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전편인 《레드 브레스트》에서 해리는 '랄케'에게 첫 눈에 반한다. 그녀의 아름다움에 반하고 웃음소리에 반한다. 웃음소리가 듣기 좋다고 생각한다. 상대의 웃음소리를 좋아한다면, 저 웃음소리를 듣기 위해서 무언가 하고 싶어진다면, 그건 상대를 사랑한다는 증거가 아닌가. 그녀와 함께 더 있고 싶고 또 만나고 싶다. 데이트 신청도 했었다.
《네메시스》에서도 해리의 그 마음은 여전하다. 라켈에 대한 마음. 라켈을 사랑하는 마음.
"방금 세 번이나 사랑한다고 했잖아. 그것도 이웃사람이 보는 앞에서. 남자에게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아?"
라켈이 웃음을 터뜨렸다. 해리는 그녀의 웃음소리가 좋았다. 처음 들은 순간부터. 저 소리를 자주 들을 수만 있다면 무슨 짓이라도 하리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았다. 기왕이면 매일 듣고 싶은 웃음소리였다. (p.46)
크- 누군가의 목소리를 매일 듣고 싶어한다는 거, 아 진짜 좋지 않은가. 상대의 웃음소리가 좋다면, 그건 진짜 영낙없이 상대를 사랑한다는 거다. 이건 뭐 말이 필요없다니까. 그래서 그 사람을 자꾸자꾸 웃게 해주고 싶은 거. 그게 사랑이 아니면 뭐란 말인가. 라켈의 웃음소리를 좋아하는 해리가 좋다. 누군가에 대한 사랑으로 가슴이 꽉 차오르는 건, 살면서 그렇게 자주 느낄 수 있는 건 아니니까. 마찬가지로 누군가의 웃음소리가 좋다, 저 사람을 매일 웃게 해주고 싶다, 라는 생각이 들게끔 하는 사람도 자주 만날 수 있는 게 아니다. 어떤 사람은 단 한 번도 만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니까, 그런 사람을 잡으면, 최선을 다해 그 사람의 옆에 있을 수 있도록 애를 써야 한다. 그런데, 해리야... 하아.
해리의 전(前)여친 '안나'가 오만년만에 해리에게 전화를 한다. 그래서 잠깐 만났었고, 작별의 키스를 했다. 뭐, 그럴 수도 있지, 라고 해리는 생각하지만, 또 만나기로 한 약속 앞에 해리는 흔들린다. 음.. 안만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라고 생각한다. 라켈 생각이 자꾸 나서. 그래서 해리는 망설이다가 안나에게 전화를 한다. 나는 오늘 너를 만날 수 없을 것 같다, 고 하려고.
해리도 자신이 얼마나 횡설수설하는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상관없다. 중요한 건 해야 할 말을 하고 전화를 끊는 것이다. 그것뿐이다. "저기, 안나. 오늘 저녁에 만나기로 한 약속 말이야……."
"유치하게 굴지 마, 해리!"
"유치하게?"
"난 지금 21세기가 시작된 이후로 최고의 카레를 만드는 중이라고. 혹시라도 내가 널 유혹할까 걱정이라면 실망하게 될 거야. 난 그저 너와 한두 시간 저녁을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누려는 것뿐이야. 추억에 잠기려는 것뿐이라고. 몇 가지 오해도 풀고. 아니면 그저 한바탕 웃어도 좋고. 일본산 고추는 샀어?"
"아, 응."
"잘했어. 8시 정각이야."
"음……."
"이따 봐."
해리는 우두커니 서서 전화기를 바라보았다. (p.96-97)
아...나는 해리가 단호하게 안나에게 '노'를 말하길 원했다. 저 장면을 읽으면서, 안돼 해리, 너는 라켈을 사랑해, 거기 가지마, 진짜 간절한 마음으로 바랐다. 게다가 해리는 라켈에게 안나를 만난다고 말하지 않았다. 라켈에게 거짓말을 했다는 생각까지 그를 짓누른다. 그러니까 애초에 가지를 말거나, 앗싸리 '나 전여친을 만나기로 했어' 라고 말을 했어야지! 너 진짜 어쩌려고 그래!
아, 해리를 보는데 진짜 나를 보는 것 같아가지고. 이미 지난 일이지만, 그러니까 나 역시 전남친을 만나러 가면서 그걸 말하지 않아가지고 애인이 화를 냈던 적이 있다. 으... 힘든 시간이었지. 아무사이도 아니고, 그저 잠깐 밥이나 먹고 들어올 거여서, 딱히 뭐 이걸 말하냐 싶었던건데, 아무 사이도 아니고 그저 잠깐 밥이나 먹고 들어올거였으니 말을 했어야 되는 거였다. 말하지 않으니까 일이 커져버려가지고............... 인생 ....................... 연애란 .............................역시 짝사랑이 짱이야! 윤여정 만세!! 나도 짝사랑이나 해야겠다. 짝사랑이 속편하다. 막 남자들 만나고 다녀도 아무도 뭐라 안하고 언제 어디에 가도 자유롭잖아. 그러면서 내 마음은 사랑을 계속하는거지. 역시 짝사랑 만세야!!!
아 다시 해리 얘기로 돌아가서,
해리는 안나를 만나러 간다. 그리고 안나를 만나러 간다는 사실에 대해서, 안나를 만나고 왔다는 사실에 대해서 라켈에게 말하지 않는다. 하아, 해리야, 라켈을 매일 웃게하고 싶다면서, 매일 웃음 소리를 듣고싶다면서, 그런데 전여친을 만나러 가면 어떡하니. 게다가, 말하지 않고 전여친 만나러 갔는데.... 문제가 너무나 커져버렸잖아.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애초에 말했으면 그 다음도 편했을텐데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그래서 사람이 늘 사실대로, 솔직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한 번 거짓말을 시작하면 그 거짓말은 자꾸 거짓말을 만들게 되니까. 반면 사실만을 말하면, 언제나 어디서나 같은 대답을 할 수가 있다. 머리를 굴리지 않고 그냥 있는 그대로 얘기하는 거니까 한결같은 답을 할 수가 있는거다.
전(前)애인은 가급적 만나지 말고, 만나러 갈거라면 현재의 애인에게 말하고 갑시다.
해리가 안나를 만나러 가서 너무나 속상했다. 내 애인도 아닌데 내가 속상해. 나 말고 다른 여자 만나지 말란 말이야! 라고 울부짖고 싶은 심정이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아, 너무 속상했어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톰 볼레르의 이야기가 너무나 궁금해져서 내친김에 계속 읽어보자고 어제는 《데빌스 스타》를 주문했다. 으윽 톰 볼레르, 어떻게 되나 보자. 《스노우맨》은 하도 오래전에 읽어서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거기서 해리가 전(前)아내를 구하는 장면이 나왔던 것 같은데, 그렇다면 라켈하고.. 헤어지는건가... 헤어질 줄 알면서도 나는 지금 그들의 연애 얘기에 귀를 쫑긋하고 있는건가. 연애는 뭔가, 인생은 뭔가... 헤어질건데 왜 사귀는걸까..... 라지만, 모든 헤어진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아마도, 시간을 돌려도 역시 같은 선택을 할거라는 대답을 하게 될 것 같다. 해리야, 라켈하고 헤어지지마...ㅠㅠ
나는 트위터를 하는 게 너무 좋은데, 거기에 똑똑한 언니들이 너무 많아서 좋다. 몰랐던 것을 알게 되는 것도 좋고 잘못 알았던 것을 바로 잡게 되는 것도 너무 좋다. 다른 식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 것도 트위터의 내 타임라인을 보면 가능해진다. 그런데 얼마전에는 글쎄 누군가가, 구몬을 한다는 트윗을 작성한 거다. 오!!! 오!!!! 오!!!!!!!!!!!!!!!!!
나는 구몬이든 뭐든 학습지는 당연히 아이들이 하는 거라고 생각해왔기 때문인지, 성인이 구몬을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을 1도 안해봤는데, 그 트윗을 보자마자 진짜 신세계가 열린 기분이었다. 그 사람은 영어랑 일어랑 중국어를 다 하는건지 모르겠는데, 어쨌든 일어가 밀려서 엄청 숙제하고 있다 라고 썼다. 오만년전에 잠깐 학습지 선생으로 2주간 일한 경험으로 보건데, 이런 방문학습지는 아주 기초적인 것부터 시작 할수가 있다. 아아, 불어랑 독어랑 스페인어가 있다면, 오오, 나도 해보고 싶다! 라고 생각하다가, 앗! 하고 벼락 같은 깨달음. 엄마!!!!!!!!!!!!!!!!!!
엄마는 몇해전부터 영어 공부를 하고싶다고 생각하고 계셨고, 그래서 내가 몇 해전에 단어책을 사드리기도 했었다. 그러나 집에서 혼자 책을 보고 공부하는 게 쉽지 않고, 일단 영어로 쓰여진 것들을 읽는 것이 가능해야 단어 외우는 것도 효과가 있을테니, 나는 구청에서 하는 문화센터나 야간학교는 어떨까 생각해서 가끔 엄마랑 얘기해보고는 다음에, 다음에, 했던 거다. 그런데 구몬이라니!! 마침 칠 살 조카는 한글나라 선생님과 한글을 공부하고 있으니, 엄마도 그런 식으로 영어를 알파벳부터 차례대로 하면 좋지 않을까??
아침에 이 생각이 나서 엄마한테 전화를 했다. 엄마 일어났어? 응.
나는 엄마에게 칠 살 조카가 하듯이 그런 방식으로 영어공부를 하면 어떨까 물었다. 엄마, 내가 돈은 내줄게, 그렇게 해보는 거 어때? 하고. 그거 기초부터 시작할 수 있으니까 엄마가 공부하기에도 부담 없지 않을까? 하고. 엄마는 반기시며 '좋은 생각이다!' 하셨다. 그러면서 좀 생각해보시겠다고 했다. 저녁에 여동생과도 의논해보겠다고.
응, 엄마, 여러가지로 좋을 것 같아. 정해진 시간에 학원 가서 앉아 있을 필요도 없고, 잠깐 동안 선생님 만나고 숙제 하면 되고, 엄마가 그거 하는 거 보면서 조카도 '할머니도 이렇게 공부하네' 할 수도 있고, 여러가지로 좋을 것 같아, 하고 부추겼다. 히힛. 엄마가 하게 됐으면 좋겠는데, 공부를 싫어하는 내 입장에서 공부를 하라고 막 강요할 수도 없으니, 엄마의 대답을 기다려봐야겠다. 아 설레인다. 나는 내가 공부를 못해서 그런지 누가 공부한다고 하면 너무나 응원해주고 싶어진다. 응 공부해, 하고 막 응원하고 싶어져. 엄마가 영어 공부를 시작해서 새로운 단어를 맞닥뜨렸을 때 읽을 수 있게 됐으면 좋겠다! 그 과정이 얼마나 신날까.
나는 알파벳도 모르는채로 중학교에 진학했다. 내게 영어는 학교에서 가르쳐주는 것이었다. 알파벳 대문자와 소문자를 미친듯이 외워 쪽지시험은 다 맞았지만 내게 영어는 늘 아슬아슬했다. 과외를 시작하고 온 아이들이 영어 수업시간에 손을 들고 대답하는 걸 보면 위축됐었다. 국민학교때의 나는 전교에서 모르는 아이가 없을 정도로 공부도 잘하고 예쁘고 인기도 많은 아이었는데(응??), 중학교에 들어와서 영어시간엔 바보가 된 것 같아 너무 기가 죽는 거다. 그래서 '난 영어 못하는 애' 하고 내가 나를 포기하고 수업시간에도 딴짓만 했었는데, 1학년 2학기에 바뀐 영어선생님이 장국영의 <TO YOU>를 들려주기 시작하면서 오오, 이것은 뭐지, 하고 흥미가 생겼고, 중학교 2학년 여름방학 때 외삼촌이 나를 붙들고 앉아 발음기호를 알려주면서 신세계가 열리기 시작했다. 알지 못하는 단어를 읽을 수 있다는 게 너무 신나서 사전을 아무데나 펼치고 단어들을 읽어보곤 했다. 그때부터 영어가 너무 재미있어서 닥치는대로 팝송을 외우고 해석하고 해서, 듣기평가도 늘 다맞고 수능에서도 영어 점수가 제일 높았더랬다. 뭘 알게되면 알기 시작할 때가 얼마나 좋던가. 게다가 좋아서 공부를 하니 칭찬도 쏟아진다. 고등학교 3학년 때 나의 담임은 영어선생님이었는데, 수능기출문제집을 다같이 풀어보던 시간, 번호대로 걸려서 내게 지문을 읽고 해석하게 시켰더랬다. 학급의 많은 아이들은 답안지를 보고 옆에 해석을 적어놨었는데, 훗, 내게는 우스운 이야기... 나는 그냥 읽고 해석했다. 그리고 정답은 뭐입니다, 하고 말하니, 선생님이 갑자기 "락방아" 부르신다. "네?" 하니, 그 조용한 수업시간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너 영어선생님 해라. 발음과 해석이 퍼펙트해. 어쩜 그렇게 잘하냐?" 라고 폭풍칭찬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좋은 시간이었다.
좋은 시절이었지.
그러다 대학 원서 쓸 때, '넌 성적이 안되니까 영어 본고사 보는 데로 원서 넣고 영어 본고사 보자, 너 영어 본고사 점수로 대학가야 해' 하셨더랬는데 ....................................
그런 내가 어쩌다 지금의 영어병신이 되었나..................................
대학이 망친 거야 나를...대학이 망쳤어............................
아무튼 공부를 막 시작해서 점점 더 많이 보이게 되는 그 기쁨을 엄마가 알게 됐으면 좋겠는데, 나 역시 방통대 편입했다 자퇴한 경험이 있는 관계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강요할 수가 없다. 아 갑자기 생각나네. 엄마, 중,고등학교때 학습지 비싼 돈 주고 시켜줬는데 하나도 안하고 밀려서 미안해....없는 돈에 내가 졸라서 에이플러스 시켜줬는데...... 깨끗하게 쌓아둬서 정말 미안해.....................대신 내가 이제 엄마 공부 시켜줄게..... 엄마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음.. 근데 나는 해리가 전여친 만난 거 너무 속상해서 읽다가 책장까지 덮을 정도였는데, 아니, 그 얘기 쓰려다가 왜 잘나갔던 과거 얘기를 쓰게 됐지? 참 사람이 쓸데없는 게 과거자랑인데... 쩝.....
그나저나 구몬에 스페인어 있는지 검색해봐야겠다.
어제 저녁엔 너무 더워서 퇴근길에 아빠를 불러 이남장 설렁탕 가서 설렁탕 한그릇을 뚝딱 해치웠다. 나는 다이어트 중이니까(응?) 좀 남기려고 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 괜찮아, 더우니까, 기운 빠지면 안돼, 잘 먹어야 해, 하고는 집에 돌아갔는데, 왜 금세 또 허해지는 거지... 외로워서... 허한건가....아니면 소화력이 너무 왕성한건가.......이남장이 양이 적나........왜징........ 아빠가 사둔 도넛츠를 먹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물어야 했다. 그래서 도넛츠 앞에서 벗어났다. 냉장고를 열어 토마토를 꺼내서 폭풍흡입을 했는데, 휴, 어제 도넛츠 먹고 잤으면 오늘 아침에 후회했을 거야.
아무튼, 짝사랑이 좋고 공부가 좋다.
"약에 취해서 그런 건 아닐까요? 평상시에는 정상인 사람이 살인을 저지를 정도로 공격성이 증가하는 약물은 없나요?" 에우네는 고개를 저었다. "약물은 잠재해 있던 성향을 더 두드러지게 하거나 약화시킬 뿐일세. 술에 취해 아내를 죽이는 작자는 평소에도 아내를 구타하는 성향이 있지." (p.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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