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리란 인물이 왜 대단한건지 몰라서 예전에 '윌 스미스'가 주연한 영화 [알리]를 극장에 가서 봤더랬다. 당시의 내게 영화는 지루했고 그래서 나는 꾸벅꾸벅 졸았다. 졸다가 정신을 차려 봤던 장면에서 챔피언이었던 알리는 군대에 안간다고 했던가 하는 이유로 사람들에게 욕을 먹었다. 그리고 나중에 다시 챔피언이 되었고. 나는 영화의 전반적 내용을 이해하지 못했고 왜 알리가 군대에 안갔는지, 왜 욕을 먹었는지, 그리고 왜 대단한지 모르는 채 지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보냈다.
시사인에서 내가 가장 즐겨읽는 코너, 건성건성 읽어도 꼭 빠뜨리지 않는 코너가 <김형민 PD의 딸에게 들려주는 역사이야기>이다. 역사를 개뿔도 모르는 내게 참으로 유익한 코너이며 또 재미도 있다. 그런 이 코너에서 이번엔 알리에 대해 말해주더라. 오래전 영화를 봤음에도 알리를 모르던 내게, 김형민은 자세히 알려주었다. 김형민의 글을 읽노라니 아, 그때 그게 그런 장면을 뜻하는 거였구나, 싶으며 뒤늦게 영화를 이해하게 된 기분이었다.
절정의 세계 챔피언이던 시절, 그는 미국이 발을 잘못 들였던 베트남 전쟁에 공개적으로 반대하고 징병을 거부해. 그 이유는 다음과 같아. "내가 왜 베트콩과 싸우는가. 그들은 우리를 검둥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만약 내가 군대에 입대해서 베트콩과 싸워 2200만 미국 흑인의 자유와 평등을 보장할 수 있다면 미국 정보는 나를 징집할 필요도 없다. 그렇게만 된다면 내일 내 발로 입대할 테니까." -<시사인 제426호, 김형민 피디의 딸에게 들려주는 역사이야기 中
아, 그때 알리가 거부한 게 징병이었구나. 징병을 거부한 이유는 바로 이것이었구나. 아, 알리는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사람이었구나. 나는 이제야 그가 왜 사람들에게 영웅 대접을 받는지 알 것 같았다. 그러나.
대가는 참혹했어. 그는 챔피언 타이틀을 박탈당했고 3년 반 동안 경기조차 참가하지 못했으니까. 프로권투 선수에게 3년 반의 공백이란 네가 3년 반 동안 글자 한 자 들여다보지 않고 대학 시험을 보는 것과 마찬가지의 큰 타격이야. 하지만 알리는 이를 이겨내고 서른두 살에 여덟 살이나 어린, 헤비급 역사상 최고의 강펀치 조지 포먼을 꺾고 다시 챔피언이 됐단다. 1981년 은퇴하면서 그는 이런 말을 남기지.
"자유와 정의, 평등을 위해 싸운 사람으로 기억되길 바란다." -<시사인 제426호, 김형민 피디의 딸에게 들려주는 역사이야기 中
김형민 피디가 이 글을 쓴 이유는 우리나라의 야구선수 최동원에 대해 얘기하기 위해서였다. 사실 나는 야구에 관심이 1도 없고, 그래서 최동원이란 선수에 대해서도 전혀 알지 못한다.
최동원의 진가는 절정의 슈퍼스타이면서도 자기보다 못한 처지의 선수들을 잊지 않고 그 후배들을 위해 자신이 앞장서 나섰던 데에서 더 영롱하게 빛났단다. 1988년 그는 '프로야구 선수협의회' 구성에 나서. 선수들끼리 조직을 만들어서 그 권익을 지켜보자는 취지였지. 슈퍼스타 최동원이 협의회 결성에 앞장선 이유는 프로야구 2군 선수들의 아픈 현실을 알게 되면서였어.
"2군 포수가 내 공을 받아준 적이 있습니다. 수고했다고 고기를 사줬는데 얼마 만에 먹는 고기인지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알고 보니 그 선수 연봉이 300만원(당시 2군 최저 연봉)이었습니다"(박동희 야구 전문기자 인터뷰 중). 그 돈으로 2군 선수는 자신의 장비까지 사가며 발버둥치고 있었고 구단은 이들에 대해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지. 최동원은 이렇게 생각하게 돼.
"내가 최고 연봉을 받는 것도 뒤에서 고생하는 동료가 있기 때문이다. 이제 음지에 있는 동료들을 위해 내가 먼저 움직이겠다." 참 쉬워 보여도 세상에서 가장 힘든 생각 중의 하나지. 잘 나가는 이가 반대쪽 걱정을 한다는 건. -<시사인 제426호, 김형민 피디의 딸에게 들려주는 역사이야기 中
그렇다. 잘 나가는 이가 반대쪽 걱정을 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최동원은 단지 걱정만 했던 게 아니라, 움직이고자 했다. 그들을 위해서. 내가 이렇게 된 것도 그들이 있기 때문이다, 라는 걸 아는 사람이었던 거다. 그러나 그가 그렇게 움직이는 걸 싫어하는 사람들이 존재했다. 참 이상도 하지. 형편 나쁜 사람들을 돕는 행위가 자신의 불이익이 될 거라 생각하다니. 아니, 불이익이 아니다. 불이익이 아니라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는 것에 대한 우려인 것이다.
최동원은 선수협의회 결성에 발 벗고 나섰어. 하지만 제멋대로 선수들을 부리지 못할 것을 우려한 프로야구 구단들의 '악랄한'(이 표현은 조금도 과하지 않아)방해로 뜻을 이루지는 못했지. 선수협의회를 주동했던 최동원은 평생 벗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던 롯데 자이언트 유니폼을 벗어야 했고, 머지않아 은퇴해야 했단다. 한국 역사상 최고의 투수를 코치로 초빙하는 구단조차 거의 없었어. "감히 구단에 반항을 시도한 자"를 용납할 수 없었던 거지. 무하마드 알리에게 병역 기피자의 딱지를 붙였던 미국 정부처럼 말이야. -<시사인 제426호, 김형민 피디의 딸에게 들려주는 역사이야기 中
시간이 흘러 알리는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다시' 금메달을 받는다. 챔피언이었지만 흑인이란 이유로 쫓겨나 화가 난 알리가 강물에 던져버렸던 과거의 금메달이다. 그걸 훗날 다시 받게 되는 것. 그러나 최동원은 구단의 사과를 받지도 못했고 병상에 누운채 숨을 거뒀다고 한다.
부끄럽다.
우리는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 당시에 잘못인지 모르는 채로 어떤 일을 진행시켜버리다가 치명적 결과를 맞닥뜨릴 수도 있고. 물론 처음부터 신중하게 생각하고 고민해서 가장 최상의 결과, 모두가 좋아할만한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다면 더할나위 없이 좋겠지만,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에 그렇게 완벽한 과정으로 완벽한 길에 이르기가 어렵다. 그러나 그것이 실수였다면, 자신의 잘못임이 드러났다면, 그렇다면 사과를 하는 것이 옳다. 그리고 다음부터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구단은 최동원에게 사과하지 않았고, 어쩌면 자기 확신에 빠져 사과할 일을 하지 않았다고 생각할런지도 모르겠다. 부끄러운 일인데, 당사자는 부끄러운 일이라는 걸 모를까봐, 그게 더 겁난다.
그렇다면,
알리와 최동원은 왜 앞에 나섰을까? 도대체 어째서 자신의 온몸으로 그동안 자신의 성과를 부인하고 또한 멸시하는 것을 받아들여야 했나? 알리가 인종차별 반대에 앞장서지 않았다면 또 최동원이 2군 야구선수들의 이익을 위해 싸우지 않았다면 그들 개인의 삶은 평탄하게 흘러갔을 것이다. 그런데 왜, 굳이 불이익을 당해가며 그들은 행동하고 움직였을까?
얼마전에 읽은 [마션] 의 이 부분이 생각난다.
나는 그 답을 알고 있다. 어느 정도는 내가 진보와 과학, 그리고 우리가 수 세기 동안 꿈꾼 행성 간 교류의 미래를 표상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모든 인간이 기본적으로 타인을 도우려는 본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가끔은 그렇지 않은듯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 그렇다.
등산객이 산에서 길을 잃으면 사람들이 협력하여 수색 작업을 펼친다. 열차 사고가 나면 사람들은 줄을 서서 현혈을 한다. 한 도시가 지진으로 무너지면 세계 각지의 사람들이 구호품을 보낸다. 이것은 어떤 문화권에서든 예외 없이 찾아볼 수 있는 인간의 기본적인 특성이다. 물론 그러거나 말거나 신경 쓰지 않는 나쁜 놈들도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수십억 명의 사람들이 내 편이 되어주었다.
멋지지 않은가? (p.597-598)
또 [개인주의자 선언]에서의 이 부분도.
길 건너 통인시장이 보였다. 집에 있는 애들 생각이 나서 복잡한 시장통을 걸어 명물 기름떡볶이를 한 움큼 샀다. 그런데 등뒤로 한 여자분이 뛰어가며 다급한 목소리로 누군가를 불렀다. "윤아, 윤아." 그러다 어느 신사분과 부딪혔나보다. "죄송합니다, 아이를 잃어버려서요. 죄송합니다." 그러곤 아이를 부르는 목소리가 점점 멀어져갔다. 나는 내 새끼 줄 떡볶이를 든 채 멍하니 서 있었다. 그때 갑자기 떠올렸다. 이 범상한 무심함 때문에 우리가 잃은 것들을 말이다.
뒤늦게 나는 시장통을 뛰어 쫓아갔다. 아이가 멀리 가지 않았기를 속으로 빌고 빌었다. 서로 원조라고 주장하는 떡볶이집들을 지나고, 도시락을 든 채 반찬을 골라 담는 사람들을 지나, 시장통이 끝나는 곳에 그 여자분이 인형같이 자그마한 여자아이를 꼭 끌어안고 앉아 있었다. 나도 모르게 말을 건넸다. "애를 찾으셨네요. 다행이에요." 여자분은 환하게 웃었다. "네, 고맙습니다."
집에 돌아가며 생각했다. 한 개인으로 자기 삶을 행복하게 사는 것만도 전쟁같이 힘든 세상이다. 학교에서 살아남기 위해, 입시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직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일하며 아이를 키우는 고통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 아이가 다시 이 험한 세상에서 살아남도록 지키기 위해. 그런 개인들이 서로를 보듬어주고 배려해주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인가. 또 그렇기에 얼마나 귀한 일인가.
우리 하나하나는 이 험한 세상에서 자기 아이를 지킬 수 있을만큼 강하지 못하다. 우리는 서로의 아이를 지켜주어야 한다. 내 아이를 지키기 위해서 말이다. (p.278-279)
알리와 최동원이 행동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결심을 하고, 말을 하고, 행동에 옮기는 것. 이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니까. 또한 그들 개인이 움직여봤자 세상은 변하지 않았다. 멸시만 당하고 불이익만 당했지. 그러나 그들이 그렇게 행동했던 것은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쳤다. 한 사람이 큰 힘을 낼 수는 없지만, 그런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 큰 힘이 될 수는 있으니까. 시간은 오래 걸리겠지만, 가는 길은 힘들 것이고 그러다 숱한 장애를 만나겠지만, 또한 무수히 시행착오를 겪기도 하겠지만, 가지 않는 것보다는 가는 게 역시 낫다고 나는 생각한다. 문유석 판사도 자신의 글에서 그렇게 말했다.
팔짱 낀 채 `한계` `본질` `구조적인 문제` 운운 거창한 얘기만 하며 아무 행동도 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아무나 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진짜 용감한 자는 자기 한계 안에서 현상이라도 일부 바꾸기 위해 자그마한 시도라도 해보는 사람이다. 어떤 통속적인 미국 드라마를 보다가 아래 대사를 듣고 그 통찰력의 깊이에 놀란 일이 있다.
냉소적으로 구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어 Anyone can be cynical.
담대하게 낙관주의자가 되라구 Dare to be an optimist.(p.268)
나는 무서운 것도 많고 쪼그라들기도 잘하는 사람이라 담대한 낙관주의자가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렇지만 팔짱 낀 냉소주의자는 최소한 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그럴 수 있을지 여전히 모르겠다. 그래서 어제부터는 그런 생각을 했다. 실패도 두렵고 실수도 두렵다. 그러나 실패와 실수를 맞닥뜨렸다는 건 내가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거다. 비틀거리고 휘청거리겠고 쓰러지고 무너지기도 하겠지만, 실패와 실수가 겁나서 제자리에 있지는 말아야겠다고. 이런 생각을 하고서는 스스로 기특해서 머리를 쓰다듬었다. 으음, 나는 자기성찰을 할 수 있는 인간이야. 내가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인간이지. 잘 컸어...
그나저나, 이번호 시사인에 현대가 재벌3세의 인터뷰가 실렸던데(사회적 기업을 해서 화제가 된 인물-정경선-이란다), 문득 이런 재벌들은 어디가야 만날 수 있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니까 그 만난다는 게 데이트하고 싶다 이런 게 아니라, 존재의 확인이랄까. 얼마전에 내가 그 '존재를 아는' 부잣집 남자가 역시 부잣집 여자를 사귀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부잣집 남자는 나랑 관련1도 없고, 다시 말하지만 내가 그 '존재를 아는'것에 불과한데, 대한민국에서 평범한 대학에 다녔는데, 대체 어디서 부잣집 여자사람을 만나 사귀게 되었을까? 그들에겐 내가 모르는, 내가 전혀 알 수 없는 따로 만나는 루트가 있나? 아니면 이 평범한 대학 안에서 나 부자인데 으음, 저기서 다른 부자의 냄새가 나는군, 하고 서로가 서로를 알아보나?? 신기하네. 왜 내 주변엔 부자가 없지? 사귀었던 남자들중에도 부자가 하나도 없었고, 부자가 다 뭐야, 심지어 나보다 가난한 남자들이었는데...., 친구들 중에도 부자가 없고, 알고 지내는 사람들 중에도 부자가 없어... 어쩌면 이렇게 부자가 없지? 세상엔 이렇게 나처럼 부자 아닌 사람들이 수두룩한데, 왜 세상은 부자를 위해 굴러가지? 부자는 어딨지? 설마...내 주변인들중에 부자이면서 부자가 아닌척 서민 코스프레 하는 사람이 있는걸까? 뭐, 그렇다는 거다.
다이어트를 하겠다며 아침에 밥대신 샐러드를 먹고 왔는데, 크- 이거 ... 의미없네. 출근하자마자 배가 너무 고파서 일단 사과좀 먹고 그러다 또 배가 고파서 지금 한줌견과에 물 한 잔 마셨다. 이러다 또 금세 배고파 지겠지..샐러드의 의미는...뭐양? 없는 거양? 어제도 샐러드를 아침으로 먹고서 회사 와가지고는 유통기한 이틀 지난 초콜렛에다가(그것 밖에 없었엉..) 토스트에다가 견과류에다가 ... 점심 전까지 쳐묵쳐묵 했는데...... 샐러드는.....의미가 없는거닝? 아니, 샐러드에 닭가슴살과 베이컨도 들어갔는데...어째서 그렇게 의미가 없엉???? 샐러드, 너의 존재 가치는 뭐닝??? 아아, 허기, 나의 동반자여... 나에게 부자친구는 없지만 허기는 늘 옆에 있다...돌아서면 배고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