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일요일을 마무리하는 페이퍼는 아름답게 가보자. 아름답게 가기에 앞서, 이 페이퍼에는 '파트릭 모디아노'의 소설 《지평》에 대한 스포일러가 대박 있음을 밝혀두는 바이다. 에헴. 킁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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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인 어제. 친구와 영화를 보기 위해 광화문엘 갔다. 여차저차 조금 일찍 도착한 나는, 잠깐 극장 근처의 까페에 들러 읽던 책을 마저 읽기로 했다. 요즘엔 책읽기가 무척 더뎌 얇은 책 한 권을 읽어내기가 꽤 시간이 걸린다. 작정하고 까페에 가 앉아 읽지 않으면 도무지 책에 집중할 시간이 없다. 여튼, 그래서 나는 까페에 가 아메리카노를 시켰는데, 직원이 내게 깔끔한 맛을 원하는지 진한 맛을 원하는지 물었다. 응? 나는 깔끔한 맛을 택했는데, 씨발, 이제 앞으로 깔끔한 맛 안먹을라고 한다. 이 까페에서는. 맛이 찝찌름하다. 어떤 커피에서는 신맛이 나곤 했는데, 이 까페의 깔끔한 아메리카노는 그 신맛이 났고, 나는 그게 별로였다. 많이 마시지 않은 거라 가장 작은 컵에 시켰는데, 4,100원씩이나 하더라. 맛도 구려. 여튼 투썸플러스 아메리카노 깔끔한 맛은 내 스타일 아닌걸로...
그리고 책을 읽다가 곧 기분이 좋아지고 말았다. 아, 이토록 아름다운 문장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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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그날의 날씨를 또렷하게 기억한다. 쌀쌀하고 맑고 햇볕 좋은 오후, 겨울중에 찾아오는 봄, 그가 특히 좋아하는 계절, 1월이나 2월에 불규칙한 간격을 두고 단 며칠만 찾아오는 그런 날. (p.155)
날씨는 누구에게나 찾아든다. 가만히 있어도 온다. 싫다고 도리질을 해봐도 날씨는 내 앞에 있다. 내 주변에 각자의 온도를 가지고 있다. 어떤 날은 바람이 불 것이고 어떤 날은 유독 햇볕이 강할 것이다. 이 책의 화자인 보스망스는 특히 좋아하는 계절에 대해 얘기한다. 겨울중에 찾아오는 봄, 이라고 그 날씨를 표현한다. 이 감각과 기억이 너무 아름다워 지금 여기 이 까페에서, 이 쌀쌀한 날씨에, 뜨거운 커피를 옆에 두고 읽기에 정말이지 맞춤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보스망스는 전혀 좋지 않은 부모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있고 그 부모로부터 도망치고 싶어한다. 그런 와중에 만난 마르가레트는 역시 한 남자로부터 도망치고 있었다. 누군가로부터 도망치다 서로를 만나게 된 그들의 젊은 시절이, 사십년이 지난 지금 보스망스에게 떠오른다. 마르가레트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그녀는 여전히 살아있을까, 어디에 있을까, 어디에서 어떻게 어떤 모습으로 있을까.
어제였나. 친구와 얘기하다가 '평범하기가 가장 어렵다'는 얘기를 했었다. 양가 부모가 다 살아있는 가정에서 태어나 모자란 것없이 사랑을 듬뿍 받으며 세상이 정해놓은 코스를 차근차근 밟아 적당한 직업을 가지고 적당한 월급을 받으며 적당히 살아가는 일. 이 일이 어릴때부터 우리가 알고 있는 평범한 여느 가정의 모습일텐데, 그러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살다보면 알게된다. 함께 하는 것이 불행해 따로 떨어져 살기로 결정한 부모, 준비물 챙겨가기에는 빠듯한 가정 형편, 사랑을 주기에는 너무나 바쁜 부모, 대화가 부족한 가족들, 한 가족의 밑빠진 독을 언제나 대신 채워주는 다른 가족 구성원. 차라리 이 모든걸 다 버리고 싶어진다는 생각이 드는 그런 가족의 모습을 한 가정이 많다는 것을, 이제는 나도 알고 있다. 보스망스의 이런 생각이 보여주는 그런 가족의 모습이 흔하지 않다는 거다.
대체 어떤 계기가 있어야 우리는 이 세상을 살면서, 잘 태어나 잘 자란 사람들, 자신 있는 입술과 눈빛으로 부모에게 사랑 받았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서 보이는 그 한결같은 자신감과 적자嫡子다운 당당함을 가질 수 있는 것일까? 근본적으로는 푸트렐 박사나 이본 고셰나 꼬맹이 페터나 당신이나 나나 모두 같은 세계에 속해 있었다. 그건 어떤 세계였을까? (p.169)
오래전 회사에서 같이 근무했던 여직원은 말없이 회사를 그만두었다. 무언가 잘못했다는 지적을 받고 혼나는 게 싫어, 상사 몰래 상사의 자리로 가 서류를 고쳐놓기도 하는 직원이었다. 착하지만 답답했던 친구로 기억하는데, 그 친구는 내게 여러번 이런 말을 했었다. 그 당시 나를 '언니'라 불렀는데,
언니 보면 사랑 받고 자란 티가 확 나요
라고. 사랑 받고 자란 티가 난다는 건, 대체 뭘까? 그걸 어디서 어떻게 느낀 걸까? 누군가를 보고 그렇게 느꼈다는 건 본인이 그렇게 살지 않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알아볼 수 있다는 걸까? 그렇다면 그 친구는 사랑받지 못한 채 살고 있다는 걸까? 그때까지 거기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다가 그 친구가 회사를 말없이 관두고 한참 시간이 지난 후에야 어쩌면 그녀에게는 사랑을 받아본 기억이 없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그녀의 몇가지 행동들을 떠올리며 할 수 있었다. 어제 책의 저 부분을 읽으면서 갑자기 그 직원이 떠올랐다. 그 직원이 내게서 본 건 한결같은 자신감과 적자다운 당당함 이었을까. 그 친구에게 나는 잘 태어나 잘 자란 사람에 속한 게 아니었을까. 나는 간혹 식구들과 그런 대화를 한다. 우리같은 평범한 가정이 세상 천지 어디에도 없는 것 같아, 라고. 세상 천지 어디에도 없다면, 그건 평범한 것과는 거리가 먼 걸까?
금요일에 엄마와 둘이 외출하고 오면서 오래전에 사주 본 얘기를 했었다. 엄마는 내가 사주를 봤단 말에 쓸데없는 짓을 했다며 찡그리셨는데, 그 돈 있으면 맛있는거나 사먹으란 거였다. 그런 걸 왜 보러 다니고 왜 믿는 거냐고. 나는 그걸 믿는다기 보다는, 나를 알지 못하는 사람과 나에 대한 얘기를 하는 데서 오는 일종의 치유 같은 거라고 얘기했다. 막상 봤다고 하니 궁금한지 엄마는 이것저것 물어보셨다. 그러다가 나는 그런 얘기를 했다. 나는 부모자리가 좋대, 라고. 그러자 엄마는 말씀하셨다. 니가 무슨 부모자리가 좋아, 우리는 돈도 없고 너한테 물려줄 유산도 없는 부족한 부모인데, 라고. 그래서 내가 말했다.
엄마, 내가 인생의 목표가 돈을 많이 모아 부자가 되는 거라면, 엄마랑 아빠가 나쁜 부모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었겠지. 그렇지만 내 인생의 목표는 돈을 많이 벌어 부자가 되는 게 아니고, 나는 유산 같은건 받을 생각도 안해. 내가 돈 벌 능력이 있으면 나는 그 능력으로 돈 벌어서 내가 먹고 싶은거 먹으면서 살거야.
내 인생의 목표는 돈을 많이 벌어 부자가 되는 게 아니다. 돈 많이 벌어 큰 집을 사고 싶은 것 같은 것도 아니다. 나는 그저 늙어서도 내 능력으로 돈을 벌어 그 돈으로 먹고 사는 데 지장이 없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다만, 소주를 마시고 싶다면 소주를 마실 수 있을 만큼의 돈을 벌고, 와인을 마시고 싶다면 와인을 마실 수 있을 만큼의 돈만 벌면 된다. 그러다 조카나 동생들 같은 내가 무한정의 사랑을 베푸는 사람들에게 맛있는 걸 사주고 살 수 있으면 된다. 그러므로 가진 게 없어서 물려줄 거 없는 부모가 나쁜 부모라는 생각은 안한다. 나는 엄마에게 말했다.
좋은 부모지 엄마, 내 여동생과 남동생같은 동생들은 세상 천지 어디에도 없더라고. 그런 동생을 줬는데 완전 좋은 부모지.
엄마는 그건 늬들이 각자 열심히 살아서 그런 거라고 했다. 뭐, 훈훈한 대화였다. 아, 근데 이런 얘기를 하려고 한 게 아니었는데..왜 이야기가 이렇게 흘렀을까.....
나는 어제 외출해 집으로 돌아가는 길, 이 책을 마저 읽는다. 저 위에 인용한 문장처럼 아름다운 문장에 넋을 잃긴 했지만, 이 책이 아름다운 책이라는 생각은 마지막을 읽고서야 들었다. 지하철에서 내렸는데 두장쯤이 남아, 역사에 있는 벤치에 앉아 내처 읽었다. 그리고 아- 벅차올랐다. 이 소설은 아름답다고, 나는 가슴에 품고 싶어졌다.
보스망스는, 사십년 후, 마르가레트를 찾기로 한다. 그녀가 있다는 곳의 위치를 알게된 후, 거기까지 '걸어'가기로 한다. 해럴드 프라이의 순례가 생각났다. 이제 나이가 많아져버린 그에게 걸음은 힘겹지만, 그는 조금씩 그녀가 있는 곳을 향한다. 아직 그곳에 있는 사람이 '그녀'인지 확실하지 않다. 거의 근처에 이르렀을 때, 그는 한 청년에게 길을 묻는다. 그녀는, 그녀일까?
"라디즈니코프 서점이라고 아십니까?"
그는 남자에게 영어로 물어보았다.
"네, 잘 알죠."
"서점 주인이 여자인가요?"
"네, 아마 프랑스 사람인 것 같아요. 독일 말을 할 때 프랑스 억양이 약간 들리거든요. 아니면 러시아 사람일지도 ‥‥‥"
"서점 단골이세요?"
"이 년 전부터요. 주인 여자가 사비니 광장 쪽에 있던 러시아 서점을 인수하고 이쪽으로 옮겨왔어요."
"그런데 서점 이름이 왜 라디즈니코프랍니까?"
"옛 러시아 서점 이름을 그대로 쓰는 거예요. 전쟁 전부터 있던 서점이죠."
남자 자신은 미국인인데 몇 년 전부터 베를린에서 살고 있다고 했다. 집은 그곳에서 멀지 않은 디펜바흐 가 인근이라고 했다.
"거기 가면 꽤 흥미로운 베를린 관련 책과 자료 들이 있어요."
"주인 나이가 몇 살쯤 돼 보이던가요?"
"선생님 나이예요."
보스망스는 이제 그녀의 나이가 기억나지 않았다.
"가족은 있던가요?"
"아뇨, 제 생각에는 혼자 사는 것 같아요." (p.182-183)
아, 그는 이제 그녀를 만나러 가는 것이다. 사십 년만에.
잠시 후 그는 서점으로 들어갈 것이다. 어떻게 말문을 열어야 할지 잘 떠오르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그를 알아보지 못할지도 모른다. 혹은 그를 잊었을 수도 있다. 사실 두 사람의 행로가 포개진 것은 아주 짧은 동안이었다. (p.183)
그가 그녀가 있는 서점의 문을 열기전.
오랜 세월 그는 마르가레트가 벌써 죽었다고 생각했었다. 그럴 리가 없다. 그래, 그럴 리가 없다. 우리 둘이 태어나던 그래. 이 도시를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잔해 더미에 불과했던 그해에도 공원 저 구석 폐허 사이에서는 라일락이 꽃을 피웠다.
너무 많이 걸었더니 피로했다. 하지만 이번에야말로 평온한 느낌과 함께. 그가 어느 날 떠나온 그 장소 그 지점으로 같은 시간 같은 계절에 돌아왔다는 확신이 들었다. 마치 시계의 두 바늘이 정오가 되면 하나 되어 만나는 것처럼. 그는 공원에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외침 소리와 옆에서 들리는 나직한 대화 소리에 몸을 실은 채, 반은 깨고 반은 잠든 듯한 상태로 부유하듯 걸었다. 저녁 일곱시다. 로드 밀러는 서점 주인이 밤늦도록 문을 열어둔다고 했다. (p.184)
서점안에 마르가레트는, 서점 문을 열고 들어오는 보스망스를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을까? 그녀는 그를 보고 무슨 생각을 할까? 나는, 며칠전에 친구에게 읽어준 '이광호'의 《사랑의 미래》 마지막 부분을 떠올렸다.
나는 당신을 기다리지 않겠지만,
내 걸음이 당신의 미래에 이르게 된다 해도
당신 놀라지 말아요. (p.237)
마르가레트에게 바로 위의 문장을 속삭여주고 싶었다. 놀라지 말아요, 보스망스가 당신 서점의 문을 열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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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날 본 영화는 '마리앙 꼬띠아르' 주연의 《내일을 위한 시간》 이었다.
영화속 여자는 우울증을 앓다가 직장에 복귀하려고 하는데, 직장의 사장은 직원들에게 '그녀의 복귀를 선택할 것이냐 너희들의 보너스를 선택할 것이냐' 의견을 물었다. 보너스까지 챙겨주며 한 명의 직원을 복직시키는 것 둘 다를 할 수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만큼의 돈은 없다, 는.
거기에서 보너스를 선택할 것이다 라고 말을 하는 사람들이 나쁜 사람들이 아니다. 애초에 그런 선택지를 준 윗대가리가 나쁘다. 사람들이 그런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는 굉장히 당연한 거니까. 그녀는 사람들을 찾아가 자신에게 표를 달라고 설득한다. 보너스 대신 나를 선택해줘, 나도 생계를 위해 돈을 벌어야 해. 그러나 그녀도 그 말이 얼마나 닿기 힘든 말인지를 안다. 그들이 받기로 한 보너스의 금액은 크다. 일년치 전기세와 수도세가 해결되는 돈. 게다가 그들 나름의 사정도 있다. 집을 수리해야 하고 한 집안의 가장이라 생활비가 빠듯하고 등등. 그런 와중에 그 보너스를 포기해달라고 말하는 자신이 거지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어떤 사람들은 당연히 너를 선택할거야, 라고 해주지만 어떤 사람들은 미안하지만 난 보너스를 선택해야 해, 라고 말한다. 어떤 사람들은 보너스를 선택했다가도 그녀를 보고는 도저히 마음에 걸린다며 그녀를 선택하기로 마음을 바꾸기도 한다. 이 모든 상황들에 그녀는 그들 모두에게 얘기한다.
보너스와 나 중에 선택해야 한다고 강요한건 내가 아니야.
그러나 마찬가지로 함께 일했던 직원들 역시 대답한다.
보너스와 너 중에 선택하길 강요한 건 우리가 아니야, 라고.
자, 일단 나의 경우. 지금의 나라면 당연히 그녀의 복직에 표를 줄 것이다. 나는 술을 마시고 고기를 먹고 부모님께 생활비를 드리고 엄마의 비자금을 조금 찔러주는 정도의 삶을 살고 있으므로. 그렇지만 만약 내가 지금보다 더 형편이 어려워진다면, 그래도 그 편이 더 인간적이란 이유로 동료 직원의 복직에 손을 들어줄 수 있을까? 지금은 '그러는 쪽이 낫다'고 생각하지만, 내 수중에 가진 돈이 없어 한푼이 아쉬울 때도 역시 마찬가지의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아니, 나는 그러지 않을 확률이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너스를 포기하고 너를 선택할게, 를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자신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선택의 기로에서 '너'가 아니라 '나' 혹은 '우리 가족'을 택한 사람들이 나쁜 사람들이라고 할 순 없는 것이다. 그들을 설득하러 다니는 그녀조차도 그들에게 '네 선택을 충분히 이해해'라고 말한다.
왜 윗대가리 새끼는 그 선택을 직원들에게 넘겨버리는가. 왜 그것을 직원들의 의견을 반영하여 결정하는 것인가. 늬들이 언제 다른 일에 직원의 의견을 반영한 적이 있느냐. 아니, 애초에 이것은 직원의 의견이 아니다. 니가 준 선택지중 하나일 뿐이지. 아니, 그것은 선택지중 하나라고 볼 수도 없다. 사람들이 무슨 선택을 하든 네가 가지는 것은 같으니.
그녀는 우울증을 앓고 있고, 이점이 나를 몹시 힘들게 했다. 사람이 어떤 고통 앞에, 어떤 병 앞에 힘들어 할때, 우리는 그 사람에게 '무슨 그따위 문제로 힘들어하냐' 라고 말할 수 없다. 우린 언제나 자신이 가진 문제가 가장 크게 느껴지는 법이니까. 또한 아픈 사람에게 엄살 떨라고 말할 수도 없다. 그 사람에겐 절실한 아픔이니까. 역시 그녀가 우울증을 앓고 절망 속으로 빠지는 것이 그녀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도 안다. 그런 상황속, 직업을 잃게 될지 모른다는 절망과 사람들이 보너스를 선택했다는 것, 작업반장이 직원들에게 압박을 가한다는 것 모두 그녀를 우울하게 만들 것이다. 그러나 그녀가 번번이 약에 의지하고 울고 포기하고 주저앉는 것을 보는게 내게는 몹시 힘겨웠다.
그녀는 혼자가 아니었다. 그녀를 기꺼이 돕겠다고 말하는 친구들이 있었고, 번번이 그녀를 일으켜세워주는 남편이 있었다. 남편은 언제나 그녀의 옆에서 조금만 더 하면 된다도 격려해주고 넘어지면 일으켜주고 울면 안아주었다. 사랑한다고 속삭여 주기도 했다. 누구라도 네 상황이라면 절망에 빠질 수밖에 없다고 말해주기도 한다. 그러므로 나는 네가 그렇게 주저앉는 것을 이해한다고. 그러나 그녀는 울다가 남편에게 말한다.
우리 헤어질 것 같아.
남편은 그녀에게 무슨 말이냐 묻고, 여자는 남편에게 '당신은 나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 동정하는 거잖아. 이렇게 오래 살 순 없어. 당신은 4개월동안 섹스도 못하고 살 수 있어?'
남편은 '앞으로 할거잖아' 라고 말한다.
그럼에도불구하고 그녀는 안정제 한통을 입안에 다 쳐넣는다. 하아- 진짜 힘들다.
한결같은 사랑으로 그녀를 보아주고 돌보아주고 격려를 준다는 것은 정말이지 위대한 일로 생각되어졌다. 같은 상황에서 내가 그럴 수 있을지 자신할 수가 없는 거다. 나는 하루에도 몇번씩 바스러지는 멘탈을 가진 사람에게 그때마다 번번이 사랑한다고 속삭여줄 수 있을까? 그런 위대한 사랑을 내가 가질 수 있을까? 나는 내가 먼저 지쳐 나가 떨어지지 않을까?
그녀는 잘싸웠고, 자신이 잘싸웠음을 받아들였다. 자신이 잘 싸웠다는 걸 받아들인 이상, 아마 다시 시작하는 일도 이제는 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녀가 잘 싸울 수 있었던 건 그녀가 혼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잘 싸울 수 있기 위해서라도 누군가와 함께해야 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그러므로 사십년이 지나도 당신에게 가기 위해 걸음을 옮기는 걸지도 모르겠다.
일전에 친애하는 측근님의 생선구이 포스팅을 보고 참을 수 없는 지경이 되어서 토요일에 친구와 드디어! 생선구이를 먹으러 갔다. (당신의 밥상이 내게 미친 영향이 이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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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으면서 너무 맛있고 좋아가지고 막 흥분했다. ㅎㅎ 그리고 좋아하는 사람, 이걸 맛있게 먹어줄 수 있는 사람과 함께 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생선구이 만으로 소주를 내내 마실 수는 없다. 우리가 더 오랜 시간 얘기하며 소주를 더 많이 마시고 취하기 위해서는 2차는 다른 곳을 알아두는 게 좋을 것이다. 암튼 진짜 조낸 맛있었다. 행복할 지경이었음 ♡
며칠전에는 설거지하다가 또 빡이 쳤다. 나는 설거지를 할때면 곧잘 빡이 치곤하는데, 설거지는 진짜 세상에서 제일 싫어.. 가끔은 진짜 설거지를 할때면 다른건 다 필요없고 '내가 앞으로 설거지는 맡아서 다할게' 하는 사람에게 확 시집가버리고 싶은 심정이 된다. 못생겨도 된다. 내가 예쁘니까. 돈을 못벌어도 된다. 내가 버니까. 섹스를 못해도 된다. 안해도 살 수 있으니까. 다만 설거지만큼은 진짜 빠짐없이 꼭, 제대로, 자기가 다 맡아서 한다면, 나는 정말이지 시집 갈 생각도 있는 것이다!!!
금요일에는 네시쯤 밥을 다 먹었고, 일자산을 그때 갈 예정이어서 좀 초조해졌다. 겨울이라 해가 빨리 지고 어두워진 산은 무섭기 때문이다. 아니나다를까 아빠는, 야 해 떨어지기전에 서둘러야 할 것 같은데, 하셨다. 그래서 나는 안그래도 그럴거라며 아빠에게 '그래서 말인데 아빠, 설거지는 다녀와서 할테니까 그냥 둬요' 라고 했다. 아빠는 그래그래, 라고 하셨는데, 이 때 내 앞에 앉아 밥을 먹던 남동생이 말했다.
누나, 설거지는 내가 할게. 얼른 다녀와.
아.................진짜 울트라캡숑 나이스짱 멋진 동생이다. 남동생은 내가 설거지를 진짜 우라지게 싫어한다는 걸 알고 가끔 지가 설거지를 한다. 내가 할게, 하면서. 매번 그러는 게 아닌게 좀 문제지만 여튼 잘하는 편이다. 산에 오르면서 생각했다. 내 남동생은 진짜 멋지게 잘 자랐다고. 이런 누나를 만나 교육 제대로 되어있다고. 후훗.
아, 이렇게 쓰는 사이에도 시간은 째깍째깍 잘도 가는구나.
마지막으로,
지평이 너무 좋아,
오랜만에 책을 읽어 보았다.
http://youtu.be/6NLWS0X7auU
오늘은 '난 네가 병신짓을 해도 좋아' 라는 말을 들었는데, 이게 욕이여 칭찬이여... 방점이 병신짓에 찍히는거여 좋아에 찍히는 거여....말한 이는 대답 대신 웃기만 했다. 젠장, 듣는 나는 방점을 어디에 찍어야 돼, 왜 자꾸 병신짓에만 찍을라고 하냐, 나는.. 하아-
(2014/01/05 06:10 어제 저녁에 작성한 《빨간 모자, 울음을 터뜨리다》에 관한 글은 내렸습니다. 댓글 달아주신 분들께 죄송합니다. 역시 그정도의 용기가 아직 제게 부족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