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지속되지 않기 때문에, 사라져 버리기 때문에 소중한 게 있다면 그게 바로 동심이 아닐까. 영화 《인사이드 아웃》을 보면서 가장 처음 눈물을 흘렸던 건, 라일라 안에 있던 '엉뚱섬'이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엉뚱섬이 무너져서 밑으로 와르르 사라져버리던 순간, 이제 '아이다움'이 없어졌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그게 그렇게나 슬펐더랬다. 아이들의 동심 혹은 순수한 마음이란 것은, 아이들에게 있을 때 가장 빛이 나고 아름답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 마음은, 어른이 되어서 되찾으려고 해도 잘 되는 게 아니다. 이건 비단 동심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나는 그림책을 잘 볼 줄 모르고 만화영화를 보면서 감동 받는 일이 거의 없다. 그러므로 이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으로 가고, 또 극장안에서 이 영화를 보면서 울었다는 것도 내게는 무척 생소한 일. 게다가 엉뚱섬이 부숴져서 울게 되다니. 나는 나도 모르는사이 아이들의 엉뚱한 면을 사랑하고 있었던걸까? 아니면 이제 라일라가 어른의 세계로 들어간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안타까웠던걸까?
이 영화를 만들게 된 계기가 '딸아이의 사춘기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당황했기 때문' 이라는 감독의 인터뷰를 어딘가에서 봤는데(시사인..이었겠지, 아마?), 그 사실을 알고 보니 더욱 감정이입이 잘 되었던 것 같다. 사춘기의 아이들, 이유없이 눈물이 나고 이유없이 화가 나는 아이들, 그러나 그런 아이들을 보며 대체 어떻게 대해야할지 몰라 주변에서 당황하는 어른들.
바람이 있다면, 나 역시 조카의 사춘기를 맞이하게 될텐데 그때 조카가 손을 내밀 수 있는 어른이 되는 것이다. 조카에게도 사춘기가 찾아올테고, 이러저러한 감정이 뒤죽박죽 찾아와 혼란스러울 때 그나마 이모를 떠올릴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모한테 찾아와 막 투정도 부리고 맛있는 것도 사달라고 하고 그랬으면 좋겠다.
엉뚱섬을 비롯해서 라일라의 마음 속에 있는 섬들은 하나씩 붕괴된다. 어떤 섬은 사라지는 속도가 느리고, 그 느린 섬은 다시 천천히 되살려지기도 한다. 되살려지는 섬은 붕괴되기 전의 섬과 다르겠지만, 그것이 더 '나쁜'것만은 아닐 것이다. 또 붕괴된 섬은 그 자체로 안타깝지만, 새로운 섬들이 그 자리에 생겨날 것이다. 기쁨과 슬픔, 소심함과 까칠함, 그리고 분노 외의 감정들이 아이의 마음속에 새록새록 생겨날수록(이전과는 다른 형태의 감정이야, 이게 뭐지?), 다양한 섬들이 다채롭게 생겨날 것이다.
사라짐 때문에 울었다면 나는 격려 때문에도 울었다. '기쁨'이 갇혀있는 곳에서 탈출하려고 할 때, 두 번이나 탈출에 실패해 절망할 때 찾아온 빙봉이 '한 번만 더해보자' 라고 했을 때, 나는 그게 너무 좋아서 또 울었다. 안될거야, 라고 절망하는 순간 내밀어지는 '다시 해보자' 라는 손. 그 손을 외면하지 않고 다시 잡는 것은 철저하게 '내 몫'일 것이다. 슬픔후에 찾아드는 감정이 기쁨일 수 있듯이, 모든 감정들과 생각들은 혼자 찾아들지 않고 또 앞으로 착실하게 걸어나가는 것도 나 혼자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감정들이 서로 도와가며 나 자신을 형성하듯, 나 역시 다른 사람들과 도와가며 지금의 내가 될 수 있는 게 아닐까.
주말에 침대에 누워 딩굴딩굴하는 게 좋고 술을 마시는게 달콤한 것은 평일 동안 노동으로 고단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그래도 힘든 노동은 가급적 안하는 게 좋겠지만, 힘들었기 때문에 쉼이 위로가 되는 게 아닐까. 기쁨이 기쁨일 수 있는 까닭은 그 전에 슬픔이 찾아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모든 감정들은 오롯이 그 하나만 존재했을 때 극대화되는 게 아니라, 다른 것들과 섞여 최대치가 되는 것 같다. 행복한 라일라름 형성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기쁨 뿐만은 아니었다. 까칠함과 소심함, 분노 그리고 슬픔이 그 안에 제대로 자리 잡아야 했다.
좋은 시간이었다. 영화 자체가 좋았고, 영화를 보고 우는 내가 좋았고 영화를 보고 나랑 같은 장면에서 눈물을 흘리는 칠봉이가 좋았고, 함께 영화를 보고 나와서는 '아 좋다 좋다 좋았지' 하는 것도 좋았다. 그리고 우리는 우산을 쓰고 타버나 드 포르투갈로 향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타버나 드 포르투갈>을 그간 세 번 가봤다. 지난 주말로써 네 번째가 되는셈인데, 이쯤되면 눈감고도 길을 찾아야 하는 게 아닌가 싶지만, 지도를 보고도 또 못찾았다. -_-
길치 방향치로 진짜 이 세상에서 짱먹을 것 같다. -_- 길찾기병신..
나는 내가 길을 잘 못찾고 방향 감각이 없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에, 그래서 낯선 곳에서 길을 찾는 것에 대해 스트레스가 별로 없다. 나는 뭐 길도 못찾고 방향감각도 없으니까, 하고 T맵을 켜놓고 천천히 찾아간다. 내가 약속장소에 처음 간다면 그래서 찾아 헤매는 시간까지도 고려한다. 이건 내게 그냥 일상 같은 거다. 이미 가봐서 익숙한 데가 아니라면 뭐, 찾아 헤매는 게 당연하다고 나로서는 생각한다. 또한, 누군가와 함께 갔었던 곳이라면, 거의 따라가는 수준이라 그 길을 내가 외우지 못한다. 뭐, 그것도 나로서는 내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별로 스트레스 안받는다.
만약 동행이 있는데 그 동행도 처음 가보는 길이라면, 나는 우리가 둘이 함께 헤매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거기에 대해서도 전혀 스트레스 받지 않는다. 티맵을 켜놓고 혹은 지도를 펼쳐두고 함께 보면서, 여기가 여기니까 이쪽으로 가면 되겠지? 하고 가면 되니까, 이것조차 우리가 함께 무엇을 해나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보통 여자들이 남자들보다 방향감각이 떨어진다고 하는데, 나로서는 이게 다 개소리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간 남자사람을 포함 여자사람까지, 애인이나 친구의 형태든 뭐든간에 함께 낯선 곳에서 길을 찾았던 적이 여러번인데, 그 때 가장 지도를 잘 보고 방향 설정을 잘 하는 사람은 여자사람 D였다. D는 내가 티맵을 켜든 지도를 켜든, 그게 뭐든지간에 딱 보기만 하고 손가락으로 방향을 가리켰다. 음, 이쪽이네, 음, 저쪽이네, 하고. 나로서는 일단 내가 있는 위치를 파악해야 하고 이쪽 저쪽으로 좀 걸어봐야 하고, 그래야 뭔가 바로 앞 길이 보이고 이런 식인데, 켜자마자, 보자마자 위치 파악이 되는 D는 신기함, 그 자체였다. 언니, 멋져! >.<
남자사람들 중에도 그런 사람이 없었다. 낯선 곳에서는 나랑 함께 멈추어서서 방향을 찾아보거나 지도를 들여다보며 이쪽인가? 저쪽인가? 헤매야 했다. 혹은 가다가 티맵이 알려주는 데서 벗어나면, 길가던 사람에게 방향을 물어야했다. 어떤 남자는 지도도 못보고 방향도 못찾는데 길을 묻는것도 안해서 내가 혼자 다 하느라 좀 짜증나게 만들기도 했다. 야, 지도 못보고 방향도 모르겠으면, 묻기라도 해라...
그런데 나의 칠봉이는 그간 내가 만난 남자들과 달랐다. 내가 가본 데니까, 하고는 칠봉이는 우산을 들고 내가 티맵을 들었다. 그리고 일단 내가 이끄는 대로 그가 따라왔다.................가 내가 또 티맵에서 벗어났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란 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보면서도 못 찾아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서 내가 칠봉이의 우산 든 굵은 팔뚝을 잡고 가다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어? 벗어났네? 우리 잘못가네?' 라고 하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나는 웃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칠봉이가 멈춰서서는 내가 잡고 있던 티맵을 쓰윽- 한 번 보더니, 아 이리로 나가서 저리로 가면 되네 하고 눈 깜짝할 사이에, 진짜 뻥안치고 보자마자, 방향을 잡는 거다. 이...이....이건 뭐지? 새로운 형태의 천재 출현이다!! 나는 약간 멘붕이 와가지고 어떻게 보자마자 아냐고 물었다. 그러자 이 길이 저기고, 하면서 얘기 하는데 아아 뭔가 뒤에서 후광이 막.... ♡ 멋져 >.< 그럼에도불구하고 나는 계속 머릿속이 멘붕이 되어가지고, 어어, 이 길은 못보던 길인데, 이리로 가면 안되는 거 아닌가, 내가 지난번에 이런 길로 간 것 같지 않은데, 하고 혼란스러워하고 있노라니, 우산을 든 칠봉이가 아예 티맵까지 들고 가서는 한 번 또 중간에 훅 보고, 응 잘 가고 있어, 이제 거의 다 왔어, 하는 거다. 어어, 진짜 나오려나, 했는데 진짜 가게가 똭- 나왔어. 대박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멋짐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오빠 멋져! >.<
그리고 레스토랑에 도착해 자리에 앉았는데 칠봉이의 한 쪽 어깨가 다 젖어 있었다. 나는 하나도 안젖었는데...오, 역시 이 오빠 멋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귀여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거기다대고 나는 '너도 나처럼 덩치가 적으면 우산 안에 쏙 들어올텐데' 뭐 이따위 드립 치고 있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여튼 도착해서 와인을 주문하고!!
비오는 날 와인이라니, 너무나 좋다좋다 이러면서, 프란세진야를 주문했다. 그간 나는 '프란세시냐' 라고 알고 있었고 그렇게 말하고 있었는데, 레스토랑의 메뉴판에는 '프란세진야' 라고 써있었다. 뭐가됐든 내가 먹고 싶어하는 그것이다.
저 위에 얹어진 올리브를 쫙쫙 펴 바른 다음에 반을 갈랐다. 반은 네 것, 반은 내 것. 너 반, 나 반.
프란세진야를 다 먹고나니 슝- 피리피리그릴치킨이 나왔다.
히융- 분해되기 직전의 피리피리그릴치킨. 사진을 찍고 나면 사장님께서 이 치킨을 해체해주신다.
겁나 맛있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짱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암튼 그래서 비오는 날 홍대입구에서 멘붕와가면서 걸었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맛있는 술을 마셨당. 좋음 ♡
나는 매사에, 일상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다. 매순간 행복의 요인을 잘 찾아내는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이런 내가 되게 좋은데, 그러므로 나는 이런 나에게 매순간 반하기도 한다. 먹고 싶은 거 말만해, 라고 나는 칠봉이한테 말하고 내가 다 사줄게, 라고 덧붙인다. 이렇게 할 수 있는 내가 완전 좋다. 한편, 그 남자는 지도를 한 번 쓰윽- 보고 길도 잘 찾고, 비가 아무리 내리쳐도 비 한 방울 안맞게 든든한 팔로 우산을 받친다. 심지어 영화를 보면서 나랑 같은 부분에서 눈물을 흘리기까지 한다. 나는 우리 조카들한테 맛있는 거 많이 사주고 싶어서 돈 벌고 싶은데, 이 남자한테도 맛있는 거 많이 사주고 싶어서 또 돈 벌고 싶어진다.
주말에 <마이리틀텔레비젼> 이란 프로를 보았는데, 거기에 무슨 유명하다는 바리스타가 나와서 커피를 만들어주는 게 나왔다. 그 밤에 나는 갑자기 커피가 막 마시고 싶어졌는데 카누를 타마셨지만 충족이 안돼...아, 이거 아니야, 이거 아니야... 그래서 오늘 출근길에 스벅에 들러서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시켜서는 샷을 추가해달라고 말했다. 그 향이 좌악- 내 코로 스며든 순간, 아, 이거야, 싶은 기분.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맛있는 걸 사주기 위해서 돈을 벌고 싶지만, 내가 먹고 싶은 걸 사 먹기 위해서도 돈을 벌어야겠다고 생각한다. 뜨겁고 진한 아메리카노가 간절해지면 언제든 까페에 들어가 뜨거운 아메리카노 샷추가요, 라고 말하면서 살고 싶다. 그렇게 살아야겠다.
그러려면 페이퍼를 그만 쓰고 이제 일을 좀 해야......되겠지...............( ")
어제는 로지 인스타에서 이런 사진을 봤다.
이 사진이 너무 좋아서 한참을 들여다봤다. 진짜 너무너무너무너무 좋다. 오래된 연인이 이렇게 마주보며 웃을 수 있다는 건 정말이지, 완벽하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