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중적 주체인 우리는 상황에 따라 가해자가 되기도 하고, 피해자가 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사회적으로 자신과 '다른' 사람과 어떻게 관계 맺고 대화할지에 대한 고민은, '강자의 과제'만은 아니다. (p.27)
나는 관념적으로 혹은 이론적으로 인간이 '다중적 주체'라는 걸 알고 있었다. 내가 어떤 상황에서는 기득권이 되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혹은 실질적으로 어떤 경우에 기득권인지에 대해서는 크게 인식하지 못하고 살았다. 기득권은, 기득권의 입장으로 살아가는 한, 어떤 부분에 문제가 있고 뭐가 잘못되어 있는지 인식하기 쉽지 않으니까. 그리고 이 책을 다시 읽기로 생각하고 책장을 넘기자마자, 내가 '서울에 살기' 때문에 이미 기득권에 놓여 있다는 걸 깨닫게 됐다.
서울에서 대전까지 가는 사람은 자기 경험과 거리 개념이 일치한다. 인식론적 혼란이 없다. 이때 사람들은 세상과 자신이 일치한다고 느낀다. 의문을 품을 필요가 없거나 의문을 제기하기 어렵다. 그뿐만 아니라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을 이해하기 힘든 위치에 서게 된다. 익숙하고 당연하니 자연스럽다고 생각하고 살면서 자기 경험이 보편이라고 여기기 쉽다.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근거는 그저 서울에 산다는 사실뿐이다. 우연히 얻은 기득권과 이 사실에 대한 무지와 둔감함이 몸과 생각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다. (p.9)
대전에는 공항이 없기 때문에 제주에서 대전으로 이동하는 건 무척이나 불편한 일이라는 사실을 이 책에서 말해주고 있다. 제주에서 대전에 가기 위해서는 서울에 갔다가 KTX 를 타고 이동하는 방법을 써야 한다고. 거리상으로는 서울보다 더 가까운 위치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울보다 더 오랜 시간과 불편함을 수반해야 한다고. 나는 한 번도 제주에서 대전으로 이동하는 것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다. 아마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앞으로도 생각해보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서울에 살며 대전까지 KTX로 한시간이면 된다는 생각을 갖고 살고 있고, 실제로 그렇게 대전에 가끔 간다. 내가 다중적 주체이며 어느 부분에서는 가해자 혹은 기득권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과 실제로 구체적 정황이 드러나는 것은 다르다. 다소 충격적이다. 나 역시 서울에 산다는 이유하나만으로 무지하며 둔감했다. 내가 무지하고 둔감하다는 사실 조차 모르는 채로 말이다.
이 우연히 얻은 기득권의 수많은 입장중에는 '남성'이라는 입장이 있을 것이다. 나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숱한 남자들을 만나왔다. 동료로서 친구로서 애인으로서 기타 여러가지 포지션으로. 학교에서 학원에서 아르바이트 하는 곳에서 직장에서 블로그를 통해서, 친구를 통해서, 가족을 통해서.. 여러가지의 방법으로 아주 많은 남자사람들을 만나왔다. 그리고 그들중 어떤 사람들과는 유독 가까이 지내며 많은 대화를 해보기도 했다. 그리고 그들중 대부분이 자신이 기득권에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채로 기득권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많은 남자 사람들의 말과 글에서 그들은 결코 여자 사람의 말을 있는 그대로 들어주려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여자사람들의 문제제기 조차 감정적이나 감상적이라는 이유로 무시하려고 하는 걸 많이 보았다. 남자로 살면서 자연스레 누렸던 모든 것들을 '여자도 그래야한다'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 상당한 반감을 표했다. 게다가 그들의 가장 큰 특징은 본인이 기득권이라는 입장에 놓여있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공평하고 객관적으로 세상을 본다고 생각한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객관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입장'에 놓여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채로.
나는 '남자는' 혹은 '여자는' 이라고 시작하는 대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만나는 '남자' 혹은 '여자'가 이 세상의 모든 '남자들'의 대표 혹은 '여자들'의 대표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내게는 그 사람, 하나하나의 개인으로 존재할 따름이다. 자, 예를 들어보자.
내가 만난 남자1은 좀 힘든 일이 닥칠때마다 다른 사람에게 미루고 뒤로 빠진다. 그때마다 번번이 너는 왜 그렇게 얌체같이 뒤로 빠지냐고 나는 말하곤 하는데, 그렇다고 해서 나는 '남자는 얌체같다' 라는 결론에 이르지 않는다. 다만, 얌체같은 A 가 있을 뿐이다.
내가 만난 남자2는 다같이 돈을 걷는 자리에서도 더 조금 내기 위해 자꾸만 이 변명 저 변명을 가져다댄다. 그렇다고 해서 나는 '남자는 짠돌이다' 라는 결론에 이르지 않는다. 짠돌이 같은 B 가 있을 뿐이다.
내가 만난 남자3은 함께 술을 마시다 금세 취하고 비틀거리고 헛소리를 했다. 그렇다고해서 나는 '남자는 술도 못마신다' 라는 결론에 이르지 않는다. 술을 못마시는 C 가 있을 뿐이다.
내가 만난 남자4는 자주 울었다. 그렇다고 해서 나는 '남자는 뻑하면 운다'는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 잘 우는 D 가 있을 뿐이다.
이 모든 사항은 여자사람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돈 내기 싫어하는 여자1이 있다면, 그건 돈내기 싫어하는 E 로 존재하는 것이다. 얌체같은 여자2가 있다면, 그건 얌체같은 F 로 존재하는 것이다. 술이 약한 여자 3이 있다면, 그건 술 약한 G 로 존재할 뿐이다. 잘 우는 여자4가 있다면, 그건 그저 잘 우는 H 일 뿐이다. 누군가의 어떤 성향이 '남자' 혹은 '여자'를 대변하지 않는다. 그런데 남자와 여자 모두에게 나타나는 성향들이, 유독 여성에게 나타났을 때, '여자들은~ '이라며 싸잡아 표현된다.
남성 중심 사회에서 개인으로서 여성의 차이는 의미가 없다. 모든 여성은 어머니라는 생각 때문에 여성은 다 같다고 간주된다. 그래서 한 여성의 실수나 무능력은 언제나 전체 여성을 욕 먹이는 일이 된다. (p.59)
나는 한 번에 두가지 일에 집중하지 않고, '사람들'에게 관심이 많으며, 술 마시기를 즐겨하고, 고기를 좋아한다. 남자들과 대화하는 것을 즐기며, 걷는 것을 제외한 운동은 좋아하지 않는다. 눈이 오는 걸 싫어하고, 역사에 무지하다.
그러나 내 여자사람 친구들 중에는 한 번에 몇 가지의 일을 동시에 하며, 동물에 관심이 많고, 술 마시는 걸 싫어하고, 채식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남자에 관심이 없고 수영하기를 즐기며 눈이 오면 까르르 거리고 역사에 큰 관심을 가진 친구도 있다.
그렇다면 여자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정확히 나랑 대치지점에 있는 나의 여자친구들과 나, 어느 한쪽은 여자가 아닌 것인가? 왜 한 두명의 여자로 '여자들은~'이란 말을 함부로 내뱉는걸까?
'마리 루티'는 자신의 저서 [하버드 사랑학 수업]에서 이런 말을 했다.
연애지침서에서는 남녀가 크게 다를 뿐만 아니라 연애에서 성공하려면 남자의 심리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고 합니다. 이것이 내가 가장 먼저 풀고자 하는 오해입니다. 나는 '남성 심리'란 없다고 말하겠습니다. 남자를 유혹하는 불변의 테크닉이란 없습니다. 서점에 이런 테크닉을 가르치는 책들이 넘쳐난다고요? 그것은 이런 테크닉이 실제로 효과가 있어서가 아닙니다. 바로 우리가 새로운 질서에 적응해야 한다는 사실을 순순히 받아들이기보다 남녀가 각기 다른 별에서 왔다고 주장하는 편이 훨씬 더 쉽기 때문입니다. (p.15)
그러나 어떤 사람들에게는 '남자와 여자가 다른 게 아니라, 너랑 내가 다른 거야' 라는 걸 주지시키는 게 무척이나 어렵다. 왜 개별적인 사람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일단 '여성'으로 인식할까? 왜 '일단 여자들은' 이라는 전제를 머릿속에서 지워내지 못할까.
경계를 만났을 때, 가장 정확한 표지는 감정이다. 사회적 약자들은 자신을 억압하는 상황이나 사람을 만났을 때 '감정적'으로 대응하기 쉬운데, 이건 너무도 당연하다. 감정은 정치의식의 동반자이기 때문이다. 감정이 없다는 것은 사유도 사랑도 없다는 것, 따라서 삶이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감정(e/motion)의 라틴어 어원은 자기로부터 떠나는 것, 나가는 것(moving out fo oneself) 즉, 여행이다. 근대의 발평품인 이성(理性)이 정적이고 따라서 위계적인 것이라면, 감정은 움직이는 것이고 세상과 대화하는 것이다. 감정의 부재, '쿨'함은 지배 규범과의 일치 속에서만 가능하다. 반응하는 것. 이것이 인간의 모든 느낌, 모든 즐거움, 모든 열정, 모든 생각의 근원이라고 생각한다. (p.34-35)
반응은 사회적 약자로 존재할 때 나온다. 서울에 사는 나로서는 제주-대전 교통의 불편함을 인식하지 못했다. 그들이 말을 해야 비로소 '아 그랬구나' 라고 깨달을 뿐이다. 그러므로 남자사람들이 '여자는~'이라고 대화하는 것의 문제를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여자는' 이라는 성별로 우리를 모두 퉁치려고 하는 데서 오는 부당함을,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내가' 드러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어젯밤에는 이 책, 정희진의 [페미니즘의 도전]을 읽다가 몇 번이나 부르를 떨려서 도무지 잠이 오질 않았다. 밤에 잠이 오지 않을까봐 낮잠도 안잤는데 그랬다. 하아- 왜 오래전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는 부르르 떨지 못했을까. 그때의 나와는 분명히 조금 더 달라진 것이리라. 또한 이 책의 34-35페이지 인용문대로, 나는 예전보다 지금 더, 세상과 대화하고 싶어진건지도 모르겠다. 아침 출근길에도 책장을 넘기면서 엄청 집중이 잘 돼 깜짝 놀랐다. 충동적으로 그 아침, 회사 동료에게도 이 책을 기프티북으로 선물 보냈다. 여동생에게도 이 책을 사줄테니 읽을래? 라고 문자를 넣으니 '나 아직 가방속에 언니책 넣고 다녀' 라고 하더라. 응? 아 그래~ 했다. 나중에 읽고 싶어지면 말하라고 했다.
지난 주말, 토요일에는 내 방을 청소했다. 침대도 쫙 밀어서 밑 먼지까지 삭삭 청소했고, 늘 방안을 답답하게 만들었던 옷걸이와 책상을 치웠다. 그러는 과정에서 여러권의 책들을 '새로' 발견했고 또 버리기도 했는데, 하아- 내가 마카오에 여행갔다 '포르투갈어'로 쓰여진 '오르한 파묵'의 책을 샀다는 걸, 이번에 책장을 정리하며 새삼 깨달았다. ㅠㅠ
하아- 너의 존재 이유는 무엇이냐. 너는 내 책장에서 어떤 역할을 담당하고 있느냐. 나는 너를 어떻게 대해야 하느냐. 나는 너와 언제까지 함께해야 하느냐. ㅠㅠ
고등학교시절 일본어 교과서도 책상에 그대로 꽂혀 있었다. 사실 이 책을 오래오래 가지고 있었던 이유는, 고등학교때 일어 점수가 높았던 만큼, 언젠가 다시 공부해서 일어를 마스터해야지~ 라는 소박한 목표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인데, 고등학교 졸업하고 벌써....20년이 지났...지만 나는 이 교과서를 한 번도 들춰보지 않았으므로.....그냥 내다 버렸다. 버리기전에 책을 펴보고 놀랐다. 아! 이토록 공부 잘하는 티가 나는 필기라니!!
그렇지만 이젠 안녕~
주말에 오랜만에 만난 엄마와 아침 간식타임을 가졌다. 만두는 내가 구웠다. 너무 맛없어서 깜짝 놀랐다. 엄마는 맛없어서 못먹겠다 하셨다.
일요일 낮, 일자산을 찾았고 한 번도 내려가보지 않았던 곳으로 내려가 새로운 둘레길을 가보았다. 와- 좋더라.등장인물은 나와 동행한 남자사람. 허락 받아 올리는 그의 뒤태.
일요일 밤, 칠봉이와 나는 깔깔거리며 웃던 대화를 하던 중에 어찌저찌하다보니 여성의 낙태와 성폭행에 대한 무거운 이야기로 옮겨가게됐다. 대화가 끝나갈무렵, 칠봉이는 내게 자신이 좋아하는 그림이라며 그림 한 장을 전송해주었다.
나는 이 그림을 받고 '좋다'고 말했다. 뭐가 좋냐고 묻는 칠봉이에게, 이 그림도 좋지만 이 그림을 당신이 보내줘서 더 좋다고. '마야 안젤루'로 검색하니 몇 권의 책이 뜬다. 내가 아직 한 번도 읽어보지 못한 책들이고, 그러므로 내가 읽어보야아 할 책이 또 생겼다.
아침엔 이런 선물을 받았다.
안그래도 립스틱을 하나 사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무려 세 개나 들어있는 립스틱이라니!! 꺅 >.< 완전 좋아서 헤죽헤죽거렸다. 그리고 당장 박스를 꺼내 하나하나 뚜껑을 열어보았다.
색이 다 다른데 내가 사진을 너무 못찍어서 뭔가 다 같은 색의 립스틱 같네 ㅋㅋㅋㅋㅋ 암튼 이거 받고 너무 신나서 이중에 하나를 발라보았다. 뭔가 발색된 입술의 인증샷을 찍어 올리고 싶었지만, 셀카를 찍으려고 보니 오늘은 너무 얼굴이 참....거시기하더라. 아마 어제 잠을 못자서 그런것 같다. (응? 정말?) 여튼 그러니 입술 인증샷은 생략.....
방청소를 했고, 그러다가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책'의 책장칸을 옮겼다. 위치를 바꿔 책장 옆으로 위치한 화장대 바로 옆으로.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며, 사랑하고, 두고두고 읽을 책들이 놓인 책장. 최근에 이 책장에 [지평] 과 [스토너] 가 추가되었다.
옆에 빈 공간을 남겨두었다. 또 어떤 책들이 추가될지 모르니. 사실 '필립 베송'의 [이런 사랑]은 이 책장에서 뺄지 말지 고민중이다. [포기의 순간]처럼 좋진 않아서...
당연히 이 책장에 꽂혀야 할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는 지금 어디에 가있는지를 모르겠다. 내가 회사에 한 권, 집에 한 권 뒀었는데 그걸 다 어디에 뒀는지 몰라 다시 샀고, 그런데 다시 산 책들도 지금 어디로 가있는가....
줌파 라히리의 모든 책들, 올리브 키터리지, 해럴드 프라이의 놀라운 순례, 곰스크로 가는 기차, 지평,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스토너, 포기의 순간. 그리고 사랑의 미래. 사랑의 미래는 사실 책도 책이지만, 이 품절된 책을 읽고 싶다는 나의 한마디 말 때문에 구해서 보내준 그 사연이 좋아서 소중한 책장에 꽂히게 됐다. 게다가 이 책엔 밑줄도 많이 그었지만, 누군가에게 읽어주기도 했던 사연이 담겨 있다. 책 자체로 특별한 사연이 담긴 그런 책이랄까.
나는 이제 매일, 출근준비 한다고 화장할 때마다 화장대 옆에 놓인 이 책들을 마주하게 될텐데, 오늘은 물끄러미 책들의 목록을 보면서, 아 이 책들을 다 읽은 사람이라면 나를 파악하는 게 정말 쉽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 책들에서의 공통점을 찾아냈다. 패턴이라고 해야하나.
포기의 순간, 지평, 해럴드 프라이의 놀라운 순례,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
자신이 가장 간절히 원하는 것에 닿으려고 하는 책, 그렇게 만드는 책들.
줌파라히리의 책들 그리고 올리브 키터리지, 곰스크로 가는 기차,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나의 일상을, 나의 생각을, 나의 사랑을 그 무엇보다 소중히 생각하게 만드는 책들, 나 자신을 들여다보라고 하는 책들. 그리고 우리가 늘 사랑하는 사람들과 어떤 식으로든 관계를 맺고 있다고 말하는 책들.
출근길, 양재역에서 내려 5번 출구로 나와 회사를 향해 걸으면서, 이 책장에 [빨래하는 페미니즘]과 정희진의 책을 추가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침에 고추장을 넣고 밥을 비벼먹고 왔는데 방금 또 배가 고파서 삶은 달걀 하나를 깨먹었다. 점심때는 밥을 먹고나서 꽃을 몇 송이 사와 화병에 꽂아야겠다. 날씨가 좋다. 둘레길에 같이 가보자고 친구에게 문자메세지를 보냈다. 이런 모든 내 일상을 사는 나는 그저 나일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