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권을 읽고 2권을 읽기까지 몇 개월 정도의 텀이 있었는데, 그래서그런지 이 책 속의 여자주인공 캐릭터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 2권을 읽으며, 아, 이런 여자였지! 하고 하나씩 기억나며 웃었는데, 그러니까 그녀는 수줍음 많고 낯가리고 책에 대해서는 천재적인 기억력과 어마어마한 관심을 가졌고, 본인이 풍만한 가슴을 가졌으되 그 사실에 대해서는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풍만한 가슴의 소유자인 것이다. 그녀는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므로 간혹 함께 일하는 남자를 당혹스럽게 한다. 그 남자는 그녀에게 관심이 있고, 게다가 풍만한 가슴을 몹시 인식하는지라, 그녀가 아무렇지도 않게 가슴이 보이는 파인옷을 입거나 자신의 옆에서 허리를 숙여 가슴이 보일때면 당황하고 긴장하는 것이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 웃겨. 나는 이 여자의 캐릭터가 딱히 좋진 않고, 실제 내 옆에 있는 사람이라면 나랑 친해질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은데, 이번 2권은 엄청 재미있게 읽었다. 1권보다 더 재미있게 읽었는데, 그건 아마도 이 책에는 내가 아는 책이 나왔기 때문인것 같고, 그 아는책이 나왔다는 단순한 사실 보다는 그 책에 대한 흥미로운 사실을 이 책으로 인해 새롭게 알게 되었기 때문인 것 같다.
그 책은 바로 '앤서니 버지스'의 『시계태엽 오렌지』이다. 나는 시계태엽 오렌지를 내 나이 스물아홉에 읽었다. 모든 책들을 언제 읽었는지를 당연히 기억할 수 없지만, 이 책을 스물아홉의 여름에 읽었다는 사실만큼은 잊을 수가 없다. 나는 그해 여름, 열다섯때부터 가보고자 희망했던 뉴욕을 갔었고, 시계태엽 오렌지는 그 때 나랑 함께 비행기 안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 때 책 몇 권을 가져갔는데 이 책이 그 중의 한 권이었고, 비행기 안에서 나는 이 책을 읽었던 것이다.
아주 오래전의 일이니만큼 사실 나는 이 책의 내용이 전체적으로 기억나진 않는다. 다만 '엄청나게 폭력적'이었다는 기억만이 어렴풋하게 남아있다. 그래서 끝에 어떻게 됐지? 하고 아무리 생각해봐도 알 수가 없는데, 다 읽고나서 좀 충격적이다, 라는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그 책, 앤서니 버지스의 시계태엽 오렌지가 이번 비블리아 고서당에서 다뤄진다.
"이쪽은 2008년에 발행된 신판이에요. 지금 서점에서 판매되는 건 이 책이죠. 표지를 새롭게 바꿨고, 판형과 본문 글자가 조금 커졌어요."
올해가 2010년이니 2년 전에 나온 책이다. 나는 두 책을 들고 비교해봤다. 신판이 약간 더 두꺼웠다.
"내용면에서도 차이점이 있습니까?"
그렇게 묻자마자 안경 너머의 까만 눈동자가 번뜩였다.
갑자기 흥분한 듯 시노카와 씨가 상반신을 쑥 내밀었다. 원피스 아래로 풍만한 가슴이 출렁거렸다.
"바로 그거에요! 구판과 신판은 내용면에서 큰 차이가 있어요. 본문 마지막 페이지를 펼쳐서 확인해보세요." (pp.58-59)
"이 신판이 본래의 『시계태엽 오렌지』에요. 말하자면 완전판이죠."
그렇게 말하며 커버의 제목 아래를 가리켰다. 아닌 게 아니라 작은 글씨로 '완전판'이라고 적혀 있었다.
"어떻게 된 겁니까?"
호기심이 생겨서 나도 모르게 몸을 앞으로 내밀었다.
시노카와 씨와 거리가 좁혀졌지만 이제 별로 신경 쓰이지 않았다. 지금은 책 이야기가 더 궁금했다.
"버지스가 1962년에 발표한 초판에서는 주인공 알렉스의 세뇌가 풀린 부분에서 이야기가 끝나지 않아요."
시노카와 씨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알렉스는 다시 폭력과 범죄이 세계로 돌아가지만 이내 그런 나날들에 질리게 돼요. 그러는 동안 갱생당해 새사람이 된 옛 친구와 만나게 되는데, 그 일을 계기로 생각을 바꾸는 거예요. 이제까지의 폭력적인 삶과 결별하고 가정을 꾸려서 어른이 되겠다고 선언하며 이야기가 끝나요."
"네?"
저도 모르게 되물었다.
"그럼 결말이 전혀 다르잖아요."
아니, 아예 정반대다.
"네, 그렇죠."
시노카와 씨는 힘주어 고개를 끄덕였다. 서로 이마가 부딪칠 뻔했다.
"버지스는 알렉스의 폭력이 한때의 일탈일 뿐이라고 생각했어요. 어른이 되면 자기 의지로 선악을 선택할 수 있다고 믿었죠. 『시계태엽 오렌지』는 젊은이의 성장을 그린 이야기예요. 하지만 미국에서 출간되었을 때 출판사 방침으로 마지막 장이 삭제됐어요."
"이유가 뭡니까?"
"미국 출판사 쪽은 이 이야기에 해피엔드는 필요없다고 생각한 모양이에요. 그런데 그 미국판을 바탕으로 스탠리 큐브릭 감독이 영화를 만들고부터 문제가 더욱 복잡해졌어요."
아, 스탠리 큐브릭이라면 안다.
(중략)
"이 표지는 영화판 포스터를 가져온 거예요. 영화가 큰 화제를 불러일으킨 덕에 이 작품은 더 많은 나라에서 번역 되었어요. 일본어판도 영화 개봉과 같은 1971년에 번역되었는데, 당시에는 마지막 장이 실린 영국판은 유통되지 않아서 영화의 결말과 똑같은 미국판을 번역했죠."
"작가가 가만히 있었나요?"
결말이 삭제된 소설로 자기 이름이 전 세계에 널리 알려졌다는 건 작가로서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으리라.
"경제적인 이유로 미국판 출판을 승낙할 수밖에 없다고 했어요. 하지만 속사정이 복잡해서 단순히 미국 출판사에게만 책임을 물을 수도 없죠. 1970년대에는 영국에서도 마지막 장이 빠진 판본이 출판되었고요. 일본에서는 오랫동안 이 문고본이 읽혔지만, 1980년대에 하야카와쇼보에서 완전판이 출판된 적 있어요. 요컨대 완전판과 마지막 장이 빠진 판이 동시에 서점에 깔린 거죠. 하지만 완전판은 몇 년뒤에 절판됐어요." (pp.62-64)
영국에서 버지스가 시계태엽 오렌지를 처음 출판했을 때는 이야기의 결말이 해피엔딩 이었다, 그러나 미국쪽에서 마지막 장을 삭제하고 출판했고, 이를 버지스도 경제적인 이유로 허락했으며, 스탠리 큐브릭 감독은 마지막장이 삭제된 책을 바탕으로 영화를 만들었고 이 영화가 화제를 불러 일으켜, 마지막장 없는 불완전판이 전세계적으로 출판되었다, 는 이야기인데, 나는 이 일에 대해 몰랐던만큼 깜짝 놀라서 내가 가진 시계태엽 오렌지 책을 꺼내보았다. 그리고 마지막 장을 들춰보았다.
내가 가진 책은 2005년 1월에 발행된 민음사판인데, 끝부분을 살펴보니 마지막장인 7장이 있다. 7장을 읽어보니 위에 시노카와 씨가 얘기한대로, 예전에 함께 어울리던 선배 한 명을 우연히 만나게 되어 갱생된 모습을 보고 자신도 변하리라고 생각하며 이야기의 끝을 맺는다. 나는 내가 가진 책이 혹여라도 완전판이 아니었다면 어떤 책이 완전판일까, 완전판을 구해 읽어보고 싶다, 고 생각했는데, 내가 가진 책은 이미 버지스가 원래 의도했던 대로 쓰여진, 그것이 번역된 책이 맞았다. 비블리아 고서당을 읽으며 앤서니 버지스와 그의 책에 대해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고, 궁금해지고, 책장 앞에 서서 시계태엽 오렌지를 꺼내 재빨리 마지막 부분을 훑는 과정들까지를 무척이나 신나게 진행했다. 그러다보니 나는 사실 비블리아 고서당의 어떤 부분들은 억지스럽다고 생각하면서도 책장을 덮었을 때는 아 재미있다,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비블리아 고서당이 지금 4권까지 나왔다고 하는데, 어서 빨리 읽고 싶어 잽싸게 3,4권을 장바구니에 담았다. 그 책들에도 내가 아는 책, 아는 작가의 이야기가 나와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면 좋겠다. 그렇지만 3,4권의 목차를 보니 내 흥미를 끄는 책의 제목은 등장하지 않는구나..쩝..
어제 할머니의 이사를 도왔더니 몸이 뻐근해 집에 돌아와 좀 잤다. 저녁에 일어나 삼겹살을 안주 삼아 소주를 마시고 집에 돌아와서는 맥주로 2차를 했는데, 금욜밤도 거칠게 술을 마셨던 바, 어제까지 더 마시니 오늘 아침에 일어나서 속이 좀 편하질 않은거다. 조금 더 잤으면 괜찮았을텐데 여덟시반에 일어나는 바람에....왜이렇게 일찍 일어난거야...여튼 청소를 하고 김치찌개를 끓였는데 완전 맛있는거다. 속도 완전 편해지고!! 김치찌개를 후루룩 맛있다고 잘 먹고서는 산에 다녀올까 사우나를 다녀올까 둘 중에 뭘할까를 고민하다가 산에 다녀오고 사우나도 다녀왔다. 두개를 다 해치웠다. 움화화핫. 두 개를 다 해치우고나니 너무 고단해 저녁에 잠을 좀 잤는데, 그렇다면 오늘 밤에는 잠을 쉽게 잘 수 없겠지. 그렇지만 괜찮다. 나에게는 자연수면제 책이 있으니까. 이상하게 침대에 앉아 책만 펼치면 그렇게나 잠이 쏟아진다.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내게 책이 있는한 아마도 불면증은 생기질 않을 것 같다. 이젠 책장 앞으로 가서 무슨 책을 읽을지 고민좀 해봐야겠다.