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하도 이방인 어렵다고들 해서 그간 읽을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는데, 새움출판사에서 자기네가 제대로 된 이방인을 냈다고 해서 이왕 읽을거 새움으로 읽어볼까, 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러나 그 뒤의 논쟁을 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새움으로는 읽지말자, 라고 굳게 마음먹었는데, 무엇보다 자신의 해석이 옳다고 강요하는 게 못마땅했기 때문이다. 소설을 읽으면서 첫 페이지부터 끝페이지까지, 그 작품이 무엇을 말하는지는 독자가 해석하기에 달렸다. 게다가 받아들이는 것도 순전히 독자의 몫이다. 학창시절 하도 시나 소설에서 주제찾기 질문을 해대니 이 책의 주제는 뭐다, 하고 그것만 찾으려 하다보니 소설은 재미없는 것이 되어버리고 말았는데, 거기서 말하고자 하는 주제를 찾으려고 기를 쓰는 것 보다는 한 줄 한 줄 천천히, 등장인물이 되어 읽다보면 아주 사소한 문장에서도 감동을 할 수 있고, 그간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보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작품의 해석을 강요하고, '자신의' 해석을 설득한다는 건 '주제 찾기' 하라는 학창 시절의 국어 시간과 크게 다를 바가 없을 뿐더러, 여러 갈래로 뻗어나갈 생각들을 차단하는 게 된다. 물론 '강요' 라는 것 자체를, 누군가 나의 생각과 태도를 통제하려는 자체를 내가 징그럽게 싫어하기 때문에 그런 식의 태도가 더 짜증나게 느껴지는 걸 수도 있겠지만, 여튼 나는 그런 태도가 확실히! 잘못됐다고 생각하고 있다. 물론, 책을 읽으며 자신의 생각과 감상을 온전히 느낄 줄 아는 사람들은 누군가의 강요어린 해석에 휘둘리지 않을것이고.
집에 문동의 《이인》이 있으므로, 그렇다면 이번 기회에 이 책으로 읽어보자 싶었다. 아니, 근데 왜 제목이 '이인'이냐. 이건 좀 너무 나간게 아닌가 싶다. 책 뒤편의 해설을 읽어보니 역자는 이 책의 제목이 '이방인' 보다는 '이인'으로 해석하는 게 더 맞다고 생각한 것 같은데, 이인 과 이방인이 주는 느낌은 좀 다르다.
여하튼 이 책을 읽었는데, 그렇게 겁먹을 필요가 없었다. 사람들이 하도 어렵다 어렵다 해서 조낸 겁먹었는데, 책장이 잘도 넘어가는거다. 심지어 재미있어!!!!!!!!!!!!!!!!!!!!!! 게다가 얼마나 밑줄 그은 문장은 많던지. 왜 그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어렵다고 한걸까, 생각해보다가, 그들이 혹시라도 너무 어린 시절에 시도했던 건 아닌가 싶었다. 나 역시 고등학교때 도스트예프스키의 《죄와벌》을 열 번쯤 시도하다 포기했었는데, 이십대 중반에 읽었던 죄와벌은 재미있었던거다. 그래서 내친김에 그의 《영원한 남편》도, 《카라마조프씨네 형제들》도 읽지 않았던가!
분량도 적어서 앉은 자리에서 금세 읽어낼 수 있었는데, 그렇게 재미있게 읽긴 했지만 간혹 '이거슨 뭐담?' 싶은 문장이 몇 개 보였다. 자연스럽지 못한 문맥이라고 해야하나. 사소한 꼬투리잡기이긴 하지만, 이런 문장은 확실히 부자연스럽다.
난 관자놀이에서 피가 뛰는 게 느껴졌다. (p.23)
'난' 이라고 시작했다면 '느꼈다'로 끝맺어야 하는게 아닌가. 뒤에 '느껴졌다' 라는 서술로 맺어야 했다면 앞에는 '내 관자놀이에서' 라고 하는 쪽이 더 자연스럽고. 다음과 같은 문장도 마찬가지다.
레이몽 역시 창이 없는 부엌 딸린 방 하나밖에 없다. (p.34)
무슨 뜻인지 모르겠는 건 아니다. 레이몽이 사는 집도 방이 하나짜리이며, 부엌엔 창이 없다는 뜻이라는 걸 안다. 다만, 문맥상 자연스럽지 못하게 느껴진다는거다.
'느꼈다'와 '느껴졌다'의 주술 관계에 있어서 아마 역자(혹은 편집자)는 늘 헷갈리는 것 같은데, 다음 문장에서또 그런다.
영감이 슬그머니 내게 손을 내밀었고, 난 비늘 같은 피부가 느껴졌다. (p.54)
나는 이 문장이 이상하다고 생각하는데, 대체적으로 이런 주술관계가 자연스러운 건가? 자꾸 반복되니 나 혼자만 이 문장을 자연스럽지 못하게 느낀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건그렇고, 이 책의 주인공인 '뫼르소'는 굉장히 솔직한 남자인데, 그렇기 때문에 재판의 과정에서 더 불리했던 것 같다. 어머니와 같이 사는 것 보다는 어머니를 요양원에 보내는 게 더 편할 것 같다는 생각은 많은 사람들이 하지만, 그 생각을 말로 꺼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여자를 만나고 데이트를 하지만 결혼할 생각을 갖지 않는 사람은 많되, 그걸 입밖으로 꺼내는 사람도 역시 별로 없다. 이런 생각들을 바깥으로 드러냈을 때 벌어지게 될 일들, 내가 어떻게 보일 것인가 하는 것과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혹시라도 이런 생각을 한다고 해서 나를 멀리하게 되진 않을까, 하는 것들이 뫼르소에겐 전혀 중요하지 않고, 그렇기 때문에 이런 생각을 품고만 있는 사람들에게 그는 불편한 사람일 수도 있다. 이런 점이 살인이란 죄목으로 재판을 받는 그에게 불리하게 작용한다. 어머니를 요양원에 보내다는 게 더 편하다는 사람이, 어머니의 장례를 마치고 여자랑 놀러다니는 사람이 좋은 사람일 리 없어, 하는 편견들이. 결국 그는 유죄가 되고 사형을 선고 받는다. 그가 순간의 기분에 충실하고, 그 충실한 기분을 입밖으로 꺼냈기에 그는 받아들여질 수 없는 사람이 되고야 만다.
나는 마당에 있는 플라타너스 아래에서 기다렸다. 풋풋한 땅 내음을 들이마셨고, 더 이상 졸리지도 않았다. 사무실 동료들 생각이 났다. 이 시간이면, 출근하려고 잠자리에서 일어날 시간이었다. 내겐 늘 가장 힘든 시간이었다. (p.18)
어머니의 장례식 차 휴가를 받고 내려와있던 그는, 요양원에서 잠시, 출근하려는 동료들 생각을 한다. 휴가를 썼던 이유가 '어머니의 장례식'이라는 게 안타깝지만, 평범한 직장인인 나는 평일 휴가를 얼마나 바라는가, 하는 것이 이 문장을 보며 떠올랐다. 일전에 업무차 밖에 나갔다가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에 지나치던 까페를 무심히 쳐다보다, 그 까페 안에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던 사람들을 보았었다. 아, 저들은 이 시간에 어떻게 저 안에서 한가롭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나도 평일 늦은 오전에 까페 안에 들어가있으면 좋을텐데, 했던 일. 출근하던 길에 마주친 모텔에서 나오던 연인들. 아니, 이 시간에 모텔에서 나온다니, 저들은 출근을 어떻게 하려고, 오지랖넓게 걱정했던 기억. 뭐 그런것들.
일전에 스페인 영화를 보면서 아니, 저들은 오후 시간이 왜저렇게 많지? 직장에 다니면서 어떻게 저게 가능하지? 했었는데, 이 책을 보면서도 역시 생각했다. 휴가에서 돌아온 후 뫼르소는 직장에 복귀했는데 점심 시간이 되어 사무실에서 나온다.
우리는 땀에 흠뻑 젖은 채 셀레스트네 식당에 도착했다. 하얀 콧수염을 기른 셀레스트는 불룩 나온 배에다 앞치마를 두른 채 여전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셀레스트는 "그래, 괜찮아?"라고 내게 물었다. 난 괜찮다고 하면서 배가 고프다고 했다. 난 허겁지겁 먹고 나서 커피를 마셨다. 그러고는 집에 와서 낮잠을 약간 잤는데, 포도주를 과하게 마신 탓이었다. 잠에서 깨자, 담배를 피우고 싶었다. 시간이 너무 지나서, 난 달려가서 전차를 탔다. 오후 내내 일을 했다. (p.32)
이 문장들은 읽으면서 내가 다 걱정했더랬다. 아니, 점심을 먹고 집에 가서 낮잠을 잘 수가 있다니. 어떻게 그게 가능할까 싶었던거다. 점심을 먹으면 나도 항상 졸린데 나도 그러고 싶었다 ㅠㅠ 물론 점심시간으로 많은 시간을 써버리고 '달려가서' 전차를 타 '오후 내내' 일을 하긴 하지만, 어쩌면 뫼르소의 성격상 나처럼 제 시간에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 같은 게 없었을런지도 모르겠다.
늘 생각하는거지만, 나는 지금 하는 일에서 어마어마한 양의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데, 이 일 자체에서 오는 스트레스라는 게 물론 분명 존재하지만,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나랑 같은 일을 한다고 했을 때, 나와 같은 강도로 스트레스를 받을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이런 성격'이고 '이런 기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만큼의'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뫼르소는 직장과 업무라는 것 자체에 있어서 그의 성격상 그다지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런지도 모르겠다.
저녁때 사무실을 나와 선창을 따라 천천히 걸어서 집으로 돌아오면서 난 행복했다. 하늘은 초록빛이었고, 난 만족감을 느꼈다. 그래도 난 곧장 집으로 돌아왔다. 삶은 감자 요리를 해 먹고 싶어서였다.(p.32)
ㅎㅎㅎㅎㅎ 퇴근할 때의 내가 꼭 저러해서 뫼르소에게 빙의 됐었다. 퇴근길의 나는(물론 출근길에도 그렇지만) 하늘이나 나무, 풀과 꽃 등을 보며 얼마나 감탄하고 행복해하는가. 게다가 늘, 거의 매일 빠짐없이 먹고 싶은 무언가가 생각난다. 먹고 싶은 걸 먹을 생각에 설레인단 말이다. 오, 행복한 퇴근길!! 그게 내가 만들어 먹어야 하는 것일때는, 만들고나서 불행의 나락으로 떨어지지만...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의 날들 속에 만나는 사람들과, 그들과의 대화에서도 뫼르소의 성격은 나타나지만, 재판을 임할 때 굉장히 잘 드러난다.
비록 피고석에 앉아 있다 해도, 자기에 대해 말하는 걸 듣는 것은 언제나 재미있는 법이다. 검사의 논고와 변호사의 변론이 이어지는동안, 나에 대해서, 아마도 내 죄에 대해서보다도 나에 대해서 훨씬 더 많은 말을 했다고 할 수 있다. 하기야, 검사의 논고와 변호사의 변론이 그리 달랐던가? 변호사는 두 팔을 휘저으며 죄는 지었지만 감경사유가 있다고 했다. 검사는 두 손을 앞으로 내밀고서 유죄를 부각시키면서 감경 사유가 없다고 했다. 그런데 막연하게나마 한 가지 때문에 내 심기가 불편했다. 내 걱정거리들은 제쳐두고, 난 이따금 중간에 개입하려 했다. 그런데 그때마다 변호사가 내게 말했다. "잠자코 있어요. 당신 사건엔 그게 더 좋아요." 어떻게 보면, 나를 쏙 배놓고 내 사건을 다루고 있는 모양새였다. 모든 게 내가 개입할 여지도 없이 진행되고 있었다. 내 운명이 내 의견을 반영하지도 않은 채 결정되고 있었다. 이따금 나는 모든 사람들의 말을 가로막고서 "아니, 도대체 누가 피고입니까? 피고가 된다는 것은 중요한 것입니다. 저에게도 할 말이 있습니다"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내겐 할말이 아무것도 없었다. (pp.106-107)
아, 나는 저 문장이 그렇게나 좋은 것이다. '내 운명이 내 의견을 반영하지도 않은 채 결정되고 있었다' 라는 저 문장!
누구나 알다시피, 삶이란 건 살 만한 가치가 없다. 따지고 보면, 서른에 죽으나 일흔에 죽으나, 별로 다를 게 없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당연하게도 두 경우 모두, 나머지 사람들은 살아 있을 것이고, 그렇게 수천 년 동안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이보다 더 명백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지금이든 이십 년 후이든, 죽는 건 언제나 나이다. 그런 순간에, 내 추론 때문에 난 약간 난감해지곤 했는데, 앞으로 이십 년이나 더 살 수도 있다는 생각에, 속으로는 미친 듯이 날뛰는 게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p.122)
나는 삶이란 살 만한 가치가 없다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지만, 그러나 누구나 '죽는다'는 사실은 뫼르소처럼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알고 있는 것과 받아들이는 것은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다. 뫼르소가 말했듯, 그 죽음이 '나의'것이 되는 순간, 그건 '응 원래 알고 있었어' 라고 대응할 수 없게 되는것이다. 나이다. 내가 된다. 나에게 닥친 일이 된다는 것은, 충분히 날뛸만한 일이 되는 게 아닌가. 내 일이 되고 내 가까운 사람의 일이 되는것, 알지만 받아들이기 얼마나 어려운가. 누구나 죽는다는 사실을 아는것처럼, 뫼르소는, 그것이 자신의 일이 될것이란 생각때문에 속으로 날뛴다는 것 역시 잘 알고있다. 아..갑자기 가슴이 너무 아프다... 아무리 뉴스를 보지 않으려고 해도, 수시로 불쑥불쑥 찾아오는 저 큰 불행의 기억 때문에. 그 불행은 모두에게 지독한 상처이고, 부디 우리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잘 버텨낼 수 있기를, 서로가 서로에게 위로와 희망이 될 수 있기를 바랄뿐이다. 아...이방인 얘기 하고 있었는데....다시.
나는 바닥을 뚫어지게 바라다보고 있었다. 신부가 나를 향해 한 발짝을 떼더니, 마치 감히 앞으로 더 다가서지 못하기라도 하는 듯이 멈춰 섰다. 신부는 철창 너머로 하늘을 쳐다보다가 내게 말했다. "내 아들아, 자네가 잘못 생각하는 걸세. 자네에게 그 이상을 요구할 수도 있는 걸세. 아마도 그 이상을 요구할 걸세." -"도대체 뭘 말입니까?-"자네에게 똑똑히 보라고 요구할 수 있다는 걸세."-"뭘 보라는 겁니까"
사제는 사방을 쭉 훑어보고 나서, 내가 보기에 갑자기 매우 지친 듯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 모든 돌들이 고통의 땀방울을 흘리고 있네. 난 그걸 알고 있네. 난 번민에 빠지지 않고서 이 돌들을 바라본 적이 없네. 진심으로 말하네만, 난 알고 있네. 자네 같은 사람들 중에서도 가장 비참했던 이들은 이 돌들의 어둠 속에서 신의 얼굴이 나타나는 것을 보았다는 걸 말일세. 자네에게 보라고 하는 게 바로 신의 얼굴이네."
난 약간 열이 받쳤다. 난 이 벽돌을 쳐다본 게 벌써 몇 달째라고 말했다. (p.126)
어이쿠야. 감옥에 갇힌 뫼르소에게 찾아와 사제가 하는 말이라니. 감옥을 둘러싼 그 벽에서 신의 얼굴이 나타난다니. 이럴때 정말 답답하다. 종교는 누군가에게 구원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지만, 모두에게 그렇지는 않다. 사형 선고를 받고 죽을 날을 기다리는 사람에게 돌들에서 신의 얼굴을 찾으라니. 이 무슨 개풀 뜯어먹는 소리인가. 물론 누군가는 거기서 신의 얼굴을 찾을 수 있을런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나 역시 나를 둘러싼 돌들에서 신의 얼굴을 찾기 보다는, 사제의 저런 말을 듣고 열이 받치는 류의 사람이다. 뫼르소는 왜 '약간' 열이 받쳤을까. 나는 완전 빡돌텐데.
일전에 디스크 수술을 받아 입원해있는 우리 엄마를 찾아와 '다 하느님의 뜻' 이라고 말했던 큰아버지 생각이 나 불쑥- 화가 치민다. 큰아버지는 교회 장로님이신데, 어떻게 아픈게 하느님의 뜻이라는 말을 할 수 있을까, 수술을 앞둔 사람앞에. 그때 남동생과 내가 분노했던 기억도 떠오른다. 아니, 무슨 뜻이래, 이건? 하면서. 하아-
'존 하트'의 《라스트 차일드》생각도 난다. 여동생이 죽은 소년에게 '그 죽음이 다른 아이들을 죽인 범인을 찾게 해줬다, 의미가 없지 않았다'는 뉘앙스의 말을 하는 경찰. 그 경찰에게 '왜 그게 하필 제 여동생이어야 하죠?' 라고 되물었던 소년. '의미'고 '뜻'이고 나발이고 간에, 그걸 타인이 그렇게 말해서는 안되는거다. 섣부른 위로는 분노를 부를 뿐이다. 이미 많이 아픈 사람에게 그것이 마치 중대한 뜻이고 의미인 것처럼 말해서는 결코 안되는거다.
다 읽고나서 책장을 덮으면서 '오 이방인이 참으로 재미있는 책이구나' 했지만, 저 부자연스런 문맥이 조금 찜찜해, 김화영 번역으로 다시 한 번 읽어보자 싶었다. 분량도 얼마 안되니 읽기에 부담도 없을 터. 그래서 어제 주문을 넣었는데, 김화영 번역의 《이방인》이 민음사에서도, 책세상에서도 있는 게 아닌가. 앗 둘 중에 뭘 사지, 나 민음사 모으고 있으니 민음사 살까 하다가, 책장에 카뮈의 《시지프 신화》가 꽂혀있는 걸 보고, 읭? 이건 뭐람? 하고 꺼냈다가 '책세상'의 카뮈전집인 걸 알게됐다. 흐음. 그럼 카뮈는 책세상 전집으로 할까, 하고 어제 카뮈의 《이방인》과 《결혼,여름》을 주문했다. 저 결혼 책은 옛날에 산 줄 알았더니 안샀더라고.
이방인도 이방인이지만, 저 결혼과 여름에 대해 카뮈가 뭐라고 적었을 지 기대가 매우 크다. 어흑 떨려. 여름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계절이고, 결혼은........모르겠다.
아, 어제 한바탕 지르고났더니 심규선의 새앨범 소식이 나오더라. 흐잉..
워낙 감성이 풍부한 그녀이다보니 이번 앨범도 구매할 예정이긴 하지만(지금은 예약구매-난 예약구매는 하지 않을거야), 흐음, 김연아 선수에게 바친다는 'silver & gold'란 노래의 제목을 보는데 좀 손발이 오그라든다. 오글오글. 쩝.. 그러니까 난 이런게 좀 별로인데, 물론 당사자들이 누구를 위해서 노래하고 누구에게 바치는 노래이든 그건 다 그들의 진심일테고, 할만하니까 하는거고, 그렇게 하는게 행복할테고, 다 알겠는데, 나로서는 좀 오글거린달까. 이를테면 가수들이 팬들에게 바치는 노래도 나는 좀 오글오글하다. 서태지를 그렇게나 좋아했었지만 '우리들만의 추억' 이란 노래는 싫었어...
그들을 위해 노래를 만들고 바치고 하는 것이 그들의 의지고 마음일테지만, 그런 노래가 내 취향이 아닌 것은 뭐, 나로서도 어쩔 수가 없다. 만약 silver & gold 란 노래가 포함된 앨범과 포함되지 않은 앨범, 이렇게 두 가지로 나왔다면, 나는 고민없이 후자를 선택했을 것이다.
아침에 트윗에서 누군가 외국인들이 불닭볶음면 먹는 영상을 올린 걸 보았다. 많은 사람들이 후루룩 맵다 매워 라고 하면서 먹는 걸 보니, 아침부터 불닭볶음면이 엄청 먹고싶어지는거다. 하는수없이 출근길에 편의점에 들러 그들이 먹었던 것과 같은 사발면으로 샀다. 오늘 점심엔 저 불닭볶음면과 김밥을 먹어야겠다. 벌써부터 입에 침이 고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