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는 여동생 집에 다녀왔다. 여동생이 만들어준 스파게티를 먹고 또 여동생이 만들어준 닭볶음탕을 맛있게 먹고 여동생과 함께 커피를 마시러 여동생이 추천하는 까페로 향했다. 가끔 우리에겐 오롯이 우리 둘만이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필요한데, 그 대화들은 거창한 것들이 아니다. 조카에 대한 것 부모님에 대한 것 친구들에 대한 것 그리고 오로지 우리 자신에 대한 소소한 일상들로 우리는 주거니 받거니 대화를 하면서 웃거나 함께 빡쳐한다. 지난번에 만났을 때는 내가 얼마나 행복한지 또 기분이 좋은지를 얘기했었는데 이번에 만나서는 내가 우울했던 얘기는 하지 않았다. 대신 여동생이 남편과 아이와 함께 텔레비젼 본 얘기를 해줬다. 가족이 함께 모여 텔레비젼을 보는데 텔레비젼에서 출산에 대해 다루고 있었다고 했다. 아이를 낳는 장면이 보여지고 산모가 힘을 주고 또 아이의 머리가 보여지는 것들에 대한 장면이었는데, 자연분만을 했던 동생은 그 장면에서 자신이 아이 낳을 때 아팠던 것을 비롯해 그 출산 당시의 경험이 생각나 눈물이 핑 돌았다고 했다. 그러다 혹시 이사람도 그런가 싶어서 고개를 돌려 엪에서 텔레비젼을 보는 신랑을 보니 신랑은 이미 눈물을 흘리고 있더라고... 여동생의 출산에 제부는 함께 들어가 아이를 받고 탯줄을 잘랐던 경험이 있던터라 출산의 경험, 고통을 눈 앞에서 본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아, 얘는 자신의 가장 특별한 경험을 누군가와 함께 나누었고 그래서 공유할 수가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게 결혼인거구나, 하는. 그렇다면 이들은 함께하는 추억이 생기는 거구나. 출산이라는 거대한 사건이 아니고서도 이런 일은 무수히 많이 쌓이겠지. 함께 살아간다는 건, 함께 늙어간다는 건 이렇게 공유하는 추억을 함께 만들어 간다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새삼스레 들었다. 이런 것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들은 함께 살고 싶어하고 또 결혼을 하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거다. 그러자 이내 줄리언 반스의 책,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의 이 구절이 생각났다.
우리는 30년을 함께했다. 처음 만났을 때 나는 서른두살이었고, 그녀가 죽었을 때는 쉰여섯 살이었다. 그녀는 내 삶의 심장이었다. 내 심장의 생명이었다. 그녀는 늙는다는 개념을 증오했다. 이십대부터 자신이 마흔을 넘기지 못할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우리 둘이 함께 이어나갈 삶을 기쁜 마음으로 고대했다. 모든 것이 느려지고 고요해지기를, 함께하는 옛 추억들이 늘어나기를 고대했다. (p.111)
여동생의 특별한 순간에 여동생이 혼자가 아니었다는 것, 그 경험과 고통을 함께 나누는 누군가가 있었다는 것, 그리고 그 사람과 여전히 함께 하며 같은 추억을 만들어냈다는 것이 다행스럽게 여겨지고 또 좋게 여겨졌다. 여동생은 자주 결혼과 출산에 대해 얼마나 힘든지 토로하지만, 그만큼 그것을 견디게 해주는 다른 것들이 여동생의 삶을 단단히 받쳐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을 옷을 입고 미끄럼틀을 타는 조카의 사진을 찍으며 언제 저렇게 컸지, 라고 생각하고 내게 전송해주는 그 마음, 그 안에 삶을 단단히 버티게 해주는 것이 들어있는 게 아닐까. 내가 눈물나는 데 이 사람은 어떻지, 하고 돌아보았을 때 마찬가지로 눈물흘리는 사람의 모습을 본다는 것, 바로 거기에 삶을 버티게 해주는 힘이 있는 게 아닐까.
많은 호감은 쉽게 불발로 끝나고 더 많은 연애들이 쉽게 지쳐서 흩어질 때,
어떤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가져갔던 신문을 여동생 집 식탁에서 커피를 마시며 펼쳐보다가, 오 마이 갓, 필립 클로델의 새로운 소설이 나왔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나로 말하자면, 그의 번역된 소설 모두를 읽어보았으므로, 기꺼이 새 책을 살 의향이 있다.
아아- 그러나 11월 20일 까지 나의 도서 구입은 구간으로만 채우기로 스스로 약속했었는데, 이렇듯 매력적인 신간 소식이 나오면 약속을 어길 수 밖에 없는 것인가. 크-
당장 읽을 책이 없는 것도 아니고(아주 많지), 그래, 21일에 지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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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 내리는 흰 눈 같던 아카시아, 아침마다 아버지에게 젊음을 되돌려주던 메낭 스킨, 떨리던 첫 키스의 순간으로 안내하는 허브 향, 산책하던 숲에서 만난 동물의 사체에서 느끼는 폭력의 기억, 계절을 알리는 강물과 숲의 냄새, 사랑하는 삼촌이 남기고 간 낡은 스웨터, 노동의 숨결이 배어나는 담배 냄새, 선크림과 야외 수영장에 깃든 태양과 여름의 기억, 최고의 간식이었던 구운 베이컨과 마늘 향…
달콤한 과자의 풍미를 더하는 계피 향, '추위를 타는 이웃처럼' 빽빽이 꽂혀 있는 책에서 풍기던 묘한 곰팡내, 방금 새로 간 침대 시트의 포근하고 청결한 향기, 이국의 도시에서 맞는 밤과 정열의 냄새, 가장 평안하고 숭고한, 잠든 아이의 살냄새…. 향긋하고, 알싸하고, 달콤하고, 시큼하고, 고소하고, 매콤하고, 씁쓸하고, 퀴퀴하고, 때로는 후각이 아니라 머릿속에서 그려낸 듯 재탄생된 추억과 향기의 목록들.
눈에 보이는 듯 생생하면서도 정신성이 깃든 필립 클로델의 표현과 세계관에는 낭만주의와 상징주의를 이은 시인 보들레르의 영향이 짙게 배어 있다. 프랑스 최고 문예비평지인 「리르」가 그를 두고 '영혼까지 그려낼 줄 아는 작가'라고 했던 표현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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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지르지 못하고 있는 신간은 또 있다! 황, 정, 은!!
게다가 이 책도 애써 잊고 지내고 있는데, 하필이면 경향신문에 또 나왔어. 필립 클로델하고 황정은이 같은 날 같은 신문에 나와서...호두 타르트 먹던 내가 좀 흔들흔들 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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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미로운 미풍과 모두를 숨죽이게 하는 태풍이 공존하는 곳. 황정은이 한국문학에서 획득한 새로운 영토다. 그리고 그는 이러한 진단을 더욱 확신하게 해줄 새 장편 『계속해보겠습니다』를 통해 놀랍도록 부드럽고 확고하게 독자들의 마음속으로 들어간다. 황정은 특유의 단정하고도 리드미컬한 문장의 점층은 시처럼 울리고, 상처 입은 주인공들이 감당해가는 사랑은 서툴지만 애틋하다. 그의 소설 중 가장 아름답다고 평할 한권의 책이 독자의 서가에 자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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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덧붙여야지. 박연준을 빼먹었네. ㅎㅎㅎ 박연준의 시집이 새로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이 무슨 산문집이란 말인가!
시인이 쓰는 산문은, 그 단어나 문장에 압축과 은유가 가득할 것 같고,
압축과 은유가 가득한 글은 내 취향이 아니므로 패쓰할까 했지만,
그래도 박연준, 인데..하며 읽어보고 싶어졌다.
속눈썹이 지르는 비명, 의 그 박연준이란 말이다.
여기, 묵묵히 응원하는 팬이 한 명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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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집어내서는 껍데기 없이, 거짓 없이, 부끄러움 없이 '날 것'의 언어로 그것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그녀가 발견한 것들을 하나씩 마주하노라면, 읽는 이의 마음도 다시금 소란해진다. 이를테면 자신에게도 그런 '순간'과 '언어'들이 있었음을 발견하는 것. 이미 오래전에 잃어버려서 잊어버려서, 잃고 잊은 줄조차 몰랐던 것들을 발견하는 것. 독자는 거울을 보거나 오래된 일기장 혹은 사진을 꺼내어보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스스로의 맨 얼굴을 보게 되고, 그 소란스러운 발견은 삶을 다시 살아내게 만드는 밑알(소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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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정가제로 인해 사재기를 하는 건, 어차피 그동안 책을 사던 사람들의 몫이다. 회사 동료들과 밥을 먹다가 도서정가제 얘기를 했는데 나를 빼고 나머지 직원들이 그게 뭔지도 모르며, 말해줘도 자신과 상관 없는 걸로 생각을 하더라. 어차피 안사던 사람들은 정가제가 되든 안되든 안산다. 나같은 사람만 정가제 되기 전에 구간 모으자, 이러면서 장바구니를 계속 비워내고 택배 박스를 계속 받아내지...또한 정가제가 시행된다고 하면 여전히 책을 살 사람도 나같은 사람인 것 같다. 어쩌면 책을 너무 많이 사놔서 한동안 잠깐 주춤할지도 모르지만...내가 어디 가겠는가. 그래봤자 금세 잊고 또 사겠지..그러므로 지금의 사재기는 사실 그다지 의미가 없다. 또 책을 쌓아두는 것 밖에 안되는 게 뻔한데..뻔하지만.....킁.
신간 나오지마!!
여동생과 찾아간 까페는 수제 타르트를 만드는 곳이었는데, 테이블이 몇 개 안되는 작은 곳이었다. 우리가 갔을 때는 우리밖에 손님이 없었는데 우리에게 커피를 주고 이내 남자 사장님은 자신의 공간으로 들어가 요리를 만들고 있었다. 아마도 새로운 쿠키나 타르트 혹은 케익을 만드는 중인 것 같았는데 뭔가를 젓고 부수고 따르고 하면서 높다란 받침대를 두어 서있는 데도 눈높이에 맞게 설정해둔 아이패드를 연신 들여다보며 요리를 하더라. 아마도 요리 방법이 거기 나와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타르트를 두 개 포장하려고 카드를 긁는데 카운터에 놓인 아이패드에 카드 리더기가 연결이 되어 있어가지고 본인이 보던 아이패드를 그대로 뒤집어 우리에게 내미니 거기에 서명란이 있는 게 아닌가! 서명을 하고 다시 뒤집으니 사장님은 결제를 완료할 수 있더라. 와- 그 순간 아이패드가 얼마나 똑똑해 보이는지! 아이패드를 사고 싶어졌다. 포장된 타르트를 가지고 나오면서 여동생에게 나 아이패드 살까? 하고 말했고 여동생은 내 말을 씹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아이패드를 검색해봤다. 뭐 얼마가 됐든 할부 긁으면 되잖아? 라고 생각한 것. 그러나 막상 고가의 금액을 눈앞에 보고나니 얼마 남아 있지 않던 이성이 돌아오더라. 왜 사고 싶은가? 카드 결제 똑똑하게 하더라. 그렇다면 나는 카드결제를 할 일이 있는가? 없다. 그렇다면 사서 무엇에 쓰겠는가? .....쓸 데가 없다. 쓸 데가 없는 데 살 건가? 아니다. 라고 결론을 내리고 아이패드를 결제하지 않았다는 훈훈한 마무리 되시겠다. 참 이상도 하지, 카드 결제하는 거 보고 꽂히다니...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암튼, 계속해보겠습니다. (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