은 기다리라며 내가 원하는 사이즈를 가지고 와서는 내가 샀던 사이즈와 교환해주고 새로운 영수증을 발급해주었다. 오! 좋구먼!! 또 기분이 좋아져서, 나는 전날 샀던 브라를 하나씩 더 샀고 친구 역시 그러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쇼핑의 여왕으로 살다왔다.
그런데 이 빅토리아 시크릿 속옷을 산 것은, 후유증이 길게 남아서, 한국에 돌아와서도 좀처럼 안정이 되질 않고, 다시 뉴욕에 가서 몇 벌 더 사고 싶어지는거다. 그렇지만 다시 뉴욕에 가는 건 십년 뒤로 약속했으니, 인터넷으로 좀 구경해볼까, 하고 친구랑 다시 구경하다가....우리는...............인터넷으로 또 샀다!!! 여기서 인생 속옷을 또 사자!!!!!!!! 아직 도착 전이지만, 우리는 기다리며 두근두근하고 있다. 아 속옷이여... 넌... 뭐니?
인생브라...
자, 나는 이제 작은 주전자를 주문하러 가야겠다.
가을에 뉴욕에 갈 예정인 친구에게 이 페이퍼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썼다.
한국에 돌아와서 문득 생각해보니, 뉴욕에서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을 다 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 짧은 영어로 인생브라도 사고, 사발면에 물도 부어먹고, 티셔츠 할인까지 받았다. 비행기에서 비행기로 환승하는 것도 문제없이 했고, 어딘가로 이동할 때 길을 물어 걷기도 했고, 지도를 보며 걷기도 했으며, 지하철을 타고 목적지에 이르기도 했다. 그렇다면, 사실, 영어공부....안해도 되는 거 아닌가 싶었다. 할 거 다 할 수 있을만큼 영어 하는데...뭐하러 공부를 또한담? 영어 공부하려고 책 사놨는데, 그냥 다시 팔아야겠다. 한 번도 안 펼쳐봤으니....
영어, 이만큼만 해도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